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아이스하키 선수 로만 요지 혹은 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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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개막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스위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 가운데는 북아메리카의 내셔널 하키 리그(NHL)의 내슈빌 프레더터스(Nashville Predators)에서 주장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2019~20 시즌에는 리그 최우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노리스 트로피(Norris Trophy)를 수상한 Roman Josi가 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지가 문제이다.

스위스인의 62%는 독일어를 모어로 쓰며 Roman Josi도 독일어 화자이다. 평상시 입말로 쓰는 스위스 독일어와 글말이나 격식을 갖춘 자리 또는 다른 지역의 독일어 화자와 소통할 때 쓰는 스위스식 표준 독일어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스위스인들이 표준 독일어를 구사할 때 쓰는 발음을 논하기로 한다. 물론 개별 이름의 발음에서는 스위스식 표준 독일어 발음이 스위스 독일어 발음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본인의 이름 발음은 얼핏 [ˈroːman ˈjoːsi] ‘로만 요시’로 들린다.

그런데 독일 출신 화자는 그의 이름을 [ˈʁoːman ˈjoːzi] ‘로만 요지’로 발음한다.

오늘날 독일어권에서 Josi는 보통 Josephine [jozeˈfiːnə] ‘요제피네’ 등 Jos-로 시작하는 이름을 줄인 약칭으로 많이 쓰인다. 특히 여자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ˈjoːzi] ‘요지’로 발음한다. 그런데 15세기 후반에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는 Josi가 성씨로 기록된다. 아마 남자 이름 Justus [ˈjʊstʊs] ‘유스투스’의 약칭인 Jos [ˈjoːs] ‘요스’ 또는 Jost [ˈjoːst] ‘요스트’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성씨 Josi는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남부에 주로 분포한다.

독일어권 남부 발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s /z/의 발음이다. 독일 북부식 표준 독일어에서 [z]로 발음되는 어두의 s도 독일어권 남부에서는 [s]로 발음된다. Sonne [ˈzɔnə] ‘조네’를 [ˈsɔnə] ‘소네’로 발음하는 식이다. 오스트리아의 도시 Salzburg는 독일 북부식 발음 [ˈzalʦbʊʁk]를 기준으로 ‘잘츠부르크’라고 표기하지만 오스트리아식 발음은 [ˈsalʦbʊrɡ̊] ‘살츠부르그’ 정도이다.

모음 사이의 s는 독일 북부식 발음에서 보통 [z]로 발음하는데 독일어권 남부에서는 무성음화한 [z̥]로 발음된다. 다만 [s]와의 구별은 유지된다. 독일 북부식 발음에서 reisen [ˈʁaɪ̯zn̩] ‘라이젠’과 reißen [ˈʁaɪ̯sn̩] ‘라이센’을 구별하는 것처럼 독일어권 남부에서도 reisen [ˈraɪ̯z̥n̩]과 reißen/reissen [ˈraɪ̯sn̩]은 보통 구별된다(스위스식 철자에서는 ß를 언제나 ss로 대체한다). 대신 연음 [z̥]와 경음 [s]는 둘 다 무성음이고 발음의 세기로 구별된다는 점이 다르다. 발음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어의 [ㅅ]와 [ㅆ]가 둘 다 무성음인데 발음의 세기로 구별되는 것과 비슷한다.

대신 독일어권 남부에서도 어중의 [z̥]와 [s]를 구별하지 않고 reisen과 reißen/reissen을 동일하게 발음하는 화자들이 있다. 이 경우 보통 둘 다 [z̥]로 실현한다. 다만 이는 주로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에서 관찰되는 현상이고 스위스에서는 [z̥]와 [s]의 구별이 보통 유지된다고 한다.

한글 표기에서는 독일어권 남부 이름에서도 모음 사이의 s를 독일 북부식 발음을 기준으로 [z]로 보고 ‘ㅈ’으로 옮긴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도시 Basel은 현지 발음이 [ˈbaːz̥l̩]로 한국어 화자에게는 ‘바슬’ 가깝게 들리지만 표준 표기는 [ˈbaːzl̩]을 기준으로 한 ‘바젤’이다(철자 el로 쓰는 [l̩]은 ‘엘’로 적는다).

아쉽게도 《두덴 발음 사전》이나 《데그로이터 발음 사전》 같은 주요 독일어 발음 사전에는 Josi의 발음이 실려있지 않지만 다시 동영상에 나타나는 본인 발음의 확인하면 경음 [s]보다는 연음 [z̥]를 쓴 [ˈroːman ˈjoːz̥i]로 들리는 듯하다. [z̥]가 독일 북부식 발음의 [z]에 대응되는 음으로 보고 독일 북부식 발음으로 해석하면 [ˈʁoːman ˈjoːzi] ‘로만 요지’가 맞다.

하지만 스위스식 발음에서 [z̥]는 무성음이므로 영어 화자들은 [s]로 인식하고 한국어 화자는 [ㅅ]로 인식하기 쉽다(대신 [ㅆ]으로 인식하는 [s]와는 구별된다). 그러니 [ˈjoːz̥i]를 ‘요지’로 적기는 좀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NHL에서 펴내는 발음 안내에서도 Josi, Roman의 발음을 YOH-see, ROH-man으로 풀이했다. 그래서 영어 화자들은 Josi를 [ˈjoʊ̯si] ‘요시’로 발음한다.

현재 작업 중인 2026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출전 선수 한글 표기 안내 페이지에서도 Roman Josi의 표기를 ‘로만 요시’로 제시하고 독일식 발음에 따른 표기를 ‘로만 요지’라고 덧붙였다가 그냥 ‘로만 요지’로 통일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Salzburg를 ‘잘츠부르크’로, Basel을 ‘바젤’로 적는 것처럼 독일어권 이름의 한글 표기는 독일 북부식 표준 발음을 기준으로 통일하는 전통을 존중한 것이다. 그래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라서 앞으로 다시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독일 북부에서도 Set [ˈsɛt] ‘세트’처럼 영어에서 차용한 어휘의 어두 s는 전통 [z] 대신 [s]로 발음한다. 그래서 독일어권 이름, 특히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어두 s를 [s]로 발음하는 독일어권 남부의 이름을 표기할 때 어두 s의 처리가 고민되는 경우가 많다(동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하는 얘기이지만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선수 가운데는 독일어권인 이탈리아 북부의 남티롤 지역 출신이 많다).

작업 중인 페이지에서도 스위스의 스노보드 크로스 선수 Sina Siegenthaler와 스위스의 아이스하키 선수 Saskia Maurer, Simon Knak 및 Pius Suter의 발음을 그냥 독일 북부식 [ˈziːna ˈziːɡn̩taːlɐ], [ˈzaski̯a ˈmaʊ̯ʁɐ], [ˈziːmɔn ˈknak], [ˈpiːʊs ˈzuːtɐ]로 보고 한글 표기를 각각 ‘지나 지겐탈러’, ‘자스키아 마우러’, ‘지몬 크나크’, ‘피우스 주터’로 제시했다. 이들은 모두 독일어식 이름 또는 독일어권에 오래 정착된 이름으로서 어두 s가 현지에서 [s]로 발음되더라도 독일어권 이름의 한글 표기 방식은 통일시키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독일어권 인명에 나타나는 Simon을 출신지를 따져서 ‘지몬’과 ‘시몬’으로 나눠 쓰기보다는 ‘지몬’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신 이탈리아의 스노보드 크로스 선수 Sofia Groblechner의 발음은 [soˈfiːa ɡʁoˈblɛçnɐ]로 보고 한글 표기를 ‘소피아 그로블레히너’로 제시했으며 대신 독일식 발음을 따른 표기는 ‘조피아 그로블레히너’라고 덧붙였다. Sofia는 《두덴 발음 사전》에서 아예 이탈리아어나 포르투갈어 이름으로만 보고 독일어 발음을 제시하지 않지만 《데그로이터 발음 사전》에서는 독일어 발음을 [zoˈfiːa] ‘조피아’로 제시한다. 이탈리아 선수의 이름이니 Sofia는 독일어 이름으로 쳐도 이탈리아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 표기와 일치하게 ‘소피아’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스위스의 아이스하키 선수 Sandro Schmid, 이탈리아의 아이스하키 선수 Sara Kaneppele도 발음을 [ˈsandʁo ˈʃmiːt], [ˈsaːʁa kaˈnɛpələ]로 보고 각각 ‘산드로 슈미트’, ‘사라 카네펠레’로 표기했으며 Sandro와 Sara가 독일식 발음대로는 [ˈzandʁo] ‘잔드로’, [ˈzaːʁa] ‘자라’라고 덧붙였다. 독일어의 Sandro는 애초에 이탈리아어 Sandro ‘산드로’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독일어에서도 Sara ‘자라’가 전통적으로 쓰이는 이름이지만 Sara ‘사라’는 이탈리아어에서도 흔히 쓰이는 이름이니 이탈리아 선수 이름에서는 ‘사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았다.

스위스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가 국가 공용어로 쓰이고 이탈리아의 남티롤주에서는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둘 다 공용어로 쓰이니 이들 지역의 독일어 이름을 한글로 표기할 때도 무조건 독일 이름인 것처럼 처리하기는 곤란하다. 독일 인명이라면 Sandro와 Sara는 각각 ‘잔드로’, ‘자라’로 적어야 하겠지만 스위스와 이탈리아 인명이라면 ‘산드로’, ‘사라’가 나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 독일어식 이름인 Josi는 스위스 현지 발음과 달라서 어색하더라도 독일 북부식 발음에 따라 ‘요지’로 쓰는 것이 지금까지의 한글 표기 전통에 부합할 것이다. 이처럼 독일어권의 지역에 따른 발음 차이는 한글로 표기할 때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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