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은 것은?
가. 밀크쉐이크 나. 밀크셰이크
가. 세익스피어 나. 셰익스피어
가. 아이쉐도우 나. 아이섀도
가. 포르쉐 나. 포르셰
가. 리더쉽 나. 리더십
가. 잉글리쉬 나. 잉글리시
답은 모두 ‘나’이다.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 이후 교육을 받은 세대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 방법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ㅅ’ 계열 표기는 계속 틀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셰’라고 적어야 할 것을 제대로 적는 일이 오히려 드문 것 같다.
한국어의 치조 마찰음 ‘ㅅ’과 ‘ㅆ’은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발음이 많이 달라진다. ‘ㅅ’의 경우, ‘사’에서는 [s]로, ‘시’에서는 구개음화되어 [ɕ]로, ‘쉬’에서는 구개음화·원순음화되어 [ʃ]로 발음된다. ‘ㅆ’도 ‘ㅅ’과 같이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다르게 발음되며 다만 된소리로 될 뿐이다.
그런데 외국어에서는 ‘ㅅ’과 비슷한 계열의 음소가 한국어와는 다른 양상으로 모음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중국어에서는 한어병음으로 s로 적는 [s]를 비롯하여 sh로 적는 [ʂ], x로 적는 [ɕ]가 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s를 ‘ㅆ’에, sh와 x를 ‘ㅅ’에 대응시키고 있다. 그러면 shi와 같은 음절은 ‘스’로 적게 되는데 여기서 ‘ㅅ’은 한국어식으로 [s]로 발음하게 되어 중국어의 [ʂ]와는 발음의 차이가 생긴다.
또 영어를 보면 보통 s로 적는 [s]와 sh로 적는 [ʃ]가 있다.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른 여러 언어에서도 비슷한 음소의 분별이 있다. 한국어에서 [s]와 [ʃ]는 ‘ㅅ’이라는 하나의 음소가 뒤에 따르는 음절에 따라 달리 발음되는 것이지만 영어에서는 원래 다른 음소이다. 즉 see와 she, say와 Shay, so와 show는 자음이 [s]이냐 [ʃ]이냐만으로 구별된다.
이를 한글로 어떻게 적을 것인가? 영어의 s를 ‘ㅆ’으로, sh를 ‘ㅅ’으로 적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워낙 발음이 달라져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s를 ‘ㅅ’으로, sh를 ‘ㅅ’+’이’ 반모음, 줄여서 ‘시’로 나타내도록 하였다.
즉 s와 모음의 결합은 ‘사’, ‘새’, ‘서’, ‘세’, ‘소’, ‘수’, ‘시’로 표기하고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스’로 적게 하였으며 반면 sh와 모음의 결합은 ‘샤’, ‘섀’, ‘셔’, 셰’, ‘쇼’, ‘슈’, ‘시’로 표기하고 자음 앞에서는 ‘슈’, 어말에서는 ‘시’로 적게 하였다.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도 부분적인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규칙을 적용하였다.
‘섀’? ‘셰’?
문제는 한국어 언중에게 ‘섀’와 ‘셰’와 같은 표기는 꽤 생소했다는 것이다. 옛말에서는 ‘섀’, ‘셰’와 같은 표기가 많이 쓰였다. 하지만 현대 한국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표기이다.
‘셔’는 ‘시어’의 준말로 ‘오셔’, ‘가셔’ 등의 말에 자주 쓰이는 표기이기 때문에 발음하는데 문제가 없다. ‘시오’의 준말인 ‘쇼’도 마찬가지이다. ‘샤’도 현대 한국어에서는 외래어 이외의 말에는 잘 안 쓰지만 모두 문제 없이 [ɕa]로 발음하고 있다. 오히려 ‘사’로 적어야 할 것도 ‘샤’로 적는 경우도 많이 본다. 예를 들면 카투사(KATUSA)를 ‘카추샤’로 적거나 FC 바르셀로나 축구팀의 애칭인 바르사(Barça)를 ‘바르샤’로 적는 것이다.
따라서 ‘섀’나 ‘셰’를 보면 ‘시애’, ‘시에’를 줄인 것으로 보아서 [ɕɛ], [ɕe]로 발음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섀’나 ‘셰’가 적힌 것을 보고 ‘새’나 ‘세’인 것처럼 [sɛ], [se]로 발음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세익스피어’로 쓴 것처럼 발음하고, 그에 이끌려 표기도 ‘세익스피어’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혼동하는 이유는 바로 비슷한 발음을 적는 ‘쉐’라는 비표준 표기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쉐’는 어디서 온 표기일까?
사전에 찾아보면 ‘쉐’라는 표기는 주요 방언이나 북한말에서 쓰고 있고 표준어에서 쓰인 것은 ‘얼음지치기’를 뜻하는 말인 ‘쉐미’, ‘스웨터’의 다른 형태인 ‘쉐타’ 정도이다. 표준 발음은 [swe]인데, ‘외’를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면 ‘쇠’와 ‘쉐’는 동일하게 발음된다. 또 ‘에’와 ‘애’를 구분하지 않는 이에게는 ‘쇄’와 ‘쉐’가 동일하게 발음된다.
그런데 비표준어에서 ‘쉐’는 [ʃe]라는 발음을 나타내는 표기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쉐타’라는 말을 쓰면 발음을 [swe]로 하는 이들도 보통 외래어에서 ‘쉐’라는 표기를 보게 되면 [ʃe]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어를 표기할 때 한어병음으로 xue로 적는 음절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쉐’로 적게 되어 있는데, [swe]라고 발음해야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되지만 이마저도 [ʃe]로 발음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쉐’가 [ʃe]로 발음되는지 [ɕe]로 발음되는지는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어에서 [ʃe]는 본래 있는 조합이 아니고 [ɕe]도 찾아보기 힘든 조합이며 어쨌든 의미있는 구분이 아니므로 보통 사람들은 두 발음을 혼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쉬’에 이끌린 표기
한국어에서 ‘쉬다’, ‘쉰’ 등에 쓰이는 ‘쉬’는 ‘위’ 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ʃy] 또는 [ʃɥi]로 발음된다. 그러니 영어와 같은 외국어에서 [ʃ] 음을 들으면 ‘쉬’라는 표기에 이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의 she [ʃiː]도 ‘시’라고 적는 것보다 ‘쉬’라고 적는 것이 훨씬 원 발음에 가깝게 들린다. 영어의 [ʃ]가 원순화된 음이라는 사실도 ‘쉬’에 더 가깝게 들리는데 한몫을 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어느정도 규칙적인 표기를 추구하기 위해서, 또 프랑스어, 독일어 등에서 [ʃi]와 [ʃy]를 구별하는 문제 때문에 [ʃi]와 어말의 [ʃ]가 ‘쉬’에 가깝게 들리더라도 ‘시’를 적도록 하고 있지만 이게 잘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잉글리쉬’, ‘리더쉽’과 같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표기가 쓰이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쉬’에 이끌려서 ‘쉐’라는 표기가 [ʃe]를 나타내는데 쓰이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즉 ‘쉬’와 같은 자음에 ‘에’의 모음을 더한 표기로 쓴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는 ‘궤’ [kwe], ‘뒈’ [twe] 등의 발음과 비교해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 발음법이다. ‘궤’는 ‘구에’, ‘뒈’는 ‘두에’를 빨리 발음한 것처럼 발음되니 ‘쉐’도 ‘수에’를 빨리 발음한 [swe]가 되어야 마땅하다.
표기 습관을 바꿔야 한다
결국 외국어의 [ʃe] 또는 [ɕe] 계통 발음을 ‘쉐’로 적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셰’로 적고 그렇게 읽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쉐타’에서 ‘쉐’는 [swe]로, ‘밀크쉐이크’에서는 [ʃe] 또는 [ɕe]로 발음하는 것보다 발음에 따라 ‘쉐’와 ‘셰’로 나누어 적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밀크셰이크’라는 표기가 지금 당장은 어색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맞춤법에 따라 적는 습관을 들이면 쉽게 익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