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의 바슈키르 소수 민족 운동가 파일 알시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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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두 달 앞둔 러시아에서 수요일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보기 드문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 연방 내 바슈키르(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에 있고 카자흐스탄 국경에 인접한 소도시 바이마크에서 37세의 바슈키르 소수 민족 권리 운동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파일 알시노프(바슈키르어식으로는 ‘알스노프’)가 민족 증오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자 영하 20도의 혹한에서 법정 바깥에 그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판결에 항의하고 그를 고발한 바슈키르 공화국 수장 라디 하비로프(바슈키르어식으로는 ‘해비로프’)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알시노프는 언어인 바슈키르어와 바슈키르 문화 보존을 위한 단체 바슈코르트의 지도자였다. 바슈키르 공화국 대법원은 2020년 바슈코르트를 극단주의 단체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알시노프와 바슈코르트는 특히 바슈코르토스탄에서 일어나는 채굴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시위대는 이번 판결이 수년 전에 알시노프가 주도한 시위로 현지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산에서 석회광산 채굴을 저지시킨 것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했다.

하비로프는 알시노프가 지난 4월 금광 개발을 반대하는 회의 중에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 출신들에 대해 러시아어로 ‘흑인’을 뜻하는 비하 명칭을 써서 민족 증오를 선동했다며 그를 직접 고발했다. 알시노프는 바슈키르어로 ‘가난한 이’를 뜻하는 용어를 쓴 것이 잘못 번역된 것이고 라며 무죄를 주장한다. 법원은 검찰이 요구한 것보다도 높은 4년형을 언도했는데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시위대를 자극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환경 문제 외에도 바슈코르트는 바슈키르어 보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2017년 푸틴의 지시로 바슈키르 공화국의 학교에서 실시되던 바슈키르어 의무 수업을 없애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하였고 알시노프는 벌금을 물었다. 또 작년에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바슈키르인을 징집하는 것을 비판하여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된 러시아군은 바슈키르인 같은 소수 민족 출신이 인구 비례보다 훨씬 높아 소수 민족 사이에서 불만을 초래해왔다.

바슈키르어는 튀르크 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그 가운데도 킵차크 어파 계통으로 타타르어와 카자흐어에 가깝다. 바슈키르인은 대략 200만 명에 달하며 대부분 우랄산맥 남부 지역에 있는 바슈키르 공화국에 산다. 9~10세기에 이 지역에 들어온 튀르크인들의 후손으로 전통적으로는 유목 생활을 했고 대부분 이슬람교를 따른다.

1552년 러시아 차르국이 카잔 한국을 정복한 이후 바슈키르인의 근거지도 러시아 차르국의 일부가 되었다. 바슈키르의 전통 러시아어 이름 Башкирия(Bashkiriya) ‘바슈키리야’는 대략 이 시점부터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1586년에 러시아 차르국은 오늘날 바슈키르의 수도인 우파에 요새를 건설하였다.

그 후 바슈키르인들은 1662~1664년과 1681~1684년, 1704~1711년에 수차례 반란을 일으켜 세습 토지 소유권 같은 권리 보장을 얻어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은 1735년 페르시아 방향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바슈키리야를 요새화하려는 계획에 착수했고 이에 반발한 바슈키르인들의 반란은 1740년까지 이어졌다. 그 진압 과정에서 바슈키르인 수 만 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가 되었고(당시 바슈키르인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다) 마을 천여 개가 파괴되었다.

바슈키리야가 평정된 이후 광업과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러시아인과 타타르인이 대거 이주해 들어왔다. 우파가 건설된 16세기부터 러시아인의 유입이 있었지만 특히 18세기 이후의 이주민으로 인해 인구 구성이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2021년 인구 통계에 의하면 바슈키르 공화국의 주민은 러시아인 37.5%, 바슈키르인 31.5%, 타타르인 24.2%이다. 큰 사회적인 변혁 가운데 19세기 무렵 바슈키르인은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버리고 정착민 생활로 전환했다. 1932년 석유 생산이 시작되어 오늘날 러시아에서 석유 생산량이 가장 높은 지역이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후방 공업 기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8세기 말에는 코자크를 본따서 러시아 제국의 변두리 지방을 방어하기 위한 바슈키르인 비정규 부대가 조직되었다. 그들의 러시아 제국에 대한 충성은 의심되는 일이 많았지만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전통 의상을 하고 말을 잘 타며 일부 여성도 포함한 바슈키르인 부대는 외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바슈키르인들은 자치를 선포하고 러시아 내전 중에 볼셰비키군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백군이 바슈키르군 해산을 강행하는 등 바슈키르 자치를 인정하지 않자 바슈키르 정부는 볼셰비키군과 협상에 들어갔다. 한편 1918년에는 볼가·우랄 지역의 타타르인, 바슈키르인, 볼가 독일인, 추바시인 등 소수 민족이 연합하여 이델우랄(타타르어: Идел-Урал/Idel-Ural)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지만 바슈키르 자치를 원했던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볼셰비키군에 패해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1919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 병합된 바슈키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했다. 1922년 러시아 주도로 소련이 출범하였으며 그 지도자 레닌은 러시아 제국 치하에 있던 각 민족의 독자적인 민족 문화 발전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동등한 지위의 각 구성 공화국 외에도 수많은 자치 공화국, 자치주 등 자치 행정 단위가 신설되었는데 그 가운데 최초로 탄생한 것이 바로 바슈키르였다.

1925년 도입된 바슈키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은 바슈키르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제정했다. 중세부터 바슈키르인, 타타르인 등 볼가·우랄 지역의 튀르크인들은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 쓰는 공통된 문자 언어를 공유했다(이 지역의 타타르인은 크림 타타르인과 구별하기 위해 볼가 타타르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언어는 단순히 고전 페르시아어로 튀르크어를 부르는 이름인 ترکی‎ Turkī ‘투르키’, 튀르크어식 발음은 Türki ‘튀르키’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다른 튀르크어와 구별하기 위해 ‘볼가 튀르키(Volga Türki)’ 또는 ‘볼가 튀르크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랍 문자는 모음 구별을 잘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모음 발음 차이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튀르크어에서 쓰이는 다양한 모음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볼가 튀르크어는 20세기 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쓰인 또다른 튀르크어 문자 언어인 차가타이어에서 새 자모를 몇 개 빌려오기도 했지만 모음 처리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또 문자 언어로 쓰인지 오래되어 일상어와 거리가 상당했다.

소련에서는 여러 튀르크계 민족이 각자의 민족어를 발달시키게 하는 정책을 펴서 일상어를 바탕으로 바슈키르어와 타타르어를 따로 표준화했다. 또 다양한 모음 등 발음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게 한 새로운 아랍 문자 철자법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바슈키르어는 1923년에 일상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자 언어로 표준화되었다.

같은 정책의 일환으로 우즈베크어, 아제르바이잔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 키르기스어 등도 이 시기에 표준화되었다. 바슈키르어와 타타르어처럼 이들은 모두 처음에는 개선된 아랍 문자를 기반으로 적었지만 1928년 튀르키예에서 튀르키예어를 적는 데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도입한 것과 소련 전역의 소수 민족 언어를 로마자로 적으려는 움직임에 맞물려 1920년대 후반에 로마자로 교체되기 시작했다(여담으로 이 시기에 고려인의 한국어도 로마자로 적으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바슈키르어는 1930년 로마자로 전환했다.

레닌의 뒤를 이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 치하에서는 1930년대 중반에 민족 정책이 급선회하였다.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키려는 것은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치부되고 대신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한 정책이 시작되었다. 각 민족이 러시아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소련의 모든 언어는 로마자 대신 러시아어에서 쓰는 것과 같은 키릴 문자로 쓰도록 하는 정책이 도입되었다(다만 1940년 병합한 발트 3국의 언어나 핀란드어, 아르메니아어, 게오르기아어, 이디시어 등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 후반부터 소련의 각 튀르크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는 다시 키릴 문자로 전환하였다. 바슈키르어도 1939년부터 키릴 문자로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1990년, 소련 각지에서 민족 운동이 일어나 각 구성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하면서 바슈키르에서도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후에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옐친은 당시 현지 집회에 참석하여 바슈키르는 그동안 충분히 강탈당해왔고 그 석유와 가스는 바슈키르의 것이어야 마땅하다며 바슈키르가 주권을 선언하면 이를 존중할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해 10월 11일 바슈키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주권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독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소련 해체 후인 1992년 러시아 연방 내 자치 공화국인 바슈키르 공화국으로 재탄생했다.

소련 해체 이후 아제르바이잔어는 곧바로 로마자로 되돌아갔고 투르크멘어도 뒤를 이었으며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로마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바슈키르어를 비롯하여 러시아 연방 내에서는 키릴 문자가 여전히 쓰이고 있다. 2004년에 러시아 헌법 재판소는 러시아 연방의 모든 언어가 키릴 문자를 써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국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제르바이잔어를 로마자로 쓰지만 국경 너머 러시아 연방 내 다게스탄 공화국에서는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어를 키릴 문자로 쓴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쓰이는 튀르크 어파 언어인 크림 타타르어도 1990년대부터 로마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2014년 러시아에 실질 합병된 후 현지에서는 키릴 문자만이 허용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바시키르(Bashkir)’, ‘바시키르-어(Bashkir語)’를 표제어로 쓴다. 이는 러시아어로 ‘바슈키르인’을 이르는 단수형 башкир(bashkir)에 외래어 표기법의 러시아어 표기 규칙을 적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자음 앞의 ш(sh)를 ‘시’로 적도록 하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른 언어를 표기하는 방식과 맞지 않아 문제가 많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 도입 이전에는 영어에서 sh로 적는 음인 무성 후치경 마찰음 [ʃ]를 자음 앞에서도 ‘시’로 적는 것이 표준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어 인명 Einstein [ˈaɪ̯nʃtaɪ̯n], Strauss [ˈʃtʁaʊ̯s]는 ‘아인시타인’, ‘시트라우스’로 각각 적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도입되면서 어말에서는 언어에 따라 표기가 ‘시’나 ‘슈’로 갈리지만 적어도 자음 앞에서는 ‘슈’로 통일되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슈트라우스’가 오늘날 표준 표기이다.

그런데 2005년에 도입된 러시아어 표기 규정은 예전 표기 방식에 익숙한 이가 정했는지, 아니면 자음 앞이냐 어말이냐 위치를 따지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자음 앞에서도 ш(sh)를 ‘시’로 적게 하여 혼란을 일으켰다. 러시아어의 ш(sh)는 무성 권설 마찰음 [ʂ]로 [ʃ]와 약간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하게 들리는 음이고 폴란드어의 sz [ʂ]도 무성 권설 마찰음인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자음 앞에서 ‘슈’로 적는다.

그래서 예를 들어 폴란드어 이름 Franciszka ‘프란치슈카’, Krzysztof ‘크시슈토프’를 러시아어로 적은 Францишка(Frantsishka), Кшиштоф(Kshishtof)는 각각 ‘프란치시카’, ‘키시시토프’가 되는 식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한글 표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Bashkir도 이른바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적용하면 ‘바슈키르’로 적어야 하지만 2005년 러시아어 표기 규정 때문에 석연치 않은 ‘바시키르’가 규범 표기가 되었다. 러시아어의 표기에서 기존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여러 특징은 이처럼 러시아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러시아 연방의 여러 소수 민족 언어에 관련된 고유명사가 러시아어를 거쳐 전해지는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바슈키르어로는 ‘바슈키르인’을 뜻하는 단수형 또는 ‘바슈키르의’를 뜻하는 형용사가 башҡорт(başqort) ‘바슈코르트’이다. 알시노프가 이끈 단체 이름과 같다. 지명 바슈키르는 Башҡортостан(Başqortostan) ‘바슈코르토스탄’이라고 부른다. başqort에 페르시아어에서 온 접미사 -stan을 붙인 이름이다. 러시아어에서도 이에 따라 자치 공화국을 Башкортостан(Bashkortostan) ‘바슈코르토스탄’이라고 부른다. 한국어로도 ‘바슈코르토스탄’이라고 부를만도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웬만하면 지명과 민족명, 언어명을 하나의 형태로 통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예전처럼 ‘바슈키르’로 썼다. 소련 시절 바슈키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러시아어로 정식 이름에서 여성 형용사형 Башкирская(Bashkirskaya) ‘바슈키르스카야’를 썼기 때문에(외래어 표기법대로는 ‘바시키르스카야’) 줄일 때 그 어근인 ‘바슈키르’로 불렀다.

바슈키르라는 민족명은 적어도 9세기부터 아랍 및 페르시아 문헌에 나타난다. 아랍어로는 باشجرد bāshjird ‘바슈지르드’, بشجرد bashjird ‘바슈지르드’, باشغرد bāshghird ‘바슈기르드’, باشقرد bāshqird ‘바슈키르드’, باجغرد bājghird ‘바지기르드’ 같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는데 마자르(magyar)인 즉 헝가리인도 ماجغر mājghir ‘마지기르’처럼 비슷하거나 아예 같은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볼가 튀르크어로는 باشقرد‎ başqurd ‘바슈쿠르드’라고 했다. 1917년부터 1919년까지 바슈키르가 자치를 선포했을 때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Башкурдистан(Bashkurdistan) ‘바슈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는데(외래어 표기법대로는 ‘바시쿠르디스탄’) başqurd에 페르시아어식 -stan을 붙인 것에서 나왔다. 이것이 오늘날 바슈키르어 발음에 따라 ‘바슈코르토스탄’으로 바뀐 것이다.

başqort라는 이름은 ‘머리’를 뜻하는 baş ‘바시’와 ‘늑대’를 뜻하는 옛말 qurt ‘쿠르트’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는 듯한 전설이 있지만 실제 그 유래가 맞는지 민간 어원일 뿐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başqort의 어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이 어원이 맞아서 ‘바시’와 ‘쿠르트’의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baş-는 자음 앞이라도 ‘바슈’ 대신 ‘바시’로 적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ʃ]를 자음 앞에서 ‘슈’로 적고 어말에서 ‘시’로 적는 외래어 표기법의 방법은 이처럼 동일 어형이 위치에 따라 표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어말에서도 ‘슈’로 표기하는 독일어, 프랑스어, 루마니아어 등 제외).

하지만 어원에 따라 합성어의 표기에서 자음 앞 [ʃ]를 ‘시’로 적으려면 한글 표기가 너무 까다로워진다. 튀르키예 지명 Başmakçı도 baş가 포함된 합성어로 추측하여 ‘바슈막츠’ 대신 ‘바시막츠’로 적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지명은 ‘신발’을 뜻하는 başmak에 접미사 -çı ‘츠’가 붙은 것으로 ‘구두장이’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으며 baş와는 관계가 없다. 동일 어형의 한글 표기를 고정시키는 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고 baş는 그냥 자음 앞에서 ‘바슈’로, 어말에서 ‘바시’로 적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더구나 başqort처럼 어원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바슈키르어 키릴 문자에는 러시아어 키릴 문자에 쓰이지 않는 자모가 여럿 포함되는데 당장 башҡорт(başqort)에 들어가는 ҡ(q)는 무성 구개수 파열음 [q]를 나타낸다. 타타르어에서는 [q]를 주변 모음에 따른 /k/의 변이음으로 취급하여 그냥 к(k)로 쓰는 것과 대조된다. 타타르어로는 같은 이름을 башкорт(başkort) ‘바슈코르트’라고 쓴다. 한국어에서는 [q]가 쓰이지 않으므로 [k]인 것처럼 취급하여 ‘ㅋ’으로 적으면 된다. 시위가 일어난 소도시 이름도 러시아어로 Баймак(Baimak), 바슈키르어로 Баймаҡ(Baymaq)로 쓰는데 한글 표기는 ‘바이마크’로 동일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쓰는 아랍어 표기 시안에서 아랍어의 ق q [q]를 ‘ㄲ’으로 쓰는 것 때문에 튀르크어의 q도 ‘ㄲ’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랍어의 q를 ‘ㄲ’으로 쓰는 것이 합당한지의 문제와 별도로 튀르크어의 [q]는 유기음, 즉 거센소리와 비슷한 음이기 때문에 적어도 어두에서는 ‘ㄲ’보다 ‘ㅋ’에 가깝게 들린다.

파일 알시노프/알스노프는 러시아어로 Фаиль Алсынов(Fail’ Alsynov) ‘파일 알시노프’, 바슈키르어로 Фаил Алсынов(Fail Alsınov) ‘파일 알스노프’로 쓴다. 키릴 문자 ы로 나타내는 모음은 한국어의 ‘으’와 같은 후설 비원순 고모음 [ɯ]이다. 1930년대에 쓰인 로마자 표기에서는 이를 키릴 문자의 연음 부호로 빌려 ь로 적었지만 여기서는 튀르키예어에서 같은 모음을 나타내는 자모인 ı로 썼다. 러시아어 ы(y)는 중설 비원순 고모음 [ɨ] 또는 무강세 위치에서 이것이 약간 하강한 근고모음 [ɨ̞]로 발음되기 때문에 ‘이’와 ‘으’의 중간음으로서 ‘으’에 더 깝게 들릴 수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로 통일해서 적는다. 러시아어에서는 ы(y) [ɨ~ɨ̞]와 и(i) [i~ɪ]가 같은 음소 /i/의 변이음으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슈키르인은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여러 튀르크계 민족과 마찬가지로 동슬라브어식 -ов(-ov)또는 -ев(-ev)를 붙인 성씨를 쓰는데 한글 표기는 러시아어와 마찬가지로 어말 무성음화를 반영하여 ‘-오프’, ‘-에프(자음 뒤)/-예프(모음 뒤)’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라디 하비로프/해비로프는 러시아어로 Радий Хабиров(Radii Khabirov) ‘라디 하비로프’, 바슈키르어로 Радий Хəбиров(Radiy Xäbirov) ‘라디 해비로프’로 쓴다. 키릴 문자 ə로 나타내는 모음은 영어의 TRAP 모음과 비슷한 전설 비원순 근저모음 [æ] ‘애’이다. 1930년대에 쓰인 로마자 표기는 ә이고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어에서도 ə로 쓰지만 여기서는 중설 중모음 [ə] ‘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ä로 썼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어의 한글 표기 용례에서 ə를 ‘애’로 적고 있으므로 바슈키르어의 표기에서도 ‘애’로 적을 수 있겠다.

튀르키예어에는 [æ] 음이 없지만 아제르바이잔어를 비롯하여 타타르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 등에서 이 음이 쓰이므로 튀르크어 [æ]에 공통된 표기 방식을 정하는 것이 좋다.

그밖에 바슈키르어는 с(s) [s], з(z) [z]와 별도로 ҫ(ś) [θ], ҙ(ź) [ð]가 음으로 쓰인다는 튀르크 어족 가운데 독특한 특징이 있다. 각가 영어의 think와 that의 첫 자음에 대응되는 무성 치 마찰음, 유성 치 마찰음이다. 투르크멘어에서 с(s), з(z)가 각각 [θ], [ð]로 발음되지만 이에 대립하는 [s], [z]가 쓰이지 않는 반면 바슈키르어에서는 [s], [z]와 [θ], [ð]가 모두 쓰인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θ]는 [s]처럼 ‘ㅅ’으로 적으니 바슈키르어와 투르크멘어의 [θ]도 ‘ㅅ’으로 적는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어의 [ð]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ㄷ’으로 적는다. 하지만 바슈키르어와 투르크멘어의 [ð]는 다른 튀르크어의 [z]에 대응되므로 ‘ㅈ’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빨간’을 뜻하는 바슈키르어 ҡыҙыл(qıźıl)과 투르크멘어 gyzyl은 각각 ‘크즐’과 ‘그즐’로 적어야 계통이 같은 튀르키예어 kızıl ‘크즐’, 아제르바이잔어 qızıl ‘그즐’, 타타르어 кызыл(qızıl) ‘크즐’, 카자흐어 qyzyl/қызыл ‘크즐’, 키르기스어 кызыл(kızıl) ‘크즐’, 우즈베크어 qizil/қизил ‘키질’, 위구르어 قىزىل‎ qizil ‘키질’ 등과 어울린다.

투르크멘어에서는 아예 다른 언어에서 [z]를 나타내는 자모 з(z)로 적으며 바슈키르어에서도 з(z)를 변형시킨 자모 ҙ(ź)로 [ð]를 나타내므로 한글 표기도 동일하게 하는 것이 편하다. 러시아어에서도 바슈키르어 ҙ(ź)를 з(z)로 흉내낸다. 예를 들어 바슈키르어로 Абҙан(Abźan)이라고 하는 지명은 러시아어로 Абзаново(Abzanovo) ‘아브자노보’이다. 바슈키르어 이름도 ‘아브단’보다는 ‘아브잔’으로 적는 것이 혼란이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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