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무거운 이야기] ‘한글’은 언어가 아니라 문자다.
어차피 나도 언젠가는 ‘한글’과 ‘한국어’ 개념의 혼동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Riff님께서 쓰신 잘 정리된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한국인들이 쓰는 언어는 한국어 또는 한국말, 한말이고 한글은 이 한국어를 적기 위해 사용되는 문자라는 것은 언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면 꼭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구분이다. 특히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외래어 표기에 대한 논의를 하려면 언어와 문자 개념의 구분은 필수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글’을 ‘한국어’의 의미로 사용하는 일이 많아 거기에 따라 언어와 문자의 개념 구분도 잘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어’를 뜻하는 고유어인 ‘한말’은 같은 의미로 잘못 사용되는 ‘한글’에 밀려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일부 전문가들만 쓰는 용어가 된 것 같다.
지난 5월 19일 세종 대왕 탄신 611돌 기념 심포지엄 “한글 시각문화의 향방”에서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는 아예 이 문제를 다루는 “한글은 글자다”라는 주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한글의 실체가 ‘국어’라는 그늘에 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다며 국어기본법과 각종 한글날 기념 사업이 정작 한글과 상관없는 국어 생활 위주로 되어 있는 점을 지적했다. 오죽했으면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발표를 해야 했을까?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인 한글 창제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그런데 국어학자와 같이 알만한 사람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글의 우수성에 편승해 한글과 한국어의 혼동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것 같다. 한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한국어 관련 사업을 ‘한글 사랑’, ‘한글 바로쓰기’ 운동으로 벌인다. 높임말을 잘못 쓰거나 외래어를 남용하는 언어 습관의 문제를 ‘한글 사랑’의 기치 아래 바로잡으려 한다. 문자인 한글과는 상관 없는 문제인데도… ‘한국어 사랑’, ‘우리말 사랑’이라고 한다고 일의 가치가 떨어지나?
한재준 교수 발표 가운데 흔히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는 예로 인용한 글을 소개한다. “영어는 알파벳, 그럼 한글은?“라는 제목의 글인데, “영어는 알파벳, 일어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그럼 한글은?”이란 질문에 장시간 고민하다가 찾은 답이 “한글 낱자”라는 내용이다.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되어 있다면 ‘한글’은 ‘영어’에 대응될 수 없으니 질문부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영어는 알파벳, 한국어는 한글”이란 대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어’란 개념을 ‘한글’이란 말로 쓰고 있으니 정작 문자인 ‘한글’의 개념에 해당하는 말은 생각 못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글’과 ‘한국어’ 개념의 혼동으로 한글의 실체가 빛을 잃는다는 한재준 교수의 지적을 거듭 새겨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