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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에는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집권당 후보인 릭시 몽카다(Rixi Moncada)와 살바도르 나스랄라(Salvador Nasralla), 나스리 아스푸라(Nasry Asfura)의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우파 후보인 아스푸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후보들을 비판하면서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
이 소식을 보도한 한국 언론에서는 보통 Rixi Moncada를 ‘리시 몬카다’, Salvador Nasralla를 ‘살바도르 나스라야’로 쓰고 있다. 그런데 Rixi Moncada [ˈriɣ̞si moŋˈkað̞a]에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릭시 몽카다’로 쓰는 것이 맞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에스파냐어의 x는 어중에서 ‘ㄱㅅ’으로 적게 하며 laxante [laɣ̞ˈsante] ‘락산테’, yuxta [ˈɟ͡ʝuɣ̞sta] ‘육스타’를 예로 든다.
에스파냐어에서는 위치에 따라 자음 약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데 /k/, /ɡ/는 다른 자음 앞에서 접근음 [ɣ̞]로 변한다. 하지만 한글로 표기할 때는 철자대로 [k]인 것처럼 받침 ‘ㄱ’으로 적는다. dictado [diɣ̞ˈt̪að̞o]를 ‘딕타도’로 적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어중 x는 음소로 따지면 /ks/ 또는 /ɡs/로 분석할 수 있지만 자음 약화로 인해 실제로는 [ɣ̞s]로 발음되는데 여기서도 [ɣ̞]는 받침 ‘ㄱ’으로 적는다.
반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에스파냐어에서 어두의 x는 ‘ㅅ’으로 적게 하고 xenón [seˈnon] ‘세논’을 예로 들고 있다. 온두라스의 현 대통령인 Xiomara Castro [sjoˈmaɾa ˈkastɾo] ‘시오마라 카스트로’에서도 어두 x가 [s]로 발음되며 ‘ㅅ’으로 적는다. Rixi를 ‘리시’로 적은 것은 혹시 Xiomara를 ‘시오마라’로 적는 것을 보고 xi라는 조합을 그냥 ‘시’로 적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차용어나 구식 철자를 간직한 이름에서는 발음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에스파냐어에서 철자 x는 기본적으로 어두에서 [s], 어중에서 [ɣ̞s]로 발음되고 외래어 표기법도 이를 따른다.
Xiomara는 상대적으로 드문 에스파냐어 여자 이름인데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에스파냐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쓰였던 언어인 관체(Guanche)어에서 유래했다고 흔히 추측한다. 신대륙 식민지로 향한 에스파냐인들은 카나리아 제도 출신이 많았다.
Rixi는 Xiomara보다도 더 드문 이름이라서 유래에 대한 정보를 찾기 힘들다. 그래도 현지에서 [ˈriɣ̞si] ‘릭시’로 발음하는 것을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에스파냐어에서 c와 g 앞에 오는 n은 받침 ‘ㅇ’으로 적어야 한다. Moncada [moŋˈkað̞a] ‘몽카다’에서 볼 수 있듯이 /n/은 연구개음 /k/, /ɡ/, /x/ 등 앞에서 [ŋ]으로 동화하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또 에스파냐어의 ll을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적는 ‘이*’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llama [ˈʎama~ˈɟ͡ʝama] ‘야마’를 예로 들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을 포함한 지역에서는 ll /ʎ/와 y /ʝ/가 합쳐졌기 때문에 llama는 마치 *yama로 쓴 것처럼 [ˈɟ͡ʝama]로 발음되며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ʝ]인 것처럼 통일하여 ‘*랴마’ 대신 ‘야마’로 쓴다. 실제 발음은 지역에 따라 ‘자마’, ‘샤마’ 등에 더 가깝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Nasralla도 규정을 따라 적으면 ‘*나스라야’가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마치 *Nasraya로 쓴 것처럼 [*nasˈraʝa]로 발음되지 않고 *Nasrala로 쓴 것처럼 [nasˈrala] ‘나스랄라’로 발음된다. 이 성씨는 아랍어 نصر الله Naṣru llāh ‘나스룰라’~Naṣr Allāh ‘나스랄라’에서 왔기 때문이다. 고전 아랍어식으로 격어미까지 갖춘 형태는 Naṣru llāhi ‘나스룰라히’라서 페르시아어 등 다른 언어에는 ‘나스룰라’ 비슷한 형태로 전해졌지만 격어미를 쓰지 않는 현대 문어체 아랍어에서는 ‘나스랄라’ 정도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살바도르 나스랄라는 레바논계이다.
티토 아스푸라(Tito Asfura)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나스리 아스푸라(Nasry Asfura)도 이름이 아랍어 نصري عصفورة Naṣrī ʿAṣfūrah ‘나스리 아스푸라’에서 왔다. 그의 부모는 팔레스타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웃하는 엘살바도르의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Nayib Bukele [naˈʝiβ̞ buˈkele])도 팔렌스타인계이다. 그의 이름은 아랍어 نجيب بقيلة Najīb Buqaylah ‘나지브 부카일라’에서 왔다. 팔레스타인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문어체 아랍어의 Buqaylah가 Bqēle ‘브켈레’ 정도로 발음된다. 팔레스타인 아랍어에서 j는 [ʒ]나 [ʤ]로 발음되는데 에스파냐어에는 없는 음이니 y /ʝ/로 흉내내서 Nayib가 되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엘살바도르 대통령을 지냈던 안토니오 사카(Antonio Saca [anˈtonjo ˈsaka])도 팔레스타인계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당시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많은 이들이 라틴아메리카로 이민했기 때문에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인명에서 아랍어식 이름을 흔히 접할 수 있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냈던 카를로스 메넴(Carlos Menem)는 시리아계이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을 지냈던 미셰우 테메르(Michel Temer)는 레바논계이다.
콜롬비아 가수 샤키라(Shakira)는 레바논계로 이름이 아랍어 شاكرة Shākirah ‘샤키라’에서 왔다. 예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에스파냐어 고유 어휘에서는 쓰지 않는 [ʃ] 음을 철자 sh로 써서 [ʃaˈkiɾa] ‘샤키라’로 발음한다. 에스파냐어 표기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면 ‘*사키라’로 적게 되겠지만 다행히 그런 경우는 없는 듯하다.
멕시코 배우 살마 하예크(Salma Hayek)도 레바논계이다. 에스파냐어의 철자 h는 보통 묵음이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라 적으면 ‘아예크’이지만 아랍어에서 온 Hayek에서는 마치 *Jayek로 적은 것처럼 [ˈxaʝek] ‘하예크’로 발음한다. 문어체 아랍어 성씨 حائك Ḥāʾik ‘하이크’는 레바논 구어체 아랍어에서 حايك Ḥāyek ‘하예크’ 정도로 발음한다. 이처럼 차용어에서 h가 [x]로 발음되는 경우에는 ‘ㅎ’으로 적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에스파냐어는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매우 규칙적이라서 보통 한글 표기를 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지만 이처럼 차용어에서는 발음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