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있는 유서 깊은 항구 도시 티레(Tyre) 시내에 공습을 감행하여 최소한 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구시가지에 있는 기독교인 거주 구역에까지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내리자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이 국제 사회에 이스라엘의 공습을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스 가톨릭교의 티레 대주교 조르주 이스칸다르(Georges Iskandar), 그리스 정교회의 티레·시돈·부속 지역 관구장 주교 엘리아스 크푸리(Elias Kfoury), 마론파 가톨릭교 티레 대주교 샤르벨 압달라(Charbel Abdallah)는 티레의 구시가지에 있는 수많은 민간인과 수백 년 된 문화·종교 유산이 위협에 처해 있다며 국제 사회와 유엔 산하 기구들이 국제 인도법에 따라 주민들을 보호할 도덕적인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이미 티레의 기독교인 거주 구역 주민 수백 명이 대피했으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티레의 고고학 유적지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약 47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며 고대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 국가로서 카르타고를 비롯하여 지중해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한 이곳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티레(Tyre)’로 나오며 ‘티루스(Tyrus)’는 ‘티레’의 옛 이름으로 풀이된다. 아마 영어에서 Tyre라고 부르는 것을 마치 라틴어인 것처럼 읽은 듯하다.
그런데 영어로는 Tyre를 [ˈtaɪ̯əɹ] ‘타이어’로 발음한다. ‘티레’로 읽을 근거는 없다. 주요 유럽 언어를 보면 프랑스어로는 Tyr [tiʁ] ‘티르’, 에스파냐어와 이탈리아어로는 Tiro ‘티로’이고 독일어로는 Tyros [ˈtyːʁɔs] ‘티로스’ 또는 Tyr [ˈtyːɐ̯] ‘티어’ 또는 Tyrus [ˈtyːʁʊs] ‘티루스’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독일어의 [y]는 ‘위’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철자 y가 [y]나 [ʏ]로 발음되는 경우에는 Gryphius [ˈɡʁyːfi̯ʊs] ‘그리피우스’, Gymnasium [ɡʏmˈnaːzi̯ʊm] ‘김나지움’, Hysterie [hʏsteˈʁiː] ‘히스테리’ 등 기존 표기 용례에서 ‘이’로 적어왔다. 네덜란드어로는 Tyrus ‘티뤼스’, 폴란드어로는 Tyr ‘티르’, 체코어로는 Týr ‘티르’이다.
모두 라틴어 Tyrus ‘티루스’에서 온 이름으로 이는 차례로 고대 그리스어 Τύρος(Týros) ‘티로스’에서 나왔다. 그러니 유럽 언어 이름에 따라 적는다면 ‘티로스’나 ‘티루스’, ‘티르’로 부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Damascus ‘다마스쿠스’, Jerusalem ‘예루살렘’ 등 마찬가지로 레반트 지방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들은 라틴어 이름에 따라 부르는 것을 감안하면 ‘티루스’가 가장 나은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레바논 주민 대다수의 모어인 아랍어로는 صور Ṣūr [sˤuːr] ‘수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바위’를 뜻하는 페니키아어 𐤑𐤓 Ṣūr ‘수르’에서 따온 것이며 청동기 시대에 고대 근동 지방의 국제어였던 아카드어로는 𒌷𒀫𒊒 Ṣurru ‘수루’라고 불렀다. 페니키아어와 매우 가까운 고대 히브리어로는 צור Ṣôr ‘소르’라고 했다. 아랍어, 페니키아어, 아카드어, 히브리어는 모두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셈 어파에 속한다.
티레는 원래 육지에서 1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바위섬에 세워진 도시였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하려 했으나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로서 일곱 달 동안 포위 공격을 버텨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섬을 육지와 잇는 둑길을 건설하여 마침내 티레를 함락하고 수많은 주민을 학살했다. 원래 섬이었던 티레는 그 후로 지금까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고대 도시 국가는 히브리 성경에도 나오는데 개역한글, 개역개정 등 한글판 성경에서는 보통 ‘두로’라고 부른다. 공동번역에서는 ‘띠로’, 가톨릭 성경에서는 ‘티로’라고 부른다. 즉 고대 히브리어 ‘소르’보다는 고대 그리스어 ‘티로스’ 및 라틴어 ‘티루스’를 참조한 표기이다. 두로/티루스/티레의 왕 히람이 고대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솔로몬의 왕궁과 성전 건축을 지원한 것이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자모 입실론(υ)이 나타내는 음가는 원래 후설음 [u] ‘우’였다가 중설음 [ʉ]를 거쳐 전설음 [y] ‘위’가 되었다. 이를 라틴어에서는 y로 받아들이면서 흔히 그냥 i로 적은 것처럼 [i]로 발음하였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서는 ‘이’로 적는다. 현대 그리스어에서도 [i]로 발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티레는 Τύρος(Týros) [ˈtiros] ‘티로스’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초창기 고대 그리스어의 차용어에서는 원어의 [u]를 입실론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고대 도시 𒀸𒋩𒆠 Aššūr ‘아수르’에서 이름을 딴 나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Ἀσσυρία(Assyría) ‘아시리아’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라틴어 Assyria ‘아시리아’로 이어졌다(아카드어의 아시리아 방언에서 š는 s처럼 [s]로 발음되었으므로 도시 이름으로서는 ‘아슈르’보다 ‘아수르’가 적합할 것이다). 한글판 성경에서는 보통 ‘앗수르’라고 부른다.
그러면 원래의 ‘수르’의 모음을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입실론으로 흉내낸 것은 설명되지만 첫 자음이 ṣ에서 자모 타우(τ)로 나타내는 t로 바뀐 것은 이상해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아랍어의 ṣ는 단순한 [s]가 아니라 이른바 강세 자음으로서 인두음화한 [sˤ]로 발음된다(방언에 따라 구개수음화한 [sʶ] 또는 연구개음화한 [sˠ]로 발음되기도 한다). 고대 히브리어 자모 사디(צ, ṣādī)도 강세 자음 ṣ를 나타냈지만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에서는 보통 일반 파찰음 [ʦ]로 발음된다(대신 예멘 히브리어에서는 아랍어에서처럼 [sˤ]로 발음한다). 그래서 티레를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로는 צור Tsor ‘초르’라고 부른다. 한편 이들처럼 셈 어파에 속하는 에티오피아의 고전 언어인 게즈어로는 ጸ ṣ가 방출 파찰음 [ʦʼ]로 발음된다. 이처럼 셈 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에서 쓰이는 발음을 비교하여 이들의 공통 조상인 셈 조어의 *ṣ는 방출 마찰음 [sʼ]로 재구하기도 하고 방출 파찰음 [ʦʼ]로 재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 문자에서는 ṣ를 나타낸 페니키아 문자의 자모 사데(𐤑, ṣādē )를 산(ϻ, san)으로 받아들였다. 초기에 그 발음은 [z]였을 수 있지만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s]의 변이음이었기 때문에 [s]를 나타내는 시그마(σ)와 발음이 겹쳐 곧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페니키아어 Ṣūr의 첫 음도 고대 그리스어로는 [s]로 받아들였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티레와 이웃한 페니키아 도시 국가 𐤑𐤉𐤃𐤅𐤍 Ṣīdūn ‘시둔’도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Σιδών(Sidṓn) ‘시돈’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느 이들은 Ṣūr의 첫 자음이 전에는 다른 음이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어에서 [t]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페니키아어는 한때 페니키아의 해상 무역과 식민지 건설을 통해 지중해 곳곳에 퍼졌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페니키아의 전성기 때는 초라한 자매 언어였던 히브리어는 유대교 경전의 언어로서 보존되다가 20세기 들어 이스라엘의 공용어로서 부활되어 다시 모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동안 근동 지역의 교통어는 기원전 8세기경에 아카드어에서 아람어로, 기원후 7세기 이후로는 서서히 아람어에서 아랍어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레바논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프랑스의 위임 통치를 받은 역사로 인해 프랑스어도 준공용어 수준으로 많이 쓰인다.
그리스 가톨릭교의 티레 대주교인 Georges Iskandar는 프랑스어식 이름 Georges [ʒɔʁʒ] ‘조르주’와 아랍어식 이름 إسكندر ʾIskandar ‘이스칸다르’를 합친 이름을 쓴다. 아랍어로는 جورج إسكندر Jōrj ʾIskandar ‘조르지 이스칸다르’라고 부르며 Jōrj는 프랑스어식 Georges ‘조르주’와 영어식 George [ˈʤɔːɹʤ] ‘조지’를 둘 다 나타낼 수 있지만 여기서는 프랑스어식 이름으로 보고 ‘조르주 이스칸다르’로 적었다. 특히 레바논의 기독교도 가운데 프랑스어 등 유럽 언어식 이름을 쓰는 이가 많다. 여담으로 إسكندر ʾIskandar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 Ἀλέξανδρος(Aléxandros) ‘알렉산드로스’에서 온 이름이다. 이를 마치 아랍어 정관사 ال al-로 시작하는 이름 الإسكندر al-ʾIskandar ‘알이스칸다르’인 것처럼 재해석한 결과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티레·시돈·부속 지역 관구장 주교인 Elias Kfoury는 아랍어로 إلياس كفوري ʾIlyās Kafūrī ‘일리아스 카푸리’라고 쓰지만 역시 프랑스어식 이름 Elias [eljas] ‘엘리아스’로 해석하고 철자에 따라 Kfoury도 ‘크푸리’로 적는 것이 좋겠다. 레반트 아랍어의 방언인 레바논의 구어체 아랍어(레바논 아랍어)는 대응되는 문어체 아랍어 형태에서 모음이 탈락하여 어두 자음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문어체 아랍어로 ‘책’을 뜻하는 كتاب kitāb ‘키타브’는 [kteːb] ‘크테브’ 정도로 발음하는 식이다. 더구나 아랍 문자로는 보통 짧은 모음을 적지 않기 때문에 كفوري라고 쓰면 Kafūrī ‘카푸리’인지, Kufūrī ‘쿠푸리’인지 알 수 없다. 굳이 올바른 문어체 아랍어 발음을 따질 필요 없이 레바논 아랍어 발음을 반영한 로마자 철자 Kfoury를 기준으로 ‘크푸리’로 적으면 그만이다.
마론파 가톨릭교 티레 대주교인 Charbel Abdallah는 아랍어로 شربل عبد الله Sharbel ʿAbd Allāh ‘샤르벨 압달라’로 쓴다. ‘압달라’는 ‘신의 종’을 뜻하는 고전 아랍어식 이름 عبد الله ʿAbdu llāh ‘압둘라’에 해당하며 ʿabdu의 고전 아랍어식 주격 어미 -u를 생략하여 모음 발음만 살짝 바뀐 형태이다. 그의 이름을 Charbel Abdullah ‘샤르벨 압둘라’로 보도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샤르벨’은 고전 시리아어 ܫܪܒܝܠ Šarbēl ‘샤르벨’에서 나온 독특한 이름이다. Charbel은 [ʃ]를 ch로 나타낸 프랑스어식 철자이다. 로마 제국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2세기 성인인 에데사의 샤르벨의 이름으로서 특히 레바논의 마론파에서 많이 쓴다. 고전 시리아어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오늘날의 시리아와 튀르키예 동남부, 특히 오늘날 튀르키예 샨르우르파(Şanlıurfa)에 해당하는 에데사(고대 그리스어: Ἔδεσσα/Édessa)를 중심으로 문자 언어로 쓰인 아람어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도 마론파 가톨릭교에서는 고전 시리아어를 전례 언어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