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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표준 표기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에 적힌 이 문장이 뭉크 자신이 쓴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절규》는 1893년에 판지에 유화와 템페라, 파스텔로 그린 작품으로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링크된 기사에서는 캔버스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판지에 그린 것이다). 뭉크는 이후에도 같은 작품을 판화, 파스텔, 템페라로 각각 다시 그렸기 때문에 총 네 개의 버전이 있다.
첫째 작품인 1893년작 《절규》의 왼쪽 상단에 연필로 작게 쓰인 위 문장이 1904년에 발견되었지만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8년에 노르웨이 미술사가이자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 학예사인 게르드 볼(Gerd Woll)이 낸 도록에 다른 이가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실리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국립 미술관 학예사이자 뭉크 전문가인 마이 브리트 굴렝(Mai Britt Guleng)이 적외선 스캔으로 작품에 쓰인 글씨와 뭉크의 친필을 대조하고 그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분석하여 뭉크 자신이 쓴 글씨가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절규》가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전시된 것은 1895년 10월이었다(그 전에도 수차례 국외에서 전시된 적은 있었다). 이 작품은 큰 논란을 일으켰고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 오슬로의 옛 이름)의 학생회는 이 작품을 다룬 토론회를 열었다. 거기서 당시 젊은 의학도였던 요한 샤르펜베르그(Johan Scharffenberg, 1869~1965)는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이가 그린 것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뭉크는 이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고 그의 글에서 이를 수차례 언급했다. 그의 여동생 한 명은 어려서부터 정신 질환을 앓았고 뭉크 자신도 같은 질환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이 일어난 직후 “미친 사람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이라는 문장을 그림에 추가한 것으로 굴렝은 추측했다.
그런데 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은 노르웨이어가 아니라 덴마크어로 적은 문장이다. 하지만 노르웨이어 화자가 이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현대 노르웨이어의 두 표준 가운데 하나인 보크몰(bokmål)로 적으면 Kan kun være malet av en gal mann이다. 다른 표준인 뉘노르스크(Nynorsk)로는 ‘오직’, ‘~만’을 뜻하는 kun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같은 뜻의 berre로 대체하여 Kan berre vera malet av ein galen mann 정도로 쓸 수 있다. 보크몰로도 사실 kun보다는 berre에 대응하는 bare를 써서 Kan bare være malet av en gal mann이라고 쓰는 것이 더 구어적인 표현이다. 덴마크어에도 bare가 있기는 하지만 노르웨이어와 용법이 달라서 kun을 언제나 bare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 문장에서는 kun을 쓴다.
독일어처럼 모든 명사를 대문자로 시작하는 1948년 이전 덴마크어 철자법에 따라 ‘사람’을 뜻하는 단어를 Mand ‘만’이라고 쓴 것이므로 현대 덴마크어식으로는 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이 된다. 노르웨이어에서는 1869년에 이미 명사를 대문자로 시작하는 규칙을 폐지했다.
그런가하면 《절규》에 뭉크가 붙인 원제는 ‘자연의 절규’를 뜻하는 독일어 Der Schrei der Natur ‘데어 슈라이 데어 나투어’였다. 이 작품이 초기에 독일에서 전시되었기 때문에 독일어로 붙인 것이다. 이를 줄여 ‘절규’를 뜻하는 Der Schrei ‘데어 슈라이’라고 흔히 부르게 되었으며 오늘날 노르웨이어로도 단순히 ‘절규’를 뜻하는 Skrik ‘스크리크’라고 부른다. 덴마크어로는 노르웨이어 skrik에 해당하는 skrig에 정관사 -et를 붙여 Skriget ‘스크리게트’라고 부른다.
뭉크가 즐겨 읽었던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도 노르웨이어가 아닌 덴마크어로 작품을 썼다. 《인형의 집(Et dukkehjem)》, 《페르 귄트(Peer Gynt)》 등은 원래 덴마크어로 쓴 것이다.
이처럼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와 작가가 노르웨이어를 쓰지 않았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14세기에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래 중세 노르웨이어는 문자 생활에서 점차 밀려나 16세말에는 덴마크어가 유일한 문자 언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1814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이 폐지될 때까지 덴마크어가 노르웨이의 공용어였다. 그 후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할양되어 동군연합을 이루었고 1905년에 마침내 독립했지만 노르웨이어가 문자 언어로 다시 서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19세기 내내 노르웨이에서는 덴마크어가 문자 언어로 많이 쓰였다.
덴마크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노르웨이만의 표준 문자 언어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만 그게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할지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주요 도시에 사는 상류층은 노르웨이어식 덴마크어를 썼다. 이를 덴마크·노르웨이어(dansk-norsk)라고 하며 1885년까지 유일한 공용어 역할을 했다. 그래서 뭉크와 입센은 덴마크어로 글을 쓴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식 덴마크어와는 분명히 다른 노르웨이 지역색이 점차 강해졌다. 입센의 작품에서도 후기에는 노르웨이어식 어휘와 표현이 더 많이 등장한다.
교육가이자 언어학자인 크누드 크누센(Knud Knudsen, 1812~1895)은 상류층의 덴마크·노르웨이어를 바탕으로 노르웨이어식 정서법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반면 아마추어 언어학자 이바르 오센(Ivar Aasen, 1813~1896)은 덴마크어의 영향을 덜 받은 방언들을 연구하여 이를 바탕으로 덴마크어나 저지독일어식 어휘를 되도록이면 피한 새로운 표준 언어를 창시했다. 많은 논란 끝에 1885년 노르웨이 의회는 둘 다 공용 문자 언어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 후 둘을 수렴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완전한 통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1929년 전자는 보크몰, 후자는 뉘노르스크라는 현재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노르웨이에서는 글로 쓸 때에는 보크몰 또는 뉘노르스크를 쓸 수 있으며 표준 말씨가 따로 있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 공용어와 달리 말은 누구나 각자의 방언을 그대로 쓴다.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는 특히 발음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이런 역사 때문에 글로 쓰인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 보크몰은 꽤 가깝고 노르웨이어 화자는 보통 덴마크어를 문제 없이 읽을 수 있다. 덴마크어 Kan kun være malet af en gal mand과 노르웨이어 보크몰 Kan kun være malet av en gal mann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자 언어는 상당히 비슷하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 1809~1849)이 1841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 〈큰 소용돌이 속으로(A Descent into the Maelström)〉는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아직 표준 노르웨이어가 나타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지명 등은 아마도 덴마크어식 철자로 쓴 자료를 토대로 적었을 것이다. 원문에는 노르웨이 북부의 실제 지명 로포텐(Lofoten)이 예전 덴마크어식 철자 Lofoden ‘로포덴’으로 나온다. 노르웨이어로 Vurrgh라고 부른다는 섬도 나오는데 베뢰이(Værøy, 표준 표기 ‘베뢰위’)를 이른다. 덴마크어식 옛 철자는 Værø ‘베뢰’인데 Vurrgh는 그냥 영어식 철자로 소리를 흉내낸 것 같다.
Maelström은 흔히 ‘마엘스트롬’이라고 쓰지만 영어 발음 [ˈmeɪ̯lstɹɒm, -stɹəm, -stɹoʊ̯m]을 기준으로 한다면 ‘메일스트롬’이고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 malstrøm, 스웨덴어 malström을 기준으로 한다면 ‘말스트룀’으로 써야 한다. 이들은 네덜란드어 옛 철자 maelstrom ‘말스트롬’에서 왔다(현대 철자로는 maalstroom ‘말스트롬’). 로포텐 제도 일대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인 모스크스트라우멘(Moskstraumen, 표준 표기 ‘모스크스트레우멘’)을 이르는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포의 단편에서는 노르웨이에서 Moskoe섬의 이름을 따서 Moskoe-ström으로 불린다는 설명이 있는데 Moskoe는 모스케네쇠야(Moskenesøya, 표준 표기 ‘모스케네쇠위아’)섬과 모스켄(Mosken)섬 가운데 하나를 이르는 듯하다. Moskoe의 oe는 섬을 뜻하는 덴마크어 ø ‘외’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소용돌이의 노르웨이어 이름인 Moskstraumen, Moskenstraumen, Moskenesstraumen 등에는 이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노르웨이어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만 표기 규정이 미비한 부분이 있고 언어 자체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기존 표기 용례에서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Edvard Munch를 비롯한 노르웨이어 남자 이름 Edvard는 표기 용례에서 ‘에드바르’로 적고 있다. 표기 규정에서 장모음+rd의 d는 적지 않고 단모음+rd의 d는 어말에서 ‘드’로 적도록 하고 있다. Edvard의 a가 장모음이라고 생각하고 ‘에드바르’로 표기를 정한 듯하지만 Edvard는 a가 단모음인 [ˈedvɑɖ]로 발음되므로 규정에 따르면 ‘에드바르드’로 적는 것이 맞다. 또 d가 묵음이 되지 않고 r와 결합하여 권설음 [ɖ]로 발음되니 ‘에드바르드’가 실제 발음에도 가깝다. 앞서 언급한 게르드 볼(Gerd Woll)의 노르웨이어 여자 이름 Gerd도 [ˈɡæɖ] 또는 가끔 [ˈjæɖ]로 발음되기 때문에 ‘게르/예르’가 아닌 ‘게르드’로 적어야 한다.
사실 rd의 d의 발음 여부는 앞선 모음의 길이로 언제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글 표기도 실제 발음을 따르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표기 규정을 따르면 장모음+d의 d도 적지 않아야 하지만 Knud [ˈknʉːd]에서는 보통 d가 발음되기 때문에 ‘크누’보다는 ‘크누드’로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Knud는 보통 덴마크어에서 쓰는 형태이고 오늘날 노르웨이어에서는 보통 Knut ‘크누트’로 쓴다.
노르웨이어의 특징적인 이중모음 au [æʉ̯], øy [øy̯]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각각 ‘에우’, ‘외위’로 적도록 하고 있다. au [æʉ̯]의 첫부분은 e /e/의 변이음으로 나타나는 [æ]와 음가가 같은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어 화자에는 ‘아’에 가깝게 들리는 저모음이므로 민간에서 쓰는 방식대로 ‘아우’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Moskstraumen도 굳이 ‘모스크스트레우멘’으로 쓰기보다는 ‘모스크스트라우멘’으로 쓰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øy [øy̯]는 øi라는 철자로도 흔히 쓰이고 활음부 [y̯]는 /j/가 첫부분의 [ø]의 영향으로 원순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독일어 eu/äu [ɔʏ̯]를 ‘오위’가 아닌 ‘오이’로 적는 것처럼 노르웨이어의 øy/øi [øy̯]도 ‘외이’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뒤에 모음이 따르는 øya 같은 경우는 ‘외야’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이후 노르웨이어가 본격적인 문자 언어로 다시 쓰이게 된 것이 기껏해야 백여 년 전의 일이고 그것도 분단된 적이 없는 한 나라에서 두 개 표준이 혼재하며 표준 말씨가 따로 없다는 것이 참 흥미롭다. 또 입센의 작품은 원래 덴마크어로 쓰였지만 오늘날 노르웨이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 되도록이면 한 나라에서 쓰는 말과 글을 하나로 표준화하려 하는 근대 언어 정책의 패러다임에 잘 들어맞지 않는 흥미로운 예이다.
핑백: 노르웨이어 이름 Edvard의 표기 – 끝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