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을 구조부터 다시 짜보자

본 글은 한국어문기자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 《말과글 》 173호(2022년 겨울)에 실렸던 것으로 해당 호는 여기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는 소련 시절 러시아어 이름 Ashkhabad(Ашхабад) [ɐʂxɐˈbat]에 따라 영어로 Ashkhabad, 한국어로 ‘아슈하바트’라고 썼다. 하지만 독립 이후 영어 이름이 투르크멘어 이름 Aşgabat [ɑʃɣɑˈbɑt]에 따른 Ashgabat로 점차 대체되면서 한글 표기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2009년 외래어 심의위는 아슈하바트의 새 이름을 ‘아슈가바트’가 아닌 ‘아시가바트’로 정했다.

러시아어 표기 규정이 추가되기 전까지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 sh에 해당하는 음인 [ʃ]는 언어를 불문하고 자음 앞에서 한결같이 ‘슈’로 적었다. 러시아어의 sh는 [ʃ]와는 약간 다른 음인 [ʂ]로 발음되는데 폴란드어의 sz도 같은 [ʂ]이며 자음 앞에서 ‘슈’로 적는다.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국립국어원의 전신인 국어연구소에서 발간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이하 《용례집》)에서는 이에 따라 러시아어의 sh 역시 자음 앞에서 ‘슈’로 적는 원칙을 제시하고 Ashkhabad를 ‘아슈하바트’로 썼다.

그런데 2005년 추가된 러시아어 표기 규정은 기존 표기 방식을 뒤엎고 sh를 자음 앞에서 ‘시’로 적도록 했다. 독일어 Kronstadt [ˈkʁoːnʃtat] ‘크론슈타트’에서 온 러시아어 지명 Kronshtadt(Кронштадт)는 《용례집》에서 ‘크론슈타트’로 썼지만 2005년 이후 ‘크론시타트’로 표기가 바뀌었다. Aşgabat는 러시아어가 아닌 투르크멘어 이름이지만 새 표기가 ‘아시가바트’로 정해진 것은 러시아어 표기 규정의 영향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역시 중앙아시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는 러시아어 이름 Tashkent(Ташкент)에 따라 영어에서도 Tashkent로 쓰며 한국어에서도 예전의 러시아어 표기 원칙에 따라 《용례집》에 실린 ‘타슈켄트’가 여전히 표준 표기이다. 그런데 러시아어의 표기 방식이 바뀐 탓에 앞으로 우즈베크어 이름 Toshkent를 따르게 된다면 이를 ‘토슈켄트’로 써야 할지, ‘토시켄트’로 써야 할지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표기 규정이 없는 언어에 취약한 현행 외래어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을 보면 국어의 현용 자모만으로 적기, 1 음운은 원칙적으로 1 기호로 적기,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쓰고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기 등 짤막하게 제시된 기본 원칙 몇 개를 제외한 분량 대부분이 스물 하나에 달하는 개별 언어에 대한 한글 표기 규정이다. 그나마 1986년 애당초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달랑 일곱 개 언어의 표기 규정만 있던 것에 비하면 다루는 언어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투르크멘어, 우즈베크어 등에 대한 표기 규정은 없고 외래어 표기법에 표기 세칙이 따로 없는 언어권의 인명, 지명은 원지음을 따른다는 단순한 조항만 있다.

《용례집》에서는 당시 표기 규정이 없던 언어의 표기를 통일하기 위해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제시하였다. 철자 a, e, i, o, u는 각각 ‘아’, ‘에’, ‘이’, ‘오’, ‘우’로 적기, 어말의 파열음에는 ‘으’를 붙여 적기 등의 지침이 포함되었다. 외래어 표기법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표준 표기를 정할 때 적용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공식 규정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폴란드어 Lwów를 ‘르보프’로 적는 예를 들었다가 1992년에 폴란드어 표기 규정이 추가된 후에 ‘르부프’로 바뀐 것처럼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 예로 든 표기의 절반 이상은 후에 표기 규정이 추가되면서 표준 표기가 바뀌었다. 표기 원칙이 너무 단순하고 기초적이어서 각 언어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초 규정부터 착실히 다지자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별 언어 표기 규정에 치우친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구조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외래어 표기법의 기반이 되는 기초 규정부터 착실히 다져야 한다. 원어의 음운에 대응되는 한글 기호를 선택하고 이들이 서로 조합할 때 어떻게 처리할지, 원어에서 일어나는 음운 변화 가운데 어느 것을 반영하고 가능한 표기가 여럿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통일할지 자세하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외래어 표기법을 보면 언어마다 반복되는 표기 세칙이 많다. 예를 들어 [k], [p]를 어말과 유성 자음 앞에서는 ‘으’를 붙여 적고 무성 자음 앞에서는 받침으로 적는다는 세칙은 프랑스어, 폴란드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러시아어 등의 표기 규정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현행 규정에서 이미 널리 쓰이거나 기존 표기 용례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공통적인 표기 방식은 기초 규정으로 삼아 모든 언어의 표기에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차이가 나는 경우만 따로 다루는 것이 경제적일 것이다.

기존 용례는 최대한 유지하면서 표기 규정을 재정비해야

기존 표기 규정이 언어마다 다소 차이가 날 경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재정비가 불가피하다. 프랑스어 표기 규정에서는 구강 모음 뒤에 오는 [k], [p]만 무성 자음 앞에서 받침으로 적는다고 명시하고 있어서 독일어에서 유래한 Marx [maʁks]나 오크어(프랑스 남부의 지역 언어)에서 온 Orx [ɔʁks]는 ‘마륵스’, ‘오륵스’가 아니라 ‘마르크스’, ‘오르크스’로 적게 된다(독일어 Marx [ˈmaʁks]도 물론 ‘마르크스’가 표준 표기이다). 표기 규정이 있는 언어는 아니지만 《용례집》에서는 라틴어 형태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 인명 Xerxes도 ‘크세르크세스’로 적었다.

그런데 폴란드어, 체코어 등 나머지 언어 표기 규정에서는 구강 모음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 없이 단순히 무성 자음 앞의 [k], [p]를 받침으로 적도록 하고 있어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r] 뒤에서도 받침으로 적어야 한다. 실제로 표기 용례를 보면 세르보크로아트어 Srpska ‘스릅스카’, 노르웨이어 Sarpsborg ‘사릅스보르그’에서 세칙을 문자 그대로 따른 경우가 보인다. 하지만 같은 노르웨이어 Kyrksæterøra ‘쉬르크세테뢰라’나 폴란드어 Sierpc ‘시에르프츠’에서는 ‘으’를 붙여 적었다. 반면 러시아어 표기 규정에서는 러시아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에 아예 Musorgskii(Мусоргский)를 ‘무소륵스키’로 적는 예가 포함되었다(러시아어의 g는 무성 자음 앞에서 [k]로 무성음화하므로 k와 표기가 같아진다).

원어 기준으로 표기 방식을 달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낫다. 일반 언중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익숙한 기존 표기 용례를 최대한 유지하려면 ‘마르크스’, ‘크세르크세스’를 ‘마륵스’, ‘크세륵세스’로 고치는 것보다는 구강 모음 뒤에서만 [k], [p]를 받침으로 적게 하여 ‘무소륵스키’, ‘사릅스보르그’를 ‘무소르크스키’, ‘사르프스보르그’로 고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여러 언어에 공통되게 규정 적용하기

어말 [k], [p]에 ‘으’를 붙이는 기본 표기 방식과는 달리 2004년에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된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타이어, 베트남어 표기 규정에서는 [k], [p], [t]를 어말에서 받침으로 적는다. 이들은 한국어의 받침 ‘ㄱ’, ‘ㅂ’, ‘ㅅ’처럼 불파음 [k̚], [p̚], [t̚]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절말 폐쇄음이 불파음으로 발음되는 현상은 라오스의 라오어, 캄보디아의 크메르어를 비롯하여 중국어에 속하는 광둥어(월어), 대만어(민남어), 하카어(객가어) 등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여러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받침으로 적도록 통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타이어로 십(10)을 뜻하는 sip(สิบ) [sìp̚]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십’으로 적으므로 계통이 같은 라오어 sip(ສິບ) [síp̚]도 ‘시프’ 대신 ‘십’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모든 언어에 적용되는 기초 규정이 아니더라도 여러 언어에 공통되게 적용할 수 있는 표기 규정은 매우 유용할 수 있다.

특히 적용 대상이 되는 언어를 단순히 나열하기보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여 외래어 표기법에서 탄력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언어의 수를 더욱 늘릴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기원한 언어 및 중국어에서 어말 [k], [p], [t]를 받침으로 적도록 한다면 이미 열거한 라오어, 크메르어 같은 국가 공용어 외에도 미얀마와 타이에서 쓰는 몬어,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순다어, 필리핀에서 쓰는 일로카노어처럼 발음에 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러 소수 언어까지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

기존 표기 규정도 개선할 수 있다

일선에서 여러 외국어 지명, 인명의 한글 표기를 고민해야 하는 언론인이나 번역가, 편집인 입장에서 원어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언제나 쉬운 것이 아니다. 개별 언어를 지목하지 않고도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면 적용하는 표기 규정은 원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쓰이는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의 공용어 외에 다양한 토착 언어가 쓰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이들을 로마자로 적는 방식이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규칙적인 로마자 기반 철자법이 비교적 정착된 곳이 있는가 하면 영어, 프랑스어 등의 철자 방식을 따르는 곳도 있다. 가나에서 가어 Kwate ‘콰테’에 해당하는 이름을 영어식 철자 Quartey ‘쿼티’로 적거나 세네갈에서 월로프어 Jaañ ‘잔’에 해당하는 이름을 프랑스어식 철자 Diagne ‘디아뉴’로 적는 것을 모르는 이가 보면 그냥 영어나 프랑스어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 공화국은 똑같이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콩고 공화국에서는 [u]와 [w]를 둘 다 ou로 적는 프랑스어식 로마자 표기를 쓰고 벨기에의 지배를 받았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u]와 [w]를 각각 u, w로 적는다. 그래서 콩고 공화국 전 총리 클레망 무암바(Clément Mouamba)와 콩고 민주 공화국 상원 의장 알렉시 탐브웨 므왐바(Alexis Thambwe Mwamba)는 성씨의 철자가 다르다.

표기 규정은 개별 언어 단위로만 정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프랑스어식 철자로 쓴 제3언어 이름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현행 프랑스어 표기 규정을 재정비하면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세네갈의 2대 대통령 Abdou Diouf는 ‘아브두 디우프’, 3대 대통령 Abdoulaye Wade는 ‘압둘라예 와데’로 적고 있다. 각각 세레르어 Abdu Juuf, 월로프어 Abdulaay Wàdd를 프랑스어식 철자로 적은 이름인데 현행 프랑스어 표기 규정을 프랑스어 발음에 적용하면 [abdu djuf]는 ‘아브두 디우프’가 맞지만 [abdulaj wad]는 ‘아브둘라유 우아드’가 된다(규정상 프랑스어의 어말 [j]는 ‘유’로 적는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압두 디우프’, ‘압둘라이 와드’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Abdou, Abdoulaye는 각각 고전 아랍어 ʿAbdu(عَبْدُ) ‘압두’, ʿAbdu llāhi(عَبْدُ اللهِ) ‘압둘라히’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기존 표기 용례를 보면 이란 페르시아어 Abdollāh(عبدالله) ‘압돌라’, 스와힐리어 Abdulrazaak ‘압둘라자크’, 우즈베크어 Abdulla ‘압둘라’ 등에서 일관적으로 b를 받침 ‘ㅂ’으로 적고 있다. 언어를 불문하고 아랍어식 Abd-의 b를 받침 ‘ㅂ’으로 적도록 하면 이들은 더이상 불규칙 표기로 처리할 필요가 없다.

또 프랑스어에서 어두나 모음 뒤의 [w]는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와’, ‘웨’ 등으로 적도록 규정을 고치면 기존 프랑스어 표기 용례 가운데 Wallon [walɔ̃] ‘왈롱’, Willy [wili] ‘윌리’도 이제는 규칙 표기가 된다. 어말 [j]를 ‘유’로 적는 것은 Marseille [maʁsɛj] ‘마르세유’, Versailles [vɛʁsaj] ‘베르사유’처럼 철자 ille에 대응되는 경우에 한정시키고 나머지 경우에는 ‘이’로 적도록 하면 기존 용례의 Anouilh [anuj] ‘아누이’, de Broglie [də bʁɔj] ‘드브로이’ 등도 규칙 표기가 된다. 이처럼 표기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존 규정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면서 규정과 표기 용례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 구조를 도입하려면

실제 어문 규범을 개정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결재가 필요한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에 여기서 제안하는 외래어 표기법의 구조 개편은 현실적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보기 힘들다. 그러나 비공식 지침을 통해서라도 앞으로 외래어 표기법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어의 어문 규범 가운데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은 규정과 표준어 사전 정도만 있으면 제대로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외래어 표기법은 아무리 규정을 추가해도 모든 언어, 모든 경우에 대해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끊임없이 표기 규정을 보완하면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갈 수밖에 없다. 개별 언어 표기 규정을 추가하는 것도 좋지만 러시아어의 sh처럼 기존 규정과 상반되는 표기 방식으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표기 규정이 따로 있고 없고에 따른 차이가 심하다. 하지만 모든 언어에 적용되는 기초 규정을 포함하여 여러 언어에 공통되게 적용되는 표기 규정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면 개별 언어 표기 규정을 꼭 추가하지 않더라도 특정 언어에 치우치지 않고 전반적인 표기 규정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니 이름 하나의 표기를 정하든 새로운 언어에 대한 표기 규정을 통째로 마련하든 그 이름이나 그 언어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을 보고 다른 언어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예까지 고려해서 최대한 여러 언어에 공통되게 적용할 수 있는 표기 방식인지, 다른 언어의 표기에는 어떤 파급이 있을지 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글 표기를 정할 때 언중 대부분은 외래어 표기법의 규정을 언어별로 자세히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표기 용례에서 유추하기 마련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구조를 다시 짜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언어에 공통된 표기 기준을 적용한다면 언어마다 들쭉날쭉한 표기 방식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많은 이들이 납득하기 쉬운 표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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