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최남단의 도시 라파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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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국제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최남단에 있는 라파흐에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을 천명하고 있어서 현재 그곳에 모인 수많은 피란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애초에 가자 지구 전체가 서울의 절반 정도 면적인 비좁은 땅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으로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란하면서 원래 가자 지구 전체의 인구 230만 정도 가운데 어쩌면 150만 정도가 현재 라파흐에 밀집해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파흐는 이집트 국경에 접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더이상 피할 곳이 없다.

이미 라파흐 폭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규모 지상전까지 벌어진다면 거대한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로 피란민이 쏟아져나올 것을 우려하여 탱크를 배치하고 벽을 세우는 등 국경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라파흐 지상전을 강행하면 1978년에 맺은 평화 협정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집트령인 시나이반도 내륙 지역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남부에 있는 네게브 사막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대부분의 인구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집중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여러 마을 가운데 라파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다마스쿠스주(후에 거기서 갈라져나온 예루살렘주)와 이집트주 사이의 경계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령 이집트는 19세기 이후 준독립국이 되었다가 1882년 영국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들어갔는데 1906년 영국과 오스만 제국과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령 예루살렘주 사이의 국경을 라파흐와 아카바만에 면한 타바(طابا Ṭābā) 사이의 직선으로 정했다.

그래서 라파흐는 국경에 닿은 마을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즉 오스만 제국이 예루살렘주로 다스리던 지역도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지만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양 영토 간의 국경을 유지했으며 이 시기에 라파흐도 국경 마을로서 성장했다.

1948~1949년 제1차 중동 전쟁 이후 이집트가 가자 지구를 점령하면서 라파흐는 더이상 국경에 놓이지 않게 되었으며 기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번에는 가자 지구는 물론 시나이반도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했는데 주인은 바뀌었지만 라파흐는 여전히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으로 인해 1979년 시나이반도가 이집트에 반환되면서 다시 오스만 제국과 영국이 그었던 국경선이 30년만에 부활하여 그동안 확장했던 라파흐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라파흐는 둘로 나뉘게 되었고 오늘날 가자 지구의 라파흐에서 국경을 넘으면 이집트에도 같은 이름의 라파흐라는 소도시가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새 국경이 지나는 부분을 불도저로 파괴하고 철조망을 쳤다. 이집트 정부는 2015년 가자 지구와의 완충 지대를 확대하겠다고 이집트쪽 라파흐를 완전히 파괴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라파흐는 아랍어로 رفح Rafaḥ ‘라파흐’라고 하며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로는 רפיח Rafiaẖ [ʁaˈfiaχ] ‘라피아흐’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지만 레반트에서 이집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요충지로서 수천 년 전부터 기록에 나타나는 유서 깊은 곳이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때 rpḥ, rpwḥw 등으로 기록되었으며 고대 히브리어로는 רְפִיחַ Rəp̄îaḥ ‘르피아흐’라고 했다.

고대 아시리아에서는 𒊏𒉿𒄭 Rapiḫi, 𒊏𒉿𒄷 Rapiḫu 등으로 기록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어로는 Ῥαφία(Rhaphía) ‘라피아’라고 했고 이에 따라 라틴어로는 Raphia ‘라피아’라고 불렀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이 시리아의 지배를 놓고 벌인 시리아 전쟁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싸움으로 아프리카 코끼리와 인도 코끼리가 동원된 기원전 217년의 라피아 전투가 꼽힌다.

이집트어 ḥ와 고대 히브리어 ח ḥ는 아랍어의 ح ḥ처럼 무성 인두 마찰음 [ħ]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시리아에서 쓰인 후기 아카드어에는 ḥ 음이 따로 없어 ḫ [x]로 흉내냈고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어두 외의 위치에서 ‘ㅎ’ 비슷한 음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해서 그냥 묵음으로 처리했다.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에서도 대부분의 화자들은 고대 히브리어의 ח ḥ를 כ kh [χ]와 마찬가지로 무성 구개수 마찰음 [χ]로 발음한다. 대신 예멘 유대인들이 쓰는 예멘 히브리어에는 고대 히브리어식 [ħ] 발음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도시의 이름으로 언론에서는 ‘라파’와 ‘라파흐’가 혼용되고 있는데 ‘라파’로 표기한 것은 로마자 표기의 어말 h를 묵음으로 처리한 결과이다.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의 일러두기에 세칙의 형태로 제시된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는 h가 자음 앞 또는 어말에서 음가가 있더라도 표기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은 외래어 표기법에 정식으로 포함되지는 않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의 표기를 정할 때 적용되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다.

그런데 1992년에 외래어 표기법에 추가된 폴란드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표기 규정에서는 철자 h를 자음 앞 또는 어말에서 ‘흐’로 적도록 하고 있다. 폴란드어와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에서는 어말의 h가 무성 연구개 마찰음 [x]를 나타낸다. 즉 이들 언어에서 ch [x]와 발음이 같다. 독일어의 표기에서 Bach [ˈbax] ‘바흐’ 등의 어말 [x]를 이미 ‘흐’로 적고 있으므로 이와 일관되게 표기하도록 한 것이다.

폴란드어에서는 우크라이나어 пороги(porohy) ‘포로히’에서 유래하여 ‘수로의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는 부분’을 뜻하는 poroh ‘포로흐’와 같은 일부 차용어를 제외하면 어말에 h가 오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체코어에서는 슬라브 조어의 *g가 h로 변했기 때문에 ‘신’, ‘하느님’을 뜻하는 bůh [ˈbuːx] ‘부흐’처럼 어말에서 h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세르보크로아트어에서는 페르시아어로 ‘왕’을 뜻하는 شاه shāh ‘샤’에서 유래한 šah [ˈʃâx] ‘샤흐’와 같은 차용어에 흔히 나타난다(폴란드어에서는 같은 말을 어말 ch를 써서 szach [ˈʂax] ‘샤흐’라고 적는다).

루마니아어와 헝가리어에서는 h가 우리에게 익숙한 성문음인 [h]로 발음된다. 그러나 이들 언어에서도 어말 h는 변이음 [x]로 흔히 발음된다. 그래서 ‘샤’를 뜻하는 루마니아어는 șah [ˈʃax] ‘샤흐’, 헝가리어는 sah [ˈʃɒx] ‘셔흐’이다. 물론 변이음을 발음 표기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각각 [ˈʃah], [ˈʃɒh]로 적을 수도 있다.

페르시아어 shāh에서 유래한 말은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예전의 페르시아 왕 칭호뿐만이 아니라 체스 즉 서양장기의 이름으로도 흔히 쓰인다(이때 폴란드어에서는 복수형 szachy ‘샤히’를 쓴다). 독일어에서는 ‘샤’를 Schah [ˈʃaː] ‘샤’, ‘체스’를 Schach [ˈʃax] ‘샤흐’로 써서 구별하는 것이 재미있다. 헝가리어에서도 ‘샤’는 sah ‘샤흐’, ‘체스’는 sakk ‘셔크’이다.

페르시아어 shāh는 고전 페르시아어에서 [ˈʃɑːh]로 발음되었지만 오늘날의 이란 페르시아어 [ˈʃɒː(h)], 다리어(아프간 페르시아어) [ˈʃɑː(h)], 타지크어(타지키스탄 페르시아어) шоҳ(shoh) [ˈʃɔ(h)] ‘쇼’에서는 h가 약하게 발음되며 쉽게 탈락한다.

또 페르시아어에서는 철자상의 어말 ه h가 언제나 묵음인 경우가 많다. ‘집’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خانه khānah ‘하나'(이란 페르시아어로는 khāneh ‘하네’)에서는 ه h가 단순히 어말 모음을 나타내는 철자로 쓰인 것이므로 애초에 자음 음가가 없다. 고전 페르시아어 [xɑːˈna] ‘하나’, 이란 페르시아어 [xɒːˈne] ‘하네’, 다리어 [xɑːˈnæ] ‘하나’, 타지크어 хона(khona) [χɔˈnæ] ‘호나’ 등으로 발음된다.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 h를 자음 앞 또는 어말에서 음가가 있더라도 표기하지 않는 예로 든 것 가운데 하나는 Pahlavi ‘팔라비’인데 이란 페르시아어 پهلوی Pahlavī [pʰæɦlæˈviː]에 해당한다(유성 환경에서는 h가 변이음인 유성 성문 반찰음 [ɦ]로 보통 실현된다). 즉 페르시아어의 h는 자음 앞과 어말에서 적지 않기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같은 어중 자음 앞 위치에서는 현대 페르시아어에서도 h가 좀처럼 완전히 탈락하지는 않는다.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 페르시아어의 h를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 적지 않도록 한 것과 폴란드어·체코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헝가리어 표기 규정에서 h를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 ‘흐’로 적도록 한 것을 일관된 기준을 통해 설명하자면 변이음으로라도 [x], [χ] 등의 마찰음으로 실현되는 경우는 ‘흐’로 적고 [h], [ɦ] 등의 성문음으로만 실현되는 경우는 묵음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h], [ɦ]도 마찰음으로 흔히 분류되지만 조음 기관의 간격을 좁힌 사이로 마찰을 일으켜서 발음하는 일반 마찰음과는 달라서 조음 위치가 따로 없다.

그런데 루마니아어 șah ‘샤흐’와 헝가리어 sah ‘셔흐’에서는 어말 h를 ‘흐’로 적고 페르시아어 shāh는 ‘샤’로 적는 것은 사실 좀 임의적인 기준일 수 있다. 어딘가는 선을 그어야 하는데 페르시아어의 h는 자음 앞과 어말에서 묵음으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그 기준에서 보면 아랍어의 어말 ه h는 묵음으로 처리해야 한다. 뒤따르는 음에 따라 ah 또는 at로 발음되는 아랍어의 어미를 나타내는 자모 ة -ah도 마찬가지로 ‘아’로 적어야 한다. 표준 문어체 아랍어에서는 이론적으로 어말에서도 h는 [h~ɦ]로 발음하지만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어말 h가 아예 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가자 지구의 주요 도시인 가자의 아랍어 이름은 غزة Ghazzah인데 표준 문어체 아랍어 발음은 이론적으로 [ˈʁazzæɦ~ˈɣazzæɦ]이지만 h가 탈락하여 [ˈʁazza~ˈɣazza] ‘가자’로 발음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 현지 구어체 아랍어로는 [ˈɣazze] ‘가제’ 정도로 발음한다. 팔레스타인 구어체 아랍어를 포함하는 레반트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입 앞쪽에서 조음되는 자음 뒤의 -ah가 [e]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랍어의 ح ḥ는 무성 인두 마찰음 [ħ]를 나타내며 탈락하는 일이 없이 어말에서도 언제나 마찰음으로 발음되므로 ‘흐’로 쓰는 것이 좋다. 조음 위치가 좀 더 뒤쪽에 있다는 것만 빼면 [x]나 [χ]와 차이가 없다. 따라서 رفح Rafaḥ는 ‘라파’가 아니라 ‘라파흐’로 적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비슷한 예로 아랍어 남자 이름 صلاح Ṣalāḥ도 ‘살라흐’로 써야 하겠다. 통용 로마자 표기로 Mohamed Salah라고 하는 이집트 축구 선수도 ‘살라’라고 적는 일이 흔하지만 아랍어 발음을 고려하면 ‘살라흐’가 낫다. 다만 Mohamed는 문어체 아랍어 محمد Muḥammad에 따라 ‘무함마드’로 쓰는 것보다는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 Moḥammad를 살려 ‘모함마드’로 쓰는 것을 고려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이름은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에서 보통 Maḥammad [mæˈħæmmæd] ‘마함마드’로 발음하고 이슬람교를 논할 때만 Moḥammad [moˈħæmmæd] ‘모함마드’를 쓰는데 통용 로마자 표기에 가까운 ‘모함마드’를 택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물론 통용 로마자 표기에서 Rafah, Salah 등으로 쓴 것을 보면 묵음으로 처리하는 h인지, ‘흐’로 적어야 할 ḥ인지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ḥ는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라파흐’, ‘살라흐’처럼 예외적으로 ‘흐’로 적는 것 몇 개만 알아두면 된다.

가자는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로 עזה Azah ‘아자’라고 쓰며 [ˈ(ʔ)aza] ‘아자’로 발음한다. 고대 히브리어로는 עַזָּה ʿAzzāh ‘아자’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어로는 Γάζα(Gáza) ‘가자’로 옮겼다. 이에 따라 라틴어로는 Gaza ‘가자’라고 하며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서 이 이름을 쓴다.

고대 히브리어 자모 아인(ע)은 아랍어 자모 아인(ع)처럼 유성 인두음인 [ʕ]로 발음되었다. 국제 음성 기호에서는 유성 인두 마찰음과 접근음을 구별하지 않고 [ʕ]로 표기하는데 적어도 아랍어에서는 접근음으로 발음되므로 이를 확실히 나타내려면 [ʕ̞]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쓰는 로마자 표기에서는 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ʿ로 나타낸다. 그런데 후에 대부분의 히브리어 발음에서는 원래의 [ʕ] 발음이 성문 폐쇄음 [ʔ]로 대체되었으며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다. 대신 예멘 히브리어에는 아직 [ʕ] 발음이 보존되어 있다.

유성 인두음 [ʕ]는 한국어에는 없으므로 한글로 표기할 때는 그냥 ‘ㅇ’으로 적는다. 고대 그리스어로도 고대 히브리어를 옮길 때 원래의 아인을 묵음 처리했다. 인명 עֵלִי ʿĒlî ‘엘리’는 Ηλί(Ēlí) ‘엘리’, 지명 עַכּוֹ ʿAkkô ‘아코’는 Ἀκχώ Akchṓ ‘아코’ 또는 Ἄκη(Ákē) ‘아케’, Ἄκρη(Ákrē) ‘아크레’로 적었다. 후자는 라틴어 Acre ‘아크레’로 이어진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어의 아인을 감마(γ)로 적은 예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나오는 지명 고모라는 고대 히브리어로 עֲמוֹרָה ʿĂmôrāh ‘아모라’인데 고대 그리스어로는 Γόμορρα(Gómorrha) ‘고모라’이다. 또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판관 이름인 עָתְנִיאֵל ʿOṯnîʾêl ‘오트니엘’은 고대 그리스어로 Γοθονιήλ(Gothoniḗl) ‘고토니엘’이라고 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원래 셈 조어에는 *ḡ /ʁ/와 *ʿ /ʕ/ 두 자음 음소가 구별되었다. 그런데 셈 어파에 속하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이들이 /ʕ/로 합쳐졌다. 페니키아 문자, 아람 문자 등에서는 ḡ와 ʿ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자모로 썼다. 아람 문자에서 유래한 히브리 문자에서도 둘 다 아인(ע)으로 적었고 아랍 문자에서도 원래는 둘 다 아인(ع)으로 적었다. 하지만 초기 히브리어에서는 아직 발음상으로 둘의 구별이 남아있어서 기원전 3세기경 히브리 성경을 고대 그리스어로 옮긴 이른바 70인역 성경을 펴냈을 때 [ʕ]는 묵음으로 처리하고 [ʁ]는 감마(γ)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도 결국 두 음의 구별은 사라졌다. 8~10세기에 갈리리 호수 서안 디베랴(Tiberias ‘티베리아스’의 한국어 성경식 표기)의 유대인들이 부호를 통해 히브리어 철자에 나타나지 않는 발음 구별을 표시하는 방법을 개발했을 때는 이미 두 음이 합쳐진 뒤였다(여기서 제시하는 고대 히브리어 철자는 디베랴식 모음 표식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고대 히브리어 עַזָּה ʿAzzāh에서는 셈 조어의 *ḡ가 ʿ로 바뀌었다.

반면 아랍어에서는 두 음의 구별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후에 아인(ع)에 점을 붙여 가인(غ)이라는 새로운 자모를 만들어 [ʁ] 음을 나타냈다. 오늘날 이 음은 구개수음인 [ʁ]보다는 연구개음인 [ɣ]로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랍어 غزة Ghazzah에는 셈 조어의 *ḡ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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