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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튀르키예 중북부 보아즈칼레(Boğazkale) 근처에 있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사(Ḫattuša) 유적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인도·유럽 어족 언어가 새로 발견되었다고 지난달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이 발표했다.
이 발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히타이트어와 아나톨리아 어파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청동기 시대 후기인 기원전 1650~1180년 무렵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북부를 지배한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들여온 설형 문자(쐐기 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설형 문자는 원래 수메르 문명의 언어인 수메르어를 적던 문자로 에블라어, 엘람어, 후리어, 우라르투어 등 고대 근동 지역의 여러 언어에 퍼졌으며 특히 아카드 제국 및 그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언어로서 고대 근동의 교통어 역할을 한 아카드어도 설형 문자로 적었다. 19세기 유럽 학자들은 아카드어 설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학계에서는 보아즈쾨이(Boğazköy)라는 옛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보아즈칼레 근처의 하투사 유적에서도 1906년 독일 발굴단에 의해 설형 문자로 된 기록이 발견되었다. 각 기호는 이미 해독된 음가를 대입하여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언어는 알 수 없었다. 그 수수께끼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오스만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이를 연구한 체코인 근동학자 베드르지흐 흐로즈니(Bedřich Hrozný, 1879~1952)에 의해 풀렸다. 그는 히타이트 제국이 남긴 기록이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흐로즈니는 히타이트 설형 문자의 𒉿𒀀𒋻 wa-a-tar (wātar)를 보고 그가 잘 아는 독일어로 ‘물’을 뜻하는 Wasser [ˈvasɐ] ‘바서’와 동계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의 water [ˈwɔːt.əɹ] ‘워터’도 동계어이며 모두 인도 유럽 조어 *wódr̥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 독일어를 포함하여 유럽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언어와 이란, 남아시아 등에서 쓰이는 여러 언어가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다. 하지만 설형 문자로 쓰인 아카드어와 에블라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처럼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셈 어파에 속했으며 수메르어, 엘람어 등은 계통이 같은 언어가 알려지지 않은 외톨이 언어였으니 설형 문자로 쓰인 인도·유럽어가 발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언어는 히타이트어로 불리게 되었다.
히타이트어가 인도·유럽 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은 인도·유럽 조어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fɛʁdinɑ̃ də sosyːʁ], 1857~1913)가 세운 성문음 가설(laryngeal theory)은 히타이트어의 발견으로 인해 증명되었다. 소쉬르는 인도·유럽 어족에서 발견되는 겉보기에 불규칙적인 듯한 모음 대응이 오늘날 사라진 성문음 세 종류가 남긴 흔적이라는 가설을 세웠는데 히타이트어에는 그가 성문음을 예측한 자리에 설형 문자의 로마자 표기에서 통상적으로 ḫ로 적는 음이 실제로 나타났다.
히타이트어가 해독된 이후 그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 계통이 같은 다른 언어들도 발견되었다. 히타이트인들은 그들의 제국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종교 의식을 충실히 기록했는데 거기에 쓰인 주문도 원어 그대로 설형 문자로 옮겼다. 그래서 중앙아나톨리아 동남부와 서아나톨리아에서 폭넓게 쓰인 것으로 보이는 루위야(Luwiya) 지역의 루위아어(Luwian), 중앙아나톨리아 서북부의 팔라(Palā) 지역에서 쓰인 팔라어(Palaic) 등이 발견되었다. 루위아어는 점토판에 쓰인 설형 문자 외에 비문, 인장에 쓰인 독자적인 상형 문자로도 기록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어파로 분류한다.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 이후 후대에 그리스 문자로 쓰여진 리디아어(Lydian), 카리아어(Carian), 리키아어(Lycian) 등도 아나톨리아 어파로 분류되지만 고대 이후에는 종적을 감추어 오늘날에는 이 어파에 속하는 언어가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
이번에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하투사 발굴 조사를 통해 새로 발견된 언어는 칼라스마(Kalašma)라는 지역의 언어로서 루위아어와 팔라어처럼 히타이트인들이 남긴 종교 의식 기록 속에 주문이 보존된 것이다. 칼라스마는 히타이트 중심부의 서북쪽 변두리에 있던 지역으로 오늘날의 볼루(Bolu) 또는 게레데(Gerede) 부근으로 생각된다.
아나톨리아 어파 전문가인 마르부르크 대학의 엘리자베트 리켄(Elisabeth Rieken [eˈliːzabɛt ˈʁiːkn̩], 1965~)에 따르면 칼라스마어(Kalasmaic)는 아직 해독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나톨리아 어파에 속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으며 팔라어가 쓰인 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오히려 루위아어와 비슷한 특징을 더 많이 보이는 듯한다고 한다. 정확한 계통에 대한 연구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아쉽게도 발견된 글의 분량이나 그 계통을 밝혀주는 특징 등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내년 초에 학회를 통해 자세한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 하투사(Ḫattuša), 칼라스마(Kalašma)의 š를 그냥 s처럼 취급하여 ‘ㅅ’으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띌 것이다.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등에서 š는 영어의 sh처럼 무성 후치경 마찰음 [ʃ]를 나타내는 기호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ʃ]로 발음된다고 치면 ‘하투샤’, ‘칼라슈마’로 적어야 한다. 그러나 히타이트어에서는 š가 [s]에 가까운 음으로 발음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정은 이러하다. 19세기에 설형 문자로 쓰인 아카드어가 처음 해독되었을 때 로마자 표기는 같은 셈 어파 언어인 히브리어에서 대응되는 음에 쓰인 발음을 대체로 따랐다. 그래서 히브리어 자모 신(ש, šîn)에 대응되는 아카드어 음은 š로 적게 되었다. 사실 히브리어 ש는 [ʃ]와 [s]를 둘 다 나타냈기 때문에 점을 찍어서 שׁ š [ʃ], שׂ s [s]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아카드어에서는 둘 다 š에 대응된다. 한편 히브리어에서 [s]로 발음되는 자모 사메크(ס, sâmeḵ)에 대응되는 아카드어 음은 s로 적는다.
그런데 아카드어처럼 고대에 기록된 언어에서 이들 음이 실제 어떻게 발음되었는지, 나아가서 셈 어파에 속하는 언어의 공통 조어인 셈 조어에서는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는 확실히 알기 힘들다. 셈 어파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비교해서 밝혀진 바로는 히브리어 שׁ š는 셈 조어의 *š와 *ṯ가 합친 음이고 שׂ s는 셈 조어 *ś에서 나온 것이다. 즉 שׁ š와 שׂ s에 둘 다 대응되는 아카드어 š는 셈 조어의 *š, *ṯ, *ś가 합쳐진 것이다. 히브리어 ס s와 아카드어 s는 그대로 셈 조어 *s에서 내려왔다.
여기서 *ṯ는 영어 thing의 첫 자음처럼 무성 치 마찰음 [θ]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셈 조어 *s, *š, *ś의 원래 음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전통적으로는 히브리어 발음의 영향을 받아 *s는 [s], *š는 [ʃ], *ś는 웨일스어 ll의 발음과 같은 무성 치경 설측 마찰음 [ɬ]로 해석되었지만 요즘은 *s와 *ś가 각각 파찰음 [ʦ], [t͡ɬ]이었고 *š는 [s]였다는 견해도 있다.
설형 문자로 쓰인 수메르어에서도 š와 s의 구별이 있었는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사이의 차용어에서 나타나는 대응을 보면 수메르어의 š와 s는 둘 다 아카드어의 š에 대응되고 오히려 수메르어의 z가 아카드어의 s에 대응된다. 수메르어의 z와 아카드어의 s는 파찰음 [ʦ]를 나타낸 것으로 보통 해석된다.
아카드어의 š는 어땠을까? 아카드어는 남쪽의 바빌로니아어와 북쪽의 아시리아어로 분화했는데 바빌로니아어에서는 š가 [ʃ]로 발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어, 즉 바빌로니아식 아카드어에서 𒀭𒄑𒂆𒈦 Gilgameš로 적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웅은 š를 [ʃ]로 취급하여 영어로 Gilgamesh라고 쓰고 한글 표기도 ‘길가메시’로 쓴다. 흔히 표어 문자 𒀭𒈹 ᵈINANA로 쓰고 표음 문자로는 𒀭𒀹𒁯 ᵈiš₈-tar₂로 적는 사랑의 여신 Ištar 역시 영어로 Ishtar로 쓰고 한글 표기도 ‘이슈타르’이다.
한편 아시리아어에서는 š가 [s]로 발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시리아 고유 명사의 표기에서도 바빌로니아식을 따라서 š는 [ʃ]로 흔히 취급된다. 표어 문자 𒀭𒊹𒆕𒀀 AN-ŠAR₂-DU₃-A 등으로 흔히 적고 Aššur-bāni-apli로 발음되었던 신아시리아 제국 왕의 이름은 영어로 보통 Ashurbanipal이라고 적고 한글로는 ‘아슈르바니팔’로 표기한다.
대신 [ʃ] 음이 따로 없었던 고대 그리스어를 거쳐 전해진 이름에서는 아카드어의 š가 s로 처리된다. 당장 아시리아(Assyria)도 지명 Aššur에서 나온 고대 그리스어 Ἀσσυρία(Assyría)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히타이트어에서는 치찰음 즉 ‘ㅅ’ 비슷한 소리를 내는 음이 하나뿐이어서 설형 문자로는 š로 적었다. 오늘날에는 히타이트어의 š가 [s]로 발음되었다고 보는 일이 흔하다. 그리스어와 같이 보통 치찰음 음소가 하나인 경우 [ㅊ]보다는 [s]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이 경우 실제로는 좀 더 후퇴해서 조음되는 [s̠]가 흔하므로 약간 [ʃ]와 비슷하지만 [s]에 더 가깝다). 인도·유럽 조어에서 재구되는 유일한 치찰음 음소 *s 역시 [s]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집트 상형 문자로 쓰인 히타이트 인명에서 히타이트어 š가 이집트어 s에 대응된다. 히타이트와 인접한 아시리아에서 š가 [s]로 발음되었으니 히타이트어에서 이를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히타이트 고유 명사의 š는 통상적인 방식에 따라 [ʃ]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s]로 취급되는 일이 더 흔하다. Ḫattuša는 영어로 Hattusha로 쓰기도 하지만 Hattusa가 더 많이 쓰인다. Kalašma에서 쓰인 언어 이름도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발표문에서 영어로 *Kalashmaic 대신 Kalasmaic으로 부른다.
이번 발견을 논하는 한 동영상에서는 아나톨리아 어파 학자인 UCLA(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의 토니 예이츠(Tony Yates)가 영어로 Ḫattuša [ˌhɑːt.u.ˈsɑː] ‘하투사’, Kalašma [kə.ˈlɑːz.mə] ‘컬라즈마’로 발음하는 등 š를 일관되게 [s]로 취급한다(후자에서는 영어의 특성상 약하게 발음되는 [m] 앞의 s가 [z]로 유성음화한다).
그러니 영어에서 더 흔한 처리 방식을 흉내내면 히타이트어로 𒌷𒄩𒀜𒌅𒊭 ᵁᴿᵁḫa-at-tú-ša 등으로 적는 Ḫattuša는 ‘하투사’, 𒌷𒅗𒆷𒀸𒈠 ᵁᴿᵁka-la-aš-ma 등으로 적는 Kalašma는 ‘칼라스마’로 적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원어에서는 다양한 이철자가 쓰인다).
하지만 셈어나 이집트어 등 다른 언어를 통해서도 알려진 히타이트 고유 명사 가운데는 통상적으로 š가 [ʃ]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지역에 있던 고대 도시 𒌷𒋼𒀀𒂵𒈩 ᵁᴿᵁkar-ga-miš (Karkamiš)는 고대 히브리어 이름 כַּרְכְּמִישׁ Karkəmîš에 따라 영어로 Carchemish로 적으며 표준 한글 표기는 ‘카르케미시’이다. 한편 히브리어의 š, s를 구별하지 않고 ‘ㅅ’으로 처리하는 한글 성경 표기로는 ‘갈그미스’이다.
히타이트어에서는 g와 k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에 철자 ᵁᴿᵁkar-ga-miš는 Karkamiš ‘카르카미스’에 가깝게 발음되었는데 우연일지 몰라도 고대 그리스어 Χαρχαμις(Charchamis) ‘카르카미스’를 거친 라틴어 형태는 Charchamis ‘카르카미스’이다.
또 튀르키예어에서는 히타이트어의 š를 보통 [ʃ]로 발음되는 ş로 읽어서 하투사는 Hattuşa ‘하투샤’ 혹은 Hattuşaş ‘하투샤시’라고 부르고 카르케미시는 Karkamış ‘카르카므시’라고 부른다(Hattuşaş는 Ḫattuša의 주격형 또는 속격형 Ḫattušaš에서 왔다).
일반적으로 실제 발음을 확실히 알기 어려운 고대 언어의 한글 표기는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에 따라 적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고대 언어의 발음을 규명하는 문제는 여기서 소개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어차피 원 발음을 완전히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용 로마자 표기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재구되는 발음과 달라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수메르어의 로마자 표기에서 ĝ는 연구개 비음 [ŋ]을 나타내므로 재구된 발음을 따지면 고대 수메르 도시 𒄈𒋢𒆠 ĝir₂-suᵏⁱ (Ĝirsu)는 ‘응이르수’로 적을 수 있겠지만 영어로는 그냥 Girsu라고 적으므로 ‘기르수’로 표기하는 것이 상책이다.
설형 문자를 로마자로 옮긴 것에 따른 한글 표기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지만 여기서 논하는 히타이트어 š의 표기처럼 어떻게 적을지 애매한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영어에서는 히타이트어 š를 [ʃ]보다는 [s]로 처리하는 경향이므로 일단은 한글 표기도 ‘ㅅ’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Luwian을 이 글에서는 ‘루위아어’로 썼는데 위에서 링크한 동영상에서 예이츠는 Luwian을 영어로 [ˈluːv.i‿ən] ‘루비언’으로 발음한다. w를 [v]로 발음하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보통 Luwian이라고 부르지만 Luvian으로 부르기도 하며 예이츠의 발음은 이 철자에 가깝다. 이는 독일어에서 Luvia [ˈluːvi̯a] ‘루비아’에 해당하는 형용사형인 luvisch [ˈluːvɪʃ] ‘루비슈’에서 차용된 용어라서 그런 것이고 영어에서 [ˈluːw.i‿ən] ‘루위언’의 [w]는 쉽게 탈락해서 [ˈluː.i‿ən] ‘루이언’이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 [v]로 발음하는 것일 수도 있다(오늘날 독일어에서는 보통 luwisch라는 철자로 쓰지만 독일어 w는 [v]를 나타내니 발음은 동일하다).
하지만 히타이트어와 루위아어에서 w는 접근음 [w]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히타이트어로 𒌷𒁳𒌑𒄿𒅀 ᵁᴿᵁlu-ú-i-ia (Luwiya)로 적는 지명은 ‘루위야’로 쓰고 여기서 파생된 영어 이름 Luwia는 ‘루위아’로, 그에 대응되는 언어명 Luwian은 ‘루위아어’로 표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