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프? 스왑? 스웝? Swap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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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과 미국이 통화 교환 협정을 체결하면서 swap이라는 경제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한글 표기는 저마다 ‘스와프’, ‘스왑’, ‘스웝’ 등으로 쓰고 있다. 어느 것이 맞을까?

Swap은 교환, 상환 거래를 뜻하는 영어 단어이다.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 (LPD)에 의하면 발음은 영국식으로는 [swɒp], 미국식으로는 [swɑːp]이다. 여기서 [ɒ]란 기호는 영국 영어에서 not, box, top 등의 모음을 나타내는데 언제나 단모음이다. 영국 영어에서 soft 같은 일부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단모음 [ɒ]을 쓰기도 하고 law의 모음과 같은 장모음 [ɔː]를 쓰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영국식 발음에서는 장모음 [ɔː]에 대응하는 단모음이 [ɒ]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시중의 사전에서는 보통 [ɒ]라는 기호를 따로 쓰지 않고 [ɔ]로 표기하는 일이 많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이와 같은 표기 방식을 쓴다.

외래어 표기법 가운데 영어의 표기 세칙에는 짧은 모음 다음의 어말 무성 파열음([p], [t], [k])은 받침으로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 또 [w]는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wə], [wɔ], [wou]는 ‘워’, [wɑ]는 ‘와’로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 [wɔ]는 LPD식 표기로 [wɔ]와 [wɒ]를 모두 포함하고 [wou]는 LPD식으로 영국식 발음의 [wəʊ], 미국식 발음의 [woʊ]에 대응된다.

그러므로 영국식 발음인 [swɒp]을 따르자면 ‘스웝’이 되고 미국식 발음인 [swɑːp]를 따르자면 ‘스와프’가 된다.

그런데 미국식 발음에서 [ɑː]로 나타내는 모음은 경우에 따라 장음 표시 [ː] 없이 적는 경우가 많다. 철자로 o로 적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not, box, top의 모음은 원래 영국식 발음에서처럼 [ɒ]이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모음이 father, palm 등의 a로 나타내는 [ɑː]음과 합쳐졌다. 이 현상을 father-bother merger라고 부른다. Father, palm 등의 [ɑː]음은 장모음이니 LPD에서는 not, box, top의 미국식 발음도 장모음 [ɑː]로 적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원래 [ɒ]였던 음은 father, palm의 [ɑː]와 달리 언제나 장모음으로 발음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하여 장음 표시 없이 [ɑ]로 적는 경우가 많다. Father와 bother가 음가는 합쳐졌으나 아직 bother의 모음은 father의 모음보다는 짧게 발음된다고 보는 시각에 따른 것이다. 이 father-bother merger는 [ɒ]가 비원순화하여 [ɑ]가 되었다가 [ɑː]로 장모음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일부 억양에서는 장모음화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시중의 사전을 찾아서 not, top, swap 등의 발음 기호를 보면 미국식 발음을 나타낼 때도 장음 표시를 사용하지 않고 적은 것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모음을 단모음으로 분석한다면 미국식 발음은 [swɑp]이고, 표기는 ‘스왑’이 된다.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 일반 명사의 경우 영국식 발음을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mask는 ‘매스크’가 아니라 ‘마스크’, shopping은 ‘샤핑’이 아니라 ‘쇼핑’으로 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이 미국식 영어에 받은 영향도 커서 영국식 발음 대신 미국식 발음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Column은 ‘콜럼’이 아니라 ‘칼럼’, box는 ‘복스’가 아니라 ‘박스’로 쓴다(그러면서 ‘권투’를 뜻하는 boxing은 ‘복싱’으로 쓴다). 그러므로 영국식 발음에 따른 ‘스웝’을 쓰든 미국식 발음에 따른 ‘스와프’ 또는 ‘스왑’을 쓰든 외래어 표기의 전통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하겠다.

대신 미국식 발음에서 not, box, top의 모음은 단모음으로 보고 적는 것이 그동안의 표기 관습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한다. 이게 실제 단모음으로 발음되는지, 장모음으로 발음되는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미국식 발음을 흉내내어 적을 때 not은 ‘나트’가 아닌 ‘낫’으로, top은 ‘타프’가 아닌 ‘탑’으로 적지 않는가? 그러니 ‘스왑’이 ‘스와프’보다는 마음에 드는 표기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애매한 경우는 국립국어원에서 통일한 표기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스와프’, ‘스왑’, ‘스웝’ 등이 실려 있지 않다. 하지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외래어 표기 용례를 검색해보면 ‘swap協定’을 ‘스와프협정’ 또는 ‘스와프 협정’으로 쓴다고 나와 있다. 출처는 없지만 아마 경제학 용어를 정리하면서 그렇게 통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표기를 정할 당시 참고한 사전에는 발음이 [swɑːp]로 나와 있었을 것이다.

결론을 짓자면 ‘스와프’, ‘스왑’, ‘스웝’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표기이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정한대로 ‘스와프’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알아듣기 쉽게 뜻 모를 외래어 ‘스와프 협정’보다는 ‘통화 교환 협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강조할 것 같지만 외래어 표기 가운데 영어의 표기가 가장 어렵다. 외래어 가운데 영어에서 들어오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이 워낙 까다로워 외래어 표기법이 쉽게 정착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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