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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모든 문자를 전산 환경에서 일관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 표준인 유니코드의 최신 버전인 유니코드 17.0이 9월 9일 발표되었다. 유니코드 17.0에는 시데(Sidetic) 문자, 톨롱 시키(Tolong Siki) 문자, 베리아 에르페(Beria Erfe) 문자, 따이 요(Tai Yo) 문자 등 지금까지 유니코드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자 네 개가 새롭게 지원된다.
시데(Sidetic) 문자는 아나톨리아 서남부,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있었던 고대 도시 시데(Side)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쓰였던 인도·유럽 어족 아나톨리아 어파 언어인 시데어(Sidetic language)를 기록했던 문자이다. 시데에서 발견된 주화와 비문을 통해서 알려졌다. 지금까지 31자 정도가 확인되었는데 시데어와 그리스어가 나란히 쓰인 비문을 통해 일부 해독되었으며 유니코드 17.0에는 우선 지위가 확실한 26자가 포함되었다.
아나톨리아 어파에 속하는 프리기아(Phrygian) 문자, 리디아(Lydian) 문자, 리키아(Lycia) 문자, 카리아(Carian) 문자 등이 그리스 문자와 상당히 닮은 데 비해 시데 문자는 자형이 상당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리스 문자가 아니라 아람 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톨롱 시키(Tolong Siki) 문자는 인도 동부에서 200만 명 정도의 화자가 쓰고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등에서도 쓰이는 드라비다 어족 언어인 쿠루흐(Kurukh, कुँड़ुख़ Kuṁṛux [kũɽux])어를 적기 위해 1999년에 인도 자르칸드주의 나라얀 오라온(Narayan Oraon, 힌디어: नारायण उराँव Nārāyaṇa Urām̐va)라는 의사가 고안한 문자이다. 인도의 자르칸드주와 서벵골주에서 널리 쓰인다.
드라비다 어족에 속하는 텔루구어, 타밀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 등은 대부분 인도 남부에서 쓰이지만 쿠루흐어는 힌디어, 벵골어, 오디아어 등 인도·유럽 어족 인도 어파에 속하는 언어에 둘러싸인 북부에서 쓰이는 것이 흥미롭다. 쿠루흐어는 데바나가리 문자나 오디아어를 적는 오디아 문자로 적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쿠루흐어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독자적인 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톨롱 시키 문자가 발명되었다.
그런데 쿠루흐어를 적기 위해 개발된 문자로는 또 1991년에 인도 오디샤주의 바수데오 람 칼코(Basudeo Ram Khalkho, 힌디어: बासुदेव राम खलखो Bāsudeva Rāma Khalakho)라는 이가 고안한 쿠루흐 반나(Kurukh Banna, Kũṛux Bannā) 문자도 있다. 오디샤주에서 주로 쓰이며 자르칸드주에서도 일부 쓰인다고 한다. 쿠루흐 반나 문자는 힌디어에 쓰이는 데바나가리 문자를 비롯한 브라흐미 문자를 모형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음을 보통 자음 자모에 붙이는 기호로 나타내며 모음 기호가 없는 자음 자모는 내재 모음이 뒤따를 수 있다. 그에 비해 톨롱 시키 문자는 한글이나 로마자처럼 모든 자음과 모음을 자모로 적는 음소 문자이다. 쿠루흐 반나 문자도 유니코드에 포함시키기 위한 제안이 올라왔지만 아직 승인되지 않아 유니코드 17.0에는 톨롱 시키 문자만 추가되었다.
베리아 에르페(Beria Erfe) 문자는 아프리카 중북부의 수단 서부와 차드 동부에 걸친 지역에서 자가와(Zaghawa)인이 쓰는 나일·사하라 어족 언어인 자가와(Zaghawa)어를 적기 위해 1950년대에 수단의 교사 아담 타지르(Adam Tajir)가 고안했다. 그는 낙타를 비롯한 가축에 찍는 낙인에 쓰이는 자가와 전통 기호를 토대로 했다. 원래는 아랍 문자에서 쓰이는 자모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000년에는 차드의 시디크 아담 이사(Siddick Adam Issa)라는 수의사가 자가와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 문자를 대폭 개정하였고 컴퓨터로 쓸 수 있게 했다.
베리아 에르페 문자도 톨롱 시키 문자처럼 모든 자음과 모음을 자모로 적는 음소 문자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아랍 문자와 달리 로마자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며 로마자처럼 대문자와 소문자가 구별되는데 대문자와 소문자의 윗쪽 기준선이 맞춰진 대신 대문자는 소문자의 아랫쪽 기준선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 특이하다. 로마자의 대문자와 소문자는 대부분 아랫쪽 기준선이 맞춰져 있는 것과 반대이다.
종족명 자가와는 아랍어 زغاوة Zaghāwah ‘자가와’에서 온 이름이고 스스로는 베리(Beri)라고 부른다. 언어는 ‘입’을 뜻하는 -a를 붙여서 베리아(Beria)라고 부른다. 수단 쪽 방언에서는 이를 베라(Bera)라고 발음하기도 하지만 유니코드에서는 Beria를 대표형으로 삼기로 했다. 에르페(erfe)는 ‘낙인 표시’를 뜻한다. 자가와어로는 단순한 낙인 표시와 구별하기 위해 ‘글’을 뜻하는 기라이(giray)를 써서 문자를 베리아 기라이 에르페(Beria Giray Erfe)라고 부르지만 유니코드에서는 베리아 에르페(Beria Erfe)로 줄여 부르기로 했다.
따이 요(Tai Yo) 문자는 예전에 베트남 북부 응에안(Nghệ An)성과 타인호아(Thanh Hóa)성에서 주로 사는 30만 명 가까이 되는 따이 요(Tai Yo)족의 끄라·다이 어족 따이 어파 언어인 따이요(Tai Yo)어를 적었던 문자이다. 크메르 문자에서 유래했으므로 같은 따이 어파에 속하는 타이어와 라오어를 적는 타이 문자나 라오 문자와 기원이 같지만 독특한 점은 원래의 한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세로쓰기를 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한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옛 문서를 보면 제목을 한문으로 쓴 것이 많고 한문을 주석처럼 덧붙인 것도 발견된다. 세로쓰기를 하다 보니 타이 문자나 라오 문자 등과 달리 모음 기호가 자음 밑에 붙는다. 다만 자음자 모양에 따라 모음 기호가 오른쪽에 붙는 경우도 있다. 궁극적으로 브라흐미계 문자에서 유래한 크메르 문자 및 타이 문자, 라오 문자 등 동남아시아 여러 문자에서는 모음 기호가 자음자 앞이나 위에 붙기도 하고 자음자를 둘러싸기도 하는 것과 대조된다.
그런데 따이 요 문자는 노년층 일부가 읽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을 뿐 오늘날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 베트남에서는 따이 요어를 보통 베트남식 로마자로 쓴다. 하지만 전통 문자를 읽을 수 있도록 젊은 세대에게 가르치려는 노력도 있다고 한다.
따이 요 문자를 따이 요어로는 라이 따이(Lai Tay) 즉 ‘따이 문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유니코드에서는 따이 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적는 다른 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따이 요(Tai Yo)라고 부른다. 이는 따이 탐(Tai Tham) 문자, 따이 비엣(Tai Viet) 문자, 따이 러(Tai Le) 문자 등 비슷한 문자의 명칭에서도 쓰는 방식이다.
베트남 응에안성과 라오스 일부에서는 따이 빠오(Tai Pao)어가 쓰이는데 언어학자들은 따이 빠오어와 따이 요어는 원래 같은 언어에서 갈라져 나온 두 방언으로 취급한다. 따이 빠오어는 예전에 라이 빠오(Lai Pao)라는 문자로 썼는데 이것도 유니코드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대신 라이 빠오 문자는 세로쓰기를 하지 않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문자이다.
따이 요를 베트남어로는 Tay Dọ ‘따이 조’ 또는 Thái Yo ‘타이 요’, 타이어로는 ไทญ้อ Thai Yo ‘타이 요’라고 한다. 라이 따이(Lai Tay)의 따이 요 문자 표기를 보면 따이의 첫 음이 th [tʰ] ‘ㅌ’가 아니라 t [t] ‘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따이 어파 언어 대부분은 민족명의 첫 음을 [t] ‘ㄸ’ 또는 [d] ‘ㄷ’로 발음하는데 타이어와 라오어에서는 이게 [tʰ]로 바뀌어 ‘타이’가 되었다.
타이어의 ญ้อ Yo에서 첫 음은 타이어로 y [j]이지만 라오어로는 ຍ gn [ɲ]에 해당되므로 Yo의 원어 발음은 사실 gno ‘뇨’일 가능성이 있다. 타이어에서는 원래의 [ɲ]가 [j]로 변했다. 타이어나 베트남어에는 [ɲ] 음이 없지만 따이 요어에서는 [ɲ]가 쓰인다. 하지만 Yo를 타이 요 문자로 어떻게 쓰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니 일단 로마자 표기에 따라 ‘요’로 표기했다. 참고로 베트남어의 d는 방언에 따라 [z~ʑ~ʝ~j] 등으로 발음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ㅈ’으로 적게 했지만 방언에 따라 Tay Dọ는 ‘따이 조’ 외에 ‘따이 요’로 발음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