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노르스크(신노르웨이어)를 쓰는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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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욘 포세(Jon Fosse)는 노르웨이가 배출한 네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두 가지 표준 문자 언어인 보크몰(bokmål)과 뉘노르스크(nynorsk) 가운데 뉘노르스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포세가 처음이다.

노르웨이의 이전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은 20세기 초반에 몰려 있는데 1903년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Bjørnstjerne Bjørnson, 1832~1910), 1920년 크누트 함순(Knut Hamsun, 1859~1952), 1928년 시그리 운세트(Sigrid Undset, 1882~1949) 등은 모두 보크몰 또는 그 전신인 릭스몰(riksmål, 당시 철자 rigsmaal)로 작품 활동을 했다. 보크몰이라는 명칭이 채택된 것이 1929년이니 노벨상 수상 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기존 작품의 언어는 릭스몰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릭스몰, 후에 보크몰은 덴마크의 오랜 노르웨이 지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쓰이던 노르웨이식 덴마크어를 표준화한 글말이고 란스몰(landsmål, 당시 철자 landsmaal), 후에 뉘노르스크는 덴마크어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향토 언어학자 이바르 오센(Ivar Aasen, 1813~1896)이 노르웨이 방언을 바탕으로 표준화한 글말이다. 이처럼 두 가지 표준 문자 언어가 공용어로 쓰이게 된 노르웨이의 언어 사정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보크몰과 뉘노르스크는 대립 끝에 둘 다 공용어로 인정되었다. 학교에서는 두 표준 모두 배우게 된다. 각 학군마다 보크몰과 뉘노르스크 가운데 하나를 주 언어로 삼아서 그것으로 교육 과정을 시작하고 나중에 다른 하나도 가르친다. 지방 자치체에 따라 보크몰과 뉘노르스크 가운데 하나만 쓰는 곳도 있고 이에 대해 중립인 곳도 있다. 오슬로, 베르겐, 트론헤임, 스타방에르 등 대도시는 모두 중립이다.
이론적으로 보크몰과 뉘노르스크는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지만 실제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보크몰이다. 노르웨이 인구의 80% 정도가 보크몰로 글을 쓴다. 기업에서 쓰는 문서를 비롯한 민간 분야에서도 보크몰의 사용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처음부터 릭스몰/보크몰은 도회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란스몰/뉘노르스크는 노르웨이 서부의 전원 지역을 본거지로 했기 때문에 영향력에 큰 차이가 있었다. 노르웨이어 방언 가운데 대다수가 보크몰보다는 뉘노르스크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입말과 글말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표준 문자 언어의 선택과는 그리 상관이 없다.

뉘노르스크가 노르웨이에서 상대적으로 사용자가 적은 것을 들어 이번 포세의 노벨상 수상을 가지고 소수 언어 문학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것도 보았는데 뉘노르스크 문학을 소수 언어 문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보크몰과 뉘노르스크는 문자 언어로서의 두 가지 표준이지 별개의 언어가 아니다. 뉘노르스크 사용자가 보크몰을 읽거나 보크몰 사용자가 뉘노르스크를 읽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니 저학년용 교과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판물은 보크몰과 뉘노르스크 가운데 하나만 쓰기 마련이며 노르웨이 신문을 보면 보크몰과 뉘노르스크를 쓰는 기사가 나란히 있는 경우가 많다(물론 전국지는 보크몰로 쓴 기사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통계를 내서 양적 비교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다른 분야에 비해 뉘노르스크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가 문학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뉘노르스크의 전신인 란스몰을 문학의 언어로 확립시킨 선구자로 아르네 가르보르그(Arne Garborg, 1851~1924)와 올라브 에우크루스트(Olav Aukrust, 1883~1929)를 들 수 있다. 가르보르그는 란스몰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18년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란스몰로 번역하기도 했다. 전원 지역의 방언에 관심이 많았던 에우크루스트는 이들 방언을 바탕으로 한 란스몰로 시를 썼다. 초기 란스몰/뉘노르스크 소설가로 올라브 둔(Olav Duun, 1876~1939)도 꼽을 수 있다.

포세는 20세기 노르웨이 문학의 거장인 소설가 타리에이 베소스(Tarjei Vesaas, 1897~1970)와 흔히 비교되는데 그 역시 뉘노르스크어를 썼다. 노르웨이의 노동 계급을 다룬 작품으로 이름을 낸 크리스토페르 우프달(Kristofer Uppdal, 1878~1961)도 뉘노르스크 작가이다.

오늘날 활동하는 작가로 뉘노르스크를 쓰는 이로는 포세 외에도 샤르탄 플뢱스타(Kjartan Fløgstad, 1944~), 프로데 그뤼텐(Frode Grytten, 1960~), 마리트 에이케모(Marit Eikemo, 1971~), 앙네스 라바튼(Agnes Ravatn, 1983~)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된 노르웨이 작가는 대부분 보크몰을 쓰는 것이 사실이다.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 1960~)와 《소피의 세계(Sofies verden)》로 알려진 요스테인 고르데르(Jostein Gaarder, 1952~), 《나의 투쟁(Min kamp)》의 작가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Karl Ove Knausgård, 1968~) 등은 모두 보크몰을 쓴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도 덴마크어 내지 릭스몰로 이어지는 노르웨이식 덴마크어를 썼다.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노르웨이 작가들 가운데는 언어와 관련된 대립에서 한쪽 편에 선 이들이 많다. 노르웨이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손은 1899년 노르웨이식 덴마크어를 이르는 이름으로 릭스몰을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초기에 덴마크어와 구별되는 노르웨이 국어를 마련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험적으로 란스몰로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후에 릭스몰 운동을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1907년에 릭스몰 학회(Riksmålsforbundet)를 세우기도 했다. 이들은 란스몰을 표준 노르웨이어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대항하였으며 릭스몰과 란스몰을 절충하여 하나의 표준으로 만들려는 삼노르스크(samnorsk) 운동에도 반대하였다.

삼노르스크는 보크몰과 뉘노르스크 양쪽에서 반대에 부딪혀 오늘날 사실상 폐기된 상태이고 공식적으로는 보크몰과 뉘노르스크가 둘 다 공용어로 인정되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보크몰이 우위에 있다. 뉘노르스크를 가르치던 학군이 보크몰로 전환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포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보면 뉘노르스크에 미래가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20년이 넘게 보크몰로 작품 활동을 하던 토레 렌베르그(Tore Renberg, 1972~)는 2016년에 뉘노르스크로 쓴 소설을 발표하여 노르웨이 문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서부 스타방에르 출신인데 스타방에르의 방언은 뉘노르스크에 가깝지만 같은 서부의 대도시 베르겐과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보크몰을 써왔다. 보크몰로 교육을 받았던 렌베르그는 뉘노르스크를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머리와 입, 삶에 더 가깝게 되었다면서 예전에는 노르웨이에 문자 언어가 둘인 것을 스트레스로 여겼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두 가지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더욱 풍성해졌다고 밝혔다. 렌베르그가 2020년 뉘노르스크로 쓴 최신작 《톨락의 아내(Tollak til Ingeborg)》는 손화수가 노르웨이어에서 직접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Tollak의 규범 표기는 ‘톨라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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