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Daschle의 표기가 ‘대슐리’에서 ‘대슐’로 바뀐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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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던 톰 대슐(Tom Daschle)이 세금 탈루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톰 대슐

흥미롭게도 2001년 6월 27일 열린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제40차 회의에서는 당시 상원 민주당 원내 총무였던 그의 이름 표기를 ‘토머스 대슐리’로 정한 바가 있다. 토머스(Thomas)는 톰(Tom)의 정식 이름이다.

그러다가 2004년 12월 14일 제61차 회의에서 ‘대슐리’ 대신 ‘대슐’로 고쳐 쓰기로 결정했다.

‘대슐리’라는 표기의 기원

먼저 나온 ‘대슐리’라는 표기는 원 발음을 [ˈdæʃ.li]로 보고 정한 것 같다. 발음 기호 가운데 점(.)은 음절을 구분하는 기호로, 보통 생략하지만 여기서는 음절 구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표시한다.

2023. 8. 7. 추가 내용: 요즘은 블로그에 나오는 영어 발음 기호에서 웬만하면 음절 구분을 늘 표시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 Daschle의 발음이 [ˈdæʃ.li]인줄 알았고, 많은 영어 사용자들도 그렇게 발음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외래어 심의위원들도 그런 정보에 의거 ‘대슐리’라고 표기를 정했을 것이다. 사실 Daschle라는 표기를 보면 [ˈdæʃ.li]라는 발음을 연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자.

일단 schl라는 자음군이 [ʃl]로 발음된다고 보면 Daschle는 한 음절로 발음될 수 없다. 영어의 음운 제약에 따라 [ʃl]라는 자음군이 한 음절의 끝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모음 e가 있으니 그것으로 [l]에 따르는 모음으로 보기 쉽다. 이런 식으로 어말에서 오는 무강세 e는 보통 [i]로 발음된다. Jesse가 [ˈʤɛs.i], 즉 ‘제시’로 발음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2023. 8. 7. 추가 내용: 그는 볼가 독일인 혈통으로 Daschle은 독일어 Däschle에서 온 성씨로 보이는데 독일어 발음은 [ˈdɛʃlə] ‘데슐레’이다. 독일어에서는 어말의 e가 모음 [ə]로 발음되는데 영어에서는 [i]로 흉내내기 쉽다. 독일계 미국인 초기 영화 제작자 칼 렘리(Carl Laemmle)의 성은 독일어 Lämmle [ˈlɛmlə] ‘렘레’에서 온 것인데 영어에서는 [ˈlɛm.li] ‘렘리’로 발음한다.

‘대슐’로 고친 이유

그런데 알고 보니 정작 본인이 사용하는 발음은 [ˈdæʃ.li]가 아니었던 것 같다. Daschle의 정확한 발음은 미국 국립도서국(NLS)에서 제공하는 발음 정보에서는 DASH-əl, AP 통신에서 제공하는 발음 정보에서는 DASH’-uhl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국제 음성 기호로 풀어 쓰면 [ˈdæʃ.əl]이다. 외래어 심의위에서도 이런 지적을 받고 3년 반만에 다시 ‘대슐’로 표기를 고친 것으로 보인다.

철자가 *Daschel이라면 이런 발음을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Daschle이 이렇게 발음되게 되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어에서 [l]은 그 자체가 한 음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선택적으로 [əl]로 발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음절의 핵은 꼭 모음이어야 하지만 영어에서는 [l], [m], [n] 등이 ‘성절 자음’이라고 해서 음절의 핵이 될 수 있다. little [ˈlɪt.l̩], rhythm [ˈrɪð.m̩], kitten [ˈkɪt.n̩]처럼 모음이 따로 없이 [l], [m], [n]만으로도 음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모음이 없을 때 삽입하는 모음 ‘으’를 더해 ‘리틀’, ‘리듬’, ‘키튼’ 등으로 표기한다.

2023. 8. 7. 추가 내용: 원문에서는 [ˈlɪt.l], rhythm [ˈrɪð.m], kitten [ˈkɪt.n]과 같이 적었지만 성절 자음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l̩], [m̩], [n̩]과 같이 밑에 짧은 세로줄을 붙여 나타내는 것으로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성절 자음에도 영어의 무강세 음절에 흔히 쓰는 모음 [ə]를 추가하여 [əl], [əm], [ən]으로 발음하기도 하고, 영어 사용자들은 이들 발음을 확실히 구별하지도 않는다. 편한대로 [ə]를 추가하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ˈlɪt.(ə)l], [ˈrɪð.(ə)m], [ˈkɪt.(ə)n] 등으로 표기하여 가능한 발음을 모두 나타내기도 한다. 보통 시중의 사전에서는 괄호를 사용하지 않고 ə를 ə와 같이 이탤릭체로 써서 탈락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Daschle로 돌아가 보자. [dæʃ]를 앞 음절로 분리한 다음 남는 자음 [l]은 끝에 모음 e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음절을 이루도록 [ˈdæʃ.l̩]로 발음하는 것이 정식 발음이다. 여기에 선택적으로 [ə]가 붙어 [ˈdæʃ.əl]로 발음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에서 어말의 -le라는 철자가 [(ə)l]로 발음되는 경우는 little, uncle, poodle 등 다양하지만 -shle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발음을 잘못 알기 쉬웠던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ˈdæʃ.əl]은 ‘대셜’, [ˈdæʃ.l̩]은 ‘대슐’로 표기하게 되는데 아마도 예전에 ‘대슐리’라고 썼던 것과 가깝게 하려고 ‘대슐’을 택한 것 같다.

영어의 -ton의 표기는 ‘턴’으로 통일

영어에서 [l̩], [m̩], [n̩] 등은 [əl], [əm], [ən]로도 발음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발음을 기본 발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을, 음, 은’으로 쓸 수도 있고 ‘얼, 엄, 언’으로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Daschle은 ‘대셜’로 쓸 수도 있고 ‘대슐’로 쓸 수도 있다.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서는 이런 경우와 같이 선택적으로 발음하는 음이 있을 경우 발음하는 것이 좋은지 발음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도 표시하고 있다. little과 kitten은 [ə]를 삽입하지 않는 것을 권장하지만 rhythm에서는 [ə]를 삽입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rhythm을 ‘리덤’이 아니라 ‘리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 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가능한 발음 가운데 각각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외래어 표기법에 준하여 외래어 표기 용례를 결정할 때 따르는 원칙인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에서는 영어 지명과 인명에 많이 등장하는 -ton의 표기를 ‘턴’으로 통일하고 있다. -ton의 경우 [tn̩]으로 발음될 수도 있고 [tən]으로 발음될 수도 있기 때문에 ‘튼’ 또는 ‘턴’이 모두 가능한데, 고유명사의 경우 어느 발음이 더 많이 쓰이는지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딱히 어느쪽이 맞다고 하기도 곤란하니 ‘턴’으로 통일한 것이다.

참고로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서는 Ashton, Hilton 등 -ton으로 끝나는 이름 대부분 [tən]으로 발음할 것을 권장하고 있고, Newton 등 일부만 [tn̩]으로 발음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Washington 같은 경우는 아예 [tən]으로 발음하는 것으로 못박아 두고 [tn̩]이란 발음은 제시도 않고 있다. 이런 것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ton으로 끝나는 이름은 ‘튼’이 아니라 ‘턴’으로 적도록 한 것이다. Ashton, Hilton, Newton, Washington은 이에 따라 ‘애슈턴’, ‘힐턴’, ‘뉴턴’, ‘워싱턴’으로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에 따른 표기이다.

지금은 ‘뉴턴’이 표준 표기가 되었지만, 외래어 표기법 이전에는 ‘뉴튼’이라는 표기가 많이 쓰인 것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에 반해 호텔로 유명한 Hilton의 경우, ‘힐튼’이란 표기가 등록된 상표로 익숙하기 때문에 아직도 쓰이고 있다.

주의할 것은 아무래도 -ton의 표기를 ‘턴’으로 통일한 규정이 외래어 표기법의 일부가 아니라 그에 준하는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의 일부이기 때문인지 국립국어원에서도 완전히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보면 Merton을 ‘머튼’, Patton을 ‘패튼’, Burton을 ‘버튼’, Sutton을 ‘서튼’으로 표기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영어 이름의 -ton을 표기할 때는 ‘턴’으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기존 용례집을 확인하여 예전에 ‘튼’으로 옮긴 적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2023. 8. 7. 추가 내용: 영어에서 /əl/, /əm/, /ən/이 성절 자음으로 실현되는지의 여부는 음운 환경에 달렸다. 비음 뒤에서는 [m̩], [n̩]의 실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əm], [ən]으로만 발음되는 등의 제약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장애음(비음, 유음 등을 제외한 자음) 뒤에서는 잠재적으로 성절 자음의 실현이 가능하다. 대신 음운 환경에 따라서 성절 자음으로 실현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Newton을 비롯하여 Merton, Patton, Burton, Sutton 등 모음이나 r 뒤의 /tən/은 성절 자음을 쓴 [tn̩]이 될 확률이 높으며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서 이와 같은 발음을 권장한다. 단순히 -ton은 ‘턴’으로 통일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모음이나 r 뒤에서는 ‘튼’으로 적게 하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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