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가 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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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시카고 출신으로 오랫동안 페루에서 선교 생활을 하면서 페루 국적도 취득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ˈɹɒbəɹt ˈfɹæˑnsᵻs ˈpɹiːvoʊ̯st], 1955~)가 레오 14세라는 이름으로 새 교황이 된 것이다. 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에 아메리카주 출신 둘째 교황이자 최초의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른 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인파 앞에 나온 프랑스 출신 도미니크 망베르티(Dominique Mamberti [dɔminik mɑ̃bɛʁti]) 추기경이 라틴어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Robertum Franciscum, Sanctae Romane Ecclesiae Cardinalem Prevost, qui sibi nomen imposuit Leonem Decimum Quartum

여러분에게 큰 기쁨을 전합니다.
우리는 교황님을 모셨습니다.
거룩한 로마 교회의 가장 저명하고 공경하는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께서는 스스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새 교황 레오 14세가 나와 이탈리아어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중간에 에스파냐어로도 인사를 하면서 페루에서 섬겼던 치클라요(Chiclayo) 교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영어와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외에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도 구사하며 라틴어와 독일어도 독해할 수 있다고 한다.

망베르티는 선언문을 라틴어로 낭독하면서 Robertum Franciscum Prevost를 교회 라틴어식으로 ‘로베르툼 프란치스쿰 프레보스트’로 발음했다. 이 이름은 대격형으로 주격형은 Robertus Franciscus Prevost ‘로베르투스 프란치스쿠스 프레보스트’가 된다. 천주교에서 쓰는 성인 이름 표기에 따라 적으면 ‘로베르토 프란치스코 프레보스트’로 쓸 수 있겠다.

원래의 영어 이름은 Robert Francis Prevost [ˈɹɒbəɹt ˈfɹæˑnsᵻs ˈpɹiːvoʊ̯st]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이다. 그런데 그의 교황 선출을 보도한 영어권 언론에서도 Prevost의 발음에 대한 혼란을 볼 수 있었다.

한 BBC 방송 기자는 [ˈpɹɛvɔːst] ‘프레보스트’라고 발음했다.

또 CBS 시카고 방송 진행자는 [ˈpɹeɪ̯voʊ̯st] ‘프레이보스트’라고 발음했다(다만 이 발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개음절 e가 [eɪ̯]로 발음되는 것은 ‘에’로 적어서 ‘프레보스트’로 표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쓰는 발음은 [ˈpɹiːvoʊ̯st] ‘프리보스트’인 듯하다. 아직까지 본인 발음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선출 직후 CBS 보스턴 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옛 급우는 이 발음을 쓴다.

또 시카고 지역에 사는 그의 친형 존 프리보스트(John Prevost [ˈʤɒn ˈpɹiːvoʊ̯st])를 인터뷰한 WGN 방송 기자도 이 발음을 쓴다.

플로리다주에 사는 다른 친형 루 프리보스트(Lou Prevost [ˈluː ˈpɹiːvoʊ̯st])를 인터뷰한 CBS 탬파베이 방송 기자도 같은 발음을 쓴다.

그러니 본인 발음에 따른 표기는 ‘프리보스트’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 추가: 본인이 이름을 [ˈpɹiːvoʊ̯st] ‘프리보스트’로 발음하는 동영상도 찾았다.

그의 성은 프랑스어 Prévost [pʁevo] ‘프레보’에서 나왔을 것이다. 레오 14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계와 프랑스계라고 한다. 이 성을 쓴 인물로는 ‘프레보 신부’라는 뜻의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 [abe pʁevo])라고 흔히 불리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신부인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데그질(Antoine François Prévost-d’Exiles [ɑ̃twan fʁɑ̃swa pʁevo-dɛɡzil], 1697~1763),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레보(Marcel Prévost [maʁsɛl pʁevo], 1862~1941), 프랑스 소설가 장 프레보(Jean Prévost [ʒɑ̃ pʁevo], 1901~1944) 등이 유명하다.

Prévost는 원래 라틴어로 ‘앞에 배치된 이’를 뜻하는 책임자 칭호 praepositus ‘프라이포시투스’에서 나왔다. 예전에는 프랑스어에서도 ‘프레보스트’로 발음되었겠지만 s와 t가 차례로 묵음이 되면서 발음이 [pʁevo] ‘프레보’가 되었다. 현대 프랑스어에서 일반 명사로 쓰는 철자는 prévôt [pʁevo] ‘프레보’이며 ô를 써서 o 뒤에 s가 탈락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레오 14세의 어머니는 혼인 전 성이 마티네즈(Martinez [mɑːɹˈtiːnɛz])였는데 에스파냐어 Martínez ‘마르티네스’에서 나왔다. 그의 아버지, 즉 레오 14세의 외할아버지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었고 그의 어머니, 즉 레오 14세의 외할머니는 미국 뉴올리언스 크리올인으로 원래 성은 Baquié,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bakje] ‘바키에’였다. 같은 성을 쓰는 미국인의 영어 발음은 [ˈbɑːkieɪ̯] ‘바키에이’로 관찰된다(다만 한글로 표기한다면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어말 é [eɪ̯]는 ‘에’로 적어서 ‘바키에’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둘 다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었다.

Prevost는 프랑스어에서 나온 이름이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원어를 흉내내어 [ˈpɹiːvoʊ̯] ‘프리보’ 또는 [ˈpɹeɪ̯voʊ̯] ‘프레이보’로 발음하는 것도 흔한데 레오 14세에 대한 보도에서는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새 교황 선출을 선언한 프랑스 출신 추기경은 이를 라틴어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프레보스트’라고 발음했고 설령 프랑스어로 했다고 해도 영어 발음을 존중하여 [pʁevɔst] ‘프레보스트’ 정도의 발음을 썼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새 교황 발표 직후 Prevost의 표기가 ‘프레보스트’와 ‘프리보스트’가 혼용되었지만 아마도 앞으로 ‘프리보스트’로 통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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