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빌레르코트레에서 개관하는 프랑스어를 테마로 하는 문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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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개관할 프랑스어를 테마로 한 문화 공간인 시테 앵테르나시오날 드 라 랑그 프랑세즈(Cité internationale de la langue française, ‘프랑스어의 국제 도시’)는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문화 분야 야심작이다. 원래 10월 19일 개관 예정이었는데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살해당한 프랑스 교사 장례식 참석으로 일정이 맞지 않아 개관이 연기되었다.

새 문화 공간은 파리에서 동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빌레르코트레(Villers-Cotterêts [vilɛːʁ kɔtʁɛ]) 중심부에 있는 르네상스 시대 빌레르코트레성에 들어선다. 이곳은 1539년에 프랑스 왕 프랑수아(François [fʁɑ̃swa]) 1세가 빌레르코트레 칙령(ordonnance de Villers-Cotterêts)을 반포하여 왕국의 행정에 쓰이는 언어를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바꾼 곳으로 유명하다. 빌레르코트레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 등의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alɛksɑ̃ːdʁ dymɑ, -ma], 1802~1870)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17년에 낙후된 상태의 빌레르코트레성을 보았던 마크롱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를 보수하여 프랑코포니(francophonie [fʁɑ̃kɔfɔni]) 즉 프랑스어권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2억1천만 유로를 들였으니 파리 노트르담 성당 복원에 이어 마크롱 정부에서 벌이는 두번째로 큰 규모의 문화 사업이다.

프랑스어로 cité [site] ‘시테’는 일차적으로 ‘도시’를 뜻한다. 영어에서는 이를 차용한 city [ˈsɪt.i] ‘시티’가 ‘도시’를 뜻하는 일반 용어이지만 프랑스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도시를 ville [vil] ‘빌’이라고 부르고 cité는 주로 과거의 성곽에 둘러싸인 도시를 이르는 역사 용어로서 또는 비유적인 표현에서 쓴다.
파리에 있는 과학·산업 박물관인 시테 데 시앙스 에 드 랭뒤스트리(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site de sjɑ̃ːs e də lɛ̃dystʁi], ‘과학·산업의 도시’)와 그 근처에 있는 음악 관련 공연장, 박물관 등을 포함한 단지인 시테 드 라 뮈지크(Cité de la musique [site də la myzik], ‘음악의 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박물관이나 비슷한 문화 시설 명칭에 흔히 쓰이는데 영어를 비롯해서 다른 유럽 언어에서는 이를 의역하지 않고 프랑스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래도 cité를 마땅히 번역할만한 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원어 이름을 그대로 쓰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어로도 프랑스어 이름을 발음 그대로 옮겨서 부르면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cité를 ‘도시’로 직역하여 ‘과학·산업 도시’, ‘음악 도시’ 등으로 부르면 혼동할 수 있으니 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는 ‘과학·산업 박물관’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Cité de la musique는 매끄러운 번역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시테 드 라 뮈지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중국어로는 음악성(音樂城/音乐城[Yīnyuèchéng] ‘인웨청’)으로 직역하는 듯하다.

Cité internationale de la langue française [site ɛ̃tɛʁnasjɔnal də la lɑ̃ːɡ fʁɑ̃sɛːz] ‘시테 앵테르나시오날 드 라 랑그 프랑세즈’도 그대로 한국어 명칭으로 삼기에는 너무 길어 보인다. ‘국제’를 뜻하는 말을 빼고 Cité de la langue française ‘시테 드 라 랑그 프랑세즈’라고 흔히 부르니 이 정도를 이름으로 쓸 수 있겠다.

프랑스어를 주제로 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니 ‘프랑스어 박물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관장 폴 롱댕(Paul Rondin [pɔl ʁɔ̃dɛ̃])에 의하면 이곳은 박물관(musée)이 아니라서 언어가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줄 것이며 연구자들, 예술가들이 입주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어가 옛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일지 몰라도 일단 이를 존중하여 박물관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기로 했다. 공식 누리집에서는 문화·생활 공간(un lieu culturel et de vie)이라는 표현을 쓴다.

Villers-Cotterêts의 표기는 심의된 적이 없지만 프랑스어 발음에 따르면 ‘빌레르코트레’라고 쓰는 것이 맞는데 ‘빌레코트레’라고 잘못 적는 일이 은근히 많다. 프랑스어는 철자로부터 발음을 언제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어 지명에 나오는 요소인 Villers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이다.

위에서 Villers-Cotterêts의 발음은 [vilɛːʁ kɔtʁɛ]로 적었는데 이는 각 부분을 따로 발음한 것이고 한 덩어리로 발음할 때는 장모음 없이 [vilɛʁkɔtʁɛ]가 된다. 표준 프랑스어에서 장모음은 일반적으로 구절의 마지막 음절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Cro-Magnon [kʁo maɲɔ̃] ‘크로마뇽’, Mont-Saint-Michel [mɔ̃ sɛ̃ miʃɛl] ‘몽생미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원어의 붙임표(-)는 한글 표기에서 무시하므로 Villers-Cotterêts도 ‘빌레르코트레’로 붙여 쓴다.

Villers는 라틴어로 교외 주택을 이르는 villa ‘빌라’에서 파생된 villaris ‘빌라리스’에서 나온 말로 프랑스어권 북부 지명에서 흔하게 나타난다(남부에서는 Villars [vilaːʁ] ‘빌라르’라는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vilɛːʁ] ‘빌레르’로 발음된다. 빌레르코트레 외에도 Villers-lès-Nancy [vilɛːʁ lɛ nɑ̃si] ‘빌레르레낭시’, Villers-Saint-Paul [vilɛːʁ sɛ̃ pɔl] ‘빌레르생폴’ 등의 지명에서 이 발음이 쓰인다.

그런데 벨기에에서는 [vilɛʁs] ‘빌레르스’라는 발음이 흔하다. 벨기에 지명으로 Les Bons Villers [le bɔ̃ vilɛʁs] ‘레봉빌레르스’, Villers-la-Ville [vilɛʁs la vil] ‘빌레르스라빌’, Villers-le-Bouillet [vilɛʁs lə bujɛ] ‘빌레르스르부예’ 등이 있다. [vile] ‘빌레’라는 발음도 벨기에와 프랑스 인근 지역에서 관찰된다. 벨기에 Villers-devant-Orval [vile dəvɑ̃-t‿ɔʁval] ‘빌레드방토르발’, 벨기에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아르덴주의 Villers-Semeuse [vile səmøːz] ‘빌레스뫼즈’ 등이 있다.

지명의 뒷부분에 나타나는 -villers도 [vile] ‘빌레’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지명 Deyvillers [dɛvile] ‘데빌레’, Foncquevillers [fɔ̃kvile] ‘퐁크빌레’, Hautvillers [ovile] ‘오빌레’, Rambervillers [ʁɑ̃bɛʁvile] ‘랑베르빌레’와 벨기에 지명 Fauvillers [fovile] ‘포빌레’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게르만어권이었던 프랑스의 모젤주에 있는 Amanvillers [amɑ̃vile] ‘아망빌레’, Rochonvillers [ʁɔʃɔ̃vile] ‘로숑빌레’에서도 같은 발음이 쓰이는데 이들은 독일어로는 Amanweiler [ˈaːmanvaɪ̯lɐ] ‘아만바일러’, Ruxweiler [ˈʁʊksvaɪ̯lɐ] ‘룩스바일러’라고 한다. 라틴어 villaris는 대격형 villarem 또는 중성 주격·대격형 villare를 통해 중세 고지 독일어에서 wīler로 차용되었으며 오늘날 표준 독일어에서는 Weiler [ˈvaɪ̯lɐ] ‘바일러’가 되었다. 모젤주에서 전통적으로 쓴 고지 독일어 방언인 로렌 프랑크어에서는 Weller 정도인 것 같은데 표준화된 언어가 아니니 통일된 철자는 없고 오늘날에는 방언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이웃하는 알자스 지방에서는 고지 독일어의 한 갈래인 알레만 독일어 방언인 알자스어가 전통적으로 쓰이는데 이 역시 프랑스어에 많이 밀려났지만 모젤주의 로렌 프랑크어보다는 상태가 양호하다. 알자스 지명에서는 villers, Weiler에 해당하는 요소가 Bischwiller [biʃvilɛːʁ] ‘비슈빌레르’, Guebwiller [ɡɛbvilɛːʁ] ‘게브빌레르’, Orschwiller [ɔʁʃvilɛːʁ] ‘오르슈빌레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willer라는 철자로 쓰이며 프랑스어로는 [vilɛːʁ] ‘빌레르’로 발음된다. 현지에서는 알자스어 발음을 흉내내서 [viləʁ] 비슷한 발음을 쓰기도 하는데 한글로 나타내기는 애매하니 이 역시 ‘빌레르’로 표기할 수 있다. 이들의 독일어 이름은 각각 Bischweiler [ˈbɪʃvaɪ̯lɐ] ‘비슈바일러’, Gebweiler [ˈɡeːpvaɪ̯lɐ] ‘게프바일러’, Orschweiler [ˈɔʁʃvaɪ̯lɐ] ‘오르슈바일러’인데 프랑스어에서 쓰는 이름은 알자스어에서 쓰는 발음인 [ˈvilər]를 따른 것이다.

또 알자스 지명 가운데는 이 요소를 완전히 프랑스어화한 Ribeauvillé [ʁibovile] ‘리보빌레’, Villé [vile] ‘빌레’도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vile] ‘빌레’로 발음된다. 독일어 이름은 각각 Rappoltsweiler [ʁapɔlʦˈvaɪ̯lɐ] ‘라폴츠바일러’, Weiler [ˈvaɪ̯lɐ] ‘바일러’이다.

그런데 프랑스 지명인 Déservillers [dezɛʁvilɛːʁ] ‘데제르빌레르’, Vauvillers [vovilɛːʁ] ‘보빌레르’처럼 지명의 -villers가 [vile] ‘빌레’가 아닌 [vilɛːʁ] ‘빌레르’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최대한 현지 발음을 확인하여 이에 따라 적었지만 현지에서도 발음이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현지 발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박제해놓을 수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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