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화석 인류 명칭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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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아프리카 외의 지역 가운데 가장 오래된 화석 인류가 많이 발견된 곳으로 손꼽힌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를 이르는 표제어로 ‘자바^원인(Java原人)’ 및 ‘자바^직립^원인(Java直立猿人)’ 외에 ‘와자크-인(Wadjak人)’, ‘솔로-인(Solo人)’, ‘모조케르토-인(Modjokerto人)’ 등이 실려있다. 그런데 이런 용어 상당수는 재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19세기 말까지 네안데르탈인 등 옛 인류의 화석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 전부였는데 최초로 의도적인 탐색을 통해 화석 인류가 발견된 곳이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곧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였다. 아버지가 벨기에 프랑스어권 출신인 네덜란드 의사 외젠 뒤부아(프랑스어: Eugène Dubois [øʒɛn dybwa], 1858~1940)는 유인원과 인간을 잇는 연결고리인 이른바 ‘잃어버린 사슬(missing link)’이 동남아시아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군의로 지원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로 향했다. 진화론을 처음 발표한 다윈은 인류의 조상이 유인원 가운데 침팬지, 고릴라 등이 서식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질학자 라이엘, 독자적으로 진화론을 발견한 월리스 등 다른 학자들은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의 유인원이 서식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인류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보았다.

뒤부아는 수년 간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여러 군데를 조사하다 1891년 자바섬 동쪽 솔로(Solo)강 변에 있는 트리닐(Trinil)이라는 곳에서 옛 인류의 이빨과 머리뼈 상부, 넓적다리뼈를 발견하여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 즉 ‘곧선원숭이사람’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사슬’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빨원숭이와 인류의 중간 형태라고 주장했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이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여러 학설이 난무했다.

학자들은 1927년 중국 베이징 근처 저우커우뎬(周口店[Zhōukǒudiàn], 주구점)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가 뒤부아가 발견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뒤부아는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자바섬과 베이징 근처에서 발견된 두 화석 인류가 모두 우리와 같은 호모(Homo)속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어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즉 ‘곧선사람’으로 불린다. 둘은 아종 단계에서 구분하여 각각 ‘호모 에렉투스 에렉투스(Homo erectus erectus)’, ‘호모 에렉투스 페키넨시스(Homo erectus pekinensis)’로 부른다.

자바섬과 베이징 근처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는 흔히 영어로 각각 Java Man [ˈʤɑːv.ə ˈmæn] ‘자바 맨’과 Peking Man [ˌpiː.ˈkɪŋ ˈmæn] ‘피킹 맨’, 즉 ‘자바 사람’, ‘베이징 사람’이라고 부른다. Peking은 北京[Běijīng] ‘베이징’의 구식 난징 관화 발음을 따른 베이징의 옛 영어 이름이다. pekinensis도 비슷한 어근 Pekin에 라틴어식 형용사 어미 -ensis를 붙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들을 ‘자바^원인(Java原人)’ 또는 ‘자바^직립^원인(Java直立猿人)’, ‘베이징^원인(Beijing[北京]原人)’ 또는 ‘베이징-인(Beijing[北京]人)’, ‘베이징^인류(Beijing[北京]人類)’라고 각각 부른다. 여기서 ‘근원 사람’을 뜻하는 ‘원인(原人)’과 ‘원숭이사람’을 뜻하는 ‘원인(猿人)’은 한자가 다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직립^원인(直立猿人)’도 ‘곧선사람’ 및 ‘호모 에렉투스’의 동의어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의 학명 호모 에렉투스을 번역한다면 ‘직립인(直立人)’이라고 쓰는 것이 맞겠지만 폐기된 명칭인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에 대응되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원인(原人)’의 뜻풀이에서도 자바 원인과 베이징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원인(原人)’은 ‘직립^원인(直立猿人)’과 뜻이 겹치는 듯하다.

이처럼 헷갈리는 용어는 일본어에서 들여온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猿人[enjin] ‘엔진’과 原人[genjin] ‘겐진’의 발음이 다르니 혼동되지 않는다. 이들은 인류 진화를 네 단계로 나누었을 때 각각 첫째 단계, 둘째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셋째 단계는 旧人[kyūjin] ‘규진’, 넷째 단계는 新人[shinjin] ‘신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애초에 학술적인 분류는 아니고 옛 학설에 따라 일본어에서 나타난 용어인 듯하다. ‘유인원사람’을 뜻하는 영어의 ape-man [ˈeɪ̯p ˈmæn] ‘에이프맨’이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민간에서 아직도 간혹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일본어식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원인(猿人)’, ‘원인(原人)’, ‘구인(舊人)’, ‘신인(新人)’이 모두 표제어로 실려있다. ‘화석^인류(化石人類)’의 뜻풀이를 보면 ‘발달 단계에 따라 원인(猿人)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 원인(原人)인 호모에렉투스, 구인(舊人)인 네안데르탈인, 신인(新人)인 화석 현세 인류로 구분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인류가 단순 직선적인 진화를 거쳤다는 구식 학설을 따른 것이고 오늘날에는 훨씬 더 다양한 화석 인류가 알려져 있으니 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분이다.

그러니 적어도 ‘원인’이라는 헷갈리는 용어는 이제 폐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신 ‘자바 원인’, ‘베이징 원인’ 같은 익숙한 명칭의 일부로 쓰이는 것은 화석화된 것으로 보고 그대로 쓸 수도 있겠지만 ‘베이징 인류’도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것에서 착안해서 ‘자바 인류’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본다. ‘자바-인(Java人)’은 이미 민족명으로 쓰고 있으니 혼동되기 쉽다.

한편 자바섬은 인도네시아어 및 자바어로 Jawa ‘자와’라고 부르는데 2004년 외래어 표기법에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표기 규정이 추가된 이후로도 ‘자바섬’이라는 기존의 표기는 ‘자와섬’으로 바뀌지 않았다. 섬 이름, 민족 이름, 언어 이름으로 ‘자바’가 관용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뒤부아는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발견하기 앞서 1888년에 자바섬 동부 와작이라는 곳 근처에서 대리석을 찾던 BD 판릿스호턴(B.D. van Rietschoten)이라는 광산 기술자가 발견한 오래된 사람 머리뼈를 전해받았고 자신도 그곳을 찾아가 1890년 둘째 머리뼈를 발견하였다. 와작은 현대 인도네시아어 철자로는 Wajak으로 쓰지만 당시 네덜란드어식 철자로 Wadjak이라고 썼는데 영어에서도 옛 철자를 따라 Wadjak Man이라고 흔히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의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고 뒤부아가 찾던 ‘잃어버린 사슬’은 아니었다. 뒤부아는 처음에 ‘와작 사람’이란 뜻으로 ‘호모 와자켄시스(Homo wadjakensis)’라는 학명을 붙였지만 나중에 이 화석이 우리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다고 시인했다. 이들 머리뼈의 연대는 2013년에 약 3만 년 전으로 측정되었으며 모습으로 보아 영락없는 현생 인류이다.

일반에서는 프랑스의 크로마뇽(Cro-Magnon [kʁo maɲɔ̃]) 바위 그늘에서 이름을 따서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이라고 부르는 화석 인류가 익숙할지 몰라도 요즘 학계에서는 이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대신 유럽 초기 현생 인류(European early modern humans) 같은 표현을 쓴다. 적용 범위가 확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고인류학자들이 화석으로 발견되는 초기 현생 인류에 인종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무리한 해석을 한 폐습과 너무 얽혀있기 때문이다.

Wadjak Man도 비슷한 예라서 그런지 오늘날에는 이 명칭을 꺼리는 추세인 것 같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이들 화석을 현대 인도네시아어 철자를 따라 Wajak skulls 또는 Wajak crania, 즉 ‘와작 머리뼈’ 또는 ‘와작 두개골’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흔히 부른다. 하지만 Wajak Man도 간혹 쓰이므로 ‘와작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1891년 뒤부아가 자바 인류 화석을 처음 발견한 곳은 솔로(Solo)강 변인데 1931년에는 그 하류에서 독일·네덜란드 탐색대가 또다른 화석 인류를 발견했다. 오늘날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며 호모 에렉투스 솔로엔시스(Homo erectus soloensis)라는 아종이다. 강 이름에 라틴어 접미사 -ensis를 붙여 soloensis를 아종 이름에 썼으니 Solo Man으로 흔히 부르며 표제어 ‘솔로-인(Solo人)’으로 쓰는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1936년에 머리뼈가 발견되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모조케르토-인(Modjokerto人)’은 조금 난감하다. 우선 이 지명은 현대 인도네시아어 철자로 Mojokerto라고 적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모조크르토’로 적어야 한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 e가 [ə]로 발음되는 경우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으’로 적기 때문이다.

또 영어에서는 Modjokerto Man보다는 ‘모조크르토 유아’, ‘모조크르토 아이’ 등을 뜻하는 Modjokerto infant, Modjokerto child 같은 명칭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2~4세로 추정되는 아이 화석인데 영어에서 man은 원래 어른 남자에 쓰이므로 여기에 적용하기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자어에서 ‘-인(-人)’은 영어 man 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이므로 ‘모조케르토-인(Modjokerto人)’은 일단은 계속 써도 될만하다. 한글 표기만 ‘모조크르토인’으로 바꿀 수 있겠다.

그런데 고인류학도 그렇고 고생물학, 지질학에서 쓰는 지명은 마치 라틴어처럼 한글 표기가 화석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人)’은 독일에 있는 지역 이름인 Neandertal [neˈ(ʔ)andɐtaːl] ‘네안더탈’의 옛 철자인 Neanderthal에서 나온 것인데 마치 라틴어 이름인양 ‘네안데르탈’로 쓴다. 지질학에서는 영국 Devon [ˈdɛv.(ə)n] ‘데번’에서 따온 고생대의 기 이름을 ‘데본기’라고 부르며 오스트레일리아의 Ediacara [ˌiːd.i.ˈæk.(ə)ɹ‿ə] ‘이디애커라’ 구릉 지대에서 이름을 따온 신원생대의 마지막 시기는 ‘에디아카라기’라고 부른다(《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아예 구릉 지대 Ediacara를 ‘에디아카라’라는 표제어로 썼다).

어떤 경우에 이처럼 해당 원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를 무시하고 마치 라틴어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을 인정할지는 고민할 여지가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와작인’, ‘모조크르토인’으로 적느냐, ‘와자크인’, ‘모조케르토인’으로 적느냐가 갈릴 수 있겠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한편 2003년에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발견되어 작은 키로 시중에서 ‘호빗’이란 별명을 얻으며 화제를 불러 일으킨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는 너무 최근 발견이라서 그런지 20세기에 시계가 멈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이 학명은 ‘플로레스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Flores에 -ensis의 변형인 접미사 -iensis가 붙었다.

인도네시아어에서 Flores의 e는 [ə]로 발음하지 않으니 ‘플로레스’가 2004년에 도입된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표기 규정에 맞는 표기이며 그 전부터도 물론 ‘플로레스’로 썼다. 그런데 이 이름은 포르투갈어에서 온 것으로 포르투갈어에서는 Flores를 ‘플로르스’로 적어야 한다(어말 -es의 e는 ‘으’로 적고 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는 ‘이’로 적는다). 물론 참고로 얘기하는 것이고 인도네시아 섬 이름을 굳이 어원을 따져서 포르투갈어 이름으로 간주하여 표기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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