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를 연구하는 한국 예이츠학회(The Yeats Society of Korea)에서는 2004년 11월 13일 예이츠 문학에 등장하는 게일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 통일안을 확정했다. 이 통일안은 한국 예이츠학회 자료실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지난 주 토요일(2004/11/13) 한양대에 개최된 가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는 저희학회의 오랜숙원이었던 ‘게일어 고유명사 한글표기 통일안’이 아래와 같이 확정되었습니다. 앞으로 논문을 작성할 때에나 예이츠의 시를 번역할때에는 이 통일안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예이츠 저널》 22호와 《예이츠 시 번역 총서》 2권의 편집에도 ‘통일안’을 엄격히 적용토록 하겠습니다.
통일안은 다음과 같다.
Aedh/Aodh 에
Aengus 엥거스
Aillinn 일린
Aoife 이퍼
Baile 볼리야
Ballylee 발릴리
Ben Bulben 벤 불벤
Caoilte 킬처
Cathleen-ni-Houlihan 캐슬린 니 훌리한
Cloone, bog of 클룬
Clooth na Bare 클루 너 바
Cloyne 클로인
Conchubar 코나하
Connacht 코넛
Connemara 코네마라
Coole park 쿨 파크 (쿨 팍 ?)
Cromlech 크롬렉
Cro-Patrick 크로파트릭
Cruachan 크루컨
Cuchulain 쿨린
Danaan 다나안
Dromahair 드로마헤어
Druid 드루드
Drumcliff 드럼클립
Eire 에이레
Emer 에머
Fand 판
Fenians, 페니안
Fergus 퍼거스
Ferguson 퍼그슨
Finn 핀
Glasnevin 글라스네빈
Glencar 글렌카
Glencar Lough 글렌카 록
Glendalough 글렌다록
Gort 고트
Grania 그라니아
Gregory 그레거리
Grey Rock 그레이 록
Hanrahan 한라한
Houlihan 훌리한
Howth 호우쓰
Innisfree 이니스프리
Knocknarea 녹나리
MacDonagh 막도나
Maeve 메이브
Magee, Moll 몰 머기
Magh Ai 모카이
Malachi 말러카이
Mannannan 마나넌
Mayo 메이요
Naoise 니셔
Niam 니아브
O’Duffy 오더피
Oisin 어쉰
O’Rahilly 오라힐리
O’Roughley 오로클리
Patrick 파트릭
Paudeen 포딘
Ribh 리브
Sidhe 쉬
Sleuth Woods 슬루크 우드
Sligo 슬라이고
Thoor Ballylee 투르 발릴리
Tir-nan-Oge 티르 너 노그
Tuatha de Danaan 투어커 더 다나안
Usna 어쉬나
통일안에서 다루는 고유명사는 제목처럼 ‘게일어 고유명사’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아일랜드어 이름, 고대 아일랜드어 이름, 아일랜드어에서 나온 영어 이름, 다른 켈트어파 언어에서 나온 영어 이름 등 다양하다.
아일랜드의 언어 상황
아일랜드는 켈트어파에 속하는 아일랜드어를 사용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영국의 지배 때문에 영어에 밀려 오늘날에는 아일랜드에서도 대부분 영어를 쓰고 아일랜드어를 완전한 모국어로 쓰는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 계통상 게르만어파인 영어와 켈트어파인 아일랜드어는 거의 관계가 없는 언어다.
아일랜드어는 스코틀랜드 게일어, 맨 섬(Isle of Man)에서 쓰는 맨어(Manx)와 함께 켈트어파 중 게일어군(Goidelic languages 또는 Gaelic languages)을 형성한다. 영국의 웨일스 지방에서 쓰는 웨일스어도 켈트어파 언어이지만 게일어는 아니다. 중세 아일랜드 신화에서는 Goídel Glas라는 이가 게일어를 창시하고 게일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고대 아일랜드어의 Goídel에 해당하는 현대 아일랜드어 이름이 바로 겔(Gael), 영어식 발음으로는 ‘게일’이다.
아일랜드어는 아일랜드어로 ‘겔겨(Gaeilge)’라고 하고 이에 따라 영어로도 ‘게일릭(Gaelic)’이라고도 흔히 부르는데 이는 ‘게일어’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게일어도 ‘게일릭(Gaelic)’이라고 흔히 부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아일랜드어’라는 명칭을 사용하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아일랜드어’가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통일안의 문제점
외래어 표기법에 아일랜드어에 대한 표기 기준이 없으니 아일랜드어 이름의 표기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 아일랜드어는 철자에 따른 발음 규칙이 매우 복잡하며 방언마다 발음이 상당히 달라진다. 그래도 일정한 표기 기준을 세우고 실제 발음을 확인하며 표기를 정해야 할텐데 통일안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기가 꽤 있다.
아일랜드어 이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어 이름의 표기에 대해서는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통일안에서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통일안을 만든 이들이 외래어 표기법을 몰라서 그렇게 정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Druid를 ‘드루드’로 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Druid 드루드”
Druid는 영어 단어이다. 발음은 [ˈdɹu(ː)‿ɪd]. 흔히 아는대로 ‘드루이드’라는 표기가 맞다. 아일랜드어로는 ‘드루드’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현대 아일랜드어로 단수는 Draoi [d̪ˠɾˠiː] 즉 ‘드리’, 복수는 Draoithe [d̪ˠɾˠiːhə] 즉 ‘드리허’라고 한다. ‘드루드’라는 표기는 아무래도 발음을 잘못 안 것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웬만한 영어 사전에 발음이 나와 있는 단어인데도.
아니, 영어 사전까지 찾을 필요는 없다.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내용.
드루이드-교(Druid敎)
「명사」『종교』
고대 로마 시대에, 갈리아 및 브리튼 제도(Britain諸島)에서 이루어진 켈트 족의 한 종교. 성직자 드루이드가 창시한 것으로, 점술을 주로 하고 영혼 불멸·윤회·전생을 설법하며, 죽음의 신을 세계의 주재자로 믿는다.
국어 사전에도 나와있고 언중에 익숙한 ‘드루이드’라는 용어를 근거가 없는 ‘드루드’라는 표기로 바꾸자는 것인가? 오타라고 믿고 싶다.
“Sleuth Woods 슬루크 우드”
또 Sleuth Wood (Woods가 아니다)가 ‘슬루크 우드’가 된 경위도 알고 싶다. 영어 발음 [ˈsluːθ ˈwʊd]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슬루스 우드’라고 적어야 한다. Sleuth도 웬만한 영어사전에 발음이 실린 단어다.
예이츠의 시에 등장하는 Sleuth Wood는 사실 Slish Wood라는 실제 존재하는 숲을 가리킨다. 니컬러스 그린(Nicholas Grene)이 쓴 Yeat’s Poetic Codes에 나오는 설명을 인용해보자.
Whichever the island, the correct name is Slish Wood, though, not Sleuth Wood or ‘Slewth Wood’ as Yeats wrote it in early printings of the poem. Slish comes from ‘the Irish word “slios”, meaning “sloped” or “inclined”‘, and McGarry suggests that ‘Sleuth’ is also ‘derived from an Irish word “Sliu” meaning a slope or sland.’ He goes on to say that ‘Although the name Sleuth Wood seems unknown to residents in that locality, it is possible the poet heard it so called by local inhabitants.’ Or misheard it.
귀찮아서 전부 번역하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기를 부탁한다. 요약하면 예이츠는 초기 판본에는 Slewth Wood, 후에는 Sleuth Wood라고 했지만 Slish Wood가 맞는 이름이며, Slish의 어원은 slios이다. Sleuth는 아일랜드어 Sliu에서 왔다는 시각도 있다. 예이츠가 지역 주민들이 Sleuth Wood라고 한 것으로 듣고 그렇게 썼을 가능성이 있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slios는 [ʃlʲɪsˠ], 즉 ‘슐리스’ 정도로 발음된다. Sliu는 온라인 아일랜드어 사전에서 찾지 못했지만 철자대로 발음된다면 [ʃlʲʊ], 즉 ‘슐류’가 된다.
아무리 어원을 따지고 아일랜드어 발음을 따져도 ‘슬루크’라는 표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Tuatha de Danaan 투어커 더 다나안”
Tuatha de Danaan은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종족을 이른다. 아일랜드어로 Tuatha Dé Danann라고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의 아카이아인들의 다른 이름인 ‘다나오이’가 라틴어를 거쳐 영어로 Danaan이라고 하는데 이 영향을 받아 Tuatha de Danaan이라는 철자를 쓰지 않았을까 한다.
아일랜드어로 Tuatha Dé Danann은 [t̪ˠuːəhə dʲeː d̪ˠan̪ˠən̪ˠ], 즉 ‘투어허 뎨 다넌’ 정도로 발음된다. 북부 얼스터 지방 발음으로는 구개음화가 되어 [tu:hə dʒe dænən], 즉 ‘투허 제 대넌’ 정도가 된다. [æ]는 ‘아’로 표기하는 것이 더 발음에 근접할 수도 있겠지만. 고대 아일랜드어 발음은 /tuːaθa ðʲeː ðaNaN/이라고 한다. 굳이 표기하자면 ‘투아사 뎨 다난’ 정도?
영어 발음을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백과사전 등에서는 보통 현대 아일랜드어 발음을 흉내내어 [ˈtuː‿ə.hə deɪ̯ ˈdɑːn.ən], 즉 ‘투어허 데이 다넌’으로 발음하는 것을 권한다.
그런데 ‘투어커 더 다나안’이라는 표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Sleuth-‘슬루크’에 이어 여기서도 철자상의 th를 ‘ㅋ’으로 표기했다. 어떤 발음 설명을 어떻게 이해했길레 나온 표기인지 궁금해지기만 한다. ‘신’을 뜻하는 아일랜드어 Dia의 속격 Dé를 영어 이름의 강세 없는 de로 인식해 ‘더’로 표기한 것도 이상하다.
Danann은 켈트 신화의 여신 Danu(현대 아일랜드어로는 Dana)의 속격으로 ‘다넌’, 이렇게 두 음절로 발음된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다나오이’의 영어 이름인 Danaan은 [də.ˈneɪ̯.ən], 즉 ‘더네이언스’라고 세 음절로 발음된다. 아무리 Tuatha de Danaan의 Danaan이 일리아스의 Danaan의 영향을 받은 표기라 해도 이것을 세 음절로 발음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난’이라는 표기는 이해할 수 있어도 ‘다나안’은 어원과 발음을 무시하고 철자에 한글을 대입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Cuchulain 쿨린”
쿨런의 개를 죽인 쿠훌린. ‘쿨런의 개’라는 뜻의 ‘쿠훌린’은 이 일로 인해 얻은 별명이다.
Cuchulain의 발음에 대해서는 러처드 J. 피너런(Richard J. Finneran)이 The Poems of WB Yeats: A New Edition에 쓴 주석을 살펴보자(여기서 인용).
Yeats explained that ‘Cuchullin (pronounced CuHOOlin) was the great warrior of the Conorian cycle.’ . . . The correct pronunciation of Cuchulain is Koo-hullin; Yeats is pronouncing a long vowel as short and a short vowel as long. ‘Conor’ is an anglicization of a modern pronunciation of Conchubar (620).
예이츠는 약간 다른 철자를 쓰면서 Cuchullin의 발음을 CuHOOlin, 즉 [kʊ.ˈhuːl.ɪn]으로 적었는데 피너런은 예이츠가 장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고 단모음을 장모음으로 발음하고 있다며 [kuː.ˈhʊl.ɪn]이 맞는 발음이라고 하고 있다. 어쨌든 한글로 표기할 때는 둘 다 ‘쿠훌린’이 된다.
아일랜드어의 Cúchulainn의 발음은 마지막 무강세 모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kuːxʊɫ̪ənʲ], 즉 ‘쿠훌런’으로 쓸 수도 있고 [kuːxʊɫ̪ɪnʲ], 즉 ‘쿠훌린’으로 쓸 수도 있다. 지역마다 발음 차이는 있겠지만 ‘쿨린’처럼 축약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쿨린’이라고 표기를 정했을까?
Cúchulainn 또는 Cú Chulainn은 아일랜드어로 ‘쿨런(Culann)의 개’라는 뜻이다. Culann의 c가 ch로 약화되고 어미가 바뀌어 Chulainn이 되었다. Culann은 영어식으로 Cullen이라고 쓰기도 하고 영어로는 보통 ‘컬런’으로 발음된다. 설마 Cuchulain이 ‘Cullen의 개’를 뜻한다는 설명을 잘못 알아들어 Cullen이 마치 Cuchulain에 해당하는 표기인 것으로 이해한 것 아닐까?
통일안 개정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게일어 고유명사 한글표기 통일안’에는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어긋나거나 발음과 전혀 동떨어지는 표기가 많다. Magh Ai의 실제 발음은 확인해보아야 알겠지만 ‘모카이’로 발음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 영어 이름에서 아일랜드(특히 북부)의 [æ]음이 ‘아’에 가깝게 들린다고 Patrick을 ‘패트릭’ 대신 ‘파트릭’으로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나라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영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려 한다면 끝이 없다. 또 Ferguson을 외래어 표기법에도 맞고 일반에게도 친숙한 ‘퍼거슨’ 대신 ‘퍼그슨’으로 쓰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아일랜드어를 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 통일안에서 다루는 이름들의 발음을 일일이 확인하고 뚜렷한 원칙을 세워 표기를 제시하고 싶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표기 통일은 중요하다. 이 통일안도 몇차례의 시안을 거쳐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표기의 적합성을 더 신중히 검토하고 아일랜드와 켈트 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한 후 표기 통일안을 발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통일안의 표기가 모두 엉터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어려운 아일랜드어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된 것도 많다. 그러나 ‘드루드’, ‘쿨린’, ‘투어커 더 다나안’ 등의 표기는 근거를 찾기 어렵고 납득하기 힘든 표기이다. 이런 표기를 예이츠 관련 논문이나 번역에서 엄격히 적용한다고 하니 한숨만 나온다.
이 통일안에서 다루는 용어는 아일랜드의 지명과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어 예이츠 학자들 뿐만이 아니라 아일랜드와 켈트 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이 두루 쓰는 것들이 많다. 그런 점을 고려하여 발표한지 4년이 지난 이제라도 원 발음을 확인하고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맞도록 통일안을 개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