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출신인 홍콩의 요셉 젠 추기경

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로마 가톨릭교회 홍콩 교구장을 지냈던 90세의 요셉 젠(Joseph Zen, 조지프 젠) 추기경이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8일 친중 강경파인 존 리(John Lee) 전 보안국장이 경쟁자 없이 치러진 선거에서 1461명으로 구성된 홍콩 선거위원회에 의해 차기 행정장관으로 선출된지 얼마 안 되어 젠 추기경을 비롯하여 가수이자 운동가인 데니즈 호(Denise Ho), 전 입법회 의원인 변호사 마거릿 응(Margaret Ng), 전 링난대 교수인 문화학자 허이보컹(Hui Po-keung) 등 민주 의사들이 체포되었다가 밤사이 보석으로 석방된 것이다.

이들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기소 위기에 처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612 인도주의 지원 기금의 신탁 관리자들이었다. 이들은 외세와 결탁하여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오랫동안 중국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젠 추기경의 체포 소식에 교황청은 우려를 표명했다.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홍콩의 공용어는 중국어(中文, Chinese)와 영어(英文, English)이다. 그런데 이른바 관화라고 불리는 북방 중국어를 바탕으로 하는 표준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는 중국과 달리 홍콩에서 사실상 공용어로 쓰는 언어는 월어(粵語)에 속하는 표준 광둥어이다. 표준 중국어와 표준 광둥어 둘 다 뿌리가 같은 중국어이지만 순수히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만큼이나 다른 언어이다.

홍콩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 가운데도 많은 이들은 중국어 이름 외에 영어 이름도 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 한족 홍콩 인명을 소개할 때는 보통 영어 이름과 광둥어 발음에 따라 적은 성씨로 소개한다.

예를 들어 차기 행정장관의 중국어 이름은 李家超(한국 한자음 ‘이가초’)이다. 광둥어로는 Lei⁵ Gaa¹ciu¹ ‘레이가치우’, 표준 중국어로는 Lǐ Jiāchāo ‘리자차오’로 발음한다. 그런데 19세기에는 李가 광둥어로도 ‘리’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통용 영어식 로마자 표기는 Lee이다. 중국어 이름을 기준으로 한 공식 로마자 표기는 Lee Ka-chiu이다. 영어도 홍콩의 공용어이기 때문에 홍콩 주민은 누구나 신분증에 쓰이는 공식 로마자 표기가 있다. 그러나 영어 이름인 John [ˈʤɒn] ‘존’도 있기 때문에 영어권 언론에서는 John Lee ‘존 리’로 부르는 것이다. 영어 이름과 중국어 이름을 모두 쓸 때는 영어 이름-성-중국어 이름 순서로 John Lee Ka-chiu로 쓴다.

마찬가지로 何韻詩(한국 한자음 ‘하운시’)는 광둥어 발음이 Ho⁴ Wan⁶si¹ ‘호완시’, 표준 중국어 발음이 Hé Yùnshī ‘허윈스’이며 영어 이름이 Denise [dᵻ⟮ɛ⟯ˈniːz⟮s⟯] ‘데니즈’이기 때문에 Denise Ho (Wan-see)로 불린다. 한국 언론에서 여자 이름 Denise는 ‘데니스’로 적는 경우도 많지만 -se 철자에서 더 예측하기 쉬운 [z] 발음이 좀 더 흔하며 남자 이름 Dennis [ˈdɛnᵻs] ‘데니스’와 구별할 수 있도록 ‘데니즈’로 적는 것이 나을 듯하다.

吳靄儀(한국 한자음 ‘오애의’)는 광둥어 발음이 Ng⁴ Oi²ji⁴ ‘응오이이’, 표준 중국어 발음이 Wú Ǎiyí ‘우아이이’이며 영어 이름이 Margaret [ˈmɑːɹɡəɹᵻt] ‘마거릿’이기 때문에 Margaret Ng (Ngoi-yee)로 불린다.

許寶強(한국 한자음 ‘허보강’)은 광둥어 발음이 Heoi² Bou²koeng⁴ ‘허이보컹’, 표준 중국어 발음이 Xǔ Bǎoqiáng ‘쉬바오창’인데 사적으로 쓰는 영어 이름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외적으로는 중국어 이름인 Hui Po-keung으로 통용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아직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니 홍콩 인명은 중국어 발음에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John Lee, Denise Ho, Margaret Ng, Hui Po-keung은 각각 ‘리자차오’, ‘허윈스’, ‘우아이이’, ‘쉬바오창’으로 적어야 한다. 한국어 화자 대부분은 중국어보다는 영어를 통해 홍콩 소식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하면 극히 비현실적인 방침이다.

그렇다면 젠 추기경은 어떨까? 그의 중국어 이름은 陳日君(한국 한자음 ‘진일군’)이며 광둥어 발음은 Can⁴ Jat⁶gwan¹ ‘찬얏관’, 표준 중국어 발음은 Chén Rìjūn ‘천르쥔’이다. 하지만 공식 로마자 표기는 Zen Ze-kiun이니 광둥어 발음이나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른 표기는 아니다.

이는 그가 중국 상하이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1932년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홍콩으로 도피했다.

상하이어는 오어(吳語)에 속하는 언어이다. 오어는 표준 중국어가 속한 북방 중국어도 아니고 광둥어가 속한 월어도 아닌 또다른 중국어 방언군이다. 오어와 북방 중국어, 월어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만큼 다른 것은 물론이고 내부적으로도 같은 오어나 북방 중국어, 월어에 속하는 말씨라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같은 중국어 이름이라도 상하이어 발음은 표준 중국어나 광둥어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상하이어 화자는 1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예전에는 양쯔강 하구 지역 전체에서 교통어로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표준 중국어에 밀려나고 있다. 상하이시 정부는 공공 장소나 학교, 직장에서 상하이어 사용을 금지했으며 교육은 표준 중국어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린 세대는 표준 중국어를 더 편하게 쓴다.

그러므로 상하이어는 역사적인 중요성에 비해 표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널리 쓰이는 규칙적인 로마자 표기법도 없다.

陳日君은 상하이어로 [z̥əɲ²³ z̥əʔ¹² ʨʏɲ⁵³] ‘전저쮠’으로 발음된다(발음 기호에서 성조 조화는 무시하고 각 음절이 단독으로 쓰일 때의 성조로 표시했다). 영어판 위키낱말사전에서 쓰는 자체 로마자 표기 방식을 따르면 이는 Zen³ Zeq⁵jyn¹으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상하이어는 무성 마찰음 f [f], s [s], x [ɕ]와 구별되는 유성 마찰음 v [v̥], z [z̥], xx [ʑ̥]를 쓴다는 것이 독특하다. h [h]와 구별되는 hh [ɦ]도 있다. v, z, xx는 발음 기호에서 무성음화를 나타내는 고리 부호를 붙이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어두에서는 성문의 개폐 정도가 무성음과 유성음의 중간쯤인 이른바 느슨한 소리(slack voice)로 발음되며 모음 사이나 유성 자음과 모음 사이에서는 유성음 [v, z, ʑ]로 발음된다. 어두 위치에서는 완전한 유성음이 아니지만 편의상 유성음으로 부를 수 있다.

폐쇄음과 파찰음에서는 무성 무기음 p [p], 무성 유기음 ph [pʰ], 유성음 b [b̥] 등 3계열 대립이 있다. 발성 방법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각각 한국어의 된소리, 거센소리, 예사소리와 비슷하다. 마찰음에서도 무성음과 유성음의 2계열 대립이 있는 것은 한국어에서 된소리 [ㅆ]와 예사소리 [ㅅ]의 2계열 대립이 있는 것과도 비슷한데 상하이어는 한국어의 ‘ㅆ/ㅅ’과 비슷한 s/z, x/xx뿐만이 아니라 f/v, h/hh의 대립도 있다는 점이 다르다.

만약 한국어의 된소리를 활용하여 상하이어의 무성 마찰음 s [s], x [ɕ]를 ‘ㅆ’으로 나타낸다면 z [z̥], xx [ʑ̥]는 ‘ㅅ’으로 쓰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Zen³ Zeq⁵jyn¹은 ‘전저쮠’이 아니라 ‘선서쮠’으로 적게 된다. ‘ㅈ’은 jj [ʥ̥]를 나타내는데 쓸 수 있으므로 이와 z, xx를 구별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z, xx를 ‘ㅈ’으로 적는다면 상하이어의 한글 표기에서 ‘ㅅ’ 자리가 비게 된다.

하지만 같은 유성 마찰음 v [v̥]는 대응되는 유성 폐쇄음 b [b̥]와 동일하게 ‘ㅂ’으로 쓰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z, xx도 jj와 동일하게 ‘ㅈ’으로 쓰는 것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공식 로마자 표기인 Zen Ze-kiun도 Zen³ Zeq⁵jyn¹ ‘전저쮠’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학술적 로마자 표기의 -q는 성문 폐쇄음 [ʔ]를 나타낸 것이므로 日 Zeq⁵를 Ze로 적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君 jyn¹을 kiun으로 쓰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君의 광둥어 발음이 gwan¹ ‘관’, 한국 한자음이 ‘군’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君의 원래 성모는 k [k]였다. 영국인 선교사 조지프 에드킨스(Joseph Edkins [ˈʤoʊ̯z⟮s⟯ᵻf ˈɛdkɪnz], 1823~1905)가 1853년에 펴낸 《상하이 방언에서 보이는 구어체 중국어 문법(A grammar of colloquial Chinese as exhibited in the Shanghai dialect)》에서는 君의 당시 상하이어 발음을 kiun으로 적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책 앞부분의 발음 설명에서는 基 kí의 k, 去 kʼíʻ의 kʼ는 i나 ü 앞에서 각각 j, cʻh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사실 去의 kʼi는 cʼhi로 음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The fact is that the sound is in a state of transition from k’i to c’hi). 오늘날 상하이어로 基는 ji¹ [ʨi⁵³] ‘찌’, 去는 qi² [ʨʰi³⁴] ‘치’ 또는 qy² [ʨʰy³⁴] ‘취’로 발음된다.

오늘날 상하이어에서 君을 jyn¹ ‘쮠’으로 발음하는 것은 표준 중국어의 발음 jūn ‘쥔’과 매우 가깝다. 표준 중국어는 폐쇄음과 파찰음에서 무성 무기음과 무성 유기음의 2계열 대립만 있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z [ʦ] ‘ㅉ’를 제외한 무성 무기음을 대부분 예사소리에 대응시키므로 jūn은 ‘쥔’으로 적지만 ‘쮠’과 비슷하게 들린다.

표준 중국어에서 君이 jūn으로 발음되는 것은 전설 모음 [i, y] 또는 활음 [j, ɥ]로 시작하는 운모 앞에서 광범위한 구개음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의 연구개음 g [k], k [kʰ], h [x]는 전설 모음 [i, y] 또는 활음 [j, ɥ] 앞에서 구개음화하여 치경구개음 j [ʨ], q [ʨʰ], x [ɕ]가 되었다. 원래의 치경음 z [ʦ], c [ʦʰ], s [s] 역시 전설 모음 또는 활음 앞에서 구개음화하여 치경구개음 j [ʨ], q [ʨʰ], x [ɕ]가 되어 원래의 g, k, h와 합쳐졌다. 오늘날 Beijing으로 적는 베이징(北京[Běijīng])의 옛 로마자 표기인 Peking은 구개음화가 일어나기 전에 쓰인 예전의 북방 중국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북방 중국어의 영향인지 자체 현상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상하이어를 포함한 북부 오어에서도 연구개음과 치경음의 구개음화가 일어났다. 에드킨스가 묘사한 것처럼 19세기에도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변화가 시작되자마자 이전의 발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991년에 발표된 오어 방언 연구에 의하면 북부 오어에서 원래의 g [k]의 경우 문독(文讀) 즉 공식적인 발화에서 쓰는 발음은 구개음화된 [ʨ]이고 백독(白讀) 즉 일상적인 입말에서 쓰는 발음은 구개음화되지 않은 [k]였다(p. 285).

에드킨스가 19세기에 kiun으로 적었던 君이 오늘날 jyn¹으로 발음되므로 여기서 운모 -iun은 -yn [ʏɲ]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에드킨스의 今 kiun, 人 niun은 오늘날 각각 jin¹ [ʨin³³] ‘찐’, nyin³ [n̠ʲɪɲ²³] ‘닌’으로 발음되고 오히려 오늘날 xyn³ [ɕʏɲ²³] ‘쉰’으로 발음되는 訓을 에드킨스는 hʼiünʻ으로 적은 것을 보면 君도 -iün 운모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표준화되지 않은 구어의 특성상 늘 규칙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닌 듯하다.

日 zeq⁵의 운모도 발음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에드킨스는 日의 발음을 문독음 nyih 또는 백독음 zeh로 적는데(p. 39, 62) 상하이어 발음을 적는데 쓰는 e는 영어 let의 모음 즉 [e~ɛ]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zeq⁵ [z̥əʔ¹²]는 ‘저’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제’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상하이어 발음이 陳과 동일한 zen³ [z̥əɲ²³]인 辰을 에드킨스는 zun으로 적는다(p. 17). 그가 상하이어 발음을 적는데 쓰는 u는 영어 sun의 모음 즉 [ʌ]이다. 그러니 에드킨스가 듣기에도 辰은 ‘전’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20세기 중반에 홍콩에 도착한 젠 추기경의 중국어 이름을 애써 오늘날의 상하이어 발음 Zen³ Zeq⁵jyn¹에 맞추어 ‘전저쮠’으로 표기하려 해도 상하이어가 겪은 발음 변화 때문에 공식 로마자 표기인 Zen Ze-kiun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냥 로마자 표기인 Zen Ze-kiun을 기준으로 a, e, i, o, u를 ‘아, 에, 이, 오, 우’로 적는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 따라 ‘젠제키운’으로 적는 것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역시 상하이 태생으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홍콩 초대 행정장관을 지냈던 Tung Chee-hwa의 중국어 이름 董建華는 광둥어로 Dung² Gin³waa⁴ ‘둥긴와’, 표준 중국어로는 Dǒng Jiànhuá ‘둥젠화’로 발음되지만 상하이어로는 Ton² Ji²hho³ [tʊŋ³⁴ ʨi³⁴ɦo²³] ‘뚱찌호’로 발음된다. 이 이름에서는 상하이어의 구개음화가 반영되어 建를 Chee로 적지만 華는 현대 상하이어 발음과는 동떨어진 hwa로 적으니 애써 상하이어 발음에 따라 적으려고 해도 로마자 표기와는 차이가 있다. 이것도 그냥 로마자 표기인 Tung Chee-hwa를 기준으로 ‘퉁치화’로 적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Joseph의 영어 발음 [ˈʤoʊ̯z⟮s⟯ᵻf]에 의한 표준 표기는 ‘조지프’이지만 천주교 세례명으로는 ‘요셉’으로 쓰이므로 Joseph Zen은 ‘요셉 젠’으로 적을 수 있겠다. 다만 한국에서는 김대건 안드레아, 김수환 스테파노처럼 세례명을 보통 한자명 뒤에 적는데 홍콩에서는 Joseph Zen Ze-kiun과 같이 세례명을 한자명 앞에 적는 것이 특이하다.

공유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