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조금 뜻밖에도 호메로스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장편 서사시가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의 형태로 실려 있다. ‘일리아스(Ilias)’도 표제어로 올라있지만 뜻풀이 끝에 ‘=일리아드’라고 적고 있어 ‘일리아드’가 선호되는 표제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일리아스’의 뜻풀이 끝에는 ‘≒일리아스’라고 적고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동의어를 나타내는 기호 가운데 대표 표제어에는 ‘≒’ 대신 등호 ‘=’를 쓴다. ‘오디세이아(Odysseia)’는 아예 ‘오디세이’의 그리스어 이름으로만 풀이되어 있다(그렇다면 ‘오디세이’는 어느 언어에서 온 이름인지는 언급이 없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 Ἰλιάς(Iliás) ‘일리아스’, Ὀδύσσεια(Odýsseia) ‘오디세이아’ 대신 영어에서 쓰는 형태인 Iliad [ˈɪliə⟮æ⟯d] ‘일리애드’와 Odyssey [ˈɒdə⟮ᵻ⟯si] ‘오디시’를 영어 발음 대신 철자식으로 읽어 썼던 결과이다. 예전에 고대 그리스어 이름은 보통 영어를 통해서 접했는데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화 작가 ‘이솝(Aesop)’, 수학자 ‘유클리드(Euclid)’가 [ˈiːsɒ⟮ə⟯p], [ˈjuːklᵻd]로 각각 발음되는 영어 형태를 따른 표제어로만 실려있다. 이들은 각각 고대 그리스어 Αἴσωπος(Aísōpos) ‘아이소포스’, Εὐκλείδης(Eukleídēs) ‘에우클레이데스’에 해당하지만 이 형태로는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롭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에우클레이데스(Eucleides)’도 표제어로 실려있지만 메가라 출신의 철학자인 동명이인을 가리킨다.
호메로스도 예전에는 보통 영어 이름 Homer [ˈhoʊ̯məɹ]에 따라 ‘호머’로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호메로스(Homeros)’를 주 표제어로 삼고 ‘호머(Homer)’는 ‘호메로스’의 영어 이름으로 풀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대 그리스어 이름은 영어식 표기보다는 Ὅμηρος(Hómēros)와 같은 원어 형태를 따르는 쪽으로 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시중에 나온 번역본에서 쓰는 제목을 보면 ‘일리아드’보다는 ‘일리아스’가, ‘오디세이’보다는 ‘오디세이아’가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오뒷세이아’ 같이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기준으로 하는 이표기도 보인다. 대신 호메로스의 작품 말고 《미학 오디세이》, 《물리 오디세이》 등 비유적인 의미로 쓰는 제목에서는 아직 ‘오디세이’가 우세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리아스’를 ‘일리아드’의 동의어로 처리하는 한편 지명 ‘트로이(Troy)’의 다른 이름이라는 둘째 뜻풀이를 달았다. 그런데 적어도 고대 그리스어식 용법으로는 엄밀히 말해서 일리아스가 트로이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일리아스》의 무대인 ‘트로이’ 역시 영어 형태 Troy [ˈtɹɔɪ̯]를 기준으로 한 표기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트로야(Troja)’를 ‘트로이’의 라틴어 이름으로 제시할 뿐 고대 그리스어 Τροία(Troía) ‘트로이아’를 따른 표제어는 싣지 않고 있다. 사실 ‘밀레투스(Miletus)’, ‘에페수스(Ephesus)’ 등 트로이/트로야/트로이아처럼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 도시들뿐만이 아니라 ‘아테네(Athenae)’, ‘테베(Thebae)’ 등 오늘날의 그리스에 있었던 주요 고대 그리스 도시들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라틴어 형태를 따르는 것이 많다(대신 ae를 고전 라틴어식 ‘아이’ 대신 신라틴어식 ‘에’로 적어 ‘아테나이’, ‘테바이’ 대신 ‘아테네’, ‘테베’로 적은 것이 특기할만하다). 고대 그리스어 형태는 각각 Μίλητος(Mílētos) ‘밀레토스’, Ἔφεσος(Éphesos) ‘에페소스’, Ἀθῆναι(Athênai) ‘아테나이’, Θῆβαι(Thêbai) ‘테바이’이다. Ἀθήνη(Athḗnē) ‘아테네’, Θήβη(Thḗbē) ‘테베’도 고대 그리스어에서 쓰인 이형이지만 Athenae, Thebae를 각각 원어로 제시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글 표기는 라틴어 형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예전 글 〈아테네와 테베, 그리스어 이름의 표기 문제〉, 〈‘아테네’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라고?〉 참고).
정작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무대가 된 도시를 Τροία(Troía) ‘트로이아’ 대신 Ἴλιον(Ílion) ‘일리온’이라고 부르고 있다. 라틴어로는 Ilium ‘일리움’이다. 고대에는 도시의 이름으로 트로이아/트로야와 일리온/일리움이 둘 다 쓰였는데 후대에는 전자로 굳어졌다. Ἴλιον(Ílion) ‘일리온’에 접미사 -άς(-ás) ‘-아스’를 붙여서 ‘일리온의’를 뜻하는 여성 형용사형을 만든 것이 Ἰλιάς(Iliás) ‘일리아스’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시’를 뜻하는 ποίησις(poíēsis) ‘포이에시스’는 여성 명사이므로 ‘일리온의 시’를 뜻하는 말은 여성 형용사형을 쓴 ἡ ποίησις Ἰλιάς(hē poíēsis Iliás) ‘헤 포이에시스 일리아스’ 정도가 된다. 이를 줄인 것이 《일리아스》의 유래일 것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온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가리키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로 Τροία(Troía) ‘트로이아’에 접미사 -άς(-ás) ‘-아스’를 붙인 Τρῳάς(Trōiás) ‘트로아스’가 이 지역의 이름으로 더 흔하게 쓰였다. 한편 일리온의 고대 그리스어 이형으로 Ἴλιος(Ílios) ‘일리오스’도 쓰였다.
그러니 일리아스는 트로이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이름으로 쓰이기는 했어도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은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일리온/일리움과 트로이/트로야/트로이아가 도시를 가리키는 동의어, 일리아스와 트로아스가 지역을 가리키는 동의어이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명사는 문법적 기능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Ἰλιάς(Iliás) ‘일리아스’는 주격형이고 속격형은 Ἰλιάδος(Iliádos) ‘일리아도스’, 대격형은 Ἰλιάδα(Iliáda) ‘일리아다’이다. 이들은 Ἰλιάδ-(Iliád-)에 다양한 격어미를 붙인 것이고 -ς(-s) 앞에서는 δ(d)가 탈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라틴어에서는 Ilias ‘일리아스’가 주격형인데 라틴어식 격변화를 써서 Iliadis ‘일리아디스’를 속격형, Iliadem ‘일리아뎀’을 대격형으로 쓰거나 고대 그리스어를 흉내 내서 Iliados ‘일리아도스’를 속격형, Iliada ‘일리아다’를 대격형으로 쓰기도 한다. 한글로 표기할 때는 주어로 쓰는 형태인 주격형을 기본으로 삼으니 고대 그리스어를 기준으로 하든 라틴어를 기준으로 하든 ‘일리아스’로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등 로망 어군의 여러 언어들에서는 원래의 복잡한 격변화 체계가 사라졌는데 주격형보다는 대격형을 기준으로 통일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탈리아어에서는 Iliade ‘일리아데’, 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에서는 Ilíada ‘일리아다’, 프랑스어에서는 Iliade [iljad] ‘일리아드’로 쓰게 되었다. 영어의 Iliad [ˈɪliə⟮æ⟯d] ‘일리애드’도 옛 프랑스어 형태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독일어에는 Iliade [iˈli̯aːdə] ‘일리아데’라는 이형도 있지만 특히 요즘에는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주격형을 기준으로 한 Ilias [ˈiːli̯as] ‘일리아스’가 훨씬 우세하다.
그리스어에서도 격변화 체계가 좀 더 단순하게 재편되면서 현대 그리스어로는 주격형과 대격형이 둘 다 Ιλιάδα(Iliáda) ‘일리아다’이다. 고대 그리스어를 최대한 흉내 낸 카타레부사(Καθαρεύουσα/Katharévousa) 곧 순수어에서는 여전히 Ἰλιάς(Iliás) ‘일리아스’를 주격형으로 쓰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른바 디모티키(δημοτική/dimotikí) 곧 민중어에서는 ‘일리아다’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그리스어 이름도 순수어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의 Ἑλλάς(Hellás) ‘헬라스’를 따라 Ἑλλάς(Ellás) ‘엘라스’로 쓰지만 민중어로는 Ελλάδα(Elláda) ‘엘라다’라고 한다.
한편 Ὀδύσσεια(Odýsseia) ‘오디세이아’는 주인공인 Ὀδυσσεύς(Odysseús) ‘오디세우스’의 이름에 접미사 -ια(-ia) ‘-이아’를 붙여 여성형으로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디세우스의 시’를 뜻하는 ἡ Ὀδύσσεια ποίησις(hē Odýsseia poíēsis) ‘헤 오디세이아 포이에시스’ 같은 표현이 줄어서 《오디세이아》가 되었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운율에 맞추기 위해 둘째 음절을 줄인 형태인 Ὀδυσεύς(Odyseús)를 쓰기도 하지만 한글 표기는 변함없이 ‘오디세우스’이다.
라틴어로는 Odyssea ‘오디세아’라고 한다. 한글 표기를 기준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어 발음과 달라진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쓰는 고대 그리스어의 한글 표기 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Ὀδύσσεια(Odýsseia)는 고전 아티카 방언을 기준으로 [odýsseːa] ‘오뒤세아’ 정도로 발음했다. 이를 받아들인 라틴어 Odyssea의 고전 라틴어식 발음은 [ɔdysˈseːa] ‘오뒤세아’이다. 강세 음절이 달라지고 짧은 o가 라틴어식 중저모음 음가 [ɔ]로 발음된다는 것 외에는 고대 그리스어 발음과 거의 같다.
고대 그리스어의 중모음으로는 원래 짧은 모음인 [e], [o] 외에 긴 모음인 [eː], [ɛː], [oː], [ɔː]가 있었다. 자음을 나타내는 자모로만 이루어진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한 그리스 문자는 그리스어에 없는 음을 나타내는 자모를 모음을 나타내는 자모로 전용하였지만 여전히 모음 수가 모음자 수보다 많아서 같은 자모로 여러 모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아테네에서 원래 쓰던 초기 아티카식 그리스 문자에서는 엡실론(Ε, ε)으로 [e], [eː], [ɛː]를 모두 나타냈고 오미크론(Ο, ο)으로 [o], [oː], [ɔː]를 모두 나타냈다.
그러다가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직후인 기원전 403~402년에 아테네 시민들은 집정관 에우클레이데스(또다른 동명이인이다)의 제안으로 이오니아식 그리스 문자를 도입하기로 표결했다.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서 쓰던 그리스 문자에서는 오미크론을 변형시킨 새 자모 오메가(Ω, ω)로 [ɔː]를 나타냈고 원래 [h]를 나타냈던 자모 에타(Η, η)로 [ɛː]를 나타냈다. 이오니아 방언에서 [h]가 사라졌기 때문에 필요가 없게 된 자모를 긴 모음 [aː]를 나타내는 데 쓴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ɛː]로 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오니아식 그리스 문자에서는 [eː]는 ει(ei)로, [oː]는 ου(ou)로 나타냈다. 각각 엡실론과 오미크론에 요타(Ι, ι)와 입실론(Υ, υ)을 붙인 조합으로 긴 모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ει(ei), ου(ou)로 각각 나타냈던 초기 그리스어의 이중 모음 [ei̯] ‘에이’, [ou̯] ‘오우’는 고전기에 와서는 각각 [eː] ‘에’, [oː] ‘오’로 발음이 단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오니아식 그리스 문자에서는 중모음 e(ε) [e], ει(ei) [eː], η(ē), [ɛː], ο(o) [o], ου(ou) [oː], ω(ō) [ɔː]가 모두 구별되었다. 대신 [a]와 [aː]는 둘 다 알파(Α, α)로 적고 [i]와 [iː]는 둘 다 요타(Ι, ι)로 적는 등 모든 모음의 음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이오니아식 그리스 문자는 아테네에 이어서 그리스 다른 지역에도 도입되면서 그리스어를 적는 표준 문자가 되었다.
그런데 ει(ei)와 ου(ou)는 원래의 이중 모음 [ei̯] ‘에이’, [ou̯] ‘오우’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라 모든 [eː] ‘에’, [oː] ‘오’를 적는 데 쓰였다. 고대 그리스어의 긴 모음 [eː]는 [e] 뒤의 자음이 탈락하면서 보상적 장음화로 나타나거나 [e]와 [e]가 합쳐서 나온 것이 많았다. 긴 모음 [oː] 역시 뒤따르는 자음 탈락으로 인한 [o]의 보상적 장음화 또는 [e]와 [o], [o]와 [e], [o]와 [o] 등의 결합으로 유래한 것이 많았다.
한편 입실론(Υ, υ)으로 나타냈던 초기 그리스어의 후설 모음 [u], [uː] ‘우’는 아티카 방언을 기준으로 기원전 7~6세기경에 중설 모음 [ʉ], [ʉː]를 거쳐 [y], [yː] ‘위’로 전설 모음화했다. 고전기에는 ου(ou) [oː] ‘오’가 [uː] ‘우’로 상승하여 그 빈자리를 메꾸었다. 고전 후기에는 ει(ei) [eː] ‘에’마저 [iː] ‘이’로 상승하여 요타(Ι, ι)로 적는 [iː] ‘이’와 발음이 합쳐졌다. 이 두 가지 변화 사이에 시차가 있었다는 것은 라틴어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 이름 Μέδουσα(Médousa), Οἰδίπους(Oidípous), Θουκυδίδης(Thoukydídēs)를 라틴어로 Medusa ‘메두사’, Oedipus ‘오이디푸스’, Thucydides ‘투키디데스’로 쓰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어의 ου(ou)는 예외 없이 라틴어의 u ‘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어의 ει(ei)는 라틴어로 받아들인 양상이 조금 복잡하다.
일단 Εὐκλείδης(Eukleídēs), Ἤπειρος(Ḗpeiros), εἰκών(eikṓn)이 라틴어에서는 각각 Euclides ‘에우클리데스’, Epirus ‘에피루스’, icon ‘이콘’이 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자음 앞에서는 ει(ei)가 비교적 일관적으로 i ‘이’에 대응된다. 하지만 Κασσιόπεια(Kassiópeia), Μήδεια(Mḗdeia), μουσεῖον(mouseîon)이 Cassiopea ‘카시오페아’, Medea ‘메데아’, museum ‘무세움’이 된 것을 보면 모음 앞에서는 ει(ei)를 e ‘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Ἀκαδήμεια(Akadḗmeia), Ἀλεξάνδρεια(Alexándreia), Κλειώ(Kleiṓ)는 Academia ‘아카데미아’, Alexandria ‘알렉산드리아’, Clio ‘클리오’가 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모음 앞의 ει(ei)를 i ‘이’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다. 드물게 Cassiopeia ‘카시오페이아’ 같이 ei ‘에이’로 적는 형태도 볼 수 있다. 어쨌든 Ὀδύσσεια(Odýsseia)가 라틴어 Odyssea ‘오디세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라틴어를 거치지 않고 고대 그리스어를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할 때 ει(ei)를 ei로 적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인 Ποσειδῶν(Poseidôn)은 Poseidon으로 적는 식이다. 여기에 대응되는 라틴어 형태는 Posidon ‘포시돈’이지만 라틴어에서는 로마 신화에서 바다의 신인 Neptunus ‘넵투누스’에 대응시켰기 때문에 그리스어식 이름을 쓸 일이 없었다. 근대에 와서야 서유럽 여러 언어에서 본격적으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어의 입실론(Υ, υ)은 라틴어로 y로 받아들였고 학식 있는 화자들은 원어를 흉내 내어 [ʏ], [yː] ‘위’로 발음했다. 하지만 원래 라틴어에 없는 모음이었기 때문에 결국 i로 적는 [ɪ], [iː] ‘이’와 발음이 합쳐졌다.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의 일러두기에 포함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한글 표기 원칙에서도 y는 ‘이’로 적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라틴어 Odyssea는 ‘오뒤세아’ 대신 ‘오디세아’로 적는다. 라틴어 화자들이 ‘위’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바람에 고대 그리스어의 표기에서도 덩달아 ‘위’ 대신 ‘이’로 쓰게 된 셈이다.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등 로망 어군의 여러 언어에서는 라틴어로 y로 적었던 음을 i와 동일하게 발음하며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등에서는 철자상의 y를 대부분 i로 대체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는 Odissea ‘오디세아’, 에스파냐어로는 Odisea ‘오디세아’로 쓴다. 프랑스어에서는 철자 y가 보존되었지만 i로 쓴 것처럼 발음하는데 어말 a가 e로 변한 후 묵음이 되는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Odyssée [ɔdise] ‘오디세’이다. 영어의 Odyssey [ˈɒdə⟮ᵻ⟯si] ‘오디시’도 프랑스어 Odyssée의 옛 형태에서 차용한 것이다. 프랑스어로 ‘하루’를 뜻하는 journée [ʒuʁne] ‘주르네’와 ‘골짜기’를 뜻하는 vallée [vale] ‘발레’의 옛 형태사 영어에 차용되면서 ‘여정’을 뜻하는 journey [ˈʤɜːɹni] ‘저니’, ‘골짜기’를 뜻하는 valley [ˈvæli] ‘밸리’로 변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철자 ey로 적은 것은 중세 영어에서 이들이 [æi̯] 정도의 이중 모음으로 발음되었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현대 영어에서는 모두 무강세 모음 [i] ‘이’이다(방언에 따라 [iː] 또는 [ɪ]를 나타내는 약식 기호). 그러니 ‘오디세이’는 현대 영어의 발음과 다르더라도 중세 영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일 수는 있겠다.
독일어에서도 프랑스어와 비슷한 어말 a의 약화가 일어나서 Odyssee로 쓰지만 [odʏˈseː] ‘오뒤세’로 발음한다. 후대에 고대 그리스어 발음을 의도적으로 흉내 내어 고대 그리스어가 어원인 말에서 y를 독일어의 [ʏ], [yː] ‘위’로 발음한 결과이다. 그런데 System [zɪsˈteːm, zʏsˈteːm] ‘지스템/쥐스템’처럼 y를 i처럼 발음하기도 하는 예도 있으며 Gymnasium [ɡʏmˈnaːzi̯ʊm] ‘김나지움’, Hysterie [hʏsteˈʁiː] ‘히스테리’ 등 기존 표기 용례에서는 독일어의 y가 [ʏ], [yː]로 발음되더라도 ‘이’로 적는다. 그러니 독일어 Odyssee도 기존 표기 용례를 감안하면 ‘오뒤세’ 대신 ‘오디세’로 적어야 하겠다.
정작 그리스어에서는 뒤늦게 10~11세기경에 υ(y) [y]가 [i]로 비원순화하였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어 Οδύσσεια(Odýsseia)는 [oˈðisia] ‘오디시아’로 발음된다. ει(ei)는 이미 설명했듯이 [iː]로 상승한 후 모음 길이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i]와 합쳐져 현대 그리스어로 이어진다.
특이하게 로망 어군에 속하는 포르투갈어에서는 Odisseia ‘오디세이아’, Cassiopeia ‘카시오페이아’, Medeia ‘메데이아’ 등으로 쓴다. 이는 16세기 무렵에 포르투갈어의 ea, eo에 활음이 삽입되어 eia, eio로 각각 변한 결과로 고대 그리스어의 ει를 로마자로 ei로 표기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라틴어의 arena ‘아레나’, lega ‘레이아’가 고대 갈리시아어·포르투갈어 arẽa, lea를 거쳐서 areia ‘아레이아’, leia ‘레이아’가 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대 그리스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ου(ou)는 ‘우’로 적는데 ει(ei)에 대한 세칙은 따로 없이 기존 표기 용례에서 ‘에이’로 적는다. 이는 과연 바람직한 방식일까? 고전기에 [eː]로 발음되다가 [iː]로 바뀐 것으로 재구되는 모음이고 ει(ei)로 적는 모음 상당수가 애초에 이중 모음 [ei̯] ‘에이’로 발음되었던 적이 없는 것을 고려하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오뒤세이아’, ‘오뒷세이아’ 같은 표기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υ(y)를 ‘위’로 적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지만 ει(ei)를 ‘에이’로 적는 것을 문제 삼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흔히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칠 때 υ(y)의 발음은 [y] ‘위’로 제시하지만 ει(ei)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ου(ou)가 고전 초기에 [oː] ‘오’로 발음되었다는 사실도 언급되는 일이 없고 보통 [u] ‘우’로만 가르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ει(ei)를 ‘에이’로 적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자음 앞에서 ‘이’로 적자니 ‘포세이돈’ 대신 ‘포시돈’ 같은 낯선 표기가 나오며 모음 앞에서는 ‘에’로 적든 ‘이’로 적든 ‘아카데메아’, ‘오디시아’ 등 익숙하지 않은 표기가 나온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Ὀδύσσεια(Odýsseia)는 Ὀδυσσεύς(Odysseús)에 접미사 -ια(-ia)를 붙인 것이니 여기서 ει(ei)는 실제로 ε(e)와 ι(i)가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는 ει(ei)의 발음이 실제로 ‘에이’에 가까웠던 적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Κασσιόπεια(Kassiópeia), Μήδεια(Mḗdeia)도 어원상 접미사 -ια(-ia)가 들어간 형태일 것이다. μουσεῖον(mouseîon)도 분석하면 접미사 -ιον(-ion) ‘-이온’이 들어간 형태이다. 그러니 흔히 나타나는 -εια(-eia), -εῖον(-eîon) 등의 조합은 ‘-에이아’, ‘-에이온’과 같이 적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
대신 자음 앞의 ει(ei)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Ἤπειρος(Ḗpeiros)는 도리스 방언형 Ἄπειρος(Ápeiros), 아이올리스 방언형 Ἄπερρος(Áperrhos)를 참고하여 볼 때 인도·유럽 조어 *h₂éh₁-per-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므로 ει(ei)가 이중 모음 [ei̯]로 발음된 적이 있던 것 같지는 않다. Ποσειδῶν(Poseidôn)은 어원 자체가 수수께끼여서 추측만 무성하다. 그러니 순전히 어원을 따진다면 ει(ei)를 ‘에이’로 적을 근거를 찾기 힘들다. 표기를 ‘에이’로 통일하여 ‘에페이로스’, ‘포세이돈’으로 적는 것은 편의를 위한 것이다. 자음 앞의 ει(ei)에 한해 ‘이’로 적어서 ‘에피로스’, ‘포시돈’, εἰκών(eikṓn) ‘이콘’ 같은 표기를 쓰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괜히 혼란만 초래할 것 같아서 염려가 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거치는 기나긴 여정 끝에 한국어에 전해진 호메로스의 서사시 제목은 예전에 일반적이었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비교적 최근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선호되는 표기가 바뀐 듯하다. 하지만 이를 반영하여 앞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주 표기로 삼는다고 해도 고대 그리스어 이름보다는 영어 철자 Iliad, Odyssey를 접하기가 더 쉬운 이상 ‘일리아드’, ‘오디세이’라는 표기도 상당한 관성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오디세이’는 ‘오디세이아’보다 한 음절 더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솝’과 ‘유클리드’를 ‘아이소포스’와 ‘에우클레이데스’로 대체하는 것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울지 생각해 보면 음절 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ˈkɹɪstəfəɹ ˈnoʊ̯lən]) 감독의 신작 The Odyssey는 국내에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고 한다. 아무리 원전의 최근 번역본에서는 ‘오디세이아’라는 표기가 우세하더라도 영화판에서 이 표기가 쓰일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 것이다. 스탠리 쿠브릭(Stanley Kubrick [ˈstænli ˈkuːbɹɪk]) 감독의 1968년작 2001: A Space Odyssey는 당시 국내에 극장 개봉이 되지 않았지만 1996년 비디오판 재킷에서는 《스페이스 오딧세이》라고 표기한 적이 있다. 영어로는 odyssey가 ‘곡절이 많은 기나긴 여정’을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되었기 때문에 Odysseus라는 이름이 odyssey에서 이름을 딴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디세이’와 ‘오디세이아’가 호메로스의 작품으로만 풀이되지만 실제로는 영어의 영향인지 비유적인 의미로 쓰는 일이 흔하다는 느낌이다. 혹시 앞으로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오디세이’는 비유적인 용법으로 의미가 분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 제목의 영향으로 호메로스의 작품도 ‘오디세이’라고 하는 쪽이 힘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