폭염으로 인해 슬로베니아의 국기에도 등장하는 나라의 상징 트리글라우(Triglav)산의 빙하가 모두 녹아 내렸다고 한다. 19세기에는 40헥타르에 달했던 빙하가 20세기에 들어서 급격한 감소를 보이다가 유럽에서 기록상 가장 더웠던 3개년이 모두 지난 5년 동안 발생하면서 그마저 산비탈에 남았던 얼음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트리글라우는 ‘세 개의 머리의’를 뜻하는 슬라브 조어 *tri-golvъ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tri는 ‘셋’, *golvъ는 ‘머리의’를 뜻한다(슬라브 조어의 재구에서 ъ는 짧은 후설 고모음을 나타내는 기호이며 ŭ로 쓰기도 한다). 세 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슬로베니아 국기에 그려진 트리글라우산은 세 개의 봉우리를 정형화된 모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세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의 폴란드와 독일에 걸친 발트해 연안의 포메라니아 지방에서 슬라브인들이 예전에 섬겼다고 하는 신의 이름도 영어에서는 Triglav라고 부르는데 라틴어 원전에는 Triglau, Trigelaw, Trigelau, Triglou, Triglaff, Trigeloff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하고 오늘날 폴란드어로는 Trzygłów ‘트시그우프’, 독일어로는 Triglaw [ˈtʁiːɡlaf] ‘트리글라프’라고 부른다. 하지만 머리 셋이라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 외에는 트리글라우산과 관련이 없는 듯하다.
슬로베니아어는 인도·유럽 어족 슬라브 어파 남슬라브 어군에 속한다. 예전에 세르보크로아트어라고 부르던 언어와 불가리아어, 마케도니아어 등도 남슬라브 어군에 속한다.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크로아티아어·보스니아어·세르비아어·몬테네그로어가 각각 다른 언어로 불리지만 사실상 예전에 세르보크로아트어라고 불리던 하나의 언어를 조금씩 다르게 표준화시킨 것들이다. 하지만 옛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도 슬로베니아어와 마케도니아어는 세르보크로아트어와 다른 독자적인 언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다.
외래어 표기법은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 세칙을 포함하고 있지만 슬로베니아어는 따로 다루지 않는다. 물론 상당히 가까운 언어이고 철자도 비슷하기 때문에 슬로베니아어에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여 한글로 옮겨도 큰 탈이 없다. 하지만 슬로베니아어의 발음은 세르보크로아트어와 다른 부분이 몇 개 있기 때문에 정확히 옮기려면 이를 주의해야 한다.
폴란드어, 체코어, 러시아어 등 슬라브 어파에 속한 언어 대부분은 어말 무성음화 및 뒤따르는 무성음에 의한 역행 무성음화를 보인다. ‘머리들의’를 뜻하는 폴란드어 głów ‘그우프’와 체코어 hlav ‘흘라프’, 러시아어 голов(golov) ‘골로프’, 또 ‘작은 머리’를 뜻하는 지소형 폴란드어 główka ‘그우프카’와 체코어 hlávka ‘흘라프카’, 러시아어 головка(golovka) ‘골로프카’ 등에서 폴란드어의 w, 체코어의 v, 러시아어의 в(v)는 [v] 대신 무성음 [f]로 발음되기 때문에 ‘프’로 적는다. 하지만 세르보크로아트어는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슬라브어로는 드물게 어말 무성음화 및 역행 무성음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세르보크로아트어로는 Triglav ‘트리글라브’에서 v가 여전히 [v]로 발음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세르보크로아트어의 v를 어말에서도 ‘브’로 적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어는 대부분의 슬라브어와 마찬가지로 어말 무성음화 및 역행 무성음화를 보인다. 예를 들어 ‘얼음’을 뜻하는 세르보크로아트어 led ‘레드’에서는 d가 [d]로 발음되지만 같은 뜻의 슬로베니아어 led ‘레트’에서는 d가 [t]로 무성음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Triglav에서도 v가 폴란드어나 체코어, 러시아어에서처럼 [f]로 무성음화하는 것도 아니다. 슬로베이아어의 v는 기본 음이 유성 순치 접근음 [ʋ]이며 모음 뒤에서는 [u̯]로 실현되어 이중 모음을 이룬다. 그래서 Triglav는 슬로베니아어로 [ˈtɾíːɡlau̯] ‘트리글라우’로 발음되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여 2018년 11월 28일의 제142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당시 슬로베니아 총리 Cerar, Miroslav Jr.의 표기를 ‘체라르, 미로슬라우 (2세)’로 정했다. Miroslav의 v도 [u̯]로 발음된다.
같은 심의회에서는 1997년 3월 7일의 제15차 외래어 심의회에서 전 총리 Drnovšek, Janez를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 규정을 기준으로 ‘드르노브셰크, 야네즈’로 정했던 것도 ‘드르노브셰크, 야네스’로 수정했다. Janez의 z가 [s]로 무성음화하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v가 [u̯]로 발음되는 것까지는 반영하지 못했다. 이 이름을 슬로베니아어 발음에 가깝게 적으면 ‘드르노우셰크, 야네스’가 된다.
이에 앞서 2018년 4월 25일의 제138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당시 유엔 총회의장이었던 슬로바키아의 Lajčák, Miroslav의 표기를 ‘라이차크, 미로슬라우’로 정한 바가 있다. 슬로바키아어도 슬라브 어파에 속하는데 체코어와 상당히 가깝지만 v의 발음에서 차이가 난다. 체코어로 Miroslav ‘미로슬라프’의 v는 [f]로 발음되지만 슬로바키아어로는 v가 [u̯]로 발음되어 Miroslav ‘미로슬라우’가 된다. 이 위치에서 슬로베니아어와 v의 발음이 비슷하다.
우크라이나어의 в(v)도 슬로베니아어에서처럼 보통 [ʋ]가 기본 발음이고 모음 뒤에서는 [u̯]로 실현된다. 그래서 예전에 러시아어 이름에 따라 Киев(Kiyev) ‘키예프’로 적었던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이제는 우크라이나어 이름에 따라 Київ(Kyiv) ‘키이우’로 적는 것이다.
이처럼 일부 위치에서 v가 [u̯]로 발음되는 것이 슬라브어 가운데 그리 드문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고 있는 폴란드어, 체코어, 러시아어에서는 모두 어말과 무성음 앞의 v가 [f]로 발음되고 세르보크로아트어에서는 그냥 [v]로 발음되기 때문에 일반 한국어 화자 입장에서는 v를 ‘우’로 적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최근의 외래어 심의 결과에서 반영되기 시작한 것처럼 앞으로 슬로베니아어와 슬로바키아어, 우크라이나어 등의 표기에서는 v가 원어에서 [u̯]로 발음되는 경우 이를 존중하여 ‘우’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