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볼 수 있는 남아시아계 선수

언제부터인가 4년마다 왜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에서 남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축구 대표팀을 배출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듯하다. 중국은 그래도 2002년에 한 번 본선에 오른 적이 있고 여자 축구에서는 강팀이지만 인도는 남녀 통틀어 월드컵 본선 참가가 전무한데 특히 2023년에 인도의 인구가 중국을 앞지르면서 이 흑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듯하다. 인도는 1950년에 다른 아시아 팀들의 기권으로 본선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비용 등의 이유로 대회 개막 직전에 참가를 철회했다. 당시 인도 대표팀이 맨발로 뛰어서 출전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라는 루머를 접할 수 있지만 근거는 없다.

인도뿐만이 아니라 이웃하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등도 월드컵 본선과는 인연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월드컵에서 남아시아계 선수를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전보다 남아시아계 선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뉴질랜드가 지금까지 치른 두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좋은 활약을 보여준 사프리트 싱(Sarpreet Singh)은 인도 펀자브계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펀자브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영어 발음은 [ˈsɑːɹpɹiːt ˈsɪŋ] ‘사프리트 싱’이고 펀자브어로는 ਸਰਪ੍ਰੀਤ ਸਿੰਘ Saraprīta Siṅgha ‘사르프리트 싱’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쓰이는 펀자브어는 인도·유럽 어족 인도 어파에 속하는 언어이다. 인도 어파에 속하는 북인도 언어 대부분에서처럼 펀자브어의 a는 묵음이 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발음은 Sarprīt Siṅgh에 가깝다. Siṅgh의 펀자브어 발음에서는 마지막 gh가 [ɡ]를 나타내므로 [ˈsɪ̌ŋɡ] ‘싱그’에 가깝지만 약하게 발음되거나 탈락하는 경우도 많고 영어에서도 [ˈsɪŋ] ‘싱’으로 발음한다. 펀자브계였던 전 인도 총리 Manmohan Singh ‘만모한 싱’ 등 기존 표기 용례에서도 ‘싱’으로 적으므로 굳이 ‘싱그’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지금까지 치른 두 경기에서 한 번은 선발로 나오고 한 번은 교체 선수로 나온 니샨 벨루필레이(Nishan Velupillay)는 아버지가 스리랑카 타밀계 말레이시아인이고 어머니는 영국계 인도인이라고 한다. 타밀어로 그의 이름은 நிஷான் வேலுப்பிள்ளை Niṣāṉ Vēluppiḷḷai ‘니샨 벨루필라이’이다. 본인의 영어 발음은 [nɪˈʃɑːn vəˈlʊpᵻleɪ̯] ‘니샨 벨루필레이'(현행 규정으로는 ‘니샨 벌루필레이’)로 관찰된다. 타밀어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쓰이는 드라비다 어족 언어로 인도계 주민이 많은 싱가포르에서도 말레이어와 영어, 중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인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첫 두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사뮈엘 무투사미(Samuel Moutoussamy)도 성씨가 타밀어에서 왔다. 타밀어로는 முத்துசாமி Muttucāmi [mut̪usaːmi] ‘무투사미’로 적는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의 카리브해 영토인 과들루프 출신 인도 타밀계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영국과 합의하여 인도 남부에서 많은 노동자를 과들루프를 비롯한 카리브해 영토에 데려왔다.

Cédric Bakambu [sedʁik bakambu] ‘세드리크 바캄부’, Ngal’ayel Mukau [(ə)ŋɡalajɛl mukau] 등 다른 콩고 민주 공화국 선수들은 모음 [u]를 그냥 로마자 u로 적고 Lionel Mpasi [ljɔnɛl (ə)mpasi] ‘리오넬 음파시’에서 볼 수 있듯이 어말의 모음 [i]도 그냥 로마자 i로 적는데 Moutoussamy는 [u]를 ou로 적고 어말 [i]를 y로 적은 것을 보면 그의 성씨가 특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세네갈의 Yehvann Diouf [je⟮ɛ⟯van djuf] ‘예반 디우프’, 코트디부아르의 Bazoumana Touré [bazumana tuʁe] ‘바주마나 투레’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국가에서는 [u]를 프랑스어식 철자 ou로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콩고 민주 공화국은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같은 프랑스어권이지만 철자 방식이 달라서 [u]를 u로 적는다. 옛 프랑스 식민지인 콩고 공화국에서는 [u]를 ou로 적기 때문에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같은 성씨를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Balu로 적고 콩고 공화국에서는 Balou로 적는 것을 볼 수 있다(프랑스어 발음은 둘 다 [balu] ‘발루’이다). 한편 아프리카의 전 프랑스 식민지에서도 어말의 [i]는 보통 i로 적고 y로 적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코트디부아르의 Ange-Yoan Bonny [ɑ̃ʒ-jɔan bɔni] ‘앙주요안 보니’ 같은 예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이라크의 첫 경기에 교체 출전하고 어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한 지단 익발(Zidane Iqbal)은 잉글랜드에서 펀자브계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이라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문어체 아랍어로는 زيدان إقبال Zaydān ʾIqbāl ‘자이단 익발’이지만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 선수 Zinédine Zidane [zinedin zidan] ‘지네딘 지단’에서 볼 수 있듯이 알제리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زيدان을 Zīdān ‘지단’으로 발음한다. 이라크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발음이 ‘제이단’에 가까울 듯하지만 로마자 Zidane으로 쓰고 본인의 영어 발음도 [ziˈdɑːn ˈɪkbɑːl] ‘지단 익발’로 관찰된다.

펀자브어 및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로는 아랍어 철자를 거의 그대로 따른 زیدان اقبال로 적는다. 어두의 성문 폐쇄음 ʾ [ʔ]를 밝힌 아랍어 철자 إ 대신 그냥 모음으로 시작한다는 것만 밝히는 ا를 썼다는 차이가 있다. 또 아랍어 زيدان과 펀자브어/우르두어 زیدان은 자형이 동일하지만 인코딩을 보면 둘째 자모가 아랍어는 ي, 펀자브어/우르두어는 ی라는 차이가 있는데 어중에서 똑같은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인도에서는 펀자브어를 구르무키(ਗੁਰਮੁਖੀ Gurmukhī)라는 문자로 적지만 파키스탄에서는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에서 나온 샤무키(شاہ مُکھی Shāhmukhī)라는 문자로 적는다. 펀자브어처럼 인도 어파에 속하는 우르두어도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에서 나온 문자로 적는다. 이들은 대부분의 아랍 문자 기반 체계와 마찬가지로 모음 발음 정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철자만 가지고는 زیدان이 Zīdān ‘지단’을 나타내는지, 문어체 아랍어에 충실한 Zaidān ‘제단/제이단’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다.

펀자브어에서 아랍어의 ay에 대응되는 ai는 보통 [ɛː] ‘에’로 발음되고 우르두어에서도 [ɛː] ‘에’ 발음이 일반적이지만 힌디어 일부 방언을 비롯한 북인도 여러 언어에서는 ai가 실제 이중 모음으로 실현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표기를 ‘에이’로 통일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파키스탄의 고개 이름인 خیبر Khaibar는 영어 형태인 Khyber [ˈkaɪbəɹ] ‘카이버’의 영향을 받았는지 ‘케바르’나 ‘케이바르’ 대신 ‘카이바르’로 적는 등 파키스탄 고유 명사의 표기에서는 ai를 ‘아이’로 적은 것이 대부분이다. 전 파키스탄 대통령의 이름을 Musharraf, Pervaiz로 제시하고 ‘무샤라프, 페르베즈’로 적은 용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모어였던 우르두어 원어는 پرویز مشرف‬ Parvēz Musharraf ‘파르베즈 무샤라프’이므로 실제로는 ai가 아니다(이 인물의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도 Pervaiz가 아닌 Pervez를 쓴다). 그러니 زیدان의 발음을 Zaidān으로 보고 기존 파키스탄 용례의 표기 방식을 따른다면 ‘자이단’이 되겠다. 하지만 확인하기 어려운 펀자브어나 우르두어 발음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 없이 본인의 영어 발음에 따라 ‘지단’으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인은 영어 화자로 펀자브어와 아랍어는 약간씩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첫 두 경기에서는 교체 명단에만 이름을 올린 카타르의 타흐신 잠시드(Tahsin Jamshid)는 부모가 인도 남부 케랄라주 출신인 말라얄리계이다. 말라얄리인들이 쓰는 언어인 말라얄람어는 타밀어처럼 드라비다 어족에 속한다. 그의 이름을 아랍어로는 تحسين جمشيد Taḥsīn Jamshīd ‘타흐신 잠시드’로 쓰는데 말라얄람어로는 തഹ്സിൻ ജംഷീദ് Tahsin Jaṃṣīd ‘타신 잠시드’로 쓴다고 한다. ‘타흐신/타신’은 아랍어 تحسين Taḥsīn ‘타흐신’에서 왔고 ‘잠시드’는 고전 페르시아어 جمشید Jamshēd ‘잠셰드’에서 왔다(‘잠시드’는 성이 아니라 아버지 이름이다). 인도의 무슬림들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페르시아어는 무굴 제국, 델리 술탄국 등 인도의 여러 왕조에서 공용어로 썼는데 인도식 페르시아어에서는 고전 페르시아의 발음을 간직하기 때문에 현대 이란 페르시아어나 아랍어의 Jamshīd ‘잠시드’ 대신 Jamshēd ‘잠셰드’로 쓰는 것이 보통이며 우르두어로도 جمشید Jamshed ‘잠셰드’로 쓰고 다른 인도 여러 언어에서도 이 발음을 따를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힌디어권인 인도 동부의 도시 잠셰드푸르(Jamshedpur, जमशेदपुर Jamaśedapura)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말라얄람어로도 ജംഷെദ് Jaṃṣed ‘잠셰드’로 써야 할 것 같은데 자세한 영문은 모르지만 이 철자는 소수만 검색되고 보통 ജംഷീദ് Jaṃṣīd ‘잠시드’로 적는 듯하다.

일단 이번 월드컵에 나온 선수 가운데 남아시아계로 확인되는 이들은 이상 다섯 명이다. 포르투갈의 주전 골키퍼 디오구 코스타(Diogo Costa)의 친할아버지는 인도의 고아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포르투갈 영토였고 순수 포르투갈 혈통이었으니 남아시아계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최근에는 우루과이의 막시밀리아노 아라우호(Maximiliano Araújo) 선수의 할아버지가 고아 출신이었다는 소문이 갑자기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지만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아시아계 선수가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에 월드컵 결승전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의 일원인 비카시 도라소(Vikash Dhorasoo [vikaʃ dɔʁaso], 현행 표기 규정에 따르면 ‘비카슈 도라소)는 부모가 아프리카 연안 인도양의 섬나라인 모리셔스 출신으로 조상은 인도 남부에서 모리셔스로 이주한 텔루구계였다. 모리셔스는 주민의 66% 정도가 인도계이다. 인도 남부에서 쓰이는 텔루구어는 타밀어와 말라얄람어처럼 드라비다 어족에 속한다. 텔루구어로는 그의 이름을 వికాష్ దొరసూ Vikāṣ Dorasū ‘비카시 도라수’로 적는다고 하는데 이게 맞다면 이것을 영어식 철자로 적은 Dhorasoo를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하는 바람에 ‘도라수’가 ‘도라소’로 둔갑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본인도 ‘도라소’로 발음한다. 모리셔스는 1715년부터 1810년까지는 프랑스 식민지, 1810년부터 1968년까지는 영국 식민지였던 역사 때문에 영어와 프랑스어가 둘 다 실질적인 공용어로 쓰이는데 일상어는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하는 모리셔스 크레올어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아직 남아시아계 선수가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월드컵에서 득점한 남아시아계 선수도 있다. 수리남에서 인도계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론 빈터(Aron Winter, 현행 규정에 따른 표기 ‘아론 빈터르’)는 1990년과 1994년, 1998년 월드컵에 네덜란드 대표로 출전했으며 1994년에는 월드컵 8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다. 수리남이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시절 네덜란드는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경영하던 영국과 협약을 맺어 많은 인도인들을 계약 노동자로 데려왔기 때문에 오늘날 수리남 인구의 27% 정도가 인도계이다. 대신 Aron Winter는 그냥 [ˈaːrɔn ˈʋɪntər]로 발음되는 네덜란드어식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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