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작곡가 외트뵈시 페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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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음악의 거장인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외트뵈시 페테르(Eötvös Péter)가 어제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44년에 당시 헝가리의 일부이던 트란실바니아의 세케이우드버르헤이(Székelyudvarhely)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루마니아령이 되어 오늘날 루마니아의 오도르헤이우세쿠이에스크(Odorheiu Secuiesc)이다.

외트뵈시는 다섯 살에 이미 작곡을 시작하여 열한 살 때 작곡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재능을 보였다. 역시 트란실바니아 태생인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가 리게티 죄르지(Ligeti György, 1923~2006)의 추천으로 또다른 저명한 헝가리 작곡가인 코다이 졸탄(Kodály Zoltán, 1882~1967)은 열네 살의 외트뵈시를 헝가리 최고의 음악 대학인 리스트 페렌츠 음악원(Liszt Ferenc Zeneművészeti Egyetem, 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 입학시켰다. 거기서 작곡을 공부한 그는 독일 쾰른 음악 무용 대학교(Hochschule für Musik und Tanz Köln)에서 지휘도 공부하였다.

그는 젊어서 영화와 연극 음악으로 이름을 알렸고 여러 편의 오페라도 작곡하였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벌루슈카(Valuska)》는 작년 12월 2일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는데 그가 작곡한 오페라 가운데 유일하게 헝가리어 가사를 쓴다.

그는 독일 카를스루에와 쾰른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젊은 작곡가와 지휘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여 후배 양성에도 힘을 썼다.

Eötvös Péter ‘외트뵈시 페테르’는 헝가리어식으로 성-이름 순으로 쓴 것이고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서는 보통 이름-성 순으로 Péter Eötvös라고 쓴다. 헝가리어는 대부분의 서양 언어와 달리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과 비슷하게 성-이름 순을 쓰는 것이 특이하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는 이름-성 순으로 된 서양 인명은 Brahms, Johannes ‘브람스, 요하네스’와 같이 ‘성, 이름’ 형태로 적는다. 즉 줄여 쓸 때는 ‘브람스’로 쓰고 이름까지 같이 쓸 때는 ‘요하네스 브람스’와 같이 서양 순서를 따라 이름-성 순으로 쓰라는 말이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는 Kodály, Zoltán ‘코다이, 졸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헝가리어 인명도 순서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이 ‘성, 이름’ 형태로 적는다. 즉 일반 서양 인명처럼 ‘졸탄 코다이’ 같은 이름-성 순을 따르라는 말이다. 하지만 원어를 존중하여 성-이름 순으로 ‘코다이 졸탄’과 같이 쓰자는 주장도 있다. 나무위키나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헝가리어 인명은 성-이름 순을 쓰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여기서는 원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일단 헝가리어 순서를 따랐다. 하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인명과는 달리 헝가리어 인명은 성-이름 순으로 접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영어, 독일어 등 서양 언어를 거쳐 전해지느라 이름-성 순으로 접하는 것이 보통이라 현실적으로 조금 무리라는 느낌도 든다. 특히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다언어 국가였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헝가리 출신 인물의 이름이라도 순수히 헝가리어 인명으로만 취급하기가 애매한 경우도 많다. 이민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헝가리 왕국의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이던 시절에 태어난 작곡가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 1811~1886)는 Ferenc에 대응되는 독일어 이름 Franz [ˈfʁanʦ]를 쓴 Franz Liszt ‘프란츠 리스트’라는 형태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라나면서 주로 독일어를 썼고 후에 프랑스어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헝가리 민족주의자였지만 정작 헝가리어는 잘 구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형태에 따라 이름-성 순으로 ‘프란츠 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성씨가 리게티(Ligeti)인 Ligeti György ‘리게티 죄르지’는 1968년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었는데 오스트리아 인명은 보통 이름-성 순으로 적으니 György Ligeti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오스트리아에서도 경우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성-이름 순을 쓰는 예도 찾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국제적으로는 이름-성 순이 일반적이다.

Eötvös는 ‘금세공인’을 뜻하는 ötvös [ˈøtvøʃ] ‘외트뵈시’의 옛 철자에서 나온 성씨이다. 발음도 [ˈøtvøʃ]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헝가리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따르면 마치 ‘*에외트뵈시’로 적어야 할 것 같지만 규칙적인 철자인 Ötvös를 옮긴 것과 같이 ‘외트뵈시’로 적는 것이 표준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헝가리의 물리학자 외트뵈스 로란드(Eötvös Loránd, 1848~1919)를 ‘외트뵈시(Eötvös, Rolánd)’로 수록하고 있다. 성씨만 표제어로 수록했으니 여기서 한글 표기는 문제가 없지만 *Rolánd는 잘못된 표기이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는 Eötvös, Rolánd를 ‘외트뵈시, 롤란드’로 표기하고 있다.

독일어 Franz ‘프란츠’에 대응되는 헝가리어 이름이 Ferenc ‘페렌츠’인 것처럼 헝가리어 Loránd ‘로란드’는 원래 독일어 Roland [ˈʁoːlant] ‘롤란트’에 대응되는 이름이기 때문에 독일어식으로 그를 Roland Eötvös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굳이 독일어식 이름을 따른다면 원어는 *Rolánd가 아니라 Roland, 한글 표기는 ‘*롤란드’가 아니라 ‘롤란트’이다.

헝가리어는 sz가 [s]를 나타내고 s가 [ʃ]를 나타내는 등 철자와 발음의 대응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꽤 규칙적인데 Eötvös와 같이 고유 명사에서는 구식 불규칙 철자를 쓰는 예가 꽤 흔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Eötvös와 비슷하지만 더 심한 예로 성씨 Weöres는 ‘짙붉은’을 뜻하는 vörös의 구식 철자에서 왔기 때문에 [ˈvørøʃ] ‘뵈뢰시’로 발음된다. w는 v처럼 [v]를 나타내는 구식 철자이다.

헝가리 귀족 가문 Esterházy는 [ˈɛstɛrhaːzi] ‘에스테르하지’로 발음된다. 여기서 [s]는 sz 대신 s로 적었다. Eszterházy라는 철자도 쓰이는데 헝가리어 철자법에서는 원래 y를 gy [ɟ], ly [j], ny [ɲ], ty [c] 등의 조합에서만 쓰고 [i] 모음은 i로 나타내기 때문에 이것도 완전히 규칙적인 철자는 아니다. 대신 어말의 [i]를 y로 적는 구식 철자는 고유 명사에서 상당히 흔하다. 성씨 Horthy [ˈhorti] ‘호르티’의 예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또 [t]를 th로 적은 구식 철자가 있다.

‘에스테르하지-가(Esterházy家)’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제대로 수록되었지만 불규칙 철자 때문에 간혹 한글 표기를 그르치는 일도 있다. 헝가리의 시인·소설가인 버비치 미하이(Babits Mihály [ˈbɒbiʧ ˈmihaːj], 1883~1941)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비츠(Babits, Mihály)’로 나온다. [ʧ]를 cs 대신 구식 철자 ts로 썼기 때문에 혼동한 듯하다. ts도 [t]와 [ʃ]가 합쳐 [ʧ] 발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헝가리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만 가지고는 이를 ‘ㅊ’으로 적을 길이 없다.

한편 1998년 10월 28일 제24차 외래어 심의회에서는 당시 UN 국제사법재판소 판사였던 헝가리인 헤르체그 게저(Herczegh Géza [ˈhɛrʦɛɡ ˈɡeːzɒ], 1928~2010)의 원어 이름을 ‘Herczech, Geza’로 잘못 파악하고 ‘헤르체치, 게저’로 한글 표기를 정했다. cz는 c처럼 [ʦ]를 나타내고 gh는 g처럼 [ɡ]를 나타내는 구식 철자이다. 불규칙 철자 때문에 혼동한 듯한데 참고로 또다른 귀족 가문 이름인 Széchenyi [ˈseːʧɛɲi] ‘세체니’에서 볼 수 있듯이 ch는 정말로 cs처럼 [ʧ]를 나타내는 구식 철자이기도 하다. 다만 독일어나 슬라브어계 이름의 ch는 [h]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외래어 표기법의 헝가리어 표기 규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긴 모음 á [aː]는 ‘아’로 적지만 이에 대응되는 짧은 모음 a [ɒ]는 ‘어’로 적는다는 것이다. 헝가리어 모음은 대개 대응되는 긴 모음과 짧은 모음의 음가가 별 차이 없으며 e [ɛ]와 é [eː]는 높이에 차이가 있지만 한글 표기는 둘 다 ‘에’로 적는다. 그러니 a ‘어’와 á ‘아’는 모음의 길이로 한글 표기가 구별되는 유일한 예이다.

확실히 헝가리어 [ɒ]는 한국어 중부 방언 화자 기준으로 ‘어’와 가깝게 들리는 음이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은 단순히 가장 가깝게 들리는 한국어의 음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지난 글에서 본 것처럼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는 일차적으로 중설 중모음 [ə]를 나타내는 표기이다. [ɒ]를 ‘어’로 적은 예는 헝가리어가 유일하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의 [ɒ]를 예전 기호 [ɔ]로 보고 ‘오’로 적거나 미국 영어의 경우 [ɑː]로 보고 ‘아’로 적는다. 스웨덴어에서는 긴 모음 a를 흔히 [ɑː]로 적지만 스웨덴 중부 방언에서는 사실 [ɒː]로 원순화되어 발음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그냥 ‘아’로 적는다. 페르시아어의 긴 모음 ā도 현대 이란 발음에서는 [ɒ]이지만 표기 용례에서는 ‘아’로 적는다.

종합적으로 보면 너무 원어 발음에 집착하기보다는 헝가리어의 a [ɒ]도 ‘아’로 통일하는 것이 낫다. 라틴어에서 나와서 유럽 여러 언어와 공통으로 쓰는 헝가리어 여자 이름 Anna, Tereza, Viktória 등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처럼 ‘언너’, ‘테레저’, ‘빅토리어’로 적는 것보다 ‘안나’, ‘테레자’, ‘빅토리아’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영어에서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ə]를 무조건 ‘어’로 적는 것이 원칙이었다가 관용을 존중하여 지명과 인명에서 어말 -a는 [ə]로 발음되더라도 ‘아’로 적도록 했고 지금은 일반 용어에서도 ‘아’로 쓴다. 라틴어 Agatha ‘아가타’에서 온 영어 여자 이름 Agatha [ˈæɡ.əθ.ə]를 흔히 ‘애거서’로 적는 것은 이 관용이 인정되기 전에 쓰던 표기가 남은 것이고 요즘 표준 표기는 ‘애거사’이다.

헝가리어의 a도 ‘아’로 적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면 헝가리의 또다른 저명한 작곡가 버르토크 벨러(Bartók Béla [ˈbɒrtoːk ˈbeːlɒ], 1881~1945)도 ‘바르토크 벨라’로 적게 된다. 이 성씨는 흔히 ‘바르톡’이라는 비표준 표기로도 쓴다.

한편 Székelyudvarhely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세케유드버르헤이’로 적어야 하지만 székely + udvarhely로 분석되는 이름으로 흔히 Udvarhely ‘우드버르헤이’로 줄여 부르기 때문에 위에서는 ‘세케이우드버르헤이’로 표기했다. 물론 a를 ‘아’로 적는다면 ‘세케이우드바르헤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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