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프랑스령 누벨칼레도니 독립 운동 지도자 크리스티앙 테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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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항소 법원은 6월 12일 남태평양 서부에 있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 누벨칼레도니의 독립 운동 지도자 크리스티앙 테앵(Christian Tein [kʁistjɑ̃ teɛ̃], 1968년생)의 석방을 명령했다. 그는 적어도 열세 명이 목숨을 잃은 2024년 5월 누벨칼레도니 소요 사태 때 폭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6월부터 프랑스 본토에 구금되어 왔다. 대신 법원은 그가 누벨칼레도니로 돌어가거나 다른 용의자들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검찰은 석방 결정에 대한 항소를 제기했다.

테앵은 누벨칼레도니 원주민인 카나크(Kanak)인이다. 카나크는 남도 어족(오스트로네시아 어족) 누벨칼레도니 어군에 속하는 30개 정도의 언어를 쓰는 멜라네시아계 주민을 이른다. 약 3000년 전부터 누벨칼레도니에 주거의 흔적이 남아있다. 1952년, 누벨칼레도니의 주섬인 그랑드테르(Grande Terre [ɡʁɑ̃d-tɛʁ])섬에서 기원전 800년경의 취락 유적이 발견되었다. 현지 카나크인의 언어인 하베케(Haveke)어로 ‘구멍을 파다’ 또는 ‘파는 곳’을 뜻하는 xapeta’a ‘하페타아’가 와전되어 유적에는 Lapita ‘라피타’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략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뉴기니섬 동북쪽 비스마르크 제도부터 누벨칼레도니와 피지, 통가, 사모아 등에까지 퍼진 신석기 문화를 오늘날 라피타 문화라고 부른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ˈʤeɪ̯mz ˈkʊk], 1728~1779)이 스코틀랜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스코틀랜드의 라틴어 이름 Caledonia ‘칼레도니아’를 따서 New Caledonia [ˈnjuː-ˌkælᵻˈdoʊ̯niə] ‘뉴캘리도니아’라고 이름붙인 섬의 무리는 1853년에 프랑스에 정복되어 프랑스어식으로 Nouvelle-Calédonie [nuvɛl-kaledɔni] ‘누벨칼레도니’라고 부르는 식민지가 되었다. 1864년부터 1897년까지 프랑스는 누벨칼레도니를 유배지로 삼아 약 2만2000명의 죄수를 보냈다. 여기에는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파리를 장악하여 두 달 동안 혁명 정부를 세웠다가 진압된 이른바 파리 코뮌에 가담한 정치범도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유럽계 주민의 본격적인 정착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6년 누벨칼레도니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격상되었으며 이에 따라 카나크인들도 몇 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프랑스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이 무렵 니켈 붐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정부의 장려로 이웃한 프랑스령 섬 무리인 왈리스 푸투나(Wallis & Futuna [walis futuna])를 비롯한 곳에서 많은 이들이 누벨칼레도니의 니켈 광산에서 일하러 이주하였다. 이를 통한 전후 인구 성장으로 카나크인은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2019년 인구 통계에 의하면 누벨칼레도니 주민의 41.2%는 원주민인 카나크인이고 24.1%는 유럽인, 8.3%는 왈리스 푸투나인, 2%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인 등이다. 즉 단일 민족으로 치면 가장 큰 집단이지만 전체 인구의 과반은 아니다. 프랑스 본토의 지구 거의 반대편에 있고 주민 25만 명으로 유엔이 지정한 비자치 지역 목록(List of Non-Self-Governing Territories) 가운데 서사하라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지만 지금까지 독립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유럽인의 도래 이후 전염병으로 카나크인 인구는 크게 감소하였으며 대대로 살던 땅의 대부분을 내주고 할당된 구역에만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이 제한은 1950년대에야 풀렸다). 19세기에는 농장과 광산 등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는 등 생활 조건이 악화되었다. 1878년에 카나크인 지도자 아타이(Ataï [atai])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머리는 프랑스에 보내져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2014년에야 누벨칼레도니에 송환되어 2021년에 카나크인 매장지에 영구 안치되었다.

20세기에도 프랑스의 통치에 대한 카나크인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종종 유혈 사태로 번지고는 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누벨칼레도니의 수도 누메아(Nouméa [numea])에서 체결된 누메아 협정으로 프랑스는 누벨칼레도니의 자치권을 향상시키고 추후에 세 차례에 걸친 독립 찬반 투표를 시행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그러나 2018년에 열린 독립 찬반 투표는 56%의 반대표로 독립이 무산되었고 2020년과 2021년에 시행된 2차와 3차 투표도 결과가 같았다. 카나크인은 독립 지지, 다른 이들은 독립 반대로 극명하게 갈렸다. 코로나19 범유행 당시 치른 3차 투표는 독립 지지자들이 보이콧하여 독립 반대파의 압승으로 끝났는데 독립 지지자들은 3차 투표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긴장 속에서 2024년에 프랑스 정부는 10년 이상 거주한 프랑스 시민은 누구나 누벨칼레도니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다. 누메아 협정은 1998년 이전부터 누벨칼레도니에 살았던 주민과 그 후손으로 선거권을 제한했는데 프랑스 정부는 공평성에 어긋난다며 이를 뒤집으려 한 것이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1998년 이후에 프랑스 본토와 폴리네시아 등지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선거권을 얻어 선거권자 중 카나크인의 비율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에 반대하는 카나크인들은 시위를 벌였고 5월 13일에 누메아에서 방화, 약탈 등 폭력 사태가 일어나 됭베아(Dumbéa [dœ̃bea]), 르몽도르(Le Mont-Dore [lə-mɔ̃-dɔʁ]) 등 인근 소도시로도 확산되었다. 14일 밤 통금령에 이어 16일에는 비상 사태가 선포되고 프랑스 군이 투입되었다. 비상 사태는 5월 28일에야 해제되었지만 그 후에도 소요는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 6월 19일 카나크 독립 운동 단체인 현장 투쟁 연계 세포(Cellule de coordination des actions de terrain, CCAT)의 대변인 크리스티앙 테앵을 비롯한 여러 분리 독립주의자들이 폭력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10월에 미셸 바르니에(Michel Barnier [miʃɛl baʁnje]) 당시 프랑스 총리는 사태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선거권 개정안을 폐기했고 12월에야 통금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되었다.

누벨칼레도니 어군 또는 카나크 어군에 속하는 언어는 원래 30여 개 정도였으나 오늘날 28개만 남아있으며 몇몇 언어는 화자가 얼마 남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제후(drehu)어, 넹오네(nengone)어, 파이치(paicî)어, 하라츠(xârâcùù)어, 아지어(ajië)어 등이다(언어 이름은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무시하고 철자로부터 짐작되는 원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했다). 자료에 따라 제후어 철자에서 dr는 치음 d /d̪/와 구별되는 치조음 /d/이나 권설음 /ɖ/를 나타낸다고 하는 곳도 있으니 drehu를 ‘데후’라고 적을 수도 있겠지만 파찰음 /ʤ/로 발음된다는 곳도 있으며 다음 동영상에서는 drehu를 ‘제후’ 비슷하게 발음하므로 여기서는 일단 ‘제후’로 적었다.

다음 제후어 동영상에서도 dr, tr를 파찰음으로 발음한다.

흥미롭게도 로마자 dr, tr 등으로 적는 음이 방언에 따라 폐쇄음이나 파찰음으로 발음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언어에서도 볼 수 있다. 베트남어 성씨 Trần도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북부 하노이 방언 [ʨə̀n]에 따라 ‘쩐’으로 적지만 중부 후에나 남부 호찌민시 방언으로는 [ʈə̀ŋ] ‘떵’에 가깝게 발음된다. 통용 로마자 Tashi 또는 Trashi로 적는 티베트어 이름 བཀྲ་ཤིས་ bkra shis는 오늘날 라싸 발음으로는 파찰음 [ʦ̢]를 써서 [ʦ̢ə́ɕî] ‘짜시’ 정도로 발음되지만 디아스포라 티베트인들의 발음에서는 폐쇄음 [ʈ]를 쓴 ‘따시’ 가까운 발음이 많이 쓰이는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소도시 됭베아는 ndrumbea 또는 drubea, dubea 등으로 쓰는 부족 및 언어 이름에서 따왔는데 dr는 비음이 선행되는 폐쇄음 [ᶯɖ]로 발음된다고 하니 프랑스어로 Dumbéa [dœ̃bea]가 된 듯하다. b도 비음이 선행되는 [ᵐb]를 나타낸다고 하니 ndrumbea~drubea~dubea는 같은 이름이 철자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쓰이는 것으로 보고 ‘둠베아’ 정도로 쓸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이름에서 수도 누메아(Nouméa)의 이름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둠베아어와 매우 가까운 numèè ‘누메’라고 하는 언어도 있지만 누메아에서 한때 쓰였던 언어는 누메어가 아니라 둠베아어이다.

paicî [paicĩ]의 î, xârâcùù [xɑ̃rɑ̃ʧɨː]의 â는 각각 /ĩ/, /ɑ̃/ 등 비음화된 모음을 나타내지만 폐쇄음이나 파찰음이 따르지 않는 이상 비음화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서는 무시할 수 있을 듯하다. 프랑스어로도 paicî는 [pajtʃi] ‘파이치’ 정도로 흉내낸다. 하지만 지명 Poindimié [pwɛ̃dimje] ‘푸앵디미에’의 파이치어 이름인 Pwêêdi Wiimîâ에서처럼 비음화된 모음 êê /ẽː/가 폐쇄음 앞에 오는 경우 비음이 삽입되는 듯하니 받침 ‘ㄴ’을 붙여서 ‘프웬디위미아’로 표기할 수 있겠다.

하라츠어의 ù /ɨ/나 파이치어의 ù /ɯ/는 루마니아어의 â나 î, 베트남어의 ư처럼 ‘으’로 적을 수 있으며 파이치어와 아지어어의 ë /ʌ/, 제후어의 ö /ʌ/는 영어의 STRUT 모음처럼 ‘어’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카나크 제어는 이웃하는 폴리네시아 제어와 달리 모음 체계가 상당히 복잡하다. 특히 /ɨ~ɯ/ ‘으’나 /ʌ/ ‘어’ 같은 모음은 프랑스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카나크 제어에서 유래한 지명이나 인명의 프랑스어 형태는 원어의 발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프랑스어 형태만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글 표기는 이를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누벨칼레도니 출신 유명인으로 전 프랑스 축구 선수 크리스티앙 카랑뵈(Christian Karembeu [kʁistjɑ̃ kaʁɑ̃bø], 1970년생)가 있다. 그의 전 부인인 체코계 슬로바키아 모델 아드리아나 스클레나르지코바(Adriana Sklenaříková, 1971년생) 역시 한동안 아드리아나 카랑뵈(Adriana Karembeu)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카랑뵈는 하라츠어로 ‘성낸 사람’을 뜻한다고 하지만 원어 발음에 따른 표기는 찾기 힘들다.

크리스티앙 테앵은 누벨칼레도니 우앵(Ouen [wɛ̃])섬 출신이라고 하는데 우앵섬은 앞에서 언급한 누메(numèè)어가 쓰이는 지역이고 누메어로는 우앵섬을 Ngwêê ‘응웨’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êê로 적는 어말 비음화된 모음을 프랑스어에서도 흉내낸 듯하다(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글 표기에서는 무시하고 ‘응웨’라고 적었다). 프랑스어 지명으로 흔한 Saint-Ouen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프랑스어로 Saint-Ouen은 지역에 따라 [sɛ̃-t‿wɛ̃] ‘생투앵’ 또는 [sɛ̃-t‿wɑ̃] ‘생투앙’으로 발음된다(파리 근교의 Saint-Ouen은 ‘생투앵’, 루아르에셰르주나 노르망디 지방의 Saint-Ouen은 ‘생투앙’이다).

Tein이라는 성이 누메어에서 온 것이라면 이것도 어말 비음화된 모음을 프랑스어로 흉내낸 것일 수 있다. 대신 구강 모음 [e] ‘에’와 비음화된 모음 [ɛ̃] ‘앵’으로 나누어 [teɛ̃] ‘테앵’으로 발음하는 것이 특이하다. 누벨칼레도니 방송에서 이 발음을 쓴다.

이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어 화자들은 대부분 한 음절 [tɛ̃] ‘탱’으로 발음한다.

올바른 발음을 짐작하기 더 쉬운 철자인 Téin도 보이고 현지 프랑스어 매체에서도 Tein과 Téin이 혼용되지만 Tein이 더 우세해 보인다.

참고로 프랑스어의 비음화된 모음 /ɛ̃/은 오늘날 파리식 프랑스어에서 [æ̃] 정도로 하강하여 ‘앙’으로 들리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전통 발음에 가깝게 ‘앵’으로 적는다. 그러니 [teɛ̃]은 사실 ‘떼앙’, [tɛ̃]은 ‘땅’ 비슷하게 들린다. 파리식 프랑스어에서 /ɑ̃/은 [ɒ̃] 정도로 발음되어 ‘엉’ 비슷하게 들리므로 Christian [kʁistjɑ̃]은 ‘크리스띠엉’ 정도로 들릴 수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크리스티앙’으로 적는다.

‘카나크’라는 이름은 원래 하와이어로 ‘사람’을 뜻하는 kanaka ‘카나카’에서 유래한 말로 19세기에 오세아니아 전역에 퍼졌으며 프랑스어로는 초기에 Canaque [kanak] ‘카나크’라고 썼다. 처음에는 비하하는 표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누벨칼레도니 원주민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쓰는 이름이 되었으며 철자도 Kanak로 바꾸었다. 1980년대에는 독립 지지자들 가운데서 누벨칼레도니라는 이름 대신 카나키(Kanaky [kanaki])를 쓰자는 주장이 나왔다. 카나키누벨칼레도니(Kanaky-Nouvelle-Calédonie), 누벨카나키(Nouvelle-Kanaky) 같은 혼합 이름도 제안되었다.

정치적으로 누벨칼레도니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누메아 협정이 어떻게 대체될 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인구 비율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완전 독립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카나크인의 언어와 문화만은 제대로 보존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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