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부 경기가 없는 유일한 올림픽 종목, 노르딕 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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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딕 복합은 스키 점프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결합한 종목이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 올림픽에서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100년이 넘도록 올림픽 노르딕 복합은 남자부 경기만 치러지고 있으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결정에 따르면 2월에 열리는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도 남자 선수들만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통틀어서 여자 선수가 참가할 수 없는 유일한 종목이다.

IOC는 여자부 제외의 이유로 종목 자체의 인기가 저조하며 여자 선수들의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이 되어야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례로 2026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했던 영국의 유망주 매니 쿠퍼(Mani Cooper [ˈmæni ˈkuːpəɹ], 2003년생)는 IOC의 결정 때문에 올림픽 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국 협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노르딕 복합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나아가서 IOC는 2026년 올림픽 이후 노르딕 복합 종목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양성 평등을 핑계로 아예 종목 자체를 올림픽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틱톡 동영상을 통해 IOC의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화제가 된 미국의 노르딕 복합 선수 아니카 말러신스키(Annika Malacinski, 2001년생)는 1월 31일에 오스트리아 제펠트(Seefeld [ˈzeːfɛlt])에서 열리는 노르딕 복합 월드컵 대회에서 여자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에 ‘예외는 없다(no exception)’라는 뜻으로 스키 폴을 X자 모양으로 들어 보이는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아니카 말러신스키의 동생 니클러스 말러신스키(Niklas Malacinski, 2003년생) 역시 노르딕 복합 선수로 2026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에 기뻐하면서도 누나와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여자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아니카와 니클러스 말러신스키 남매는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핀란드인으로 미국과 핀란드 복수 국적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르딕 복합은 북유럽에서 유래했는데 말러신스키 남매는 핀란드 쪽 친척들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생소한 이 종목에 입문했다고 한다.

Annika와 Niklas는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웨덴어식 이름이다. 스웨덴어는 핀란드어와 함께 핀란드의 공용어이며 꼭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지 않는 이들도 스웨덴어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어 및 스웨덴어 발음에 따른 표기는 각각 ‘안니카’, ‘니클라스’이다.

Annika는 영어권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보통 [ˈænɪkə] ‘애니카’로 발음된다. 하지만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아니카 말러신스키의 본인 발음은 [ˈɑːnɪkə ˌmɑːləˈsɪnski] ‘아니카 말러신스키’이다. 핀란드식 발음을 좀 더 흉내내는 것이다. 미국 영어에서는 모음의 장단 구별이 대체로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 PALM 모음은 [ɑː] 대신 [ɑ]를 써서 [ˈɑnɪkə ˌmɑləˈsɪnski]로 쓰는 것이 더 실제 발음에 가깝다.

대신 영국 영어에서는 모음의 장단 구별이 확실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Annika와 Malacinski의 첫 음절에 긴 모음인 [ɑː]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대신 TRAP 모음 [æ]가 한국어 화자에게는 ‘아’로 들릴 수 있는 개모음 [a]로 발음되기 때문에 차용어에서 원어의 [a]는 보통 [æ]로 흉내낸다. 그러니 영국 영어에서는 같은 이름이 [ˈænɪkə ˌmæləˈsɪnski]로 발음되는데 이것도 한국어 화자에는 ‘아니카 말러신스키’로 들린다.

이처럼 원어의 [a]를 미국 영어에서는 PALM 모음 [ɑː], 영국 영어에서는 TRAP 모음 [æ]로 흉내내는 경우는 한글 표기에서도 ‘아’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가끔 이런 모음을 PASTA 모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탈리아어 pasta [ˈpasta] ‘파스타’를 차용한 영어 단어 pasta를 미국 영어에서는 [ˈpɑːstə], 영국 영어에서는 [ˈpæstə]로 보통 발음한다. 이런 경우는 영어 발음을 따르더라도 한글 표기는 이탈리아어 pasta의 표기처럼 ‘파스타’로 통일해야 하겠다.

마찬가지로 Francesca [영: fɹænˈʧɛskə, 미: fɹɑːnˈʧɛskə], Natasha [영: nəˈtæʃə, 미: nəˈtɑːʃə], Sasha [영: ˈsæʃə, 미: ˈsɑːʃə] 같은 이름은 각각 ‘프란체스카’, ‘너타샤’, ‘사샤’로 적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처럼 다른 언어에서 최근에 차용한 이름의 영어 발음도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Annika는 미국에서도 [ˈænɪkə]로 흔히 발음하니 간혹 ‘아니카’로 발음하는 이가 있더라도 ‘애니카’로 통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서는 본인 발음을 존중하여 ‘아니카’로 적기로 했다.

Niklas는 영어로 [ˈnɪkləs] ‘니클러스’로 발음되는데 흔한 영어 이름인 Nicholas [ˈnɪkələs] ‘니컬러스’도 가운데 음절의 [ə]가 생략되면서 두 음절로 축약되어 동일하게 ‘니클러스’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Malacinski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폴란드어 Małaczyński ‘마와친스키’나 우크라이나어 Малачинський(Malachyns’kyi) ‘말라친스키’ 같은 슬라브어식 성씨를 영어식으로 철자를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슬라브어에서는 성씨도 남성형과 여성형이 나뉘기 때문에 여자 성씨로는 Małaczyńska ‘마와친스카’, Малачинська(Malachyns’ka) ‘말라친스카’와 같이 쓰지만 영어권에 이민한 이의 성씨는 보통 남녀를 불문하고 동일한 남성형을 쓴다.

말러신스키 남매는 핀란드 국적도 있으니 스웨덴어나 핀란드어 발음에 따라 표기하면 아마도 ‘안니카 말라신스키’, ‘니클라스 말라신스키’가 될 것이다. 물론 Malacinski는 스웨덴어나 핀란드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니고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이름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낫겠지만 차라리 ‘안니카 말라신스키’, ‘니클라스 말라신스키’로 쓰는 것이 더 직관적인 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예를 든 Natasha도 꼭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 ‘너타샤’로 쓰기보다는 다른 대다수 언어에서 쓰는 발음을 기준으로 ‘나타샤’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잠재적으로 영어권에서 쓰이는 모든 이름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언제 이런 예외를 둘 것인지 기준을 마련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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