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인명의 de 표기 문제

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최근 댓글에서 베트남에서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로드(Alexandre de Rhodes)는 ‘드 로드’와 같이 전치사와 뒤 요소를 띄어 쓰는 경우가 더 많고 동시기 활동한 포르투갈 선교사 Francisco de Pina의 이름도 ‘드 피나’의 사례가 많다며 어떤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질문에서는 또 스위스 언어학자 Ferdinand de Saussure는 아예 de를 생략하고 ‘소쉬르’로 지칭하는 것도 예를 들어 개별 용례마다 표기가 중구난방인 듯하다고 하였다.

일단 전자는 ‘알렉상드르 드로드’로 붙여 쓰고 후자는 ‘프란시스쿠 드 피나’로 띄어 쓰는 것이 낫다고 답했는데 꽤 복잡한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자 한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의 전치사 de는 인명에 자주 등장한다. 또 프랑스어의 le, la, les 같은 정관사나 du (de + le), de la, des (de + les)와 같이 de와 정관사가 결합한 형태도 인명에 쓰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인명에 쓰이는 전치사나 관사는 뒤따르는 요소와 붙여 쓰는 것으로 통일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글에서 언급한 피렌체 메디치가 출신 프랑스 왕후 Catherine de Médicis [katʁin də medisis]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카트린 드메디시스’로 쓴다. 그런데 인명에 전치사나 관사가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붙여 쓰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전치사 de가 들어가는 다음 프랑스어 인명을 살펴보자.

Ferdinand de Saussure [fɛʁdinɑ̃ də sosyːʁ] ‘페르디낭 드 소쉬르’ (스위스 언어학자)
Honoré de Balzac [ɔnɔʁe də balzak] ‘오노레 드 발자크’ (프랑스 소설가)
Pierre de Fermat [pjɛːʁ də fɛʁma] ‘피에르 드 페르마’ (프랑스 수학자)
Abraham de Moivre [abʁaam də mwaːvʁ]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프랑스 수학자)
Louis de Broglie [lwi də bʁɔj] ‘루이 드브로이’ (프랑스 수학자·물리학자)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Ferdinand de Saussure는 그냥 ‘소쉬르’라고 부른다. 프랑스어에서도 Saussure라고 줄여 부른다. Pierre de Fermat도 Fermat로 줄여 부른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소쉬르’와 ‘페르마’를 표제어로 쓴다.

그런데 Abraham de Moivre는 de Moivre로, Louis de Broglie는 de Broglie로 보통 de를 생략하지 않고 줄여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드무아브르’와 ‘드브로이’를 표제어로 쓴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프랑스어에서 de는 이른바 귀족 소사(particule nobiliaire)라고 해서 원래 영지 이름을 성씨로 쓸 때 포함시키는 전치사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 서북부에 있는 도시인 라발(Laval [laval])에서 유래한 귀족 가문은 ‘라발의’를 뜻하는 de Laval [də laval] ‘드 라발’을 성씨로 쓰는 식이다. 이처럼 귀족 소사로 쓰이는 de나 그 변형은 소문자로 쓰고 뒤따르는 요소와 띄어서 쓴다.

반면 귀족 소사가 아닌 경우는 뒤따르는 요소와 붙여 쓰는 것이 관습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øʒɛn dəlakʁwa]),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maʁsɛl dyʃɑ̃]) 등의 성씨에 들어가는 de, du는 귀족 출신과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귀족 소사가 아닌 경우에도 마치 귀족 소사인 것처럼 적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18~19세기에는 귀족이 아닌 경우에도 이를 흉내내서 쓰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발자크는 본명이 Honoré Balzac인데 귀족처럼 보이는 Honoré de Balzac를 필명으로 썼다. 그래서 오늘날 이른바 귀족 소사가 들어간 프랑스어 인명 가운데 십중팔구는 실제 귀족 후손이 아니다. 반대로 귀족 집안인데 de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어에서 작위나 직위를 나타내는 말이나 monsieur [məsjø] ‘므시외’, madame [madam] ‘마담’ 등의 호칭 뒤에서는 귀족 소사인 de 및 그 변형을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이 15세의 총희였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marquise de Pompadour [maʁkiːz də pɔ̃paduːʁ] ‘마르키즈 드 퐁파두르’, 리슐리외 추기경은 cardinal de Richelieu [kaʁdinal də ʁiʃəljø] ‘카르디날 드 리슐리외’라고 부르며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존칭은 M. de Saint-Exupéry [məsjø də sɛ̃-t‿ɛɡzypeʁi] ‘므시외 드 생텍쥐페리’로 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을 이를 때는 귀족 소사를 보통 생략하고 Pompadour, Richelieu, Saint-Exupéry라고 줄여 부른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표제어로 ‘퐁파두르’, ‘리슐리외’, ‘생텍쥐페리’를 쓴다.

그런데 이처럼 일반적으로 줄여 부를 때도 de를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de Moivre와 de Broglie는 일반적으로 줄여 부를 때도 de를 생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De Moivre est l’auteur de deux livres de mathématiques(“드무아브르는 수학서 두 권의 저자이다”), la théorie originale ondulatoire, proposée par de Broglie(“드브로이가 제안한 본래의 파동 이론”) 같이 쓴 예를 검색할 수 있다.

심지어 물질 입자의 파동과 관련된 개념인 드브로이 파장은 프랑스어로 longueur d’onde de de Broglie로 써서 de를 겹쳐 쓴다. 이게 어색하다고 해서 대문자를 써서 longueur d’onde de De Broglie로 적기도 한다. 대신 드무아브르의 공식은 프랑스어권에서 formule de de Moivre 대신 formule de Moivre로 적는 것이 관습이다(영어로는 de가 겹칠 염려가 없으니 De Moivre’s formula라고 쓴다).

다만 《로베르 소사전(Le Petit Robert)》, 《라루스 소사전(Le Petit Larousse)》 같은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면 표제어가 de를 생략한 Moivre, Broglie에 따라 정렬되어 있어 각각 M으로 시작하는 항목, B로 시작하는 항목에서 찾아야 한다.

프랑스어에서 Moivre [mwaːvʁ]와 Broglie [bʁɔj]는 한 음절로 발음된다(피에몬테 출신 귀족 집안인 de Broglie는 철자는 이탈리아어식 di Broglia ‘디 브롤리아’에 근접하게 쓰는데 발음은 프랑스어식이라서 철자와 발음의 괴리가 상당하다). 대신 Moivre의 어말 e를 발음하면 두 음절인 [mwaːvʁə]가 된다. 이처럼 한 음절로 발음되거나 두 음절로 발음될 때 마지막 음절의 모음이 [ə]인 경우는 보통 그 앞의 de를 생략하지 않는다.

프랑스 화가·조각가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ɛdɡaːʁ dəɡa])도 본명은 Edgar de Gas였다. Gas는 한 음절이므로 줄여 부를 때도 de Gas라고 불렀고 아예 Degas로 붙여 쓴 것을 예명으로 썼다. 벨기에 배우 세실 드프랑스(Cécile de France [sesil də fʁɑ̃ːs]), 프랑스 실업가 앙리 드카스트르(Henri de Castries [ɑ̃ʁi də kastʁ])도 de France, de Castries로 줄여 부른다. France, Castries는 한 음절로 발음되기 때문이다(Castries는 철자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특이하게도 한 음절로 발음된다).

또 모음이나 완전한 묵음인 h로 시작하는 이름 앞에서 de가 축약한 형태인 d’도 생략하지 않는다.

de와 le가 축약한 du 역시 생략하지 않는다. 프랑스 수학자·물리학자 장 르롱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ʒɑ̃ lə ʁɔ̃ dalɑ̃bɛːʁ]),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프랑수아 뒤페(Charles François du Fay [ʃaʁl fʁɑ̃swa dy fɛ]), 프랑스 시인 앙투아네트 데줄리에르(Antoinette des Houlières [ɑ̃twanɛt de-z‿uljɛːʁ]) 등은 d’Alembert, du Fay, des Houlières로 줄여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표제어로 ‘달랑베르’, ‘뒤페’를 쓴다(‘데줄리에르’는 표제어로 실리지 않았다). des Houlières는 흔히 Deshoulières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규칙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사디즘의 어원으로 악명이 높은 프랑스 소설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 [maʁki də sad] ‘마르키 드 사드’)은 이름이 한 음절인 데도 de를 생략하고 Sade로 줄여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사드’로 쓴다. 사드는 백작인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후작으로 불리다가 아버지 사후 자신도 백작(comte [kɔ̃ːt] ‘콩트’) 칭호를 쓰기도 했지만 사드 후작으로만 널리 알려졌고 1800년 이후에는 귀족 칭호를 생략하고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사드(Donatien-Alphonse-François Sade [dɔnasjɛ̃ alfɔ̃ːs fʁɑ̃swa sad])라는 이름만 썼다. 그래서 de를 생략한 ‘사드(Sade)’로 줄여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성을 제외한 이름을 모두 붙임표(-)로 연결했지만 이는 19세기 관습이고 요즘 프랑스어 방식으로 쓰면 Donatien Alphonse François Sade가 되니 한글 표기에서도 각 이름을 띄어 쓰는 것이 좋다.

프랑스 군인이자 정치가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ʃaʁl də ɡoːl])은 얼핏 보면 한 음절인 성이라서 de를 생략하지 않고 de Gaulle이라고 부르는 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어 화자들도 보통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공시적으로 보면 ‘드골(de Gaulle)’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유는 성이 한 음절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성씨는 원래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니 여기서 de는 원래 프랑스어 전치사가 아니라 네덜란드어 정관사 de에 해당한다.

이런 정관사에서 유래한 de는 언제나 성씨의 일부로 간주된다. 아버지가 네덜란드 출신인 프랑스 소설가 폴 드코크(Paul de Kock [pɔl də kɔk])의 성에서도 de가 네덜란드어 정관사이다. 비슷한 예인 벨기에 소설가 샤를 드코스테르(Charles De Coster [ʃaʁl də kɔstɛːʁ])나 프랑스 정치가 카롤린 드아스(Caroline De Haas [kaʁɔlin də as]), 프랑스 테니스 선수 케니 드셰페르(Kenny De Schepper [ke⟮ɛ⟯ni də ʃe⟮ɛ⟯pœ⟮ɛ⟯ːʁ]), 벨기에 시인·소설가 다니엘 드브뢰이케르(Daniel De Bruycker [danjɛl də bʁœjkœ⟮ɛ⟯ːʁ]) 같은 경우는 아예 벨기에식으로 De를 대문자로 쓴다(네덜란드식으로는 소문자 de를 쓴다). 이런 인명에서는 de가 성의 일부로 간주되니 한글 표기에서도 ‘드코크’, ‘드코스테르’, ‘드아스’, ‘드셰페르’, ‘드브뢰이케르’ 등으로 써야 한다.

프랑스어 사전을 보면 드골과 드코크는 《로베르 소사전》과 《라루스 소사전》 둘 다 Gaulle, Kock에 따라 정렬했는데 드코스테르는 De Coster에 따라 D로 시작하는 항목 사이에 정렬한 것으로 보아 De를 대문자로 적은 경우는 기본 표제어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모양이다.

그런데 프랑스어권에서도 de를 성씨의 일부로 간주할지의 문제는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앞에서 설명한 규칙이 언제나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흥미롭게도 스위스 식물학자 오귀스탱 피람 드 캉돌(Augustin Pyrame de Candolle [ɔ⟮o⟯ɡystɛ̃ piʁam də kɑ̃dɔl])을 ‘드캉돌’과 ‘캉돌’로 de를 붙인 것과 붙이지 않은 것을 복수 표제어로 싣고 있다. Candolle은 두 음절 이름이므로 일반적인 규칙에 따르면 줄여 부를 때 de를 생략하고 Candolle로 부르므로 그냥 ‘캉돌’로 쓰는 것이 낫다. 다만 영어에서는 프랑스어에서 생략되는 de도 줄여 부를 때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가 고안한 식물 분류법을 De Candolle system이라고 불러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드캉돌’이 복수 표제어로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어 인명에서 de는 줄여 부를 때 성씨의 일부로 포함되는 경우 한글 표기에서도 붙여 쓰고 줄여 부르는 성씨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그 앞에서 띄어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드무아브르’, ‘드브로이’로 줄여 부르는 인물은 이름 전체를 이를 때 ‘아브라암 드무아브르’, ‘루이 드브로이’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소쉬르’, ‘발자크’로 줄여 부르는 인물은 ‘페르디낭 *드소쉬르’, ‘오노레 *드발자크’와 같이 평소에 붙이지 않는 ‘드’를 붙여 쓰기보다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 ‘오노레 드 발자크’와 같이 띄어 쓰는 것이 혼란을 줄일 것이다.

원래의 질문에 나온 Alexandre de Rhodes [alɛksɑ̃ːdʁ də ʁoːd]도 Rhodes가 한 음절이라서 보통 ‘드로드(de Rhodes)’로 줄여 부른다. 그러니 ‘알렉상드르 드로드’와 같이 붙여 쓴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어 인명에서 전치사 de는 성씨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성씨 개념이 없거나 모호했던 중세 이름에서는 단지 출신지를 밝히는 별명에서 de를 쓴 경우가 많다. 아서 왕 전설에 대한 작품으로 유명한 12세기 프랑스 시인 크레티앵 드트루아(Chrétien de Troyes [kʁetjɛ̃ də tʁwa])는 단지 트루아 출신의 크레티앵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이름이고 성씨가 알려진 것이 따로 없다. 줄여 부를 때는 그냥 ‘크레티앵(Chrétien)’이라고 부른다. 또 13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작곡가인 아당 드라알(Adam de la Halle [adɑ̃ də la al])의 경우는 아버지가 앙리 드라알(Henri de la Halle [ɑ̃ʁi də la al])이었으니 (de) la Halle을 성씨로 볼 수 있지만 아직 성씨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라서 줄여 부를 때 그냥 ‘아당(Adam)’이라고 부른다. 《로베르 소사전》과 《라루스 소사전》에서도 이들은 Chrétien de Troyes, Adam de la Halle(또는 다른 별명인 Adam le Bossu)을 기준으로 정렬한다.

이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크레티앵 드트루아’, ‘아당 드라알’과 같이 쓴다. (de) Troyes나 (de) la Halle로 줄여 부르는 일이 없으니 딱히 붙여 쓰건 띄어 쓰건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크레티앵 드 트루아’, ‘아당 드 라알’로 쓰는 것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불필요한 띄어쓰기는 줄이는 차원에서 일단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쓰는 방식을 따라 중세 인명에 들어가는 전치사 de도 붙여 쓰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오귀스트 드 빌리에 드릴아당(Auguste de Villiers de L’Isle-Adam [ɔ⟮o⟯ɡyst də vilje də lil adɑ̃])이나 프랑스 화가 피에르 퓌비 드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pjɛːʁ pyvi(s) də ʃavan]),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la maʁsɛjɛːz])》를 작곡한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Claude Joseph])은 각각 성씨가 Villiers de L’Isle-Adam, Puvis de Chavannes, Rouget de Lisle이다. 즉 중간에 전치사 de가 들어간 복합 성씨이며 마지막 부분만 성씨인 것처럼 줄여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빌리에 드릴라당’과 ‘퓌비 드샤반’이 표제어로 실려있고 루제 드릴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전자는 원어 철자를 L’IsleAdam으로 파악하고 ‘릴라당’으로 썼지만 실제로는 붙임표가 들어간 L’Isle-Adam이므로 L’Isle과 Adam을 따로 표기하여 ‘릴아당’으로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빌리에 드릴라당’과 함께 ‘릴라당’도 복수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서 L’Isle-Adam으로 줄여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굳이 Villiers de L’Isle-Adam를 줄인다면 ‘빌리에(Villiers)’로 부르는 것이 낫다. 어쨌든 이처럼 복합 성씨 중간에 들어간 전치사 de도 한글 표기에서는 뒤 요소와 붙여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왕족이나 제후 가문 인물을 이를 때도 전치사 de가 흔히 쓰인다. 이미 언급한 Catherine de Médicis [katʁin də medisis] ‘카트린 드메디시스’ 외에 브르타뉴 여공작이자 프랑스 왕후였던 Anne de Bretagne [an də bʁətaɲ] ‘안 드브르타뉴’, 아키텐 여공작이자 프랑스와 잉글랜드 왕후를 지낸 Aliénor d’Aquitaine [aljenɔːʁ dakitɛn] ‘알리에노르 다키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영어에서 카트린 드메디시스는 프랑스어 이름을 그대로 쓰거나 이탈리아어식 성씨를 쓴 Catherine de’ Medici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머지 둘은 Anne of Brittany, Eleanor of Aquitaine라고 부르며 다른 유럽 언어에서도 비슷하게 의역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 브르타뉴와 아키텐을 공작령으로 다스리는 가문 출신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프랑스어 이름을 그대로 음차하기보다는 ‘브르타뉴의 안’, ‘아키텐의 알리에노르’와 같이 의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참고로 한국어판 위키백과에서는 심지어 모나코 공국의 공세자 Jacques de Monaco [ʒak də mɔnako]를 ‘자크 드 모나코 공세자’라고 부르는 등 의역해야 할 전치사를 무조건 음차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를 보면 영어 Jacques, Hereditary Prince of Monaco, 독일어 Jacques von Monaco, 네덜란드어 Jacques van Monaco, 이탈리아어 Giacomo di Monaco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같이 ‘모나코의’라는 뜻의 문구를 써서 의역한다. ‘모나코 공세자 자크’나 ‘모나코의 자크’ 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낫다. 물론이지만 de Monaco는 성씨가 아니고 이 가문의 성씨는 그리말디(Grimaldi [ɡʁimaldi])이다. 그런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인명에 나오는 전치사 처리를 편의 위주로 통일하려 했는지 이처럼 불필요한 음차를 쓴 문서가 하도 많이 생성되어 있어 이제와서 고치기도 막막하다.

한편 프랑스어에서 인명에 쓰이는 관사 le, la, les 등은 뒤따르는 요소에서 분리할 수 없다. 프랑스 조경 건축가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ôtre [ɑ̃dʁe lənoːtʁ]), 프랑스 우화 작가 장 드 라퐁텐(Jean de La Fontaine [ʒɑ̃ də la fɔ̃tɛn]) 등은 Le Nôtre, La Fontaine이 성이며 《로베르 소사전》과 《라루스 소사전》에서도 L로 시작하는 항목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르노트르’, ‘라퐁텐’이 표제어로 실려있다. 그러니 후자의 경우 La는 뒤따르는 요소와 붙여 쓰고 de는 띄어 써서 ‘장 드 라퐁텐’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프랑스어 하나만 논하는 데도 글이 상당히 길어져 다른 언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야 할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를 띄어 쓰는 문제는 해당 인물을 어떻게 줄여 부르느냐를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치사 de나 전치사와 관사가 결합한 da (de + a), das (de + as), do (de + o), dos (de + os) 따위는 줄여 부를 때 성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Francisco de Pina도 그냥 Pina로 줄여 부른다. 그러니 ‘프란시스쿠 드 피나’와 같이 띄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 것이다.

포르투갈 항해가 Vasco da Gama도 사실 포르투갈어로는 Gama라고 줄여 부른다. 그런데 이 인명은 영어에서 보통 da Gama로 줄여 부르기 때문인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가마’로 쓴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포르투갈어 인명은 일반적으로 한글로 표기할 때도 전치사 없이 줄여 부른다.

그런데 Eça de Queiroz라는 복합 성씨로 알려진 포르투갈 소설가 José Maria de Eça de Queiroz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에사 드 케이로스’로 띄어 쓴다. 이 인물은 어머니 성씨인 (de) Eça와 아버지 성씨인 (de) Queiroz를 합쳐서 쓰는데 줄여 부를 때 첫째 de는 생략하지만 두 성씨 사이에 오는 de는 포함시켜서 Eça de Queiroz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중간에 de가 들어가는 복합 성씨처럼 취급하면 ‘에사 드케이로스’와 같이 쓰는 것이 나을 수 있지만 아버지 성씨가 따로 쓰일 때는 그냥 ‘케이로스(Queiroz)’로 쓰는 것을 고려해서 ‘에사 드 케이로스’로 띄어 쓰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름 전체를 쓸 때 ‘조제 마리아 드 에사 드케이로스’로 써서 두 de의 처리를 다르게 하는 것도 어색하고 ‘조제 마리아 드 에사 드 케이로스’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처럼 포르투갈어 인명의 de, da, do 등은 이처럼 복합 성씨 내부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아니면 줄여 부를 때 보통 포함되지 않으니 모두 띄어 쓰는 것으로 통일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공유하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