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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의 유인 달 궤도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온 아르테미스 2호는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비행한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우주 비행사의 면면으로도 여러 기록을 세웠다. 크리스티나 쿡(Christina Koch [kɹɪˈstiːnə ˈkʊk])과 빅터 글러버(Victor Glover [ˈvɪktəɹ ˈɡlʌvəɹ]), 제러미 핸슨(Jeremy Hansen [ˈʤɛɹə⟮ᵻ⟯mi ˈhæns(ə)n])은 각각 지구 궤도를 떠난 최초의 여성과 비백인, 비미국인(캐나다)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아폴로 계획 우주 비행사들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전원 미국 백인 남성이었지만 아르테미스 2호 우주 비행사 가운데는 사령관인 리드 와이즈먼(Reid Wiseman [ˈɹiːd ˈwaɪ̯zmən])만이 미국 백인 남성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Christina Koch은 ‘크리스티나 코크’로 쓴 것이 가장 많이 보이고 ‘크리스티나 코흐’도 눈에 띈다. Koch는 원래 독일어에서 온 성씨로 독일어 발음은 Koch [ˈkɔx] ‘코흐’이다. 영어 발음은 통일되어 있지 않은데 사람에 따라서 [ˈkoʊ̯k] ‘코크’, [ˈkɒk] ‘콕’, [ˈkʊk] ‘쿡’, [ˈkɔːk] ‘코크’, 심지어 영어 철자식 [ˈkɒʧ] ‘코치’로도 발음할 수 있다. 특히 독일어권 인명을 이를 때는 아예 독일어를 흉내내어 [ˈkɒx, ˈkɔːx] ‘코흐’로 발음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어 방언에서는 [x]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영어권 인명에서는 이 음을 보통 [k]로 대체한다.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미국의 갑부 실업가 형제 Charles Koch와 David Koch를 각각 ‘찰스 코크’, ‘데이비드 코크’로 적고 있는데 이들의 성은 [ˈkoʊ̯k] ‘코크’라고 발음한다. 이들의 아버지가 세운 석유·화학 계통 대기업인 Koch도 같은 발음을 쓴다. 다국적 기업을 논의할 때 간혹 음료 회사인 코카콜라(Coca-Cola)를 Coke [ˈkoʊ̯k] ‘코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Koch와 발음이 동일하기 때문에 혼동될 수도 있다.
아마도 코크 형제의 기존 표기 용례 때문에 Christina Koch도 ‘코크’로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 발음은 [ˈkʊk] ‘쿡’으로 관찰된다.
독일어 Koch ‘코흐’를 어떻게 영어에서 [ˈkʊk] ‘쿡’으로 발음하게 되었을까? 일단 Koch는 독일어로 ‘요리사’를 뜻하고 영어의 cook [ˈkʊk] ‘쿡’과 어원이 같으니 그 발음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영어권으로 이민한 이들이 독일어식 성씨 Braun [ˈbʁaʊ̯n] ‘브라운’, Müller [ˈmʏlɐ] ‘뮐러’, Schmidt [ˈʃmɪt] ‘슈미트’ 등을 뜻과 어원이 같은 영어 성씨인 Brown [ˈbɹaʊ̯n] ‘브라운’, Miller [ˈmɪləɹ] ‘밀러’, Smith [ˈsmɪθ] ‘스미스’ 등으로 바꾸는 일이 흔했는데 Koch 역시 Cook [ˈkʊk] ‘쿡’으로 흔히 대체되었다.
하지만 아예 성씨를 Cook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철자는 원래의 독일어식 Koch으로 유지하고 발음만 마치 Cook으로 쓴 것처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좀처럼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 19세기 이전에 독일어권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민을 한 이들은 표준 독일어 대신 다양한 방언을 입말로 썼을 것이므로 표기는 Koch로 하더라도 발음은 표준 독일어 [ˈkɔx] ‘코흐’와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주요 방언 가운데 영어 [ˈkʊk]으로 흉내낼만한 발음을 쓴 예는 찾기 어렵다.
독일어식 이름의 영어 발음을 보면 사람에 따라 -stein이 [staɪ̯n] ‘스타인’ 또는 [stiːn] ‘스틴’이 되고 -baum이 [baʊ̯m] ‘바움’ 또는 [bɑːm] ‘밤’, -bach이 [bɑːk] ‘바크’ 또는 [bæk] ‘백’이 되는 등 다양한 발음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일이 발음을 확인하기는 힘드니 어느 하나로 통일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실제 발음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으니 부담이 간다. 더구나 Koch처럼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다양한 발음이 쓰이는 성씨라면 어느 발음을 기준으로 선택할지 정하기 어렵다.
원어 발음 [ˈkɔx]에 가장 가까운 쪽으로 정한다고 하면 영국식으로는 [ˈkɒk] ‘콕’, 미국식으로는 [ˈkɔːk] ‘코크’가 될 것이다. 영국식으로 [ɒ]로 발음되는 모음은 보통 미국식 [ɑː]에 대응되고(LOT 모음) 미국식으로 [ɔː]로 발음되는 모음은 보통 영국식으로도 [ɔː]에 대응되지만(THOUGHT 모음) cloth, long, soft, boss, dog 등의 모음처럼 영국식으로는 [ɒ], 미국식으로는 [ɔː]로 규칙적으로 대응되는 모음이 간혹 있다. 이를 CLOTH 모음이라고 하는데 기호 하나로 나타내자면 반장음 기호를 써서 [ɒˑ]로 적을 수 있다(널리 쓰이는 방식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정한 약식 기호이다). 즉 영국식 [ˈkɒk] ‘콕’, 미국식 [ˈkɔːk]에 해당하는 발음을 방언 중립적인 기호로는 [ˈkɒˑk]로 나타낼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짧은 모음 뒤의 어말 [k]를 받침 ‘ㄱ’으로 적도록 하고 있는데 영국식으로는 짧은 모음, 미국식으로는 긴 모음인 [ɒˑ]는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가 된다. 나는 [ɒˑ]를 긴 모음으로 취급하여 [ˈkɒˑk]는 ‘코크’로 적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Koch의 대표 영어 발음을 [ˈkɒˑk]로 본다면 ‘코크’로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실업가 Koch 형제는 [ˈkoʊ̯k] ‘코크’, 우주 비행사 Koch는 [ˈkʊk] ‘쿡’이니 둘 다 이와 발음이 다르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래서 차라리 독일어 발음에 따라 ‘코흐’로 적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아르테미스 2호에 참가한 캐나다인 우주 비행사 Jeremy Hansen은 대부분 한국 언론에서 ‘제러미/제레미 핸슨’으로 적었지만 그의 성을 ‘한센’으로 적을 경우도 볼 수 있는데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 성씨로 취급하면 ‘한센’이 된다. 하지만 이름마다 기원을 따져가며 표기를 정하는 것도 어려우니 이것도 일반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당분간은 번거롭더라도 본인 발음을 존중한 표기를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Christina Koch은 ‘크리스티나 쿡’으로 썼다. 하지만 앞으로 이처럼 영어로 다양하게 발음되는 독일어식 이름을 어떻게 표기할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대부분 Victor Glover를 ‘빅터 글로버’로 쓰고 있다. 하지만 원래 장갑을 만들거나 파는 이를 뜻하는 말에서 나온 성씨인 Glover는 ‘장갑’을 뜻하는 glove [ˈɡlʌv] ‘글러브’에서와 마찬가지로 [ʌ] ‘어’를 써서 [ˈɡlʌvəɹ] ‘글러버’로 발음된다.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일반 용어 glover ‘글러버’를 비롯해서 영국의 물리학자 Charles Glover Barkla [ˈʧɑːɹlz ˈɡlʌvəɹ ˈbɑːɹklə] ‘찰스 글러버 바클라’에서는 발음대로 표기하고 있지만 ‘글로버탑에 괴는 산’을 뜻하는 화학 용어 glover산은 ‘글로버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국의 화학자 존 글러버(John Glover [ˈʤɒn ˈɡlʌvəɹ])의 이름을 딴 Glover tower와 Glover acid는 ‘글러버탑’, ‘글러버산’으로 적는 것이 원어 발음에 따른 표기이다.
표기 용례에는 없지만 미국의 배우 대니 글러버(Danny Glover [ˈdæni ˈɡlʌvəɹ]), 미국의 배우이자 가수인 도널드 글러버(Donald Glover [ˈdɒn(ə)ld ˈɡlʌvəɹ])도 보통 ‘대니 글로버’, ‘도널드/도날드 글로버’로 적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발음을 잘못 안 표기에 익숙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그대로 쓰는 듯하다. 물론 Glover 및 cover [ˈkʌvəɹ] ‘커버’, lover [ˈlʌvəɹ] ‘러버’에서는 [ʌ] ‘어’를 쓰지만 clover [ˈkloʊ̯vəɹ] ‘클로버’, rover [ˈɹoʊ̯vəɹ] ‘로버’에서는 [oʊ̯] ‘오’를, mover [ˈmuːvəɹ] ‘무버’, approver [əˈpɹuːvəɹ] ‘어프루버’에서는 [uː] ‘우’를 쓰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영어 철자로부터 발음을 알아내기가 까다로운 탓이다. 그래도 영어권에서 이따금 접할 수 있는 성씨인 Glover는 규범에 맞게 ‘글러버’로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