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차오저우어 영화가 표준 중국어로 더빙되어 상영되는 이유

아마추어 배우를 앞세우고 대사 거의 전부가 우리에게는 생소한 중국어 방언인 차오저우어로 된 중국의 저예산 독립 영화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给阿嬷的情书/給阿嬤的情書)》가 입소문을 통해 중국 흥행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 후 6월 18일에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서도 전격 개봉되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방언으로 된 영화 상영을 제한하는 오랜 정책 때문에 일반 상영이 표준 중국어 더빙판으로 이루어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남부 광둥성의 산터우(汕头/汕頭[Shàntóu], 산두) 출신 란훙춘(蓝鸿春/藍鴻春[Lán Hóngchūn], 람홍춘) 감독은 이미 산터우를 포함하는 광둥성 동부의 차오산(潮汕[Cháoshàn], 조산) 지역에서 쓰이는 차오저우어로 된 가족 영화 《아빠, 저 할 수 있어요(爸,我一定行的/爸,我一定行的)》와 《어머니를 소개드릴게요(带你去见我妈/帶你去見我媽)》를 만든 바 있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그의 차오산 삼부작의 완성편인 셈이다. 영어로는 Dear You라는 제목으로 해외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동남아시아로 떠난 차오산 지역 출신 화교들이 고향에 송금하면서 보낸 편지인 차오피(侨批/僑批[qiáopī], 교비)를 소재로 한다. 1940년대 국공 내전 때 산터우에 가족을 남기고 타이(태국)로 떠나 차오피를 보내오다가 연락이 끊긴 할아버지를 손자가 찾아 나선다는 설정이다.

동남아시아의 화교 즉 중국계 주민들은 중국 남부 해안의 여러 지역에 뿌리를 둔다. 그 가운데도 차오산 지역 출신들은 타이를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에 많이 진출했으며 오늘날 타이 화교의 과반수는 차오산계이다. 하지만 타이 정부의 타이화 정책 때문에 이들은 이름을 타이어식으로 바꿔야 했으며 급속도로 타이에 동화되어 오늘날 1세대 이주민을 제외하면 차오저우어를 구사하는 이는 극소수이다.

차오산 지역은 광둥성에 속하지만 차오저우어는 광둥어와는 매우 다르다. 광둥어는 중국 어파 가운데 월어(粵語)에 속하지만 차오저우어는 민어(閩語), 그 가운데도 민남어(閩南語)에 속한다. 게다가 푸젠성을 비롯하여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지역의 푸젠성 출신 화교들이 쓰는 주류 민남어인 이른바 호키엔(영어: Hokkien [ˈhɒkiɛn])어와도 많이 차이가 난다. 참고로 호키엔은 푸젠(福建[Fújiàn], 복건)의 주류 민남어 발음인 Hok-kiàn ‘혹껜’에서 나온 이름이다.

차오저우어/차오산어를 영어로는 흔히 티오추(Teochew [ˈtiːoʊ̯ˌʧuː])어라고 부른다. 차오저우(潮州[Cháozhōu], 조주)의 산터우식 발음 Dio5ziu1 ‘뚀쭈’에서 나온 이름이다(차오저우식 발음은 Diê5ziu1 ‘뗴쭈’이다). 중국어로는 흔히 차오산화(潮汕話[Cháoshànhuà], 조산화) 즉 차오산어라고 부른다. 차오산은 차오저우와 산터우를 합친 이름이다. 산터우는 차오저우어로 Suaⁿ-thâu ‘솨타우’라고 하기 때문에 옛 영어 이름은 Swatow [ˌswɑːˈtaʊ̯] ‘스와타우’이다.

싱가포르는 주민의 4분의 3 정도가 중국계인데 출신 배경이 다양하여 원래 호키엔어, 차오저우어, 광둥어, 하카어, 하이난어, 푸저우어, 상하이어 등 다양한 말씨를 썼으며 서로 말이 통하는 집단끼리 어울리기 마련이었다. 순수 언어학적으로 보면 이들은 사실 중국 어파에 속하는 각기 다른 언어로 보아야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들은 모두 중국어의 방언으로 취급되므로 여기서도 편의상 방언으로 통칭한다.

1965년에 싱가포르가 독립한 이후 국어인 말레이어와 함께 중국어와 영어, 타밀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중국어는 관화(官話) 또는 영어로 Mandarin이라고 부르는 북방 중국어를 바탕으로 한 표준 중국어이다. 남방 중국어에 속하는 여러 말씨를 쓰는 싱가포르 화교들이 표준 중국어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리콴유 총리는 집에서 쓰는 방언 때문에 표준 중국어를 배우는 데 지장이 된다고 판단하여 1979년에 이른바 표준 중국어 쓰기 운동(Speak Mandarin Campaign)을 개시했다.

이런 표준 중국어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싱가포르의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 표준 중국어가 아닌 중국어 방언을 쓰는 것에는 엄격한 제한이 적용되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광둥어를 쓰는 홍콩 영화는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에서 표준 중국어 더빙판으로 상영된다. 2024년에 전통 장례 의식을 다뤄 기록적인 흥행을 한 홍콩 영화 《라스트 댄스: 안식의 의식(破·地獄/The Last Dance)》도 싱가포르에서는 표준 중국어로 더빙되어 상영되었다.

표준 중국어 외의 방언을 쓴 영화는 영화제 따위에서 제한적으로 상영하는 것만 허용된다. 싱가포르 배급사와 영화관에서는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원래의 차오저우어로 볼 수 있는 총 8회의 특별 상영을 발표했는데 두 시간만에 모두 매진되었다. 이에 25일부터 추가적으로 8회의 특별 상영을 발표했는데 이들도 한 시간만에 매진되었다.

싱가포르 관객들은 표준 중국어 외의 방언으로 된 영화는 더빙으로 봐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 한국어나 프랑스어 영화도 더빙 없이 자막으로 보는데 왜 방언 영화는 원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일부러 인접한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에 건너가서 원어판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원어로 감사한 싱가포르의 차오산인들은 중국 본토의 차오저우어와 싱가포르에서 쓰는 차오저우어의 미세한 차이를 보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 물론 표준 중국어 더빙으로 보면 이런 점은 놓칠 수밖에 없다.

1979년 표준 중국어 쓰기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는 싱가포르의 화교들은 거의 대부분 가정에서 표준 중국어가 아닌 방언을 썼다. 그런데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주민의 약 8.7%만이 가정에서 표준 중국어가 아닌 방언을 쓴다고 한다. 예전에 호키엔어가 여러 방언 화자 사이의 교통어 역할을 하던 것을 표준 중국어가 대신하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방언을 구사하는 이는 줄어들고 있다. 싱가포르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와 말이 통하지 않는 이가 많다.

이런 가운데 아직도 방언 영화 상영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오늘날 싱가포르에서 표준 중국어를 위협하는 것은 영어이지 방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영화감독 에릭 쿠(Eric Khoo)와 잭 니오(Jack Neo)는 6월 19일 싱가포르의 영어 일간지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에 기고한 논평에서 표준 중국어 쓰기 운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지나 표준 중국어가 이미 싱가포르 화교들의 일상어로 자리잡은 시점에서 방언 영화 상영을 막는 것은 싱가포르 배급사와 영화관에만 타격을 줄 뿐이니 제한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참고로 에릭 쿠와 잭 니오는 둘 다 호키엔계로 한자 이름은 각각 邱金海(구금해), 梁志强/梁志強(량지강)이다. 표준 중국어 발음은 각각 Qiū Jīnhǎi ‘추진하이’, Liáng Zhìqiáng ‘량즈창’이지만 영어로는 각각 Khoo Kim Hai ‘쿠킴하이’, Neo Chee Keong ‘니오치키옹’으로 쓴다. 호키엔어 발음이 각각 Khu Kim-hái ‘쿠낌하이’, Niô͘ Chì-kiông ‘뇨찌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0년대에 태어났는데 당시 싱가포르에서는 한자 이름을 방언 발음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했다. 오늘날에는 성은 방언 발음에 따른 로마자 표기를 유지하되 이름은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라 로마자로 표기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논란을 계기로 싱가포르의 방언 제한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에는 조심스럽게 표준 중국어 외의 방언이 용인되는 정도가 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예를 들어 2023년에 개봉된 싱가포르 영화 《원더랜드(Wonderland/乐园/樂園)》는 1980년대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여 표준 중국어와 영어 외에 호키엔어 대사 분량도 많았는데 이례적으로 편집 없이 일반 상영된 바가 있다. 참고로 《원더랜드》의 감독은 하카계인 차이이웨이(Chai Yee Wei)인데 한자 이름 蔡于位/蔡於位(채어위)의 하카어 발음 Cai4 Yi2vi4 ‘차이이비’와 표준 중국어 발음 Cài Yúwèi ‘타이위웨이’를 절충한 듯한 로마자 표기를 쓰는 것이 재미있다.

한국어에서는 1986년에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도입되면서 중국어는 예전에 익숙했던 한국 한자음 대신 중국어 발음에 따라 적도록 하였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중국어 발음이란 바로 표준 중국어 발음을 의미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중국어가 표준 중국어 하나만 있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광둥어, 호키엔어 발음으로 세계에 알려진 이름도 중국어 이름으로 취급되는 순간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라 한글 표기가 정해졌다. 그래서 주윤발(周潤發)로 알던 홍콩 배우는 표준 중국어 발음 Zhōu Rùnfā에 따라 ‘저우룬파’로, 양자경(楊紫瓊)으로 알던 말레이시아 배우는 표준 중국어 발음 Yáng Zǐqióng에 따라 ‘양쯔충’으로 표기가 심의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이 영어권에서는 Chow Yun Fat, Michelle Yeoh로 각각 알려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표기인지 아리송하다. Chow Yun Fat은 광둥어 Zau1 Jeon6faat3 ‘자우연팟’에 따른 표기이고 Michelle Yeoh의 중국어식 이름 Yeoh Choo Kheng은 말레이시아 북부식 호키엔어 Iôⁿ Chú-khêng ‘요쭈켕’에 따른 표기이다.

그래도 중국 본토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국가 정책을 통해 한어 병음에 따라 인명과 지명의 로마자 표기가 통일되었기 때문에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면 로마자 표기와 한글 표기가 같은 발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산터우에서 태어난 《할머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의 감독도 차오저우어 발음인 Na5 Hong5cung1 ‘나홍충’ 대신 표준 중국어 발음 Lán Hóngchūn에 따라 Lan Hongchun으로 국제 언론에 보도된다.

차오저우, 산터우같은 지명도 여기서는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라 적었다. 이들은 오늘날 보통 한어 병음에 따라 Chaozhou, Shantou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방언 및 디아스포라 집단을 이를 때는 영어에서도 Teochew, Swatow를 쓰는 일이 많다.

나는 중국 어파에 속하는 여러 말씨를 이를 때 민어(閩語), 월어(粵語) 등의 상위 분류는 한국어 한자음을 따르되 중국 현대 지명의 이름을 딴 말씨는 그 지명의 규범 표기, 즉 표준 중국어 발음을 따른 표기에 따른다는 기준을 정했다. 그래서 ‘광동어’, ‘상해어’ 대신 ‘광둥어’, ‘상하이어’ 등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광둥어’를 표제어로 삼는다. 그런데 하카어의 客家(객가)는 지명이 아니기 때문에 표준 중국어 발음인 Kèjiā에 따라 ‘*커자어’로 적기는 곤란하니 하카어 발음 Hak-kâ ‘학가’에 따른 로마자 표기 Hakka에 따라 그냥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표제어로 삼는 표기인 ‘하카어’로 쓰기로 했다.

호키엔어도 처음에는 푸젠어라고 부르다가 동남아시아에서는 Hokkien이 워낙 익숙하니 ‘호키엔어’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중국과 대만을 제외한 호키엔어 사용 지역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 말레이·인도네시아어권이 대부분인데 말레이어로도 Hokkien ‘호키엔’이라고 부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차오저우어’ 대신 이제는 ‘티오추어’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차오저우가 한국어 화자에게 친숙한 지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타이어로는 แต้จิ๋ว Taecio ‘때찌오’, 베트남어로는 Triều Châu ‘찌에우쩌우’, 홍콩 영어에서는 광둥어 발음인 Ciu4zau1 ‘치우자우’에 따라 Chiuchow ‘치우차우’라고 하는 등 지역에 따라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Teochew라는 형태도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에게는 생소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단은 ‘차오저우어’로 남겨두었다. 사실 산터우의 말씨를 어우르는 이름으로는 ‘차오산어’가 더 정확할 것 같지만 다른 언어에서 쓰는 이름은 대부분 ‘차오저우어’에 해당되는 것이라서 계속 고민이 된다.

공유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