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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30. 추가 내용: 이 글을 쓴 후 암하라어, 게즈어를 비롯한 에티오피아 언어의 표기에 대한 생각이 통용 로마자 표기에 좀 더 가깝게 하자는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실제 발음에 가깝게 흉내내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현실성을 고려하여 게즈어는 EAE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적되 ə, ä는 각각 ‘에’, ‘아’로 적고 암하라어 등 현대 에티오피아 언어는 대체로 BGN/PCGN 1967년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한글로 적는 것이 나을 듯하다. 따라서 ይርጋ ጨፌ도 BGN/PCGN 표기인 Yirga Ch’efē에 따라 ‘이르가체페’를 그대로 쓰는 것이 좋겠다.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원문은 그대로 두지만 지금 생각하는 방식에 따르면 언급되는 이름이 어떻게 표기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서도 최상급으로 쳐주는 ‘커피의 귀부인’으로 알려진 모카 커피 품종 Yirgacheffe는 국내에 ‘예가체프’라고 알려져있고 최근에는 ‘이르가체페’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듯하다. 하지만 원래의 발음을 따라 적으면 ‘이르가처페’로 적어야 한다.

Yirgacheffe는 원래 에티오피아 중남부에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 그 주변 지역에서 나는 커피 품종에 그 이름이 붙은 것이다. 커피 품종 이름으로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로마자 표기는 Yirgacheffe이지만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검색하면 이 마을의 이름은 Yirga Chefe 또는 Yirga Cheffe, Yirgachefe, Yirga Ch’efē 등으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영어판 위키백과에는 현재 Irgachefe가 표제어로 쓰인다. 한편 현지 표지판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Yirga Chaffe라고 썼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지명의 로마자 표기가 중구난방인 것은 예전에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명은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 이름이다. 원래의 에티오피아 문자로는 ይርጋ ጨፌ라고 쓴다(잘 보이도록 이 문단 밑에 더 큰 글씨로 썼다).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에 속하는 암하라어는 2007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인구의 29.3%가 제1언어로 사용하여 33.8%가 제1언어로 쓰는 오로모어에 밀린다. 하지만 암하라인들이 사실상 에티오피아를 지배해왔고 에티오피아 황제들은 대부분 암하라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암하라어만이 공용어 지위를 누린다. 또 오로모어는 에티오피아에서 하나의 언어로 치지만 사실 언어학적으로만 따지면 여러 언어로 나누어야 한다.
ይርጋ ጨፌ
에티오피아와 이웃 에리트레아의 셈 어파 언어들인 암하라어, 티그리냐어(에리트레아의 공용어), 티그레어 등은 에티오피아 문자를 쓴다. 에티오피아 문자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게즈어’라고 부르는 고전 에티오피아어에서 쓴 문자이다. 로마자로 보통 Ge’ez라고 쓰지만 원래의 형태는 ግዕዝ Gəʿəz [ɡɨʕɨz]이니 이에 가깝게 ‘그으즈어’라고 하기도 한다. 역시 셈어파 언어인 고전 에티오피아어는 고대 악숨 왕국의 공용어였으며 오늘날 에티오피아 정교와 에리트레아 정교,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 등에서 예배 언어로만 쓰인다. 보통 고전 에티오피아어가 갈라져 오늘날의 여러 언어를 이룬 것이라고 보지만 자세한 가계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2025. 12. 30. 추가 내용: ግዕዝ의 게즈어 형태는 Gəʿəz 또는 Gəʿz로 재구되며 유성 인두 마찰음 [ʕ]가 성문 폐쇄음 [ʔ]와 합쳐진 오늘날의 암하라어에서는 [ɡɨʔɨz] ‘그으즈’로 발음된다. 하지만 원래의 발음은 [ɡɨʕ(ɨ)z]로 나타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게즈어의 ə [ɨ]를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는 e로 적는 것을 고려하여 지금은 한글 표기에서도 ‘에’로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Gəʿz를 기준으로 하는 한글 표기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쓰는 ‘게즈’를 고칠 필요가 없다.
암하라어는 로마자 표기 방식이 통일되지 않아 골치를 썩인다. 여기서는 《에티오피아 백과사전(Encyclopaedia Aethiopica)》에서 쓰는 이른바 EAE 로마자 표기법을 따른다. 이에 따르면 ይርጋ ጨፌ는 Yərga Č̣äfe가 된다. 또 미국지명위원회·영국지명위원회(BGN/PCGN)의 BGN/PCGN 1967년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면 ይርጋ ጨፌ는 Yirga Ch’efē가 된다.
한동안 암하라어의 한글 표기는 원칙 없이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를 따랐는데 최근 심의된 에티오피아 이름들은 원 발음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암하라어의 표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EAE 로마자 표기법에서 ə로 적는 [ɨ]와 ä로 적는 [ə]일 것이다. 로마자 표기에서 쓰이는 ə는 [ə]로 발음되지 않으니 혼동하지 말자.
중설 비원순 고모음 [ɨ]는 한국어의 ‘으’에 가까운 음으로 예전에는 한국어의 ‘으’를 [ɨ]라고 표기하는 적도 많았다. 요즘에는 ‘으’를후설 비원순 고모음 [ɯ]로 보통 쓴다. 또 에티오피아 문자에서는 뒤에 모음이 붙지 않는 자음도 ə [ɨ]가 붙은 것과 같은 글자로 쓰니 이 모음은 한글로 표기할 때 ‘으’로 적는 것이 좋겠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 20일 제109차 회의 때 심의된 인명 ጌታቸው እንግዳ Getaččäw Ǝngəda [ɡetatʧəw ɨnɡɨda] (통용 로마자 표기는 Getachew Engida)는 ‘게타처우 응그다’로 표기를 정했다.
2025. 12. 30. 추가 내용: 지금 생각하는 표기 방식에 따르면 ጌታቸው እንግዳ는 BGN/PCGN 표기인 Gētachew Ingida에 따라 ‘게타체우 잉기다’가 된다.
여기서 ä [ə]는 ‘어’로 적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표기 방식은 2013년 7월 12일 실무소위에서 심의된 인명 ገብረኢየሱስ Gäbräʾiyäsus [ɡəbrəʔijəsus] (통용 로마자 표기는 Ghebreyesus) ‘거브러여수스’에도 적용되었다.
2025. 12. 30. 추가 내용: 지금 생각하는 표기 방식에 따르면 ገብረኢየሱስ는 BGN/PCGN 표기인 Gebre Iyesus에 따라 ‘게브레이예수스’가 되는데 그보다는 통용 로마자 표기에 가까운 축약된 형태인 ገብረየሱስ Gebreyesus를 기준으로 ‘게브레예수스’로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ይርጋ ጨፌ Yərga Č̣äfe에 나오는 yə [jɨ]는 어떻게 적어야 할까? 아무래도 ‘이’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ɨ]는 오늘날의 한국어 발음에서 ‘이’와 ‘으’의 중간음인데 ‘이’에 해당하는 반모음 [j]가 그 앞에 와서 합친 소리는 한 음절이므로 ‘이’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로마자 표기 가운데 Irgachefe가 있는 것도 참고할 수 있다. 2015년 4월 29일 제120차 회의에서 인명 ሽፈራው ሽጉጤ Šəfärraw Šəguṭe [ʃɨfərraw ʃɨɡutʼe] (통용 로마자 표기는 Shiferaw Shigute)는 ‘*시퍼라우 시구테)로 표기를 정했는데 šə [ʃɨ]를 ‘시’로 적은 것도 참고할 수 있다.
2025. 12. 30. 추가 내용: 지금 생각하는 표기 방식에 따르면 ሽፈራው ሽጉጤ는 BGN/PCGN 표기인 Shiferaw Shigut’ē에 따라 ‘시페라우 시구테’가 된다.
그러니 최근의 암하라어 표기 용례를 따르면 ይርጋ ጨፌ Yərga Č̣äfe는 ‘이르가처페’로 적을 수 있다. 지명은 원 철자에서 띄어 쓰더라도 한글로는 보통 붙여 쓴다. 통용 로마자 표기인 Yirgacheffe도 한 단어로 붙여 썼으니 일부러 띄어 쓰자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암하라어 ይርጋ Yərga는 인명과 지명에 많이 등장한다. 인명으로 쓰이는 ይርጋ Yərga는 ‘잔잔하게 되라(may he/it be calm)’로 풀이된다. 또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에티오피아 남부의 지명으로 Yirga Alem ‘이르가알렘’이 등장한다. 암하라어 원 이름은 ይርጋ ዓለም Yərga ʿAläm [jɨrɡa ʔaləm]으로 원 발음에 가깝게 쓰면 ‘이르가알럼’이다. ይርጋለም Yərgaläm [jɨr.ɡa.ləm] ‘이르갈럼’으로 줄인 형태로도 쓰인다. 이 이름은 ‘세계가 잔잔하게 되라(may the world be calm)’로 풀이된다. ጨፌ Č̣äfe는 ‘늪(marsh)’이란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ይርጋ ጨፌ Yərga Č̣äfe는 ‘늪이 잔잔하게 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2025. 12. 30. 추가 내용: 지금 생각하는 표기 방식에 따르면 ይርጋ ዓለም은 BGN/PCGN 표기인 Yirga ‘Alem에 따라 기존 표기 용례대로 ‘이르가알렘’이 된다.

이와 같이 영어권에서 Yirgacheffe라고 부르는 에티오피아 지명이자 커피 품종은 암하라어 발음에 따라 한글로 적으면 ‘이르가처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예가체프’는 앞으로 ‘이르가처페’로 고쳐 써야 할까?
‘예가체프’가 근거가 부족한 표기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암하라어에서 직접 들여온 이름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쓰는 로마자 표기를 거친 이름일 텐데 영어권에서도 Yirgacheffe의 원어식 발음을 제대로 알 리가 없으니 지금까지 암하라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하필 ‘예가체프’라는 형태로 알려진 것은 Yergachefe나 Yergacheffe 같은 표기를 옮긴 것이거나 Yirgacheffe의 첫 음을 ‘이’로만 옮기기는 뭔가 허전해서 y가 나타내는 반모음을 밝히기 위해 ‘예’로 옮긴 것일 수 있겠다. 또 일반 영어 단어에서처럼 어말의 e는 묵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로 썼다면 모를까 영어에서 r를 처리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예’는 Yir-나 Yer-의 영어 발음을 나타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외래어는 이미 한국어의 일부가 된 관용을 존중하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또 지금은 잊혀졌지만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표기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꼭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cashmere [ˈkæʃ⟮ʒ⟯⁽ˈ⁾mɪə̯ɹ]는 자음 앞의 [ʃ]는 ‘슈’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캐슈미어’로 적어야 하니 고급 모직물을 이르는 ‘캐시미어’는 cashmere의 틀린 표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캐시미어’는 사실 영어에서 쓰던 옛 형태인 cassimere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cassimere라는 형태가 거의 쓰이지 않고 cashmere ‘캐슈미어’와 kerseymere ‘커지미어’로 분화되어 쓰인다. 참고로 이는 영어에서 Kashmir라고 쓰는 지명 ‘카슈미르’와 어원이 같다.
하지만 ‘예가체프’는 이제라도 충분히 표기를 바꿀 수 있는 경우이다. ‘예가체프’가 얼마나 역사가 오래된 표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 ‘이르가체페’로도 쓰는 예가 있는 것만 봐도 관용으로 굳어졌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카레’와 ‘커리’처럼 의미가 분화된 것이 아니라 단지 형태만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이르가체페’가 암하라어 발음에 훨씬 더 가까우니 만약 기존에 통용되던 표기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이게 나을 듯하다. 또 커피 품종은 ‘예가체프’로 표기하되 지명은 암하라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현재 일반 언중이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형태로 이미 굳어진 것이 없다면 최근의 암하라어 표기 용례와 일관되도록 커피 품종과 지명을 ‘이르가처페’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2025. 12. 30. 추가 내용: 이미 언급한 것처럼 지금 생각하는 표기 방식에 따르면 ይርጋ ጨፌ는 BGN/PCGN 표기인 Yirga Ch’efē에 따라 ‘이르가체페’가 된다. 글을 처음 쓸 때 생각했던 ‘이르가처페’보다는 ‘이르가체페’로 쓰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