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에스비에르그’는 이제 ‘에스비에르’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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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항구도시 Esbjerg의 표준 표기가 ‘에스비에르그’에서 ‘에스비에르’로 바뀌었다. 2017년 3월 28일 고시된 외래어 표기법 일부 개정안(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7-14호)은 띄어쓰기와 잘못 쓴 용례를 수정한 것이 대부분인 가운데 덴마크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에서 Esbjerg의 표기도 기존의 ‘에스비에르그’에서 ‘에스비에르’로 바꾸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에스비에르’가 표제어로 실려있다.

그런데 그 배경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고 관련 규정도 바뀐 것이 없다. 대조표와 표기 세칙에 따르면 덴마크어의 자음 앞 또는 어말 g는 어미 ig에서, u와 l 사이에서, borg와 berg에서 적지 않고 그 외의 경우에는 ‘그’로 적는다. Esbjerg의 g는 나머지 경우에 해당되므로 규정만 따지면 여전히 ‘그’로 적어야 한다. 그러면 왜 ‘에스비에르’로 표기를 바꿨을까?

표기 세칙에서는 borg와 berg에서 g를 적지 않는 예로 Nyborg ‘뉘보르’, Esberg ‘에스베르’, Frederiksberg ‘프레데릭스베르’를 들고 있다. Esberg는 드물게 스웨덴어 성씨로 검색되기는 하지만 덴마크어에서는 Esbjerg의 잘못으로만 검색된다. 물론 덴마크어 고유명사로 Esberg가 전혀 쓰이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 드는 예로는 적절하지 않다.

‘산’을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로는 berg라고 한다. 노르웨이어 발음은 [ˈbærɡ] ‘베르그’, 스웨덴어 발음은 [ˈbærj] ‘베리’이며 지명 요소로 널리 쓰인다. 따라서 지명에서 온 성씨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의 berg에 대응되는 덴마크어 단어는 bjerg이다. 덴마크어 고유명사에는 Frederiksberg처럼 berg를 쓴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bjerg가 더 많이 쓰인다. 덴마크 지명으로 Esbjerg 외에 Glamsbjerg, Solbjerg, Vestbjerg, Vildbjerg, Vissenbjerg 등이 있다. 대신 덴마크가 워낙 평평하고 산이 없는 나라라서 그런지 bjerg/berg가 들어가는 지명보다는 borg가 들어가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덴마크어 bjerg는 [ˈb̥jæɐ̯ˀʊ̯]로 발음된다. ‘성’을 뜻하며 역시 지명 요소로 많이 쓰이는 borg는 [ˈb̥ɒːˀʊ̯]로 발음된다. 덴마크어는 유럽 언어 가운데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가장 복잡한 축에 든다. 글말만 보면 덴마크어와 매우 비슷한 노르웨이어에서는 berg를 [ˈbærɡ] ‘베르그’, borg를 [ˈbɔrɡ] ‘보르그’로 발음하는 것과 비교하면 덴마크어 발음은 참 까다롭다.

덴마크어에서는 b가 무성음으로 발음되므로 [p]로 적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무성음화를 나타내는 고리 부호를 아래에 붙인 [b̥]로 적도록 한다. p는 어두와 강세를 받는 음절 첫머리에서 유기음인 [pʰ]로 발음되어 b와 구별되지만 그 외의 위치에서는 역시 [b̥]로 발음되어 b와 구별이 사라진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단순히 철자에 따라 b는 ‘ㅂ’으로, p는 ‘ㅍ’으로 적는다.

덴마크어의 r는 주변의 모음에 흡수되어 그 음가를 변화시킨다. 영어에서 paid, boat의 모음은 pair, boar의 모음과 다른데 원래의 /eɪ̯/ ‘에이’, /oʊ̯/ ‘오’에 r가 뒤따르면 각각 [ˈɛə̯(ɹ)] ‘에어’, [ɔː(ɹ)] ‘오(어)’가 되고 영국식 발음의 경우에는 r가 아예 따로 발음되지 않는다. 덴마크어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비슷하다. /ɛr/의 경우는 [æɐ̯]로, /ɔr/의 경우는 [ɒː]로 실현된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처럼 복잡한 표면 발음을 따지지 않고 기저형인 /ɛr/, /ɔr/에 따라 ‘에르’, ‘오르’로 적는다.

음절말 g는 보통 [ʊ̯]로 발음된다. 이를 [w]로 적기도 한다. 음절말 v도 [ʊ̯]로 발음되므로 이는 /v/로 분석할 수 있다. 단 전설 모음 뒤에서는 g가 [ɪ̯]로 발음되어 이 위치에서 j의 발음과 같으므로 이 경우는 /j/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역시 [j]로 적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분석에 따르면 bjerg [ˈb̥jæɐ̯ˀʊ̯]의 기저형은 /ˈbjɛrv/로, borg [ˈb̥ɒːˀʊ̯]의 기저형은 /ˈbɔrv/로 분석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덴마크어 g가 /v/ [ʊ̯]로 발음될 때 ‘그’로 적는다. 덴마크어 표기 규정을 따르면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og /ɔ(v)/ [ˈɒʊ̯, ˈʌ]는 ‘오그’, ‘뚜껑’을 뜻하는 låg /lɔːv/ [ˈlɔːˀʊ̯]는 ‘로그’로 적게 된다. 심지어 g가 /j/ [ɪ̯]로 발음되는 경우인 sag /saːj/ [ˈsæːˀɪ̯]도 ‘사그’로 적는다. 현대 덴마크어에서는 /a/ 상당수가 전설모음 [æ]가 되는데 그 뒤에서는 g가 /j/ [ɪ̯]로 발음되기 마련이다.

대신 eg는 ‘아이’, øg는 ‘오이’로 적도록 했다. eg는 보통 /ɑj/ [ɑɪ̯], øg는 보통 /ɔj/ [ʌɪ̯]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말 또는 자음 앞 g가 /j/ [ɪ̯]로 발음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로 적게 된다.

한편 덴마크어 av, æv, øv, ov, ev의 v는 ‘우’로 적는다. 음절말에서 v가 [ʊ̯]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말과 자음 앞 g도 ‘우’로 적도록 하지 않았을까? 자음 앞의 g는 언제나 [ʊ̯]로 발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예로 든 magt는 g가 여전히 폐쇄음인 [ˈmɑɡ̊d̥]로 발음된다. 어중에서는 g와 k가 둘 다 [ɡ̊]로 중화되므로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 표기법을 흉내내어 무성 자음 앞의 g는 받침 ‘ㄱ’으로 적게 하면 magt는 충분히 ‘막트’로 적을 수도 있었겠지만(akt [ˈɑɡ̊d̥] ‘악트’와 비교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또 어중의 음절말 g가 모음 앞에 오는 경우도 있고(예: toge [ˈtˢɔːʊ̯ə]) 반대로 어중의 자음 앞 g가 음절말이 아니라 음절초 소리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예: agrar [aˈɡ̊ʁɑˀ, ɑ-]) 어느 g를 ‘우’로 적어야 할지 알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ʊ̯]로 실현되는 철자 g는 보통 ‘그’로 적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bjerg [ˈb̥jæɐ̯ˀʊ̯], borg [ˈb̥ɒːˀʊ̯]에서는 g가 [ʊ̯]로 발음된다. 그러면 왜 berg와 borg의 g를 쓰지 않도록 했을까?

1990년 출판된 페테르 몰베크 한센(Peter Molbæk Hansen)의 《덴마크어 발음 사전(Dansk Udtale – Udtaleordbog)》에는 Aalborg, Esbjerg, Frederiksberg의 발음이 각각 ˈʌlˌbɔː’(w), ˈɛsˌbjæʀ’(w), frɛðrɛgsˈbæʀ’(w)로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쓰는 덴마크어 표기 방식대로 옮기면 각각 [ˈʌlb̥ɒːˀ(ʊ̯)], [ˈɛsb̥jæɐ̯ˀ(ʊ̯)], [fʁɛðʁɛɡ̊sˈb̥æɐ̯ˀ(ʊ̯)]이다. 즉 이들 모두 g가 [ʊ̯]로 발음될 수도 있고 생략될 수도 있는 것이다. Silkeborg, Viborg 등 비슷한 고유명사 발음에서도 g가 선택적으로 발음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독일어 발음 사전인 《두덴 발음 사전(Duden – Das Aussprachewörterbuch)》은 덴마크어를 비롯한 외국어 발음도 일부 제시하는데 Aalborg, Esbjerg, Frederiksberg의 발음을 각각 ˈɔlbɔɐ̯’, ˈesbjɛɐ̯’u̯, freðərəɡsˈbɛɐ̯’u̯로 적고 있다. Aalborg에서는 g를 묵음으로 처리하는데 반해 Esbjerg와 Frederiksberg에서는 g가 발음되는 것으로 쓴 것이다. 현재 영어판 위키백과에 나타나는 발음 설명은 각각 [ˈɒlpɒːˀ], [ˈɛspjæɐ̯ˀ], [fʁæðʁæksˈpæɐ̯ˀ]로 g를 모두 묵음으로 처리한다.

그러니 bjerg, borg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g가 발음되지만 bjerg, berg, borg가 다른 말과 합쳐서 이룬 이름에서는 g가 발음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하며 영어판 위키백과에 실린 발음을 참조하면 생략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berg와 borg의 g는 적지 않도록 한 것은 이 때문에 생긴 규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Esbjerg의 표준 표기를 ‘에스비에르’로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berg, bjerg, borg의 g를 적지 않는 것으로 규정을 확대하여 표기가 바뀐 이유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대신 덴마크어 발음을 고려하여 단독으로 쓰이는 berg, bjerg, borg의 g는 예외적으로 ‘그’로 적는 것을 명시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실제로 표기 용례 가운데 덴마크의 정치가 Berg, Chresten은 ‘베르그, 크레스텐’으로 적은 것이 있다.

또 용례로 제시된 Esberg ‘에스베르’는 덴마크어에서 실제 쓰이는 것으로 검색되지 않으므로 Carlsberg ‘카를스베르’, Holberg ‘홀베르’ 등 다른 예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

2017년의 외래어 표기법 개정안으로 잘못된 용례가 바로잡힌 것이 많지만 아직도 폴란드어 표기 규정에서 예로 나오는 przjyaciół ‘프시야치우’처럼 잘못된 용례가 보인다. 올바른 철자는 przyjaciół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오류라도 끊임없이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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