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벨기에 가수 앙젤의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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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가수 앙젤(Angèle)이 브뤼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신곡 〈브뤼셀 주 템(Bruxelles je t’aime)〉을 발표했다. 제목은 프랑스어로 ‘브뤼셀, 너를 사랑해’를 뜻한다. 그런데 벨기에의 언어 갈등에 대한 걱정이 담긴 가사를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2분 23초부터 시작되는 부분이다.

Et si un jour elle se sépare et qu’on ait à choisir un camp
만약 어느날 그가 갈라져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Ce serait le pire des cauchemars, tout ça pour une histoire de langues
최악의 악몽이 될 거야, 그까짓 언어 문제 때문에
J’ai vécu mes plus belles histoires en français et en flamand
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을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로 보냈지
Laat me het zeggen in het Vlaams, dank je Brussel voor m’n naam
플라망어로 얘기해 볼게, 브뤼셀 내게 이름을 줘서 고마워

첫째 줄부터 셋째 줄까지는 나머지 가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만 마지막 넷째 줄은 플라망어, 즉 네덜란드어로 되어 있다. 플라망어는 플랑드르 지방의 말씨를 뜻하는데 정확한 뜻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벨기에에서 쓰이는 네덜란드어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한국어에서 쓰는 표준 이름은 프랑스어 이름인 Flandre [flɑ̃ːdʁ] ‘플랑드르'(지명), flamand [flamɑ̃] ‘플라망'(형용사형, 언어명)에서 따왔다.

네덜란드어로는 각각 Vlaanderen [ˈvlaːndərə(n)] ‘플란데런'(지명), Vlaams [ˈvlaːms] ‘플람스'(형용사형, 언어명)이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두 v는 ‘ㅍ’으로 적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쓰지만 이 규정은 네덜란드, 특히 네덜란드 북부에서 어두 v가 무성음화하여 f와 발음이 합쳐지는 것을 흉내낸 것이고 벨기에 발음에서는 어두 v가 [v]로 유지된다. 2분 38초경, 2분 55초경 앙젤이 Vlaams를 [ˈvlaːms] ‘블람스’로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형용사형은 그 지역 주민을 통틀어 이르는 이름으로도 쓰여서 플라망(Flamand)인이라고 하면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 지방의 주민을 뜻한다. 프랑스어를 쓰는 남쪽 지방의 주민들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왈론족’이라고 쓰는데 이는 프랑스어 Wallon [walɔ̃] ‘왈롱’을 마치 라틴어 또는 영어 이름인 것처럼 적은 표기이다. 정작 영어에서는 Walloon [wəˈluːn] ‘월룬’이라고 부르니 ‘왈롱인’으로 부르는 것이 나아 보인다. 실제로도 ‘왈롱인’이라는 표기가 많이 쓰인다.

벨기에는 공용어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셋인데 동쪽 끝 일부만이 독일어권이고 벨기에 대부분은 북쪽의 네덜란드어권과 남쪽의 프랑스어권으로 나뉜다. 그런데 수도 브뤼셀은 그 언어 경계 북쪽에 있으면서도 프랑스어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며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둘 다 공용어로 쓰인다.

벨기에는 1830년 네덜란드 연합 왕국에서 독립한 이후 프랑스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썼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쪽 지역에서도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썼으며 특히 수도 브뤼셀은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어권이었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비율이 계속 늘어났다. 1898년 네덜란드어가 공용어로 추가된 후에도 브뤼셀에서 프랑스어 사용은 계속 늘어나 20세기 초반 어느 시점에 네덜란드어를 앞질렀다.

1921년 플랑드르 지방에서 네덜란드어가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된 후에도 브뤼셀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둘 다 공용어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브뤼셀이 팽창하면서 주변 지역까지 프랑스어 사용이 계속 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논란 가운데 브뤼셀과 주변 플랑드르 지방의 경계는 1962년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벨기에 전체가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사용 지역으로 나뉘었다. 브뤼셀만 따로 이중 언어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니 단순히 네덜란드어 화자와 프랑스어 화자의 대립으로 생각하기 쉬운 벨기에의 언어 갈등에서 브뤼셀은 골치아픈 존재이다. 오늘날의 브뤼셀인들은 플라망인도 왈롱인도 아닌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네덜란드어식 성씨를 쓰고 대대로 네덜란드어를 쓰던 집안 출신인데 오늘날에는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이들이 많다.

앙젤의 노래에서 브뤼셀이 이름을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일까? 앞선 2절 가사에서 1분 38초부터 시작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브뤼셀의 여러 구역을 열거한다.

Les Marolles, Flagey, Saint-Gilles, Laeken, à qui je dois mon nom
레마롤, 플라제, 생질, 내게 이름을 준 라컨

처음 셋은 [le maʁɔl] ‘레마롤’, [flaʒɛ] ‘플라제’, [sɛ̃ ʒil] ‘생질’로 각각 발음되는 프랑스어식 지명이다. 다만 les Marolles은 네덜란드어 이름인 Marollen [maˈrɔlə(n)] ‘마롤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마지막 Laeken은 네덜란드어식 지명이며 네덜란드어로 [ˈlaːkə(n)] ‘라컨’으로 발음된다. 라컨이 있는 브뤼셀 서북부는 그나마 네덜란드어가 아직 꽤 쓰이는 지역이다. 앙젤이 노래에서 쓴 발음은 네덜란드어 발음과 가까운 [lakən]이지만 프랑스어에서 게르만어식 철자 -en에 해당하는 폐음절 [ən]은 [ɛn]으로도 발음될 수 있으므로 [lakɛn] ‘라켄’으로 발음하는 것도 가능하다. 프랑스어에서 이런 -en [ən, ɛn]의 한글 표기는 ‘엔’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에서 마지막 음절의 e를 ‘어’로 적게 한 것도 그냥 ‘에’로 통일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현행 규정을 따르도록 한다.

Laeken의 ae는 네덜란드어 장모음 [aː]를 나타내는 구식 철자로 오늘날에는 aa로 쓰거나 a가 장모음으로 발음되는 위치에서는 그냥 a로 쓴다. Laeken을 현대식 철자로 쓰면 Laken이 될 것이다. 하지만 특히 벨기에 지명에서는 이런 구식 철자가 많이 남아있다. 이를 잘 모르는 프랑스인들은 벨기에 고유명사에서 ae를 마치 독일어의 ae, ä인 것처럼 [ɛ]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Laeken을 [lakən, -kɛn] 대신 *[lɛkɛn] ‘레켄’으로 잘못 발음하는 식이다.

앙젤의 본명은 Angèle Van Laeken ‘앙젤 반라켄/판라컨’이다. Angèle [ɑ̃ʒɛl] ‘앙젤’은 프랑스어 이름이지만 Van Laeken은 라컨에서 왔다는 것을 뜻하는 네덜란드어식 성씨이다. 네덜란드어로는 [vɑn ˈlaːkə(n)] ‘판라컨’, 프랑스어로는 [van lakən, vɑ̃-, -kɛn] ‘반라켄/방라켄’으로 발음된다. 물론 어두v를 [v]로 발음하는 벨기에 발음을 기준으로는 ‘반라컨’으로 적는 것이 더 가깝다.

그러니 앙젤이 라컨을 자신에게 이름을 준 곳으로 표현하고 브뤼셀에게 이름 때문에 고맙다고 노래하는 것은 자신의 성씨인 Van Laeken에 대한 가사이다. 그는 네덜란드어식 성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브뤼셀 주민이다. 그는 프랑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프랑스어 화자로서 완전한 이중 언어 구사자는 아니지만 브뤼셀은 이중 언어 지역이고 벨기에의 수도이기도 하므로 국민 절반이 쓰는 언어인 플라망어도 기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프랑스 라디오에서 플라망어로 노래 부를 수 있다는 생각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벨기에 인기 가수이자 래퍼인 스트로마에(Stromae)도 브뤼셀 출신으로 라컨에서 자라났다. 그의 본명은 Paul Van Haver ‘폴 반아베르/판하버르’이며 역시 네덜란드어식 성씨를 쓴다. 그의 아버지는 르완다 출신이고 성씨는 어머니 성씨를 땄다. 혹자는 Stromae에서 e가 약화되어 [stʁɔmaj]로 발음된다고 해서 ‘스트로마이’로 적기도 하지만 maestro ‘마에스트로’의 음절 순서를 바꾼 예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철자식으로 ‘스트로마에’로 적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스트로마에가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진행자는 네덜란드어, 스트로마에는 프랑스어가 더 편하지만 둘 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중에 전화 연결된 청취자는 아마 네덜란드어 화자인 듯하지만 프랑스어로 스트로마에에게 질문을 하고 스트로마에는 네덜란드어로 답을 한다.

전설적인 벨기에 가수 자크 브렐(Jacque Brel [ʒɑk bʁɛl], 1929~1978) 역시 브뤼셀 출신으로 원래 네덜란드어를 쓰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둘 다 구사했다. 그는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1961년작 〈마리커(Marieke)〉에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로 된 가사를 번갈아 가면서 불렀다.

브뤼셀에는 프랑스어식 지명과 네덜란드어식 지명이 혼재하는 것처럼 프랑스어식 이름과 네덜란드어식 성씨를 쓰는 이들이 많다. 물론 브뤼셀뿐만이 아니라 벨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름은 프랑스어식이지만 네덜란드어만 구사하는 이 또는 그 반대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 벨기에 고유 명사를 한글로 표기하려면 원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쓰이는 발음을 흉내내는데 치중한 외래어 표기법의 현행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이 아쉬운 또다른 이유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발음이 비슷한데도 한글 표기가 너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Van Laeken은 프랑스어 발음 [van lakən, vɑ̃-, -kɛn]과 네덜란드어 발음 [vɑn ˈlaːkə(n)]이 서로 그리 다르지 않지만 현행 규정을 따르면 전자는 ‘반라켄’, 후자는 ‘판라컨’이 된다. 좀 더 합리적인 표기 방식을 따라서 네덜란드어 Van Laeken도 ‘반라켄’으로 적는다면 프랑스어를 따른 표기와 똑같아지므로 이 성씨를 한글로 적을 때 어느 언어를 원어로 삼을지 고민할 필요가 사라진다.

‘브뤼셀’은 프랑스어 이름 Bruxelles [bʁysɛl] ‘브뤼셀’을 따른 표기이지만 위에서 인용한 가사에 나오는 네덜란드어 이름 Brussel [ˈbrʏsəl] ‘브뤼설’도 e의 표기를 ‘에’로 통일하면 프랑스어식과 동일하게 ‘브뤼셀’로 적을 수 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Bruxelles을 철자 때문인지 [bʁyksɛl] ‘브뤽셀’로 발음하는 이들이 많고 그 영향으로 프랑스 교민이나 유학생 가운데는 ‘브룩셀’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 표준 발음은 [bʁysɛl] ‘브뤼셀’만 인정된다. 이 노래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발음도 ‘브뤼셀’이다.

〈브뤼셀 주 템〉이 실린 앙젤의 2집 제목은 95를 뜻하는 《노낭트생크(Nonante-Cinq)》이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95년에서 따왔다. 95를 프랑스식 프랑스어로는 4 × 20 + 15라는 뜻으로 quatre-vingt-quinze [katʁ-vɛ̃-kɛ̃z → katʁəvɛ̃kɛ̃z] ‘카트르뱅캥즈’라고 하지만 벨기에식 프랑스어로는 90 + 5라는 뜻으로 nonante-cinq [nɔnɑ̃t-sɛ̃k] ‘노낭트생크’라고 한다. 프랑스식으로는 90을 뜻하는 말이 따로 없어서 4 × 20 + 10 즉 quatre-vingt-dix [katʁ-vɛ̃-dis → katʁəvɛ̃dis] ‘카트르뱅디스’로 표현하지만 벨기에식으로는 nonante [nɔnɑ̃t] ‘노낭트’가 90을 뜻한다.

프랑스어에서 70, 80, 90은 원래 오늘날의 septante [sɛptɑ̃t] ‘셉탕트’, huitante [ɥitɑ̃t] ‘위탕트’, nonante에 해당하는 말을 썼는데 무슨 영문인지 17세기 무렵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60 + 10을 뜻하는 soixante-dix [swasɑ̃t-dis] ‘수아상트디스’, 4 × 20을 뜻하는 quatre-vingt [katʁ-vɛ̃ → katʁəvɛ̃] ‘카트르뱅’, 4 × 20 + 10을 뜻하는 quatre-vingt-dix가 퍼지기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쓰는 표준 표현이 되었다. 캐나다의 퀘벡주에서도 이와 같이 쓴다. 하지만 벨기에, 스위스 등에서는 여전히 70, 90을 각각 septante, nonante로 쓰며 벨기에 식민지였던 콩고 민주 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등에서도 septante, nonante를 쓴다. 대신 벨기에에서도 80은 quatre-vingt이라고 쓰며 스위스에서는 지역에 따라 quatre-vingt과 huitante의 쓰임이 갈린다.

벨기에나 캐나다 등 타국 출신이라도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프랑스에서조차 그냥 프랑스 가수로 알려지는 경우가 흔한데 앙젤은 벨기에 가수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려고 브뤼셀을 사랑한다는 노래를 싱글로 발표하고 앨범 제목에 벨기에식 표현까지 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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