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낚시성 펌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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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지정- 제3세계에서 가르치는 한글에서 트랙백

인터넷에 떠도는 글 가운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것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런 글의 상당수가 확인이 안 된 내용과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한글이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독창적이고 훌륭한 문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사실 한글이 왜 그렇게 우수한지를 이해하려면 어느정도 언어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글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자질 문자에 속한다는 것인데,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서는 정확한 내용보다는 자극적이고 허황된 주장이 많다. 그 가운데는 한글이 세계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거짓이라는 것이 명백한 것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익히 들어와서인지 이런 설명을 들으면 무비판적으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한글이 왜 우수한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려는 태도는 부족해 보인다. 한글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는 사례라든지 한글이 우수하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여러 통계나 연구 결과를 모은 글들을 보며 으쓱대는 것으로 그친다.

과연 한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오류 투성이의 글들을 퍼뜨리며 한글에 대한 오해를 부풀리는 것이 한글을 사랑하는 태도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행여나 한글이 우수하다는 글의 오류를 지적한다고 언짢게 생각할지 염려된다. 전에 한국어에서 [y] 앞에 [s]가 올 수 없는 것을 음운 체계의 한계라고 불렀다가 “가장 위대한 언어 한국어를 비하”한다는 덧글이 달려 당황한 적이 있다. 음운 제약이라고 할 것을 어감이 조금 안 좋게 설명한 잘못은 있지만 이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문자인 한글과 언어인 한국어의 개념 혼동으로 한국어가 가장 위대한 언어로 둔갑한 것도 좀 어이가 없지만 약간 어감이 안 좋은 말을 썼다고 한국어 비하를 운운한 것은 반응이 지나친 것 같았다. 한글의 우수성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트랙백하는 ‘글’은 위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의 jpg 파일인데 이를 이글루스에 스크랩하신 분도 그 출처를 모르신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허황된 글마다 반박할 수는 없지만 ghistory님께서 위의 글에 대한 제보를 해주셨기에 나름 분석을 해보겠다. 원문 내용은 파란 글씨로 맞춤법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소개하겠다.

“자신만의 글자”는 무슨 뜻?

전세계국가 : 284개국
자신만의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 : 28개국
자신만의 글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 : 256개국

세계에 자신만의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몇 되지 않는데 한국은 고유의 문자인 한글이 있으니 자랑스럽다는 뜻으로 인용한 통계인 듯하다. 뒤에 오는 내용에서 미루어 볼 때 세계에 한글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이 통계는 신뢰할 수 있을까?

전세계 국가가 284개국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궁금하다. 유엔 가입국은 192개이고 대만, 바티칸 시국, 코소보 외에 여러 비승인 국가를 포함해도 200개국을 크게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일관된 기준만 있다면 전세계 국가의 숫자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크게 상관 없다.

문제는 자신만의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는 것이다. 흔히 한국에서 쓰는 한국어와 한글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으니 우리만의 글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볼 때 나라와 언어, 문자가 일치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나라에서 여러 언어와 문자가 사용되기도 하고(인도) 여러 나라에서 같은 언어(영어) 또는 같은 문자(로마자)를 쓴다. 한 언어를 기록하는데 여러 다른 문자를 쓰기도 한다(세르보크로아트어, 몽골어).

그럼 ‘자신만의 글자를 가지고 있다’라는 기준은 정확히 무엇일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나라에서만 쓰는 글자가 있으면 될까? 그러면 국제적으로 볼 때 한글을 쓰는 나라는 남북한을 따로 쳐서 둘이니 대한민국과 북한은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문자는 키프로스에서도 쓰니 그리스나 키프로스도 자신만의 글자가 없는 나라인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 이렇게 제한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면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나라는 타이, 캄보디아, 아르메니아, 게오르기아(조지아), 이스라엘, 몽골 등 극히 소수일 것이다.

남북한과 그리스, 키프로스도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것으로 보려면 ‘한 언어의 표기에만 사용되는 문자’라는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여러 언어를 표기하는데 쓰이는 로마자/라틴 문자(영어, 프랑스어 등), 키릴 문자(러시아어, 불가리아어 등), 데바나가리 문자(힌디어, 마라티어 등), 아랍 문자(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에티오피아 문자(암하라어, 티그리냐어 등), 한자(중국어, 일본어 등) 등을 쓰는 나라는 자신만의 글자가 없는 것이 된다.

이게 너무하다 싶으면 원조들은 인정해주면 되지 않을까? 한자는 여러 나라에서 쓰이지만 한자의 원조는 중국이니 중국은 자신만의 글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홍콩과 대만은 같은 한자를 쓰고 이론상 같은 중국어를 쓰지만 자신만의 글자는 없다는 얘기인가? 로마자의 원조는 따지자면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 지방의 라틴족들이니 이탈리아는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것으로 보고 로마자를 쓰는 다른 나라들은 자신만의 글자가 없다고 봐야 할까? 마찬가지로 불가리아만 자신만의 글자가 있고 키릴 문자를 쓰는 나머지 나라들은 자신만의 글자가 없는 것일까? 아라비아반도의 많은 나라 가운데 아랍 문자의 원조는 어디일까?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곳이 현재의 대한민국 영토이니 대한민국이 한글의 원조이고 북한은 자신만의 글자가 없는 것일까?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모두 쓰는 일본의 경우는? 소말리아와 같이 자신만의 글자가 있었지만 로마자를 대신 쓰기로 한 경우는? 미국과 캐나다처럼 원주민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따로 있는 경우는? 몽골처럼 자신만의 글자가 있지만 이웃나라에서 주로 쓰이고 정작 본국에서는 다른 문자가 쓰이는 경우는?

이처럼 언어와 문자, 나라의 관계를 고려하면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나라’라는 기준은 정말 애매모호하다. 차라리 국어 지위를 가진 언어를 대상을 한정하고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언어’를 조사했으면 어느정도 의미가 있을 텐데 위의 통계는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고밖에 평가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한글과 같은 고유의 문자를 가진 것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드문 것인지 알리는 것이 이 통계의 기본적인 취지라면 그 결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를 수치와 애매한 기준으로 스스로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통계이다.

문해율의 함정

한국어 10대 문맹률 : 0%
한국어 20대 문맹률 : 0%
한국어 30대 문맹률 : 0%
한국어 40대 문맹률 : 0.7%
한국어 50대 문맹률 : 6.1%
한국어 전체 문맹률 : 1.7%
국립국어원 2008년 통계자료 中

그나마 이 글에서 정확한 부분은 국립국어원의 국민 기초 문해력 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자세히 보니 이마저 틀렸다. 원 자료는 다음과 같다.

19~29세 비문해율 : 0.0%
30대 비문해율 : 0.0%
40대 비문해율 : 0.0%
50대 비문해율 : 0.7%
60대 비문해율 : 4.6%
70대 비문해율 : 20.2%
합계 : 1.7%

처음의 19~29세 연령층을 10대로 잘못 쓰는 바람에 조사한 모든 연령층을 10세씩 낮춰서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또 원 자료에서는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뜻으로 ‘문해’, 글을 못 읽는다는 뜻으로 ‘비문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글을 못 읽는 것을 시각장애에 빗댄 ‘문맹’이라는 부적절한 옛 용어를 쓴 것이 아쉽다. 20.2%라는 작지 않은 수치인 70대 비문해율을 슬그머니 뺀 것도 약간 수상하다.

70대의 비문해율이 왜 이렇게 높을까? 그들의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 말기,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6.25 전쟁과 겹쳤기 때문이다. 즉 글을 배울 교육 환경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문해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교육 환경과 관련된 사회적 요인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교육에 대한 열기가 높으면 문해율이 거의 100%일 수도 있고 인도에서처럼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문해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문자와 언어의 우수성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쿠바와 과테말라는 똑같이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이지만 쿠바의 문해율은 99.8로 과테말라의 문해율 69.1%를 크게 앞지른다. 중국에서는 한자를 더 배우기 쉽도록 간체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번체자를 사용하는 대만보다 문해율이 떨어진다.

그러니 문해율을 들어 한글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국인이 한국어 발음을 익히는 시간 : 98분
UN 비공식 통계자료 中 (98분정도면 한글간판정도 읽을수 있다고 하네요)

유엔 산하 기관이 한둘도 아니고 비공식 통계자료라 하니 원 자료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조사했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한국어 발음을 익힌다는 말 자체는 글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뒤에 한글 간판 정도 읽는다는 얘기에서 미루어 볼 때 한글을 어느정도 소리내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익힌다는 얘기 같다. 앞에서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나라’를 운운한 것과 마찬가지로 불분명한 용어 사용으로 인해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외국인이 평균 98분만에 익힐 수 있는 정도라면 각각의 한글 자모의 음가일 것이다. 이 짧은 시간에 한국어의 발음을 정확히 익힐 수 없음은 물론이고 ‘ㄺ’ 같은 겹자음을 어떻게 발음한다거나 된소리되기, 거센소리되기, 자음동화 같은 음운 규칙을 배우기도 어렵다. 하지만 간판 정도를 읽을 수는 있다.

이것도 한글의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한 예로는 조금 부적합하다. 문자의 우수성은 개별 기호의 음가를 익히고 어느정도 소리내어 읽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재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호 수가 많은 한자나 음절 문자보다는 한글을 배우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로마자처럼 기호를 가로로 순서대로 나열만 하는 문자를 익히기가 오히려 더 빠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로마자가 한글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문자는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소리값을 전달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그 문자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쓰는 언어를 기록하고 읽는 실제 문자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따져야 한다. 한글의 모아쓰기나 형태주의(표의주의) 맞춤법은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어려울지 몰라도 일단 익숙해지면 음절 단위로, 형태소 단위로 눈에 쏙쏙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한글은 이미 UN 에서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 이라는 상을 제정하였다.
한글은 14개의 자음과 10개의 모음으로 8,000여가지의 음을 발음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편의성에 근거하여 약 10여년전 만들어진 문맹퇴치상외에도 제 3세계 국가들에게 한글을 전파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세종 대왕 문해상은 1989년 대한민국 정부의 제안으로 제정된 것이다(‘문맹퇴치상’보다는 ‘문해상’이 적절한 번역이다). 기초 문해 교육에 이바지한 이들에게 주는 상에 세종 대왕의 이름을 붙인 것은 매우 적절하고 뜻깊으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글 자체의 우수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 또 대한민국 정부가 세종 대왕의 업적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제안한 것을 마치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세종 대왕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인식할 필요도 없다. 2005년부터 유네스코에서는 중국 정부의 제안으로 ‘공자 문해상’도 수여하고 있다. 이것을 가지고 한자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한글이 8,000여가지의 음을 발음할 수 있다는 말은 주술 호응이 안 된 비문이지만 한글을 통해 8,000여가지 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자. 여기서 말하는 음이란 ‘음절’을 뜻하는 것 같다. 현대 한국어에서 자음+모음, 자음+모음+자음 조합을 기계적으로 계산해보면 가능한 음절 글자수는 11,172자, 이 가운데 발음 구별이 가능한 음절 수는 3,192자라고 한다. 음절 글자수가 실제 발음 구별이 가능한 음절 수보다 많은 것은 ‘각’, ‘갂’, ‘갉’, ‘갘’ 등이 발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른 음절 글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자’와 ‘쟈’ 같은 발음은 청각으로 구별되지 못하니 실제 발음 구별이 가능한 음절 수는 3,000자가 조금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8,000여가지 음’은 표기 가능한 음절까지 포함해서 좀 부풀린 수치 같다.

그런데 이 수치도 한글의 우수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자음이라는 한국어의 음운 제약에 따라 발음 가능한 음절 수를 잰 것밖에는 의미가 없으며 웬만한 표음 문자라면 해당 언어에서 발음 가능한 음절을 표기하는 것은 문제 없이 할 수 있다. 로마자에서 표현할 수 있는 음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로마자를 쓰는 언어가 많으니 이들 언어에서 발음 가능한 음절 자체가 많기 때문이다. 영어로만 한정하더라도 음절 첫소리로 자음 3개까지, 끝소리로 자음 4개까지 올 수 있는 자음군이 허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음절의 수는 한국어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고 영어에서 쓰는 로마자가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제 3세계(주로 아프리카)에서 가르치는 한글방법

이 설명이 이상하지 않은가? ‘한글’이라고 쓰인 것에 자모마다 음가 설명을 붙인 것은 한글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소개하는 글에는 비슷한 그림이 꼭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제3세계, 그것도 아프리카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림을 더 보자.

한글 알파벳 설명

한글의 24 자모와 대응하는 로마자를 나열했다. 그냥 제3세계에서 이렇게 가르친다는 뜻으로 포함한 것인가본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에게 한글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그림일 뿐이다.

그런데 다음 설명을 통해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현지 언어를 표기하는 수단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
즉, 한국어로 현재의 단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통한 그 나라 언어의 발음을 가르친다는 취지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school 이라는 낱말을 ‘학교’가 아니라 한글의 ‘ㅅㅡㅋㅜㄹ’의 형태로 가르친다는 이야기.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 (잠비아)

여기서부터 어이가 없어진다. 원 그림을 자세히 보면 밑에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With a large number of programs written in Hangeul, people can incorporate computers into their lives without difficulty.”
한글로 쓰인 프로그램이 많아 사람들은 어려움 없이 컴퓨터를 생활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잠비아 사람들로 보이는가? 백번 양보해봤자 잠비아의 교민들이다. 자신들의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는 주장을 하러 한국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모습을 소개한 사진에 억지로 잠비아라는 설명을 붙인 듯하다.

세계공용어용 한글 발음표

이게 도대체 뭔지는 알고 올린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는 미국 뉴욕 주립대에 세종학 연구소를 세운 김석연 교수가 제안한 ‘누리글’ 설명의 일부이다. 한글로 온 세계 언어를 적을 수 있다며 기존 한글 자모를 약간씩 변형시켜 다른 음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한글을 확장했다.

여기 실린 누리글과 관련된 그림은 U.N., China eyeing Hangeul-based alphabet to combat illiteracy라는 영어 기사에서 원본을 찾을 수 있다. 아래 키보드 그림도 누리글 관련 그림이다.

유네스코가 점수를 준 부분, 기능성. 기능성을 소개하면서 한글 키보드를 보여주고 있다.

답답하다. 원 그림 설명은 “Nurigeul Keyboard for Hanyu Pinyin”, 즉 “한어병음을 위한 누리글 자판”이다.

이 누리글을 창안한 김석연 교수라는 분은 한글을 세계 공용 문자로 지정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유네스코에 누리글을 미문자 언어를 기록하기 위한 세계 공용 문자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했나 보다. 꿈도 크신 분이다.

유네스코에서는 사례연구를 해오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석연은 중국 남부의 종족들을 대상으로 누리글을 열심히 가르쳤고 아시아 전역의 선교사들을 대상으로도 누리글을 열심히 전파했다. 그리고 다시 유네스코를 찾았다.

그러니 유네스코에서는 누리글이 중국에서 중국어 및 소수민족 언어의 표기에 사용하는 한어병음(로마자 기반)보다 낫다는 증거가 있냐고 따졌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남부의 종족들은 사실 ‘미문자 종족’이 아니라 한어병음을 문자로 쓰는 이들이다. 그래서 김석연은 한어병음을 누리글로 대체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위의 “한어병음을 위한 누리글 자판”이다. 그런데 이것을 “유네스코가 점수를 준 부분, 기능성”이라고 설명하다니… 유네스코에서는 누리글을 세계 공용 문자로 지정해달라는 계속되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있는데…

정보화 시대에 맞는 한글의 기능성을 소개하려면 일반 두벌식이나 세벌식 자판, 아니 그보다 더 효율적인 휴대폰 문자 입력방식을 예로 드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을까? 엉뚱하게 한어병음을 위한 누리글 자판은 왜 집어넣었을까? 멋있어 보여서?

한글 수업시간 (탄자니아)

칠판에 뭐라고 적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탄자니아인처럼 생긴 사람들이니 넘어가자.

한글수업 맨 첫장

이것도 한글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영어를 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게 과연 ‘한글 수업 맨 첫 장’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상 소개한 것이 펌글 내용 전부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무슨 구체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통계, 인용, 도표, 사진과 짤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설명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뭐라고 분석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설명이 없으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펌글은 유엔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어 제3세계의 교육에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려고 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낮은 비문해율은 한글이 우수하기 때문이며 이는 ‘세종 대왕 문해상’에서 보듯이 유엔에서도 인정하고 있고 자신만의 글자가 없는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한글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오류 투성이인지는 이미 지적했다. 또 하나,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문자도 없으니 우리가 한글을 전파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에는 언어가 워낙 많으니 아직 기록되지 않은 언어도 많겠지만 웬만한 주요 언어는 모두 문자가 있다. 에티오피아 문자처럼 아프리카 고유의 문자도 있지만 대부분 로마자를 쓴다. 고유의 문자가 아니라고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 영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등도 고유의 문자가 아닌 로마자를 빌어서 잘 쓰고 있지 않은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문해율이 낮은 것은 문자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글을 배울 나이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을 환경이 되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문자가 없는 이들에게 한글을 보급해야 한다는 ‘한글 수출론’의 허와 실을 따지려면 글이 길어지겠지만 그런 주장을 들으면 일단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거꾸로 생각해서 로마자를 전세계에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로마자로 한국어를 적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치자. 그렇게 해도 꽤 빨리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게 한국어를 로마자로 적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증명하는가? 한국어를 로마자로 적는 것이 한글로 적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물론 아니다.

왠지 누군가 한글에 대해 검색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설명을 붙여가며 짜깁기해서 급조한 펌글을 너무 심각하게 분석한 것 같다.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한글이나 한국어의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국한문 혼용 문제에 대한 글 가운데는 내용이 훨씬 위험하고 선동적이기까지 한 것들도 많은데(자신의 주장은 곧 세종 대왕을 계승하는 것이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모두 일제의 잔재라는 투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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