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베르데와 포르투갈어 국호의 한글 표기

서아프리카에 있는 인구 53만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월드컵에서 32강에 진출하여 지난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연장 승부 끝에 석패하는 선전으로 전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서 미국에서는 카보베르데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에서조차 영어 국호 Cape Verde를 잘못 발음하고 있다. 각종 사전에 실린 올바른 발음인 [ˈkeɪ̯p-ˈvɜːɹd] ‘케이프버드’ 대신 마치 뒷부분이 에스파냐어 이름인 것처럼 [ˈkeɪ̯p-ˈvɛə̯ɹdeɪ̯] ‘케이프베어데(이)’로 발음하는 것이다.

카보베르데는 15세기 중반에 유럽 항해가들이 발견했으며 그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 얼마 전에 포르투갈 항해가들은 오늘날 세네갈에 속한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에서 튀어나온 반도 하나를 ‘녹색 곶’이라는 뜻으로 cabo Verde [ˈkaβ̞u ˈveɾð̞(ɨ)~ˈkabu ˈveɾdɨ] ‘카부 베르드’라고 이름지었는데 그 근처에서 발견한 섬의 무리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즉 카보베르데의 국호는 다른 나라인 세네갈에 있는 지형에서 딴 것이다. 원래의 반도를 세네갈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로는 Cap-Vert [kap-vɛʁ] ‘카프베르’라고 부르며 카보베르데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국호 대신 세네갈의 반도 이름으로 쓸 때는 presqu’île du Cap-Vert [pʁɛskil dy kap-vɛʁ] ‘프레스킬 뒤 카프베르’ 즉 ‘카프베르반도’라고 한다. 원래는 포르투갈어 이름을 의역하여 ‘녹색 곶’을 뜻하는 cap Vert ‘카프 베르’로 부르던 것이 한 묶음으로 고유 명사가 되어 Cap-Vert ‘카프베르’로 쓰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1462년에 카보베르데의 산티아구(Santiago)섬에 히베이라그란드(Ribeira Grande)라는 항구 도시를 건설한 후 1975년까지 카보베르데를 지배하였다. 히베이라그란드는 오늘날 ‘오래된 도시’를 뜻하는 시다드벨랴(Cidade Velha)로 불린다. 16세기에 대서양 노예 무역으로 번영하기도 했던 카보베르데의 주민들은 서아프리카와 유럽 각지에서 온 이들의 후손이다. 오늘날 카보베르데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며 주민 대부분은 카보베르데 크리올어라고 하는 포르투갈어 기반 혼성 언어를 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혼성 언어가 자녀들에게 전해지면서 모어화한 것을 크리올어라고 하는데 카보베르데 크리올어는 유럽 열강의 해외 식민지 건설로 생겨난 크리올어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카보베르데 크리올어로는 카보베르데를 Kabu Verdi [ˈkabu-ˈveɾdi] ‘카부베르디’라고 부른다.

영어에서는 포르투갈어 Cabo Verde의 앞부분은 의역하고 뒷부분은 원어 그대로 남겨서 Cape Verde라고 한다. 대신 Verde는 영어식으로 [ˈvɜːɹd] ‘버드’로 발음하는 것이 정착되어 있다. 각종 사전을 찾아봐도 대부분 이 발음만 나오며 간혹 [ˈvɛə̯ɹd] ‘베어드’를 추가 가능 발음으로 제시할 뿐이다.

포르투갈어는 에스파냐어에 비해 모음 약화가 두드러진다. 에스파냐어로도 포르투갈어와 동일하게 Cabo Verde라는 철자를 쓰지만 각 모음자를 강세 여부와 상관없이 고르게 발음하는 반면 포르투갈어에서는 강세 없는 음절에서 모음 음가가 달라진다. 에스파냐어로도 cabo가 ‘곶’을 뜻하지만 [ˈkaβ̞o] ‘카보’로 발음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ˈkaβ̞u] ‘카부'(포르투갈식) 또는 [ˈkabu] ‘카부'(카보베르데식)로 발음한다. 어말 -o가 [u]로 약화되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반영되어 ‘우’로 적는다. 또 verde는 에스파냐어로 [ˈbeɾð̞e] ‘베르데’로 발음하지만 포르투갈어로는 [ˈveɾð̞(ɨ)] ‘베르드'(포르투갈식) 또는 [ˈveɾdɨ] ‘베르드'(카보베르데식)로 발음한다. 어말 -e가 [ɨ]로 약화되는 것을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으’로 적는다. 오늘날 포르투갈식 발음에서는 아예 [ˈveɾð̞] ‘베르드’로 어말 -e가 탈락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에스파냐어가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에스파냐어식 발음에 익숙한 이들이 많지만 포르투갈어는 상대적으로 생소하다. 그래서 Verde는 에스파냐어 ‘베르데’로 간주하여 [ˈvɛə̯ɹdeɪ̯] ‘베어데(이)’로 발음하기 쉽다. 현행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이 발음은 ‘베어데이’로 적어야 하지만 철자 e에 대응되는 원어의 [e]를 [eɪ̯]로 흉내 낸 것은 그냥 ‘에’로 적어서 ‘베어데’로 표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미국 서부 콜로라도 주에는 Mesa Verde라는 이름의 국립 공원이 있다. ‘녹색 탁자’를 뜻하는 에스파냐어 [ˈmesa ˈbeɾð̞e → mesaˈβ̞eɾð̞e] ‘메사베르데’에서 온 이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메사버드^국립^공원(Mesa Verde國立公園)’이라는 표제어로 나온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에서 가장 먼저 제시하는 발음인 [ˈmeɪ̯sə-ˈvɜːɹd] ‘메(이)사버드’에 해당한다(여기서도 규정을 따른 ‘메이사버드’ 대신 ‘메사버드’로 적은 것이 흥미로운데 ‘메사’는 이미 탁자 모양의 지형을 이르는 외래어로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 화자들을 들어보면 Mesa Verde를 에스파냐어로 취급하여 [ˈmeɪ̯zə-ˈvɛə̯ɹdeɪ̯] ‘메(이)자베어데(이)’ 또는 [ˈmeɪ̯sə-] ‘메(이)사-‘ 정도로 발음하는 일이 많다(영어 화자들은 에스파냐어 발음을 흉내 낼 때도 v는 [b] 대신 언제나 [v]로 발음하며 모음 사이의 s 역시 영어식으로 [z]로 발음하기 쉽다). 현지에서도 Mesa Verde는 보통 [ˈmeɪ̯sə-ˈvɜːɹdi] ‘메(이)사버디’로 발음하는 듯하다. 이는 《메리엄·웹스터 사전》에서 가능 발음으로 제시하는 것과 일치한다.

이처럼 영어 지명 가운데는 현지에서 쓰는 발음과 그 지명에 익숙하지 않은 타지인들이 철자를 보고 짐작하여 쓰는 발음이 차이가 나는 것이 많다. 그런데 국립 공원 이름 정도가 아니라 엄연한 나라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것은 좀 심해 보인다. 물론 카보베르데는 영어 사용국이 아니지만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와 로드아일랜드주에 특히 많이 사는 카보베르데계 주민을 포함하여 카보베르데를 잘 아는 이들은 영어로 Cape Verde를 ‘케이프버드’로 발음한다.

그럼 과연 우리가 쓰는 표기인 ‘카보베르데’에는 문제가 없을까? 일단 Cabo Verde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카부베르드’여야 한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이 추가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이 추가된 후에도 예전부터 쓰던 국호인 ‘카보베르데’는 바꾸지 않았다. 역시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모잠비크와 상투메 프린시페 등의 표기도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Moçambique ‘모삼비크’, São Tomé e Príncipe ‘상토메 프린시프’로 바꾸지 않았다. 규정에서는 브라질 인명과 지명에서는 자음 앞과 어말의 l을 ‘우’로 적도록 했지만 브라질 역시 Brasil의 브라질 포르투갈어식 표기인 ‘브라지우’로 바꾸지 않았다.

‘카보베르데’와 ‘상투메 프린시페’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전에는 포르투갈어의 어말 -e도 모음 약화를 무시하고 ‘에’로 적었다. 그 외에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1986년에 나온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에서는 포르투갈 지명 Portalegre ‘포르탈레그레’나 브라질 지명 Belo Horizonte ‘벨로리존테'(원문에서는 *Bello Horizonte로 오기), Recife ‘레시페’, Rio Grande ‘리우그란데’ 등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 추가 이후 각각 ‘포르탈레그르’, ‘벨루오리존치’, ‘헤시피’, ‘히우그란지’로 표기가 바뀌었다. 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는 어말 -e, -es의 e가 [ɨ] 대신 [i]로 약화되기 때문에 브라질 인명과 지명에 한해서 ‘으’ 대신 ‘이’로 적으며 d, t가 [i] 앞에서 구개음화하는 것을 반영하여 ‘지’, ‘치’로 각각 적는다. 어두나 n, l, s 뒤의 r를 ‘ㅎ’으로 적게 한 것도 특기할만한데 브라질 발음에서 [ʁ] 내지 [h]로 발음되는 것을 흉내 낸 표기이다. 하지만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포르투갈어에서는 특히 [r]로 발음되는 것이 일반적이니 ‘ㅎ’으로 적는 것도 브라질 인명과 지명에 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카보베르데 포르투갈어에서도 방언에 따라 어두나 n, l, s 뒤의 r를 [r] 또는 [ʀ], [ʁ], [ɣ] 등으로 발음한다.

한편 ‘상투메 프린시페’나 ‘리우그란데’에서 볼 수 있듯이 무강세 음절의 o가 [u]로 약화되는 것은 예전에도 한글 표기에 보통 반영했다. 같은 용례집의 포르투갈 지명 Faro ‘파루’ 및 브라질 지명 Campos ‘캄푸스’, Diamantino ‘디아만티누’, Mato Grosso ‘마투그로수’ 등의 예도 있다(이 가운데 Diamantino의 표기는 브라질식 발음을 반영한 ‘지아만티누’로 바뀌었다).

그런데 포르투갈 지명 Odivelas [oð̞iˈvɛɫɐʃ] ‘오디벨라스’나 포르투갈어 성씨 [oɫiˈvɐi̯ɾɐ] ‘올리베이라’에서 볼 수 있듯이 강세가 없다고 해서 포르투갈어의 o가 언제나 [u]로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이처럼 약화되지 않은 음가를 [o] 대신 [ɔ]로 보기도 한다). 모음 약화 여부는 방언에 따른 차이도 있다. Portugal은 포르투갈에서 [puɾtuˈɣ̞aɫ]로 발음하지만 브라질에서는 [pohtuˈɡau̯]로 발음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방언을 막론하고 모음이 언제나 약화되는 어말 -o, -os에서만 o를 ‘우’로 적도록 했다. 따라서 São Tomé [ˈsɐ̃ũ̯ tuˈmɛ]는 모음 약화를 반영한 ‘상투메’로 표기가 정착되어 있지만 2005년에 추가된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상토메’로 적어야 한다. 예전 표기 용례에서는 남자 이름 José [ʒuˈzɛ]도 ‘주제’로 적었지만 2005년에는 이전 표기 용례를 포함해서 ‘조제’로 표기가 바뀌었다. 이 이름의 경우 브라질식 발음에서는 모음을 약화시키지 않고 [ʒoˈzɛ]로 발음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Príncipe [ˈpɾĩsɨp(ɨ)]는 ‘프링시프’로 표기하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겠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n을 ‘ㄱ’이나 ‘ㅋ’으로 표기되는 g, c, q 외의 자음 앞에서 ‘ㄴ’으로 적도록 했다. 어말의 n을 받침 ‘ㅇ’으로 적도록 하고 어말 -ns의 n도 받침 ‘ㅇ’으로 적도록 한 것을 생각하면 자음 앞의 n 표기는 받침 ‘ㅇ’을 기본으로 하고 d, t 앞에서만 받침 ‘ㄴ’으로 적도록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한편 이미 본 프랑스어의 Cap-Vert ‘카프베르’와 에스파냐어의 Cabo Verde ‘카보베르데’ 외에 카탈루냐어 Cap Verd ‘카프베르트’, 이탈리아어 Capo Verde ‘카포베르데’, 루마니아어 Capul Verde ‘카풀베르데’ 등 포르투갈어와 같이 로망 어군에 속한 여러 언어에서는 포르투갈어의 Cabo Verde를 의역한 이름을 쓴다. 독일어 Kap Verde [ˈkap-ˈvɛʁdə] ‘카프베르데’, 스웨덴어·노르웨이어·덴마크어 Kap Verde ‘카프베르데’, 아프리칸스어 Kaap Verde ‘카프페르데’ 등 게르만 제어는 영어 Cape Verde에서처럼 앞부분은 의역하고 뒷부분은 Verde를 그대로 따온 이름을 쓴다. 네덜란드어의 Kaapverdië ‘카프베르디에’도 이와 비슷한데 한 단어로 붙이고 나라 이름에 많이 쓰이는 접미사 -ië를 더한 형태이다.

만약 아프리칸스어에서 쓰는 형태와 같은 Kaap Verde를 네덜란드어 이름으로 취급하여 한글로 표기한다면 어두 v를 ‘ㅍ’으로 적고 어말 e는 ‘어’로 적도록 한 현행 규정에 따라 ‘카프페르더’가 된다. 어말 e가 무강세 [ə]로 발음된다고 해서 ‘어’로 적도록 한 것인데 독일어와 스웨덴어·노르웨이어·덴마크어에서도 어말 e가 무강세 [ə]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에’로 적으므로 네덜란드어만 예외로 취급할 근거는 찾기 힘들다. 또 Kaap Verde에서는 v가 어두에 오므로 ‘ㅍ’으로 적는데 Kaapverdië에서는 v가 어중이라서 ‘ㅂ’으로 적는 것도 혼란스럽다. 참고로 Verde가 단독으로 쓰일 때 표준 네덜란드어 발음은 [ˈvɛrdə]인 반면 Kaapverdië의 표준 네덜란드어 발음은 [kapˈfɛrdijə]이다. 어중 /v/가 앞의 /p/의 영향으로 무성음 [f]로 변하기 때문이다. 방언에 따라 반대 방향의 동화가 일어나서 [kabˈvɛrdijə]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어중 /v/의 발음 변화도 일일이 한글 표기에 반영할 것이 아니라면 네덜란드어 일부 방언에서 특히 어두의 /v/가 [f]로 무성음화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한글로 나타내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번거롭다.

이처럼 게르만 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에서 뒷부분을 Verde로 적고 어말 e를 무강세 [ə]로 발음하는 것은 한글 표기로 ‘베르데’가 되더라도 포르투갈어 발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포르투갈어처럼 게르만 제어도 모음 약화가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다만 게르만 어파에 속하는 영어에서는 더 나아가서 철자상의 어말 e는 보통 이미 묵음이고 이제는 어말 a가 [ə]로 약화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차용어에서도 어말의 e는 묵음으로 처리하거나 [i]로 흉내 내는 것이 보통이다([i]는 방언에 따라 [iː] 또는 [ɪ]로 발음되는 열린 음절의 약화된 모음을 나타내는 약식 기호이다). 물론 원어에서 약화되지 않는 모음이라면 이를 존중하여 [eɪ̯]로 흉내 내기도 한다. 그래서 Verde는 [ˈvɜːɹdi] ‘버디’ 또는 [ˈvɜːɹd] ‘버드’가 되거나 에스파냐어식 [ˈvɛə̯ɹdeɪ̯] ‘베어데(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호의 Verde 부분을 그대로 딴 다른 여러 언어에서는 대부분 모음 약화 없이 ‘베르데’ 정도로 발음한다. 심지어 모음 약화가 심한 러시아어로도 카보베르데는 Кабо-Верде(Kabo-Verde) [ˈkabə-ˈvɛrdɛ] ‘카보베르데’라고 발음한다. 첫부분은 포르투갈어와는 반대 반향으로 ‘카부’ 대신 ‘카바’에 가까운 [ˈkabə]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동아프리카 케냐의 루오어, 칼렌진어 등에서는 카보베르데를 Kep Vad ‘케프바드’라고 부른다. 영어 발음 ‘케이프버드’를 현지식으로 흉내 낸 결과이다. 힌디어 केप वर्डे Kep Varḍe ‘케프바르데’도 영어 발음을 흉내 냈지만 Verde의 발음을 [ˈvɜːɹd] ‘버드’ 대신 [*ˈvɜːɹdeɪ̯] ‘*버데(이)’ 정도로 파악한 듯하다.

그러니 우리가 쓰는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어 발음과는 차이가 있지만 세계 여러 언어에서 쓰는 형태에 더 가깝다. 멕시코를 에스파냐어권 밖에서는 에스파냐어 México [ˈmexiko] ‘메히코’와 비슷한 발음을 쓰는 예가 거의 없고 x를 [ks]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과 비슷하다.

한국어는 독자적인 표음 문자인 한글을 쓰는 덕분에 특히 영어권, 프랑스어권, 에스파냐어권의 국호는 원지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에스파냐어권 국호 가운데 ‘에스파냐’ 대신 영어식 ‘스페인’이 일반적으로 쓰이며 ‘멕시코’도 영어식 표기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여러 언어에서 한국어만큼 국호를 원지 발음대로 부르는 예를 찾기 어렵고 멕시코/메히코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로마자를 매개로 전파되면서 철자식 발음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어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언어였고 오늘날의 한글 표기 방식이 도입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에서 예전부터 쓰던 포르투갈어권 국호는 오늘날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와는 차이가 나는 것이 많다.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 Moçambique ‘모삼비크’보다는 영어 Mozambique [ˌmoʊ̯zæmˈbiːk] ‘모잼비크’나 프랑스어 Mozambique [mɔ⟮o⟯zɑ̃bik] ‘모장비크’를 따른 표기이고 기니비사우도 포르투갈어 Guiné-Bissau ‘기네비사우’가 아닌 영어 Guinea-Bissau [ˈɡɪni-bɪˈsaʊ̯] ‘기니비사우’를 기준으로 표기했다. 적도 기니도 포르투갈어식 ‘기네’ 대신 영어식 ‘기니’를 쓴다.

물론 카보베르데가 일반에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니 2005년에 ‘카부베르드’로 표기를 바꾸었더라도 큰 부작용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호는 여지간해서는 예전부터 쓰던 표기를 바꾸지 않는 보수성이 두드러진다. 벨라루스, 조지아, 튀르키예 등은 당사국의 요청으로 인해 한글 표기가 바뀐 예이다. 참고로 원지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원칙을 우리보다도 더 강조하는 북한의 문화어로는 카보베르드를 ‘까부웨르드’라고 부른다.

카보베르데는 세계 곳곳에 퍼진 디아스포라 선수를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는데 그 가운데 직업 네트워킹 소셜 네트워크인 링크드인(LinkedIn, 표준 표기 ‘링크트인’)을 통해 카보베르데 대표로 뛰게 된 수비수 Pico Lopes의 사연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바가 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카보베르데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아일랜드의 섐록 로버스(Shamrock Rovers) 주장으로 뛰고 있다. 그가 아버지를 통해 카보베르데 대표로 뛸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포르투갈 출신의 후이 아과스(Rui Águas, 현행 표기 규정을 따른 표기는 ‘후이 아구아스’) 당시 카보베르데 대표팀 감독은 링크드인을 통해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어로 보낸 메시지라서 스팸으로 오인하여 무시했는데 아홉 달 뒤에 이번에는 영어로 다시 연락해서 가까스로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다.

영어를 쓰며 자라난 본인은 포르투갈어 이름 Pico Lopes를 영어로 [ˈpiːkoʊ̯ ˈloʊ̯pɛ⟮ᵻ⟯z] ‘피코 로페스’로 발음한다. 영어의 어말 s는 [z]로 발음되는 경우에도 ‘스’로 적는다. 그런데 포르투갈어 발음은 [ˈpiku ˈlɔp(ɨ)ʃ]이다. 현행 표기 규정대로는 ‘피쿠 로페스’로 적는다. 어말 -es에서는 e를 ‘으’로 적지만 p, b, m, f, v 다음에 오는 어말 -es는 ‘-에스’로 적는다는 세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칙은 포르투갈어 발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Lopes는 ‘로프스’로 적는 것이 실제 포르투갈어 발음에 가깝다(어말 s가 [ʃ]로 발음되는 것까지 반영하면 ‘로프시’가 더 가까울 것이다). 다만 한글 표기에서 순음 뒤에 ‘으’가 오는 ‘브’, ‘프’, ‘므’로 적는 것을 피하려고 정한 세칙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한국어에서 ‘브’와 ‘부’, ‘프’와 ‘푸’, ‘므’와 ‘무’의 발음이 잘 구별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외래어 표기에서는 ‘브’와 ‘프’가 이미 익숙하니 굳이 이런 세칙을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포르투갈어 Pico Lopes는 ‘피쿠 로프스’로 적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쨌든 영어에서는 포르투갈어 o가 [u]로 약화되는 것은 좀처럼 흉내 내지 않으며 -es에서도 약화되지 않은 [ɛ]를 쓸 때가 많다. 하지만 일부 자음 뒤의 영어 접미사 -es의 발음과 동일하게 약화된 모음 [ᵻ]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ᵻ]는 [ɪ] 또는 [ə]로 실현되는 약화된 모음을 나타내는 약식 기호이다). 만약 약화된 모음을 쓰는 영어 발음 [ˈloʊ̯pᵻz]를 기준으로 한다면 ‘로피스’로 적을 수 있다.

이번 대회 이전에는 카보베르데 축구에 대해서 들어본 이가 많지 않겠지만 예전에도 월드컵 무대에서 카보베르데계 선수들이 활약한 바가 있다. 1994년에 월드컵 3위에 오른 스웨덴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도 출전한 헨리크 라르손(Henrik Larsson)은 스웨덴 역대 최고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데 카보베르데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8년에 월드컵 우승, 2006년에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한 프랑스의 파트리크 비에라(Patrick Vieira [patʁik vjɛʁa])는 어머니가 카보베르데 출신이다. ‘비에라’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포르투갈어 성씨 Vieira ‘비에이라’를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그 외에 2014녈 월드컵에 출전한 포르투갈의 나니(Nani)도 카보베르데계이고 2010년 월드컵에서 에스파냐가 우승하기 전에 이들을 상대로 조별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한 스위스의 젤송 페르낭데스(Gelson Fernandes [ʒɛlsɔ̃ fɛʁnɑ̃dɛs])는 카보베르데에서 태어났다가 다섯 살에 스위스 프랑스어권로 이주했다. 포르투갈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Gélson Fernandes ‘젤송 페르난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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