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문자를 몰라도 태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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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는 태국어 관련 규정은 비교적 최근인 2004년 12월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함께 추가되었기 때문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전에 ‘푸켓’, ‘푸케트’라고 부르던 태국의 지명을 지금은 새 표기법 규정에 따라 ‘푸껫’이라고 부른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실지 모르겠다.

그러면 언론에서는 태국어 표기 규정을 잘 지키고 있을까? 얼마 전에 태국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그 가운데 아시아경제에 실린 〈태국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 선언〉이라는 기사에서 보면 태국의 당시 총리를 ‘사막 순다라벳’으로, 육군 참모총장을 ‘아누퐁 파오진다’로 적고 있다(지금은 총리가 바뀌었다). 아시아경제는 단지 예를 들기 위해 고른 것이고 대부분의 언론에서 같은 표기를 쓴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표기이다.

그럼 맞는 표기는 무엇일까?

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부터 살펴보자. 규정은 태국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 및 표기 세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기 쉽도록 이미지로 소개했다. 원 내용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몇몇 글자는 알아보기 힘든 그래픽으로 나타내고 있으니 위키백과에 있는 것이 더 읽기 편할 수도 있다.

2023. 8. 2. 추가 내용: 본 누리집에서 타이어 외래어 표기법 규정 보기

(규정에서는 태국, 태국어 대신 타이, 타이어라고 쓰고 있지만 복수 표준어이며 오히려 태국, 태국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혼동이 없을 것 같아 여기서는 태국, 태국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태국 문자와 태국 이름

규정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태국어는 고유의 문자인 태국 문자로 적는다. 보기 쉽도록 태국어 자모마다 거기에 해당하는 로마자도 적어 놓았지만 규정을 적용하려면 태국 문자로 적은 원래 표기를 알아야 한다.

태국어 이름을 로마자로 적을 때 모두들 태국어 표기 규정에 나온 방식대로 규칙적으로 한다면 로마자로 적은 것만 보고 한글 표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국도 한국처럼 사람에 따라 로마자 표기를 멋대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 태국어 이름은 불교와 함께 전해진 인도의 옛 언어인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이 많은데 어원을 밝히는 표기를 하느라 실제 발음과 달라지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전 총리인 Thaksin Shinawatra(ทักษิณ ชินวัตร)은 [tʰák.sǐn ʨʰīn.nā.wát̚]으로 발음되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탁신 친나왓’으로 적어야 한다. 끝의 -ra는 발음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태국 문자로 쓴 원래 표기를 찾았다고 해도 그대로 쉽게 태국어 표기 규정의 대조표를 사용해 한글 표기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글자마다 일일이 대조할만한 인내심이 있더라도 태국 문자는 인도계 문자(Indic script)로 모음을 표시하는 방식이 까다롭고 발음 규칙이 복잡하여 웬만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한글 표기 규정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여기서는 태국 문자로 된 표기를 입력하면 규칙적인 로마자 표기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태국어 로마자 표기 변환 프로그램 사용하기

1. http://www.arts.chula.ac.th/~ling/tts/에서 ‘Thai Romanization’이라는 태국어 로마자 표기 변환 프로그램을 내려받는다. 태국어를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규칙적으로 로마자 표기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인데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료이다. 윈도우 98, ME, XP에서 시험을 거쳤다고 하니 맥에서는 사용 못할 것 같고 윈도우 비스타에서는 실행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2. 내려받은 파일을 실행하여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3. 프로그램을 열어 보자. Option 메뉴에서 Input as one word를 설정하고 Thai Character Code는 Unicode로 설정한다.

4. 위의 칸에 태국어로 표기된 것을 입력하면 밑에 로마자로 변화되어 나온다. 밑은 푸껫의 태국어 표기를 입력한 것이다.

보통 태국어 자판을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므로 인터넷에서 태국어 표기를 찾아서 복사해서 입력하게 되는데, 이럴 때 인코딩 문제 때문에 붙여넣기를 하면 태국 문자가 인식이 되지 않아 물음표만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장(Notepad)을 열어서 거기 붙여넣기를 한 후 거기서 다시 복사하면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인코딩 문제 때문인지 로마자 변환 과정에서 오자가 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위의 ทักษิณ ชินวัตร을 입력하면 ‘Thaksin Chinnawat’이 출력되어야 하지만 ‘Thaksin Chinwat’이 되어 나온다. 그러니 오류를 피하려면 귀찮더라도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5. 메모장을 열어서 변환하고자 하는 태국어 표기를 붙여넣고 텍스트(.txt) 문서로 저장을 하는데 인코딩은 유니코드로 한다. 그래야지 Thai Romanization 프로그램에서 인식할 수 있다.

6. Thai Romanization 프로그램으로 돌아가서 메뉴의 Roman에 들어가 Text File을 선택한다. 그러면 변환하고 싶은 텍스트 문서를 묻는데, 방금 저장한 텍스트 문서를 지정하면 된다.

만약 텍스트 문서를 Thai.txt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면 로마자로 변환된 문서는 Thai.txt.rom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다.

7. Thai.txt.rom을 메모장에서 연다. 올바르게 변환된 표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태국어 원 표기 찾기

이제 이 방법으로 태국의 전 총리와 육군 참모총장 이름을 알아보자. 아마 태국어 원 표기를 찾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과정 같은데 여기에는 왕도가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는데 저명한 인명이나 지명이라면 영어판 위키백과에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태국어 표기가 실려 있거나 태국어판 위키백과에 링크가 되어 있는 것이 많다. 거기서 찾지 못하면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에서 찾는 방법도 있다. 구글의 ‘고급 검색’에서는 흔히 쓰이는 로마자 표기로 검색하되 태국어로 된 페이지만 검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찾는 태국의 전 총리 이름은 สมัคร สุนทรเวช, 육군 참모총장 이름은 อนุพงษ์ เผ่าจินดา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치자. 앞서 말한 방법으로 로마자로 변환하면 각각 Samak Suntharawet, Anuphong Phaochinda이다.

대조표와 표기 세칙을 참고하여 한글로 적기

(2008. 10. 25. ว [w]의 표기에 대한 내용 추가)

이제 앞에 소개한 외래어 표기법의 태국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 태국어의 표기 세칙을 참고하며 한글로 표기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아까 Thai Romanization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태국어의 로마자 표기 방식이 외래어 표기법에서 쓰는 방식과 거의 똑같다고 했는데 일부 차이가 있다. 바로 태국어의 จ [tɕ]와 어말의 모음 뒤에 붙는 ว [w]의 표기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จ을 ch로, 어말의 ว를 o로 표기한다. 그에 반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จ을 c로 표기하고 한글로는 ‘ㅉ’로 적으며 어말의 ว는 w로 표기하고 한글로는 ‘우’로 적는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통해 변환한 로마자 표기에 ch가 나와 있으면 원 글자가 จ인지, 아니면 ‘ㅊ’로 적어야 하는 ฉ, ช, ฌ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เผ่าจินดา에서는 ch에 해당하는 글자가 จ이니 외래어 표기법식 로마자로는 Phaocinda가 된다. 마찬가지로 어말에 ao, aeo, io 등의 모음 조합이 오면 원 글자가 ‘우’로 적어야 하는 ว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이제 Samak Suntharawet, Anuphong Phaocinda라는 표기를 태국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이용하여 한글로 적자. ‘사막 순타라웻‘, ‘아누퐁 파오찐다‘가 된다. 이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이다.

‘사막 순다라벳’, ‘아누퐁 파오진다’라는 표기는 로마자로 흔히 쓰이는 이름이 각각 Samak Sundaravej, Anupong Paojinda라는데서 온 것 같다. 순타라웻(สุนทรเวช)의 ท는 태국어 발음은 ‘ㅌ’이지만 산스크리트어의 d에 해당하는 글자라서 로마자로 쓸 때 d로 쓴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이’로 발음하는 성도 원래의 한자음을 고려하여 로마자로 Lee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태국어의 v는 [w]음을 나타내는 관습적인 표기로 태국어에는 [v]음이 없다. 그리고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태국어를 표기하면 ‘ㅈ’라는 표기는 나오지 않으며 ‘ㅉ’로 써야 한다. 태국어의 จ음은 한국어 언중에게는 ‘ㅉ’으로 들리지만 로마자로는 마땅히 표기할 방법이 없어 c, ch, j 등으로 쓰이는 것이다.

방콕은 혹시 ‘방꼭’으로 적어야 하나?

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보고 그럼 태국의 수도 Bangkok을 ‘방꼭’이라 적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Bangkok은 계속 ‘방콕’으로 적는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입장이다. 방콕은 외국인들이 부르는 이름이므로 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방콕을 태국인들은 Krung Thep(กรุงเทพฯ), 즉 ‘끄룽텝’이라고 부른다.

사실 ‘방콕’의 어원 역시 태국어 Bangkok(บางกอก)이니 ‘방꼭’으로 표기할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방콕’으로 불러왔으며 태국어 이름이라기보다는 외국에서 관습적으로 부르는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방콕을 ‘끄룽텝’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이상 ‘방꼭’이라 바꾸어 부른다고 현지 이름에 가깝게 되는 것도 아니고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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