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어 개관

크메르어와 캄보디아의 언어 상황

캄보디아의 공용어인 크메르어는 남아시아어족(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베트남어 및 미얀마와 타이에서 몬족이 쓰는 몬어도 같은 남아시아어족에 속한다. 고대 크메르어는 남아시아어족 가운데 가장 이른 611년에 기록된 비문이 전한다. 진랍(眞臘)과 크메르 제국의 언어였으며 그 전에 있었던 부남(扶南)에서도 크메르어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메르 제국의 언어로서 주변의 타이어, 라오어, 베트남어, 짬어 등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크메르어는 크게 중부와 북부, 서부 방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오늘날 캄보디아 주민의 대다수를 포함한 크메르어 화자 대부분은 중부 방언을 쓴다. 베트남 서남부의 크메르계 주민들이 쓰는 남부 방언, 캄보디아 동북부 스뜽뜨랭주에서 쓰는 크메르 케 방언도 넓은 의미에서는 중부 방언에 포함된다. 북부 방언은 타이 동부의 수린주, 시사껫주, 부리람주, 로이엣주를 중심으로 쓰이며 학자에 따라 북크메르어라는 별개의 언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부 방언은 캄보디아 서부와 타이 짠타부리주의 경계를 이루는 카르다몸산맥 주변의 고립된 지역에서 쓰이며 중세 크메르어의 자음 구별을 보존한 것이 특징이다.

크메르어가 캄보디아를 이웃하는 타이와 베트남에서도 쓰이는 것처럼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어 외에도 남도어족(오스트로네시아어족)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에 속하는 짬어와 자라이어, 남아시아어족에 속하는 베트남어와 부농어 및 땀뿌안어, 크라·다이어족에 속하는 라오어 등이 소수 언어로 쓰이며 화교, 즉 중국계 주민 사이에서는 민남어 방언 가운데 하나인 차오저우어(Teochew)를 비롯한 중국·티베트어족 중국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가 쓰인다.

크메르어와 다른 언어의 관계

외래어 표기법에서 이미 다루는 베트남어는 크메르어와 같은 어족에 속하지만 둘은 서로 매우 다르다. 베트남어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여 중국어 어휘를 많이 받아들인 반면 크메르어는 전통적으로 인도의 영향권에 속하여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어휘를 많이 받아들였고 이웃한 타이어와 라오어 어휘도 일부 받아들였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한자를 바탕으로 한 문자 체계인 쯔놈(chữ Nôm)을 썼고 오늘날에는 로마자를 쓰는 반면 크메르어는 6~7세기부터 인도에서 전해진 브라흐미계 문자인 크메르 문자로 기록해왔다. 크메르어는 베트남어와 달리 매우 다양한 초성 자음군이 허용되고 모음 체계도 상당히 다르다. 베트남어는 남아시아어족 언어로는 드물게 성조가 있으며 철저히 단음절 위주의 언어인 반면 크메르어는 성조가 없고 남아시아어족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음절을 포함하는 복합 음절이 있다. 그러니 외래어 표기법의 베트남어 표기 규정은 크메르어의 한글 표기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크메르 제국에서는 인도에서 힌두교와 함께 들어온 산스크리트어 및 소승불교와 함께 들어온 팔리어가 고급 언어의 역할을 했지만 크메르어가 일상어로 쓰였다. 크메르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비문들이 쓴 언어는 산스크리트어였지만 얼마 후 크메르어 비문도 나타난다. 크메르 문자는 인도에서 전해진 문자를 바탕으로 하며 원래 고대 크메르어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기록했기 때문에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자음과 모음 구별을 충실히 나타낸다. 그래도 9~13세기의 크메르 제국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고대 크메르어 발음을 나타낼 수 있는 철자법이 정비되었다.

크메르 제국이 쇠퇴한 후 크메르어에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약 1450년부터 1650년 사이에 기록된 크메르어 비문은 발견되지 않는다. 표준 언어를 유지하는 구심력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중앙 정부가 사라진 약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크메르어를 중세 크메르어라고 한다. 이 시기에 크메르어는 타이어, 라오어, 베트남어, 짬어 등 이웃 언어의 어휘를 많이 받아들였으며 특히 발음 체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폐쇄음과 파찰음에 있었던 고대 크메르어의 유무성음 구별이 사라지고 그 대신 뒤따르는 모음 음가의 구별로 바뀌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크메르 문자의 발음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크메르 문자의 자음 글자는 a계열과 o계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 고대 크메르어의 무성음과 유성음에 대응된다. 대부분의 자음 글자는 다른 계열에 발음이 동일한 짝이 있다. 하지만 뒤따르는 모음은 계열에 따라서 발음이 달라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언어’를 뜻하는 bhāṣā भाषा ‘바사’는 팔리어 bhāsā भासा ‘바사’를 거쳐 고대 크메르어 bhāsā ភាសា가 되었다. 하지만 유성음인 bh는 무성음으로 변하고 대신 뒤따르는 모음에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bʰaːsaː] > [bʰa̤ːsaː] > [pʰĕaːsaː] > [pʰeasaː] > [pʰiəsaː]와 같은 변화를 거쳐 현대 크메르어의 phéasa ភាសា [pʰiəsaː]가 되었다. 원래의 ā가 a계열 자음 뒤에서는 [aː]로 유지된 반면 o계열 자음 뒤에서는 [iə]로 바뀐 것이다.

때로 크메르 문자의 자음 글자는 속한 계열과 반대되게 뒤따르는 모음 발음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부호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특히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서 나온 어휘에서는 이를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សិរី는 철자로만 보면 sĕri ‘세리’로 발음되어야 할 것 같지만 마치 រ가 a계열 자음인 것처럼 sĕrei ‘세레이’로 발음된다. 이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śrī श्री ‘슈리’의 팔리어 형태인 siri ‘시리’에서 왔다.

이처럼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서 나온 어휘는 원 철자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불규칙적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재 모음, 즉 모음 글자를 따로 쓰지 않았을 경우 자음 글자가 나타내는 초성 자음에 따르는 모음은 a계열 자음 글자 뒤에서 â [ɑː~ɒː], o계열 자음 글자 뒤에서 ô [ɔː]가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서 나온 어휘에서는 보통 a계열 자음 글자 뒤에서 ă [a], o 계열 자음 글자 뒤에서 eă [ɛ̆a~ea~ĕə] 또는 oă [oa~ŏə]가 된다.

이 외에도 ‘마을’, ‘지역’, ‘나라’ 등을 뜻하는 ភូមិ는 철자상 phumĭ [pʰuːmiʔ]로 발음되어야 할 것 같지만 마지막 모음 글자가 묵음이 된 phum [pʰuːm]으로 발음된다. 산스크리트어로 ‘대지’를 뜻하는 bhūmi भूमि ‘부미’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에 크메르어에서는 한 음절로 발음되더라도 철자는 산스크리트어 원형을 간직한 것이다. 이처럼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서 온 어휘에서는 일부 글자가 발음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크메르어의 로마자 표기

크메르어의 로마자 표기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크메르 문자가 인도에서 쓰던 문자를 빌린 것이고 원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기록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의 로마자 표기는 이른바 산스크리트어 전자(翻字) 국제 기호(International Alphabet of Sanskrit Transliteration, IAST)가 학계에서 널리 쓰인다. 크메르 문자 가운데 산스크리트어를 적는데 쓰는 자모를 IAST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고대 크메르어와 초기 중세 크메르어에서 쓰였던 자음과 모음 발음을 비교적 충실하게 나타낼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를 적는데 쓰이지 않는 나머지 자모도 마찬가지로 옛 크메르어 발음에 따라 적당히 로마자로 표기하면 크메르어 철자를 복원하기 쉬운 전자(翻字) 방식이 된다. 고문체(古文體) 크메르어 표기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고문체 크메르어 로마자 표기법은 캄보디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언어학자 사브로스 포(Saveros Pou, 크메르어명 Pŏu Savrôs ពៅ សាវរស ‘뻐우 사오로스’)가 사브로스 레비츠(Saveros Lewitz)라는 이름을 쓰던 1969년에 발표한 레비츠식 로마자 표기법이 시초이며 미국도서관협회·의회도서관(ALA-LC) 표기법도 2012년에 수정을 거치면서 ṅ 대신 ng를 쓰게 된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IAST 표기법을 따른다. 고대와 중세 크메르어 연구 및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서 온 단어의 어원을 알아보기에 유용하다. 예를 들어 ‘언어’를 뜻하는 ភាសា는 레비츠식 로마자나 ALA-LC 표기법을 따르면 bhāsā로 적으니 어원이 되는 산스크리트어 bhāṣā भाषा ‘바사’ 및 팔리어 bhāsā भासा ‘바사’와 로마자 표기가 같거나 비슷해진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늘날의 크메르어 발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크메르어를 발음대로 흉내내는 것이 목적인 경우에는 같은 모음 기호라도 a계열과 o계열 자음 뒤에서 표기를 구별하는 등 현대 크메르어 발음에 가깝게 적는 로마자 표기 방식이 쓰인다. 1959년 크메르 지리국(Service Géographique Khmère, SGK)의 로마자 표기법, 이를 바탕으로 한 1972년의 미국지명위원회·영국지명위원회(BGN/PCGN) 표기법 및 이를 그대로 따른 유엔 지명 전문가 그룹(UNGEGN) 표기법이 대표적이다. ‘언어’를 뜻하는 ភាសា는 UNGEGN 표기법을 따르면 phéasa로 적는다. 인도 문자의 ā에 해당하는 모음 기호를 a계열 뒤에서는 a, o계열 뒤에서는 éa로 적도록 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토지관리·도시계획부 지리국에서는 1995년부터 UNGEGN 표기법에서 특수 기호를 생략하고 일부 모음의 표기를 수정한 표기법을 쓰고 있다. 이 캄보디아 지리국 표기법을 따르면 ភាសា는 pheasa로 적는다. 이런 로마자 표기 방식은 크메르어 철자에서 자모가 묵음이 되는 경우나 불규칙적으로 발음되는 경우 외에는 크메르어 발음에 꽤 근접하게 나타낸다.

오늘날 쓰이는 크메르어 인명과 지명, 일반 용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현대 크메르어 발음에 가까운 로마자 표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이 접하는 통용 로마자 표기는 이런 체계적인 표기와는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캄보디아 수도 ភ្នំពេញ은 유엔 표기법으로는 Phnum Pénh이지만 실제로는 Phnom Penh으로 통용된다. 캄보디아 지리국에서도 Phnom Penh을 관용 로마자 표기로 인정했다. 그러니 한글 표기는 체계적인 로마자 표기법을 기준으로 하되 많이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 방식을 참고하여 흔히 접하는 표기와 너무 차이가 나지 않도록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면 진랍과 크메르 제국의 왕 이름을 비롯한 역사 인명과 지명은 보통 산스크리트어·팔리어 어원을 드러내는 고문체 크메르어 로마자 표기로 알려져 있으며 캄보디아 승려의 법명 등 불교 관련 어휘도 이런 로마자 표기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앙꼬르왓(앙코르 와트)을 세운 왕은 로마자로 보통 Suryavarman II라고 쓴다. 고대 크메르어 이름 សូរ្យវរ្ម័ន을 레비츠식 로마자나 ALA-LC 표기법으로 Sūryavarman이라고 적기 때문이다. 이는 크메르 문자로 쓴 산스크리트어 이름으로 취급할 수 있으며 데바나가리 문자로 적으면 सूर्यवर्मन् ‘수리아바르만’으로 첫 요소는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을 뜻하는 sūrya ‘수리아’이다. 또 크메르 루주 정권 시절 캄보디아 불교계의 지도자였던 인물을 로마자로 Maha Ghosananda라고 부르는데 그의 팔리어 법명을 따른 것이다. 이를 크메르 문자로 적은 មហាឃោសានន្ទ는 레비츠식 로마자나 ALA-LC 표기법으로 Mahā Ghosānanda ‘마하고사난다’라고 적을 수 있다.

크메르어 자음의 로마자 표기 비교

크메르어 자모국제 음성 기호로마자계열
기본자첨족자초성종성UNGEGNALA-LC
◌្ក[k][k]kka
◌្ខ[kʰ][k]khkha
◌្គ[k][k]kgo
◌្ឃ[kʰ][k]khgho
◌្ង[ŋ][ŋ]ngngo
◌្ច[c][c]chca
◌្ឆ[cʰ]chhcha
◌្ជ[c][c]chjo
◌្ឈ[cʰ]chhjho
◌្ញ[ɲ][ɲ]nhño
◌្ដ[ɗ][t]da
◌្ឋ[tʰ][t]thṭha
◌្ឌ[ɗ][t]do
◌្ឍ[tʰ][t]thḍho
◌្ណ[n][n]na
◌្ត[t][t]tta
◌្ថ[tʰ][t]ththa
◌្ទ[t][t]tdo
◌្ធ[tʰ][t]thdho
◌្ន[n][n]nngo
◌្ប[ɓ][p]bpa
◌្ផ[pʰ][p]phpha
◌្ព[p][p]pbo
◌្ភ[pʰ][p]phbho
◌្ម[m][m]mmo
◌្យ[j][j]yyo
◌្រ[r]Ørro
◌្ល[l][l]llo
◌្វ[ʋ][w]vvo
◌្ឝśa
◌្ឞo
◌្ស[s][h]ssa
◌្ហ[h]hha
◌្ឡ[l]la
◌្អ[ʔ]‛ ʹa

크메르어 자립 모음의 로마자 표기 비교

크메르어 자모국제 음성 기호로마자
UNGEGNALA-AC
[ʔə, ʔɨ, ʔəj]ĕi
[ʔəj]eiī
[ʔo, ʔu, ʔao]ŏ, ŭu
[ʔou, ʔuː]ū
[ʔəw]âuýu
[rɨ]rœ̆
[rɨː]
[lɨ]lœ̆
[lɨː]
[ʔae]êae
[ʔaj]aiai
ឱ (ឲ)[ʔao]o
[ʔaw]auau

크메르어 비자립 모음과 보조 부호의 로마자 표기 비교

크메르어 부호·자모국제 음성 기호로마자
UNGEGNALA-AC
a계열o계열a계열o계열
[ɑː, ɑ][ɔː, ɔ]âô
◌់[ɑ][u, ŭə, ɔ]áóá
[a][ĕə, ŏə]ăoă, eă*ă
ា់[a][ĕə, ŏə]ăoă, eă*â
[aː][iə]aéaā
[eʔ, e, ə][iʔ, i, ɨ]ĕĭi
ិះ[eh][ih]iḥ
[əj][iː]eiiī
[ə][ɨ]œ̆
ឹះ[əh]ẏḥ
[əɨ][ɨː]œȳ
[oʔ, o][uʔ, u]ŏŭu
ុះ[oh][uh]ŏhŭhuḥ
[ou][uː]ouū
[uə][uə]ua
[aə][əː]aeueuoe
[ɨə][ɨə]œăẏa
[iə][iə]ia
[eː][ei]ée
េះ[eh][ih]éheḥ
[ae][ɛː]êae
[aj][ɨj]aieyai
[ao][oː]o
ោះ[ɑh][ŭəh]aôhŏăhoaḥ
[aw][ɨw]auŏuau
ុំ[om][um]omŭmuṃ
[ɑm][um]âmumaṃ
ាំ[am][ŏəm]ămŏâmāṃ
ាំង[aŋ][ĕəŋ]ăngeăngāṃng
[ah][ĕəh]ăheăhaḥ
[aʔ][ĕəʔ]`
◌៉, ុ
◌៊, ុ
◌៌r
˚
ʻ
◌៱˙

* k, ng, h가 뒤따르면 eă를 쓰고 그 외의 경우에는 oă를 쓴다.

참고 문헌

Lewitz, Saveros. 1969. “XI. Note sur la translittération du cambodgien.” Bulletin de l’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 vol. 55: 163–169. https://www.persee.fr/doc/befeo_0336-1519_1969_num_55_1_4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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