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시루 디오마이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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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 3월 24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마흔 네 살 야권 후보 바시루 디오마이 파이(Bassirou Diomaye Faye)가 당선되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프리카 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키 살(Macky Sall) 현 대통령이 기존 선거법에 문제가 있다며 2월 25일 열릴 예정이었던 대통령 선거를 갑자기 연기하였지만 세네갈 헌법 위원회에서 이를 위헌으로 결정하는 우여곡절 끝에 예정보다 한 달 늦게 대선이 치러졌는데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출마 자격을 박탈당한 야당 대표 우스만 송코(Ousmane Sonko)를 대신해서 출마한 파이가 12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세무조사관 출신인 파이 역시 작년 4월 14일 가짜뉴스 전파와 사법부 모욕 등을 혐의로 체포되어 송코처럼 구금되었지만 유죄 판결 없이 대선 열흘 전에 석방되었다. 그는 역시 세무조사관 출신인 집권당 후보 아마두 바(Amadou Ba)를 누르고 과반을 득표하면서 결선 투표 없이 1차 투표에서 그대로 당선이 확정되었다.

최근 서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연이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가운데 세네갈은 그동안 민주적·평화적 대통령 교체를 수차례 이루어냈지만 헌법상 3선을 하지 못해 임기를 끝내는 마키 살 현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선 연기와 야당 대표 체포를 겪으면서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라는 표기를 쓰고 있지만 Bassirou Diomaye Faye의 프랑스어 발음 [basiʁu djɔmaj faj]에 따른 표기는 ‘바시루 디오마이 파이’가 적절하다. 세네갈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세네갈의 토착 언어 가운데 사용 인구가 가장 많고 교통어로 널리 쓰이는 월로프어로는 Basiiru Jomaay Fay [basiːru ɟɔmaːj faj] ‘바시루 조마이 파이’라고 한다.

월로프어나 세레르어 등 세네갈에서 쓰이는 니제르·콩고 어족 언어 대부분은 경구개 폐쇄음 [c, ɟ]를 쓰며 이들 언어의 로마자 철자에서는 c, j로 적는다. 하지만 프랑스어가 세네갈의 공용어인만큼 세네갈 고유 명사는 보통 프랑스어식 로마자 철자로 알려지는데 프랑스어에서는 [c, ɟ]를 보통 [tj, dj]로 흉내낸다. 그래서 Jomaay를 Diomaye로 적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월로프어 성씨 Jóob [ɟoːp] ‘조프’, Juuf [ɟuːf] ‘주프’는 프랑스어식으로 Diop [djɔp] ‘디오프’, Diouf [djuf] ‘디우프’가 된다. 세네갈 축구 선수 Sadio Mané [sadjo mane] ‘사디오 마네’는 월로프어 Saajo Maane [saːɟɔ maːnɛ] ‘사조 마네’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chardonnay [ʃaʁdɔnɛ] ‘샤르도네’, Orsay [ɔʁsɛ] ‘오르세’, Tremblay [tʁɑ̃blɛ] ‘트랑블레’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어에서는 어말 철자 -ay가 보통 [ɛ] ‘에’로 발음된다. 그래서 서아프리카에서 [aj, aːj]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보통 철자 -aye를 쓴다. 프랑스어의 -aye도 balaye [balɛj] ‘발레이’의 [ɛj] ‘에이’, maye [mɛ, me] ‘메’의 [ɛ, e] ‘에’ 등 발음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papaye [papaj] ‘파파이’처럼 [aj] ‘아이’를 나타내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이 방식을 고른 듯하다. 프랑스 배우 Nathalie Baye [natali baj] ‘나탈리 바이’, 프랑스 축구 선수 Yohan Cabaye [jɔan kabaj] ‘요안 카바이’ 등 서아프리카 언어와 관련이 없는 프랑스어 성씨에서도 -aye가 [aj] ‘아이’를 나타낸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규정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어말 [aj]는 ‘아유’로 적어야 한다. 반모음 [j]가 어말에 올 때에는 ‘유’로 적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Marseille [marsɛj] ‘마르세유’, taille [tɑːj] ‘타유’를 예로 들었다(여기서 쓰는 프랑스어 발음 표기 방식으로는 각각 [maʁsɛj], [taj, tɑːj]).

하지만 이 두 예는 철자에서 볼 수 있듯이 -ill-로 나타내고 고대 프랑스어에서 [ʎ]로 발음되던 음이 어말 e 앞에 올 때에 국한된다. 마르세유의 이탈리아어 이름인 Marsiglia [marˈsiʎʎa] ‘마르실리아’나 taille와 어원이 같은 이탈리아어 taglia [ˈtaʎʎa] ‘탈리아’에 원래의 [ʎ] 발음이 남아있다(이탈리아어 발음은 ‘마르실랴’, ‘탈랴’에 더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탈리아어의 gli [ʎ]를 뒤따르는 모음과 합치지 않는다). 마르세유의 에스파냐어 이름 Marsella는 방언에 따라 [maɾˈseʎa] ‘마르셀랴’ 또는 [maɾˈseʝa] ‘마르세야’로 발음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에스파냐어 대부분의 방언에서 일어난 것처럼 프랑스어에서는 원래의 [ʎ]가 17~19세기에 소실되어 반모음 [j]로 발음된다.

그래서 프랑스어에서 음운론적으로 자음 역할을 하는 음소 /j/는 원래의 /ʎ/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모음 /i/가 음절 지위를 잃어서 [j]로 변하는 경우도 많으며 이 경우는 보통 철자 i, y로 적는다.

Marseille는 프랑스어에서 [marˈsei̯ʎə], [marˈsɛʎə] 등의 발음을 거쳐서 오늘날의 [maʁsɛj]가 되었을 텐데 [ʎ]가 [j]로 발음이 바뀌는 한편 철자 e로 나타내는 어말 [ə]는 노래할 때 가끔 발음되는 것을 빼면 오늘날 파리식 발음에서 거의 언제나 묵음이다. 하지만 정작 마르세유 현지의 나이든 화자들은 [maʁˈsɛjə]와 같이 어말 e를 [ə]로 발음하는데 마르세유에서 쓰이는 프랑스 남부 전통 발음의 특징이다(이 지역은 원래 프랑스어가 아니라 오크어를 썼다).

프랑스어의 [ə]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으’로 적는데 [jə]는 ‘유’, 철자 gne로 적는 [ɲə]는 ‘뉴’로 적는 것은 각각 ‘이’와 ‘으’, ‘니’와 ‘으’를 결합한 음절을 한글로 표현할 수 없어서 가장 가까운 음으로 대체한 것이다. 굳이 요즘은 프랑스어에서 보통 묵음인 어말 e [ə]도 마치 발음되는 것처럼 표기를 정한 것은 일본어에서 マルセイユ[Maruseiyu] ‘마루세이유’로 흉내내는 것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프랑스어에서 어말에 [ə]가 없었던 경우는 어말 [j]를 ‘유’로 적을 근거가 사라진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프랑스 철학자 Simone Weil [simɔn vɛj]를 ‘베유(Weil)’로 적고 있으며 미술 용어인 trompe-l’œil [tʁɔ̃ːp lœj → tʁɔ̃p lœj]는 ‘트롱프뢰유(trompe-l’oeil)’로 적는다. 일본어에서도 ヴェイユ[Veiyu] ‘베이유’, トロンプ・ルイユ[toronpu-ruiyu] ‘도론푸루이유’로 적는다. 예전에 [jə]로 발음되었던 것을 염두에 두고 ille를 ‘유’로 적는 것을 애초에 [ə]가 없었던 il [j]의 표기에도 확대 적용시킨 것이다.

papaye [papaj] 같은 어말 -aye [aj]는 어떨까? 현행 외래어 표기 규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면 이도 ‘아유’로 적어야 한다. papaye는 에스파냐어 papaya ‘파파야’를 프랑스어로 차용하면서 원어의 어말 a가 e [ə]로 약화되었다가 탈락한 것이니 어쩌면 ‘파파유’라는 표기도 근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아프리카 이름에서 원어의 -ay, -aay에 대응되는 프랑스어식 철자 -aye처럼 애초에 [ə]가 없지만 [aj]로 발음될 수 있도록 철자상 e를 더한 경우는 ‘아유’로 적을 근거가 없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프랑스의 극작가 Jean Anouilh [ʒɑ̃ anuj] ‘장 아누이’는 ‘아누이(Anouilh, Jean)’로 쓰고 프랑스의 물리학자 Louis (Victor) de Broglie [lwi viktɔːʁ də bʁɔj] ‘루이 (빅토르) 드브로이’는 ‘드브로이(de Broglie, Louis Victor)’로 쓴다. 즉 어말 [j]를 ‘이’로 적은 것이다. Anouilh의 ilh는 프랑스어의 ill에 대응되는 오크어식 철자에서 나온 것이고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유래한 성씨 Broglie의 gli는 이탈리아어식 철자로 둘 다 원래 [ʎ]를 나타내었던 것이니 어원으로 따지면 -ille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누유’, ‘드브로유’로 적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에 어말 [j]를 ‘유’로 적는 규정은 현대 프랑스어 발음과 거리가 있어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그런데 성씨 Guillemin [ɡijmɛ̃] ‘기유맹’에서처럼 어중 자음 앞에 나오는 경우는 ‘*기맹’으로 적는 것도 약간 어색하다. 처음부터 Marseille ‘마르세이’, taille ‘타이’와 같이 적는 것으로 규정을 정했더라면 몰라도 ‘마르세유’ 같은 표기가 이미 정착되었으니 철자 ille에 대응되는 경우에 한정하여 ‘유’로 적고 대신 다른 철자가 어말 [j]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아누이’, ‘드브로이’에서처럼 ‘이’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 방식을 따르면 -aye [aj]는 ‘아이’로 적게 된다.

그런데 예전부터 세네갈 인명은 올바른 발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실제 발음과 다르게 한글 표기가 정해진 예가 많다. 1999년 4월 22일 제27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당시 IOC 윤리위원회 위원장 Keba Mbaye [keba mbaj] ‘케바 음바이’를 ‘음바예, 케바’로 표기를 정했으며 2000년 5월 30일 제33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당시 갓 취임한 세네갈 대통령 Abdoulaye Wade [abdulaj wad] ‘압둘라이 와드’를 ‘와데, 압둘라예’로 표기를 정했다. 월로프어로는 Abdulaay Wàdd로 적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성씨 Wade에서도 철자 e는 묵음인데 이를 ‘에’로 표기한 것이다.

2009년 12월 3일 제88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그해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Marie NDiaye [maʁi ndjaj] ‘마리 은디아이’를 ‘은디아예, 마리’로 표기를 정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세네갈 출신으로 월로프어로는 Njaay ‘은자이’로 적는 세네갈식 성씨를 쓴다.

기존 표기 용례를 중시하는 외래어 심의 과정의 특성상 2012년 실무소위에서는 올바른 발음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Souleymane Ndéné Ndiaye [sulɛman ndene ndjaj] ‘술레만 은데네 은디아이’를 ‘은디아예, 술레만 은데네’로, Abdoul Mbaye [abdul mbaj] ‘압둘 음바이’를 ‘음바예, 압둘’로, Karim Wade [kaʁim wad] ‘카림 와드’를 ‘와데, 카림’으로 표기를 심의하였다. 카림 와드는 압둘라이 와드 전 대통령의 아들이니 기존 표기를 재심의하지 않고는 실제 발음에 따른 ‘와드’로 표기를 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는 세네갈 고유 명사의 프랑스어 발음을 주로 제시하고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규정에 따라 적도록 했지만 어말 [j]의 경우와 같이 현행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것도 있다.

1872년 프랑스령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정치 활동을 한 Blaise Diagne는 프랑스어 발음 [blɛːz djaɲ]를 기준으로 표기하면 ‘블레즈 디아뉴’이다. 그런데 얼핏 프랑스어식 성씨처럼 보이는 Diagne는 원래 월로프어 철자로는 Jaañ으로 적고 [ɟaːɲ] ‘잔’으로 발음되는 성씨를 프랑스어식 철자로 적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뉴’는 예전의 [ɲə] 발음을 염두에 둔 표기인데 애초에 [ə]가 없던 경우에도 적용하는 것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뚜렷이 나은 방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예전에 멋모르고 세네갈 고유 명사의 프랑스어식 철자에 나타나는 어말 묵음 e를 ‘에’로 적던 습관은 버릴 때가 되었다. 이제라도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대신 ‘바시루 디오마이 파이’로 적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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