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Tuileries 정원은 ‘튈르리’? ‘튀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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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일리 정원(Jardins des Tuileries)은 베르사유 궁전의 조경을 담당했던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otre)가 1664년 설계하였으며 오늘날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파리가 자랑하는 관광 명소이다.

아돌프 폰 멘첼(Adolph von Menzel)의 《튀일리 정원에서의 오후(Nachmittag im Tuileriengarten)》

이 정원은 튀일리 궁전(Palais des Tuileries)에서 이름을 따왔다. 1559년 앙리 2세가 죽은 후 섭정이 된 왕비 카트린 드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출신)는 1564년 새로운 궁전과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게 하였다. 궁전 터는 원래 tuileries, 즉 기와 굽는 가마들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튀일리(Tuileries) 궁전이라고 불리게 된다.

루브르에서 바라본 튀일리 궁전의 모습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이 완공되기 전에 튀일리궁에서 생활했으며 르노트르가 정원을 정비한 것도 이 때이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떠난 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프랑스 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활하던 루이 16세 일가가 1789년 튀일리궁으로 옮겨져 가택 연금 상태가 되었다. 1792년 루이 16세 일가는 폭도들을 피해 궁전을 탈출하여 정원을 가로질러 입법의회당으로 피신했다.

1830년 7월 혁명 때도 파리 시민들이 궁전을 점거하였고 1848년에도 다시 파리 시민들의 습격을 받아 루이 필리프 왕이 지하 통로로 빠져나와 영국으로 망명했다.

결국 튀일리 궁전은 1871년 파리 코뮌 당시 코뮌 지지자들에 의해 불에 태워졌다. 화재는 48시간 계속되었으며 궁전은 완전히 전소되었다. 이후 코뮌 당시 전소되었던 파리 시청과 루브르 일부 등은 복원되었지만 튀일리 궁전의 잔해는 수년 간 방치되었다가 1883년 결국 완전히 철거되었다. 잔해에서 나온 석재와 대리석은 기념품으로 팔리기도 하고 일부는 코르시카 섬에 성을 짓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튀일리 궁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정원만이 남아 있어 파리 시민들이 산책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튀일리 궁전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Tuileries의 표기는?

지금까지 Tuileries를 ‘튀일리’로 표기했지만, ‘튈르리’라고 쓰인 것이 익숙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른 프랑스어 이름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은 파리 관광 안내서에서도 Tuileries만은 ‘튈르리’라고 적은 것도 보았다. 그럼 어느 표기가 맞을까?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면 알 수 있듯이 Tuileries의 프랑스어 발음은 [tɥilʁi]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규정을 따르면 ‘튀일리’가 맞다. [t]는 ‘ㅌ’, [ɥ]는 ‘위’, [i]는 ‘이’, [l]은 ‘ㄹ’, [ʁ]은 ‘ㄹ’, [i]는 ‘이’로 일대일 대응이 된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Tuileries의 표기를 검색해봐도 ‘튀일리‘라고 나와 있다.

외래어: Tuileries宮
국명:
우리말 표기: 튀일리 궁(O), 튀일리에 궁(X), 뛰일리 궁(X), 뛰일리에 궁(X)
의미: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자리와 샹젤리제 사이에 있던 옛 왕궁.
관련 규정: 제1장 제4항

여기서 ‘제1장 제4항’이란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 원칙을 말한다. ‘뛰일리’처럼 된소리 표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3. 8. 7. 추가 내용: 2017년 외래어 표기법의 띄어쓰기 규칙 개정 이후로 ‘튀일리 궁’ 대신 ‘튀일리궁’이 표준 표기이다.

하지만 ‘튈르리’라는 표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ɥi]의 표기: ‘위이’인가 ‘위’인가

프랑스어에는 [ɥ]라는 반모음이 있다. 반모음 [w]가 [u]를 짧게 발음한 것과 비슷하다면 [ɥ]는 [y]를 짧게 발음한 것과 비슷한 반모음이다.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보면 [ɥ]는 ‘위’로 적게 되어 있다. 반모음 [j], [w]는 모음과 결합될 때 경우에 따라 합쳐 적을 수도 있지만 [ɥ]는 합쳐 적으라는 설명이 없다. 그러니 무조건 ‘위’로 옮기면 된다.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세칙에서 드는 예 가운데 [ɥ] 발음이 들어간 단어는 chuinter [ʃɥɛ̃te] ‘쉬앵테’ 뿐이지만, nuance [nɥɑ̃ːs]는 ‘뉘앙스’, annuaire [anɥɛːʁ]는 ‘아뉘에르’ 등으로 적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ɥ]를 따르는 모음이 [i]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칙적으로 [ɥi]는 ‘위이’로 적어야 하지만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위’로만 적은 것도 눈에 띈다.

국립국어원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프랑스의 교육가이자 정치가인 Ferdinand Édouard Buisson은 ‘페르디낭 에두아르 뷔송‘으로, 프랑스의 화가 Vuillard는 ‘뷔야르‘로 적도록 하고 있어 [ɥi]를 ‘위’로만 적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뷔이송’, ‘뷔이야르’라고 적어야 한다. 반면 프랑스의 수학자 Maupertuis는 ‘모페르튀이‘로,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지휘자 Cluytens는 ‘클뤼이탕스‘로 원칙대로 적도록 하고 있다.

2023. 8. 7. 추가 내용: Cluytens는 사실 [klɥitɛ̃ːs]로 발음되므로 ‘클뤼(이)탱스’로 적어야 한다. 요즘은 프랑스어 [ɥi]를 ‘위’로 적어야 한다는 의견이기 때문에 Maupertuis [mopɛʁtɥi]는 ‘모페르튀’로 적고 Cluytens는 ‘클뤼탱스’로 적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ɥi]가 한국어에서 ‘위’에 가까운 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위’는 이중모음으로 발음될 때 보통 [wi]로 나타내지만 이때 /w/가 구개음화하여 변이음 [ɥ]로 실현된다고 하여 [ɥi]로 나타내기도 한다. 또 [ɥi]는 한 음절이기 때문에 두 음절인 ‘위이’보다는 한 음절인 ‘위’로 나타내는 것이 더 깔끔할 수 있다. 그러니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규정을 알고 있더라도 한국어 ‘위’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 이끌려 [ɥi]는 ‘위’로 표기하기 쉽다. ‘뷔송’, ‘뷔야르’와 같이 표기를 정한 이들은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맞게 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어의 ‘묵음 e (e caduc)’

프랑스어에는 ‘묵음 e (e caduc)’라는 경우에 따라 탈락이 되는 모음 e가 있다. 이름 때문에 오해를 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묵음인 것은 아니다. 또 관습적으로 [ə]로 표기하지만 국제 음성 기호에서 [ə]로 표기하는 중설 중모음과는 다른 음이다. 오늘날에는 [œ]에 가까운 음으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묵음 e가 발음될 경우 ‘으’로 적는다. 예를 들어 le [lə]는 ‘르’로 적는다.

철자상으로 e로 끝나는 것은 대부분 ‘묵음 e’이다. 사전에 실린 발음 기호에서는 어말의 묵음 e의 경우 발음 표시도 하지 않는다. ‘문’을 뜻하는 porte는 [pɔʁt]로 발음된다. 하지만 porte로 시작하는 일부 복합어에서는 묵음 e가 [ə]로 발음될 수도 있다(사실은 [œ]에 가까운 음이지만). portefeuille와 같은 경우는 보통 [pɔʁtəfœj]로 발음된다. e를 탈락시킬 경우 [ʁtf]와 같이 세 자음이 연속으로 오게 되어 발음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petit의 경우 본 발음은 [pəti]이지만 deux petits [døpti]의 경우는 e가 탈락되고 neuf petits [nœfpəti]의 경우는 e가 발음된다. 전자의 경우 e를 탈락시켜도 발음이 쉽지만 후자의 경우는 e를 탈락시키면 [fpt]를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묵음 e는 탈락시키면 자음 세 개가 연속으로 올 때에만 탈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발음 여부가 불안정한 것이 프랑스어의 묵음 e이다. 묵음 e의 영향 때문인지 프랑스어 어말의 [l], [m], [n] 등은 그 뒤에 모음이 따르지 않더라도 조금 발음을 오래 끄는 경향이 있다. 간혹 이를 흉내내어 elle, homme, Seine 등을 ‘엘르’, ‘옴므’, ‘센느’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엘’, ‘옴’, ‘센’으로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이다.

2023. 8. 7. 추가 내용: 구절 말의 위치에서 elle, homme, Seine 등의 [l], [m], [n]이 발음이 길게 지속되어 [ɛlː], [ɔmː], [sɛnː]과 같이 발음되므로 ‘엘르’, ‘옴므’, ‘센느’와 같은 표기로 흉내낸 것일 수 있다. 이는 어말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구절 말에 오는 경우에만 해당되므로 그 외의 위치에서는 이런 발음이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Elle marche [ɛl maʁʃ] ‘엘 마르슈’에서는 [l]이 구절 말에 있지 않기 때문에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 Tuileries [tɥilʁi]를 살펴보자. 철자 상으로 l과 r 사이에 오는 e는 묵음 e이다. 이 묵음 e는 프랑스어 발음에서 보통 탈락된다. 결과적으로 [lʁ]와 같이 자음 두 개가 연속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e 발음을 삽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자음 앞의 [l]은 ‘ㄹ’로, [ʁ]도 ‘ㄹ’로 적게 되니 [lʁ]는 결국 ‘ㄹㄹ’로 적게 된다. 한국어에서 ‘ㄹㄹ’는 자음 동화 현상 때문에모음 사이에서 [ll], 즉 [lː]로 발음된다. 그러니 원 발음이 [l]인 경우 모음 사이에서 ‘ㄹㄹ’로 적는 것이다. [alʁa]라는 발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알라’로 [ala]라는 발음을 적은 것과 똑같이 된다. ‘튀일리’도 Tuileries가 아니라 *Tuilies라는 단어를 적은 것과 구별할 수 없다.

그런데 Tuileries에서 묵음 e를 발음하는 것으로 보아 [tɥiləʁi]로 본다면? 표기는 ‘튀일르리’가 되어 [l] 발음 뒤에 [ʁ] 발음이 따른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tɥiləʁi]라는 발음 자체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어색하겠지만 완전히 틀린 발음도 아니다.

또 묵음 e가 발음된다고 본 것이 아닐지라도 [l] 발음 뒤에 [ʁ]이 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삽입 모음 ‘으’를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다.

원칙성이냐 융통성이냐

종합하면 ‘튈르리’는 [ɥi]가 한국어에서 ‘위’에 가까운 음이라는 사실 때문에 ‘위이’ 대신 ‘위’로 적고 [lʁ]의 표기가 ‘ㄹㄹ’이 되는 것을 피하려 묵음 e가 발음되는 것으로 보거나 표기상의 삽입 모음 ‘으’를 집어넣은 표기이다. 프랑스어 발음을 아는 경우 ‘튈르리’라는 표기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고, 한국어로 ‘튈르리’라고 발음하는 것이 ‘튀일리’보다 프랑스어 발음에 더 가깝게 된다. ‘튈르리’라는 표기를 정한 사람은 이 표기가 워낙 자연스러운 나머지 원칙적으로 따지면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칙대로는 ‘튀일리’가 맞는 표기이다. 출판사나 언론사에서 프랑스어 이름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교열하는 사람은 Tuileries의 한글 표기를 정하기 위해 사전을 통해 발음을 알아내고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대입하여 ‘튀일리’가 올바른 표기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더구나 국립국어원에서 ‘튀일리’가 맞는 표기라고 정한 바 있으니, Tuileries의 표기는 ‘튀일리’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기계적으로라도 원칙을 따른다면 외래어 표기의 통일이 더 쉬워지지만 ‘튀일리’처럼 조금 어색한 표기가 나올 수 있다. 융통성 있게 ‘튈르리’와 같은 표기를 쓰면 프랑스어 발음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겠지만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표기하기가 어렵고, 더구나 사람에 따라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표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표기의 통일이 어렵다.

또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프랑스어에서 [ɥi]의 표기나 묵음 e가 들어가 있는 [lʁ] 자음 조합의 표기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어느 것이 원칙에 맞는 표기인지 확실하지 않을 수가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기존 표기 용례에서도 [ɥi]를 ‘위’로 옮긴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다.

어느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까?

내 생각에는 국립국어원에서 정식으로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과는 별도로 이런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입장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미 용례를 정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ɥi]의 경우 ‘위이’로 통일하자’, ‘철자상의 묵음 e가 l과 r 사이에 와서 [lʁ]로 발음되는 경우는 ‘으’를 삽입하여 표기하자’와 같이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세부적인 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비공식적으로라도 이런 추가 내용을 공개하여 외래어 표기의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였으면 한다.

2023. 8. 7. 추가 내용: 이미 언급했다시피 요즘은 프랑스어의 [ɥi]를 ‘위’로 적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ji]나 [jɪ]는 ‘이’로 적고, [wu]나 [wʊ]는 ‘우’로 적는 등 반모음과 모음의 조합은 한 음절로 발음되므로 한글 표기에서는 한 음절로 나타내는 것처럼 [ɥi]도 ‘위’로 적는 것이 낫다. 또 한국어 화자의 직관을 고려하여 철자상의 묵음 e가 l과 r 사이에 와서 [lʁ]로 발음되는 경우는 ‘으’를 삽입하는 것이 낫다. 실제로 제103차 외래어 심의회(2012. 6. 28.)에서는 Pellerin [pɛlʁɛ̃]의 표기를 ‘펠르랭’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Tuileries [tɥilʁi]는 원문에서 쓴 현행 표준 표기 ‘튀일리’보다는 ‘튈르리’로 표기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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