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쓰는 독일어

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영국의 음성학자 존 웰스(John Wells)의 블로그 2월 23일 글에서 스위스의 크슈타트(Gstaad)라는 독일어 지명의 발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크슈타트는 스위스 남서부에 있는 마을로 베른주의 자넨(Saanen)군에 속하는 일류 스키 휴양지이다.

크슈타트

웰스의 글은 영국 《가디언》 지 기자인 사이먼 호거트(Simon Hoggart)가 크슈타트의 발음을 잘못 설명한 것에 관한 것이다.

You pronounce it ‘Shtard, with just a tiny pause before the “s”, like an undetectable glottal stop.
‘Shtard라고 s 앞에 마치 포착할 수 없는 성문 폐쇄음과 같은 잠깐 멈춤이 있는 것처럼 발음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고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호거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용어를 헷갈린 엉터리 설명이기 때문이다.

성문 폐쇄음(또는 성문 파열음)이란 기류를 잠깐 성문(목청문)에서 막았다가 터뜨리는 음을 이른다. 국제 음성 기호로는 [ʔ]로 나타내고 한국어에서는 숫자 1을 보통 [ʔil]로 발음한다. 영어, 특히 영국 영어에서는 can’t, button 등의 단어에서 /t/가 성문 폐쇄음으로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웰스가 지적하듯이 Gstaad의 표준 독일어 발음은 [ˈkʃtaːt]이다. [k]를 ‘포착할 수 없는 성문 폐쇄음’으로 묘사한 것 자체가 영어에서 쓰이지 않는 어두의 [kʃt]라는 자음군을 비전문가가 잘못 들었거나 전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잘못 적용한 것이다.

웰스는 이어서 Gstaad를 영어로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Gstaad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하느냐는 문제이다. 표준 독일어 발음인 [ˈkʃtaːt]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표기하면 ‘크슈타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스위스의 독일어

스위스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가 공용어로 쓰이며 스위스 국민의 72.5% 정도가 독일어를 쓴다.

하지만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말을 할 때 쓰는 언어는 ‘스위스 독일어’라고 흔히 부르는 알레만어(Alemannisch) 방언들이다. 알레만어 방언은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으며 셋 다 스위스에서도 쓰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쓰이지만 편의상 스위스에서 쓰는 알레만어 방언을 스위스 독일어 또는 슈비처뒤치(Schwyzerdütsch)라고 한다. 이미 비슷한 알레만어 방언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른 독일어권 국가에서 왔어도 스위스 독일어는 알아들을 수 없을만큼 다른 독일어 방언과 차이가 심하다.

하지만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은 학교에서 표준 독일어를 배우고 문자 생활은 대부분 표준 독일어로 한다. 작가들은 대부분 표준 독일어로 글을 쓰고 신문에서도 표준 독일어를 쓰며 뉴스나 격식을 갖춘 방송 프로그램도 대부분 표준 독일어로 진행된다. 다만 뉴스에서도 인터뷰라든지 격식을 차리지 않는 부분에서는 일상적으로 쓰는 스위스 독일어를 쓴다. 즉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은 상황에 따라 스위스 독일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언어학에서는 이를 양층언어(diglossia) 현상으로 보통 묘사하는데, 그렇다고 스위스에서 스위스 독일어가 표준 독일어에 비해 급이 낮은 언어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용되는 상황이 다를 뿐이다.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스위스 독일어를 독일어와 차별화된 국어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스위스 독일어를 쓰지 않고 아예 일상 생활에서도 표준 독일어를 쓰는 언어 정책을 펼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는 일상 생활에서는 그들의 알레만어 방언을 간직하면서 다른 독일어권 나라들과의 소통을 위해 표준 독일어도 배우는 길을 택했다.

스위스에서 쓰는 표준 독일어는 다른 독일어권 나라에서 쓰는 표준 독일어와 거의 같지만 철자나 어휘 면에서 미세한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쓰는 ß는 스위스에서 쓰는 표준 독일어에서는 ss로 모두 대체한다.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 여러 나라에서 쓰는 표준 영어 간의 차이와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은 다른 독일어권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데, 일상적으로 표준 독일어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느릿느릿하게 말하고 스위스 독일어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억양과 발음을 쓴다. 그런데 외부인은 스위스인이 표준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게 바로 스위스 독일어라고 착각하기가 쉽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위스 독일어는 알아듣기 힘들다는데 자신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데에 놀란다. 물론 실제 스위스 독일어를 듣게 되면 하나도 이해 못하기 쉽다.

스위스 표준 독일어의 발음

독일어 발음의 큰 특징 하나로 말음 경화(Auslautverhärtung)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어에는 /p/와 /b/, /t/와 /d/, /k/와 /ɡ/, /s/와 /z/ 등 같은 계열의 자음 사이에 2항 대립이 있다. 흔히 무성음과 유성음으로 구분하지만 /p/, /t/, /k/, /s/ 등을 경음(fortis), /b/, /d/, /ɡ/, /z/ 등을 연음(lenis)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 이유는 곧 설명할 것이다.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는 보통 음절 끝에 오는 자음은 원래 경음이든 연음이든 간에 경음으로 발음된다. 예를 들어 Rad와 Rat는 둘 다 [ˈʁaːt], 즉 ‘라트’로 발음된다. 이 때문에 독일어 이름을 한글로 표기할 때 어말의 b, d, g는 보통 ‘프’, ‘트’, ‘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쓰는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는 말음 경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연음과 경음의 발음 구분법도 우리가 흔히 아는 표준 독일어 발음과 다르다.

스위스 표준 독일어에서는 연음 /b/, /d/, /ɡ/, /z/를 유성음 [b], [d], [ɡ], [z]로 발음하지 않는다. 무성음화된 [p], [t], [k], [s]로 발음한다(그래서 유성음, 무성음이라는 구분 대신 연음, 경음으로 부르는 것이다). 물론이지만 경음 /p/, /t/, /k/, /s/도 무성음 [p], [t], [k], [s]로 발음한다. 연음보다는 더 세고 더 길게 발음할 뿐이다. 여담이지만 연음을 무성음으로 발음하는 독일어 방언에서 연음과 경음의 발음 구분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위스 독일어와 스위스 표준 독일어를 비롯하여 연음과 경음을 둘 다 무성음인 독일어 방언의 발음을 기호로 나타낼 때에는 연음은 [b̥], [d̥], [ɡ̊], [z̥] 등으로, 경음은 [p], [t], [k], [s] 등으로 나타낸다. 국제 음성 기호에서 원래 유성음을 나타내는 발음 기호에 작은 고리를 더하면 무성음으로 발음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b]에 해당하는 무성음은 [p]이니 이론적으로 [p]와 [b̥]는 같은 음이다. 하지만 편의상 이렇게 다른 기호를 써서 연음과 경음을 구분하는 것이다. 연음을 [p], [t], [k], [s], 경음을 [pp], [tt], [kk], [ss] 또는 [pː], [tː], [kː], [sː]로 써서 구분하기도 한다.

어쨌든 스위스 표준 독일어에서 연음과 경음의 구별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성음과 무성음의 구별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말음 경화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어말의 b와 p, d와 t 등의 발음이 구별된다.

스위스 지명의 한글 표기에는 말음 경화를 적용하나?

다시 Gstaad를 보자. 스위스 표준 독일어 발음은 정확히 적으면 [ˈkʃtaːd̥]이다. G는 경음 [k]로 발음되고 d는 연음 [d̥]로 발음되는 것이다. 그러면 ‘크슈타드’라고 적는 것이 스위스 표준 독일어 발음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론 연음은 한글의 평음(ㄱ, ㄷ, ㅂ)에, 경음은 한글의 격음(ㅋ, ㅌ, ㅍ)에 대응시키는 관행을 따를 때의 이야기다. 그러면 ‘크슈타드’가 ‘크슈타트’보다 나은 표기일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독일어를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참조하여 발음에 따라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원 발음을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한글 표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혼란을 줄이기 위해 독일어 이름에는 한 가지 발음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따로 밝히는 바가 없지만 지금까지의 독일어 한글 표기 용례를 보면 대체로 일정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이름이든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이름이든 말음 경화를 적용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어말에 오는 b, d, g를 ‘브’, ‘드’, ‘그’로 적은 경우는 하나도 없다. 오스트리아의 도시 Salzburg의 오스트리아 독일어식 발음에서 g는 연음으로 발음되지만 ‘잘츠부르그’가 아니라 ‘잘츠부르크’로 쓴다.

이렇게 통일해서 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각 나라와 지역마다 표준 독일어의 발음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 세세히 따지려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독일 일부 지역에서도 말음 경화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렇다면 독일인 Reinhard씨는 출신 지역을 따져 말음 경화가 일어나는 지역 출신이면 ‘라인하르트’, 말음 경화가 일어나지 않는 지역 출신이면 ‘라인하르드’라고 적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말음 경화를 쓰는 발음을 독일어를 대표하는 발음으로 적용하여 출신 지역과 나라에 상관 없이 ‘라인하르트’로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

스위스 표준 독일어의 발음이 독일의 표준 독일어 발음과 다른 부분은 이 외에도 더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는 /x/의 변이음으로 [ç]가 쓰이지만, 스위스 독일어에서는 독일에서 [ç]로 발음될 위치에서도 [x]로 발음된다. 이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의 발음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스위스 사람이 Zürich(취리히)를 발음하는 것을 들어보면 ch를 [x]로 발음하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 Zürich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 발음대로 표기한다면 ‘취리흐’가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는 [ɪ] 뒤에 오는 /x/는 [ç]로 발음된다는 규칙이 있으므로 ‘취리히’라고 적는 것이다.

쿠어(Chur)의 경우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주의 주도인 쿠어(Chur)라는 도시가 있다. Chur는 그라우뷘덴 주에서 [ˈkuːr]로 발음하고 스위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ˈxuːr]로 발음한다. 한글 표준 표기는 ‘쿠어’이다.

쿠어

독일어의 표기에서 어말의 [r]은 ‘어’로 적도록 되어 있다. 독일어 대부분의 방언에서 어말의 [r]은 [ɐ] 모음으로 실현되는 것을 반영한 규칙이다. 그러니 ‘쿠어’의 ‘어’는 설명된다.

표준 독일어에서 ch가 음절 첫 음으로 올 때에는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다르다. 보통 북부에서는 [ç], 남부에서는 [kʰ], 서부에서는 [ʃ]로 발음된다.

2023. 8. 8. 추가 내용: 그리스어식 어휘를 기준으로 북부에서 음절 첫 음의 ch가 [ç]로 발음되는 것은 보통 철자 e, i 앞에서이고 a, o 앞에서는 단어에 따라 [kʰ]와 [ç]가 혼용되며 l, r 앞에서는 보통 [kʰ]로 발음된다. 표준 독일어도 나라와 지역마다 다양한 발음을 쓰지만 보통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두덴 발음 사전(Duden – Das Aussprachewörterbuch)》, 데그로이터 사의 《독일어 발음 사전(Deutsches Aussprachewörterbuch)》과 같은 자료에서 제시하는 실질적인 표준 발음인데 대체로 독일 북부의 발음을 따른다.

스위스 표준 독일어로 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스위스 지역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kʰ]가 파찰음 [kx] 또는 마찰음 [x]로 바뀌는 음운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첫 음으로 오는 ch는 [x]로 발음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쿠어와 바젤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첫 음으로서의 ch는 [kʰ]로 발음된다.

2023. 8. 8. 추가 내용: [kʰ]는 한국어의 거센소리 ‘ㅋ’처럼 기식음을 동반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기인데 보통 그냥 [k]로 쓰므로 이하 [k]로 통일한다.

Chur의 표준 표기를 ‘후어’ 대신 ‘쿠어’로 정한 것은 현지 발음이 [ˈkuːr]라는 것을 고려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 내에서도 발음의 차이가 나는 이름인데 정말 그 고장 발음을 고려해서 표기를 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냥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통 첫 음으로 오는 ch를 [k]로 발음한다는 것까지만 고려하여 스위스 내부의 발음 차이를 무시하고 이를 대표 발음으로 삼은 것은 아닐까?

2023. 8. 8. 추가 내용: 《두덴 발음 사전》에서 제시하는 표준 독일어 발음은 [ˈkuːɐ̯]이고 스위스에서는 주로 [ˈxuːr], (쿠어를 포함한) 스위스 동부에서는 [ˈkuːr]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니 Chur를 ‘쿠어’로 적은 것은 스위스에서 쓰는 발음을 고려했다기보다는 《두덴 발음 사전》 같은 자료에서 제시하는 표준 독일어 발음을 바탕으로 정한 표기로 봐야 한다.

그럼 독일어에서 첫 음으로 오는 ch를 기존 용례에서는 어떻게 표기했을까? 독일어 이름 가운데 ch가 첫 음으로 오는 것은 꽤 드물다. Charlotte 같이 프랑스어에서 온 이름들이 있지만 이들에서는 프랑스어를 따라 ch가 [ʃ]로 발음된다. Charlotte는 ‘샤를로테’로 적는다. Richard에서는 ch가 보통 [ç] 또는 [x]로 발음되는 듯하다. Richard는 ‘리하르트’로 적는다. 독일 동부의 도시인 Chemnitz는 [ˈkɛmnɪʦ]로 발음되고 표준 표기는 ‘켐니츠’이다.

2023. 8. 8. 추가 내용: 《두덴 발음 사전》에서 제시하는 Richard의 표준 독일어 발음은 [ˈʁɪçaʁt]이다.

그러니 기존 표기 용례만 참고해서는 독일어에서 첫 음으로 오는 ch를 적는 기준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참 어렵다. 그러니 개별적으로 발음을 고려하여 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당장 스위스의 또 다른 독일어 지명인 Cham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독일 남부 발음대로는 [ˈkaːm], 즉 ‘캄’이겠지만 스위스 현지 발음은 아마도 [ˈxaːm], 즉 ‘함’일 듯 싶다. 쿠어의 경우는 운이 좋게도 현지 발음이 독일 남부에서 쓰는 발음과 일치했지만 Cham은 ‘캄’으로 적을지, ‘함’으로 적을지 정하기가 쉽지 않다.

2023. 8. 8. 추가 내용: Cham이라는 지명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도 있는데 영어판 위키낱말사전에 따르면 독일의 Cham은 [ˈkaːm] ‘캄’, 스위스의 Cham은 [ˈxaːm] ‘함’으로 발음한다. 《두덴 발음 사전》에서는 Cham의 발음을 [ˈkaːm]으로만 제시하지만 어느 Cham을 말하는 것인지는 언급이 없다. 현재 의견은 현지 발음을 중시하여 독일의 Cham은 ‘캄’, 스위스의 Cham은 ‘함’으로 적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Biel이라는 지명의 표기도 흥미롭다. 표준 표기는 ‘비엘’이다. 보통 독일어 발음대로라면 ‘빌’일텐데 ‘비엘’로 표기한 것을 보니 발음을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독일에서는 단순모음 [iː] ‘이’가 된 ie가 스위스 독일어에서는 이중모음 [iə̯]로 발음된다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한다. Lieb는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으로는 [ˈliːp] 즉 ‘리프’로, 스위스 독일어에서는 [ˈliə̯b̥] 즉 ‘리에브’로 발음된다. 다만 Biel의 실제 발음은 확인할 수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가설일 뿐이다. Biel의 스위스 독일어식 형태는 Biu인 것 같다.

2023. 8. 8. 추가 내용: 《두덴 발음 사전》에서는 Biel의 발음을 [ˈbiːl] ‘빌’로만 제시한다. 영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현지 스위스 독일어 발음은 [ˈb̥iˑəu]이다. Biel이 속한 베른주의 방언에서는 어말 l의 모음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빌’로 표기하는 것이 맞겠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 ‘비엘’로 검색되며 출전은 ‘보유2’로만 나온다. 한편 이곳은 공식적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 사용 지역이기 때문에 2005년 이후 공식 이름은 프랑스어 이름인 Bienne [bjɛn] ‘비엔’을 병기하여 Biel/Bienne이라고 쓴다.

결론

위의 내용을 보고 스위스의 독일어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엄청나게 까다로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첫 음으로 오는 ch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경우 독일어 음소의 표준 발음은 정해져 있고, 발음의 차이가 있더라도 장모음과 단모음의 차이와 같이 한글 표기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스위스의 독일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는 스위스 독일어 형태가 아니라 표준 독일어 형태와 독일식 표준 독일어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별 거 아니다. 보통 글로 쓰는 이름이 표준 독일어 이름이다. 예를 들어 취리히의 현지 스위스 독일어 이름은 Züri [ˈʦyɾi]이지만 특별히 방언을 글로 나타내려는 경우가 아니면 이 형태를 쓰지 않는다. 표준 독일어에서 쓰는 이름인 Zürich만이 쓰인다. 그러니 독일어 이름을 두고 혹시 스위스 독일어 형태가 아닐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영어 이름을 독일어 이름으로 잘못 알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Zürich를 스위스 표준 독일어식으로 발음하면 ‘취리흐’에 가깝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하지만 한글로 표기할 때는 독일의 표준 독일어 발음인 [ˈʦyːʁɪç] 또는 [ˈʦʏʁɪç]를 기준으로 하여 ‘취리히’라고 적게 된다. 마찬가지로 Lichtensteig 같은 지명도 스위스식 ‘리흐텐슈타이그’가 아니라 독일식 ‘리히텐슈타이크’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위스의 독일어 이름 가운데 스위스 독일어식 발음이 표준 독일어 철자에도 반영된 경우가 있다. 스위스에서 흔한 성 가운데 슈니더(Schnyder)가 있다. 독일의 슈나이더(Schneider)에 해당하는 성인데 독일어에서 ei로 쓰는 이중모음은 현대 표준 독일어에서 [aɪ̯], 즉 ‘아이’로 발음되지만 스위스 독일어에서는 고대 독일어의 발음에 가깝게 [iː], 즉 ‘이’로 발음하며 y로 흔히 표기한다. 그래서 Schnyder, Schwyz 같은 스위스 이름은 표준 독일어 이름으로 쓰일 때에도 스위스식 모음을 쓴다. 한글로는 ‘슈니더’, ‘슈비츠’ 등으로 표기한다.

물론 스위스의 고유 명사를 한글로 표기하려면 네 개의 공용어 가운데 어느 것이 원 언어인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인명의 경우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다면 출생지와 자란 곳을 참고하여 독일어 사용 지역 출신인지, 프랑스어 사용 지역 출신인지 등을 찾아내서라도 원 언어가 무엇인지 정해야 한글 표기가 가능하다.

공유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