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지명 Podhale는 ‘포드할레’일까, ‘포트할레’일까?

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지난 12월 19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공개 자료실에 외래어 표기 용례 자료 파일이 올라왔다. 2002년 용례집 이후 추가된 동남아시아 언어와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표기 규정, 그리고 최근의 외래어 심의 결과까지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생긴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공개 자료실의 HWP 문서를 받아 열어보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특히 지명 파일은 글꼴 문제 때문인지 특수문자가 깨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존 용례를 종합하면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추가하거나 수정한 사항이 많아 부실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폴란드 지명 Białystok은 2002년 용례집대로 ‘비아위스토크’라고 올바르게 쓴 항목 밑에 원 철자를 잘못 안 Bialystok가 추가되어 있다.

#1Białystok#2비아위스토크#3폴란드 동북부의 주.
#1Bialystok#2비알리스토크#3폴란드의 동북부, 벨라루스와의 국경에 가까운 도시.#4편수지명, 용지#52002용례집에 없음

체코 지명 Plzeň은 2002년 용례집대로 ‘플젠’이라고 쓴 항목 바로 위에 ‘플제니’라고 쓴 항목을 추가하였다. 체코어 표기 규정을 따르면 ‘플젠’이라고 써야 맞다.

#1Plzeň#2플제니#3체코슬로바키아 서부, 보헤미아(Bohemia) 지방에 있는 도시.#4편수지명, 용지, 표준#5표준:플젠, 체코 서부~#6체코슬로바키아는 없어졌음. 용례집에 항목 없음
#1Plzeň#2플젠#3체코 서부의 도시.#6용례집: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 지방에 있는 도시. 

앞으로 이러한 오류는 고쳐지겠지만 공개 자료실에 올리기 전에 좀더 철저히 확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용례집의 내용을 확인하다가 폴란드 지명 Podhale가 눈에 띄었다. 2002년 용례집에도, 최신 용례집에도 표기는 ‘포드할레’로 되어 있었다.

이게 과연 표기 규정에 맞는 표기일까?

폴란드어의 표기 세칙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2항 b, d, g

1. 어말에 올 때에는 ‘프’, ‘트’, ‘크’로 적는다.

od 오트

2. 유성 자음 앞에서는 ‘브’, ‘드’, ‘그’로 적는다.

zbrodnia 즈브로드니아

3. 무성 자음 앞에서 b, g는 받침으로 적고, d는 ‘트’로 적는다.

Grabski 그랍스키
odpis 오트피스

이에 따르면 Podhale의 d는 뒤의 h가 유성 자음이라면 ‘드’로, 무성 자음이라면 ‘트’로 적어야 한다. 그런데 폴란드어의 h는 [x]로 발음되는 무성 자음이다. 그러니 규정을 따르자면 Podhale는 ‘포트할레’로 적는 것이 맞다.

이같은 규정이 있는 것은 폴란드어의 음운 규칙 가운데 한 자음군(consonant cluster)에 속하는 장애음(obstruent)은 모두 유성음이거나 모두 무성음이어야 한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장애음이 유성음(b, d, g 등)이면 그 앞의 장애음도 모두 유성음으로 발음되고 맨 마지막 장애음이 무성음(p, t, k 등)이면 그 앞의 장애음도 모두 무성음으로 발음된다. (다만 맨 마지막 장애음이 w /v/ 또는 rz /ʐ/이고 바로 앞의 장애음이 무성음이라면 그 자음군은 모두 무성음으로 발음된다.)

예를 들어 ‘배’를 뜻하는 łódka는 [ˈwutka]로 발음된다. dk 자음군에서 마지막 장애음 k는 무성음이므로 원래는 유성음인 /d/가 무성음화되어 [t]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 규칙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우트카’로 적는다.

혹시 h는 이 규칙에서 예외이지 않을까? 폴란드어에서 h는 /x/ 음운을 나타내고 ch로도 쓰는데 이에 대응되는 유성음 음운은 없다. 하지만 위의 음운 규칙에 따라 유성음으로 발음되는 자음군에서는 h가 [x]가 아니라 유성음 [ɣ]로 실현된다. 그리고 h가 자음군의 마지막 장애음인 경우는 그 자음군이 모두 무성음으로 발음된다. 그러니 Podhale의 폴란드어 발음은 [pɔtˈxalɛ] 정도가 되겠다.

2023. 8. 7. 추가 내용: 위키낱말사전에서 폴란드어 발음이 [pɔtˈxalɛ]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드할레’라는 표기는 dh라는 자음군이 생소했던 나머지 d를 습관대로 ‘드’로 적었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나 한다. 만약 외래어 표기법에서 폴란드어의 무성음을 일일이 열거했거나 dh 자음군이 들어간 다른 예를 제시했으면 아마 ‘포트할레’라고 표기했을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폴란드어 표기 규정은 대체로 폴란드어의 음운 규칙을 잘 대변하고 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나타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bojaźń [ˈbɔjaɕɲ̊]의 마지막 자음군은 무성음으로 발음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따르면 마치 유성음으로 발음되는 것처럼 ‘보야진’으로 적어야 한다. jabłko [ˈjap(w̥)kɔ]처럼 반모음 ł가 자음 사이에 올 때는 어떻게 쓸지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야부코’가 그나마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그대로 따르면 나오는 표기이지만 반모음을 포함한 자음군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으니 사람에 따라 규정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아예 ł를 묵음으로 보고 ‘얍코’라고 쓰거나 ł가 발음된다고 보더라도 b가 무성음화된다고 봐서 ‘야푸코’라고 적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23. 8. 7. 추가 내용: 위키낱말사전에서는 bojaźń의 발음을 /ˈbɔ.jaʑɲ/으로 표시하며 발음 안내 음성 파일을 들어봐도 무성음화 없는 [ˈbɔjaʑɲ]으로 관찰된다. 그러니 ‘보야진’으로 적는 것에 문제가 없을 듯하다. 또 jabłko의 발음은 /ˈjap.kɔ/ 또는 드물게 /ˈjap.wkɔ/인 것으로 표시하고 각운은 -apkɔ, -abwkɔ로 표시하는데 발음 안내 음성 파일은 [ˈjapkɔ] ‘얍코’로 발음한 것과 [ˈjabŭko] ‘야부코’ 정도로 발음한 것이 둘 다 실렸다. 일반적인 발음이 [ˈjapkɔ]라는 것을 확실해 보이고 더 철자에 가까운 발음도 쓰이는데 후자는 [ˈjapw̥kɔ~ˈjabwkɔ~ˈjabŭko] 등으로 나타낼 수 있을 듯하며 [ˈjabŭko] 정도로 반모음 ł를 아예 모음처럼 발음하는 것이 철자를 의식하여 과잉 교정된 발음인지, 방언에 따라서 실제 쓰이는 발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단 ‘야부코’로 적어도 무방하다는 근거로 삼을만하다.

이처럼 외래어 표기법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일관된 표기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외래어 표기법은 언제나 미완성이며 현재 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2023. 8. 7. 추가 내용: 덧붙이자면 같은 슬라브어라도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의 h는 유성음 [ɦ], 우크라이나어의 h(г)도 유성음 [ɦ]이며 벨라루스어의 h(г) 역시 유성음 [ɣ]이다. 이들 언어에서는 h가 슬라브 조어의 *g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란드어 Podhale는 ‘포트할레’로 적는 것이 맞지만 체코어 이름인 Podhalí는 ‘포드할리’, 슬로바키아어 이름인 Podhalie는 ‘포드할리에’, 우크라이나어 이름인 Pidhallia(Підгалля)는 ‘피드할랴’, 벨라루스어 이름인 Padhale(Падгале)는 ‘파드할레’가 된다. 이들 언어에서는 d가 유성음 h 앞에 오기 때문에 유성음 [d] 발음이 유지되는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Podgale(Подгале) ‘포드갈레’이다.

폴란드어의 h는 주로 차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폴란드어 이름 Podhale의 hale [ˈxalɛ] ‘할레’는 수목 한계선 위의 초원을 가리키는 hala [ˈxala] ‘할라’의 복수형이며 슬로바키아어 hoľa [ˈɦoʎa] ‘홀랴’ 또는 비슷한 현지 슬라브어 방언에서 나왔다. 이는 폴란드어에서 주로 타트라(Tatra)산맥의 지형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pod [pɔt]는 ‘~밑’을 뜻하는 전치사이니 Podhale는 ‘(타트라산맥의) 고산 지대 밑’을 뜻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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