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어 van, 독일어 von은 귀족 출신을 나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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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유럽 언어 인명에 들어가는 이른바 귀족 소사(nobiliary particle) 얘기를 계속해보자. 지난 글 댓글에서 독일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을 언급했는데 van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할아버지는 원래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정확히는 네덜란드어권인 오늘날의 벨기에 북부 출신이었다.

네덜란드어 인명에는 tussenvoegsel [ˈtʏsə(n)ˌvuxsəl] ‘튀센부흐설’이라고 해서 van, de 등 이름과 성씨 사이에 들어가는 전치사, 관사 등이 매우 흔하다. van [vɑn] ‘판’은 ‘~의’를 뜻하는 전치사이고 de [də] ‘더’, den [dɛn] ‘덴’, der [dɛr] ‘데르’는 정관사이다(성과 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쓰인다). 이들과 van de, van den, van der 같은 조합이 네덜란드어 인명에서 볼 수 있는 튀센부흐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네덜란드 화가 Jacob van Ruisdael ‘야코프 판라위스달’, Pieter de Hooch ‘피터르 더호흐’, Adriaen van de Velde ‘아드리안 판더펠더’ 등이 이런 튀센부흐설을 쓴 전형적인 네덜란드어 인명이다. 이들은 줄여 부를 때도 van Ruisdael, de Hooch, van de Velde와 같이 부르며 Ruisdael, Hooch, Velde로만 부르는 일은 없다. 그러니 한글로 표기할 때는 하나의 성씨인 것처럼 ‘판라위스달’, ‘더호흐’, ‘판더펠더’와 같이 쓰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최근 심의된 표기 용례에서도 이를 따른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귀족 지위와 관계가 없다. van Ruisdael은 시내(rui)가 흐르는 유역(dal)을 뜻하는 지명 Ruisdael에서 딴 이름이지만 출신지를 가리킬 뿐 귀족이라는 뜻은 아니다. de Hooch는 ‘높은’을 뜻하는 현대 네덜란드어 de hoog에 해당하는 이름이고 van de Velde는 ‘들(벌판)의’를 뜻하는 이름이다. 별명이나 사는 장소를 가리키는 간단한 설명이 이름이 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백작’을 뜻하는 graaf ‘흐라프’나 작위 없는 하급 귀족이 쓴 jonkheer ‘용크헤이르’ 등의 칭호가 들어가지 않는 한 네덜란드어 이름만 봐서는 귀족 가문 출신인지 알 길이 없다.

참고로 네덜란드어 /v/는 네덜란드 북부 발음에서 /f/와 합쳐지고 있기 때문에 2005년에 추가된 외래어 표기법의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에서는 어두 v를 ‘ㅍ’으로 적고 나머지는 ‘ㅂ’으로 적게 했다. 그래서 예전에 ‘반’으로 적던 van은 2005년 이후 ‘판’으로 적게 되었다.

하지만 벨기에를 비롯한 네덜란드어권 남부 발음에서는 여전히 /v/와 /f/가 구별된다.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 제정 이후에 나온 표기 용례집에서도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인명과 지명은 전혀 다루지 않았는데 애초에 벨기에식 발음은 고려하지 않은 듯하며 제정 당시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인명과 지명에는 적용할 의도가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대신 그 후 새로 심의된 벨기에 인명과 지명에서는 현행 외래어 표기 규정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벨기에 정치가 Herman Van Rompuy [ˈɦɛrmɑn vɑn ˈrɔmpœy̯]를 이에 따라 ‘판롬파위, 헤르만’로 심의했다가 주한 벨기에 대사관의 요청으로 벨기에식 발음에 가까운 ‘*반롬푀이, 헤르만’로 재심의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 추가 전에 쓰던 기존 벨기에 인명과 지명 용례도 수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오늘날의 벨기에에서 활동한 플랑드르 화가 형제 이름인 van Eyck를 여전히 ‘반에이크’로 쓴다.

프랑스어에서도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van은 [van] ‘반’ 또는 [vɑ̃] ‘방’으로 발음한다. 이는 ‘반’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벨기에 프랑스어권 출신 배우 Jean-Claude Van Damme [ʒɑ̃ kloːd van⟮ɑ̃⟯ dam] ‘장클로드 반담’에서는 ‘반’으로 적을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네덜란드 북부식 발음을 흉내낸다고 van을 ‘판’으로 적게 한 것은 아쉬운 결정이다. 이따금 언급한 것처럼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에는 그 외에도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표기 규정을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네덜란드 물리화학자 Jacobus Henricus van ‘t Hoff ‘야코뷔스 헨리퀴스 판엇호프’, 네덜란드 물리학자 Gerard ‘t Hooft ‘헤라르트 엇호프트’의 이름에 들어가는 ‘t [(ə)t] ‘엇’은 또 다른 정관사 형태인 het [ɦɛt~(ɦ)ət] ‘헷’의 줄임말이다. ‘t는 그냥 [t]로 발음할 수도 있으니 ‘판트호프’, ‘트호프트’와 같이 ‘트’로 써도 되었겠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이 추가되면서 마련된 용례집에서는 ‘엇’으로 쓰고 있다.

또 ‘~에’를 뜻하는 전치사 te [tə] ‘터’, ten [tɛn] ‘텐’, ter [tɛr] ‘테르’도 종종 쓰인다. 네덜란드인 축구 감독 Erik ten Hag ‘에릭 텐하흐’, 네덜란드 화가 Gerard ter Borch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드물지만 그 외에도 다른 말이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벨기에 설치 미술가 Hans Op de Beeck ‘한스 옵더베이크’의 이름에 쓰이는 op [ɔp] ‘옵’은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이고 네덜란드 수학자·물리학자 Willem ‘s Gravesande ‘빌럼 스흐라베산더’의 이름에 쓰이는 ‘s [s] ‘스’는 또 다른 정관사 형태인 des [dɛs] ‘데스’의 줄임말이다.

Hans Op de Beeck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벨기에에서는 튀센부흐설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소문자로 쓴다. 그래서 같은 이름도 네덜란드인이라면 Jan de Jong ‘얀 더용’, 벨기에인이라면 Jan De Jong ‘얀 더용’이다.

네덜란드어에서는 튀센부흐설이 성씨의 일부로 간주되느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인명을 줄여 부를 때는 언제나 이를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van Dijk ‘판데이크’, de Groot ‘더흐로트’ 등으로 부른다.

네덜란드 화가 Vincent van Gogh [ˈvɪnsɛnt vɑn ˈɣɔx]는 현행 표기 규정에 따르면 ‘핀선트 판호흐’가 되겠지만(Vincent의 마지막 모음이 [ə]로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하면 ‘핀센트 판호흐’) 표기 용례집에서는 관용 표기로 처리하여 ‘*고흐, 빈센트 반’으로 적고 있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 ‘고흐’로 실려있다. 하지만 이 인물은 Gogh로 줄여 부르는 일이 없고 언제나 van Gogh로 쓴다.

《일본국어대사전》에서 ゴッホ[Gohho] ‘곳호’를 표제어로 삼은 것으로 보아 ‘고흐’로 쓰는 관습은 일본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예전에는 ‘고호’라는 표기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네덜란드어 인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에 정착된 이름일 것이다.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른 언어에서는 예전부터 줄여 부를 때도 언제나 van Gogh로 썼다. 이제는 한국어에서도 ‘고흐’만 쓰기보다는 ‘반 고흐’로 쓰는 일이 더 흔한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아직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반고흐’를 표제어로 추가할 때도 되었다.

그 외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네덜란드 박물학자 Antoni van Leeuwenhoek ‘안토니 판레이우엔훅’, 네덜란드 화가 Hugo van der Goes ‘휘호 판데르후스’, 네덜란드 물리학자 Johannes Diderik van der Waals ‘요하네스 디데릭 판데르발스’를 ‘레이우엔훅’, ‘*휘스’, ‘발스’로 쓰는 등 네덜란드어 인명 대부분에서 튀센부흐설을 생략한 것을 표제어로 쓰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반에이크’도 ‘에이크’와 복수 표제어로 쓴다.

물리학에서 판데르발스의 이름을 딴 힘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판데르발스 힘’이라는 표제어로 싣고 있는데 인물은 ‘발스’를 표제어로 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참고로 Goes [ˈɣus]는 ‘후스’가 맞는데 ‘휘스’로 적은 것은 네덜란드어의 철자 u를 ‘위’로 적는 것에서 비롯된 과잉 교정으로 보인다. Johannes [joˈɦɑnəs]는 표기 규정을 적용해서 ‘요하너스’로 적어도 문제가 없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부분의 표기 용례에서는 ‘요하네스’로 쓴다.

전치사나 관사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축구 선수 Jan Vennegoor of Hesselink ‘얀 페네호르 오프 헤셀링크’는 Vennegoor와 Hesselink 두 성씨를 ‘또는’을 뜻하는 접속사 of [ɔf] ‘오프’로 연결한 재미있는 경우이다. 즉 문자 그대로 ‘Vennegoor 또는 Hesselink’를 뜻한다. 영어의 of와는 다른 말이고 의미상 or에 해당된다.

네덜란드어권에서 태어난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본명이 Lodewijk van Beethoven ‘로데베이크 판베이트호벤’이었으며 독일로 이주하여 이를 독일어식으로 바꾼 것이 Ludwig van Beethoven이다. 작곡가로 유명한 손자는 할아버지의 독일어식 이름을 똑같이 썼다. 독일어 발음 [ˈluːtvɪç v⟮f⟯an ˈbeːthoːfn̩]에 따라 적으면 ‘루트비히 반/판 베트호펜’이지만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관용 표기로 굳어졌다. 영어에서 Beethoven을 흔히 [ˈbeɪ̯t.oʊ̯v.(ə)n] ‘베이토븐’으로 발음하는 것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ˈbeɪ̯t.hoʊ̯v.(ə)n] ‘베이트호븐’도 가능하다). van은 독일어에서 [van] ‘반’과 [fan] ‘판’이 둘 다 쓰이는데 한글 표기로는 독일어 전치사 von [fɔn] ‘폰’ 과 더 비슷한 ‘판’이 정착되었다.

네덜란드어 인명이라면 네덜란드어식으로 van Beethoven이라고 줄여 부르지만 독일인이 되었으므로 그냥 Beethoven으로 줄여 부른다. 네덜란드어와 달리 독일어에서는 인명을 줄여 부를 때 von [fɔn] ‘폰’, zu [ʦuː] ‘추’, auf [aʊ̯f] ‘아우프’ 같은 전치사는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 작곡가 Carl Maria von Weber [ˈkaʁl maˈʁiːa fɔn ˈveːbɐ] ‘카를 마리아 폰 베버’는 독일어에서 줄여 부를 때 그냥 Weber라고 부르고 독일 문인 Johann Wolfgang von Goethe [ˈjoːhan ˈvɔlfɡaŋ fɔn ˈɡøːtə]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Goethe로 줄여서 부른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베버’, ‘괴테’를 표제어로 삼는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의 이른바 귀족 소사(nobiliary particle)와 달리 독일어에서 귀족 소사 von, zu, auf 등이 들어간 이름은 실제 귀족 가문 출신일 가능성이 꽤 높다. 스위스나 독일 북부 지역에서는 귀족 성씨가 아니라도 von이 붙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 언급한 다른 언어에 비해서 일반 성씨에서 전치사가 쓰이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유럽 언어에서 전치사나 관사가 들어간 인명은 보통 귀족 가문 출신을 나타낸다는 잘못된 통념을 만화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퍼뜨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작가인 이원복은 독일 유학파이므로 독일어에서 대중 통하는 설명을 가지고 잘못 일반화한 것일 수도 있겠다.

대신 중세에는 네덜란드어의 van, 프랑스어의 de처럼 지위와 상관없이 출신지에 따라 이를 때 von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독일 역사가 Adam von Bremen [ˈaːdam fɔn ˈbʁeːmən] ‘아담 폰 브레멘’, Otto von Freising [ˈɔto fɔnˈfʁaɪ̯zɪŋ] ‘오토 폰 프라이징’ 등의 예에서는 성씨가 아니라 출신지나 활동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므로 영어에서도 Adam of Bremen, Otto of Freising과 같이 의역한다.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현재 ‘아담 폰 브레멘’을 표제어로 쓰고 있지만 ‘브레멘의 아담’, ‘프라이징의 오토’ 등으로 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중세 네덜란드어 인명에서 쓰이는 van은 브라반트 공작 같은 제후 가문의 일원이 아닌 이상 영어 등 다른 언어에서도 보통 의역하지 않고 van으로 쓴다. 대신 나자렛의 성모 수도원(Abdij Onze-Lieve-Vrouw van Nazareth)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Beatrijs van Nazareth ‘베아트레이스 판나자렛’이라고 불리는 중세 브라반트 공국(오늘날의 벨기에) 출신 수녀는 van Nazareth이 성씨가 아닌 것이 확연해서 그런지 영어로 Beatrice of Nazareth라고 의역한다.

독일어권에서는 귀족이 되면 원래의 성씨에 그냥 von을 붙여서 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괴테도 본명은 그냥 Johann Wolfgang Goethe ‘요한 볼프강 괴테’였는데 귀족으로 봉해지면서 Johann Wolfgang von Goethe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된 것이다. 또 오스트리아에서는 1919년 귀족제를 폐지하면서 일괄적으로 von을 인명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Friedrich von Hayek [ˈfʁiːdʁɪç fɔn ˈhaɪ̯ɛk]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1919년 이후 그냥 Friedrich Hayek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같은 인물이라도 von을 포함하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독일어식 von은 덴마크어와 스웨덴어에도 전해졌다. 이들 언어에서도 독일어 발음 그대로 v를 [f]로 발음하기 때문에 von은 ‘*본’이 아니라 ‘폰’으로 쓴다.

대표적인 경우로 덴마크 영화감독 라르스 폰 트리르(Lars von Trier)의 예를 들 수 있다. 독일어보다도 더 심한 덴마크어의 R 모음화 현상을 반영하여 Trier는 ‘트리어’로 적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트리르’로 적도록 한다. 덴마크어에서는 그를 줄여 부를 때 Trier라 하기도 하지만 von Trier로 쓰는 경우도 많다.

스웨덴 박물학자·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는 귀족 지위를 얻기 전에 이미 Carl Linné 또는 라틴어식 Carolus Linnaeus로만 알려졌기 때문인지 스웨덴어에서 Linné로 줄여 부른다. 그런데 독일 태생으로 스웨덴에 귀화한 생화학자 Hans von Euler-Chelpin 독일어: [ˈhans fɔn ˈɔʏ̯lɐ ˈkɛlpiːn] ‘한스 폰 오일러켈핀’만 해도 스웨덴어에서는 줄여 쓸 때 von을 생략하지 않고 von Euler-Chelpin이라고 부르는 일이 흔하다.

핀란드 철학자 Georg Henrik von Wright ‘예오리 헨리크 폰브릭트’는 스코틀랜드 출신 조상으로부터 영어로 [ˈɹaɪ̯t] ‘라이트’로 발음되는 Wright라는 성씨를 물려받았는데 스웨덴어로는 스웨덴어식 철자 발음에 따라 [ˈvrɪkːt] ‘브릭트’라고 발음한다(스웨덴어는 핀란드어와 함께 핀란드의 공용어이며 그는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는 집안 출신이다). 그의 조상이 귀족 지위를 얻으면서 von Wright ‘폰브릭트’가 되었다. 줄여 쓸 때도 von을 생략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von Wright 전체를 성씨로 취급하여 한글 표기에서도 ‘폰브릭트’로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처럼 독일어 인명이 다른 언어권에 전해지면 von의 처리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헝가리 태생의 미국 수학자 John von Neumann은 집안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귀족 지위를 얻으면서 독일어식 von Neumann이 되었는데 독일어에서는 그냥 Neumann으로 줄여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von도 포함하여 von Neumann으로 부른다.

영어명은 John von Neumann [ˈʤɒn vɒn ˈnɔɪ̯.mən] ‘존 본노이먼’이지만 용례집에는 독일어식 Johann Ludwig von Neumann [ˈjoːhan ˈluːtvɪç fɔn ˈnɔʏ̯man]을 기준으로 ‘노이만, 요한 루트비히 폰’으로 실려있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제어는 그냥 ‘노이만’이다. 그의 이름을 딴 컴퓨터도 ‘노이만형 컴퓨터’가 표제어로 실려 있다. 반면 영어로는 이를 von Neumann (computer) architecture로 부른다. 현행 표준 표기는 독일어식을 따른 것이지만 영어식 용법에 익숙한 이가 늘어나면서 ‘폰 노이만’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독일어식으로는 von을 생략한 이름으로 줄여 부르므로 ‘폰 노이만’으로 띄어 쓰는 것이 낫겠지만 영어식으로 von Neumann을 하나의 성씨처럼 취급하는 경우는 ‘폰노이만’으로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대세를 따라 영어식 용법을 흉내낸 ‘폰노이만’을 복수 표제어로 추가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일반 인명이 전치사나 관사를 포함하는 경우가 드문 영어나 스웨덴어 같은 언어에서는 이를 포함한 다른 언어권의 인명을 들여올 때 원어의 용법과 상관없이 아예 전치사나 관사를 모두 성씨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지난 글의 댓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에서 유래한 스웨덴 가문 De la Gardie는 프랑스어식과는 다르게 De la Gardie 전체를 성씨로 삼고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프랑스어식으로는 La Gardie [la ɡaʁdi] ‘라가르디’로 줄여 쓰므로 de를 포함시킬 때도 ‘드 라가르디’로 띄어 쓰는 것이 맞겠지만 스웨덴 인명에서는 그냥 ‘드라가르디’로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편 스웨덴 화가 Hilma af Klint ‘힐마 아브클린트’는 성씨에 ‘~의’를 뜻하는 스웨덴어 전치사 av ‘아브’의 옛 철자 af가 붙은 희귀한 경우인데 줄여 부를 때도 af Klint ‘아브클린트’로 부른다. 철자는 af이지만 [ɑːv]로 발음하므로 ‘아브’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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