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인가 ‘라이브니츠’인가?

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내용 추가: 나그네님께서 덧글로 독일어 발음 사전 가운데는 Leibniz의 b를 무성음으로 발음된다고 하는 것도 있다는 제보를 해주셨다. 그러니 독일어에서는 양 쪽 발음이 다 맞다고 봐야겠다. 이미 쓴 내용은 고치지 않고 남겨둔다.

독일어는 철자에서 발음을 예측하기가 비교적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면들이 많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Gottfried Leibniz의 경우를 살펴보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그림 출처)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Leibniz, Gottfried Wilhelm von. 라이프니츠,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독일의 철학자·수학자(1646~1716). 편수인명, 용인, 표준

즉 Leibniz는 ‘라이프니츠‘로 적는 것이 표준 표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발음을 잘못 안 표기라면?

영어 발음 사전이지만 일부 어휘에 한해 원 언어 발음도 보여주는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 따르면 Leibniz의 독일어 발음은 [ˈlaɪbnɪts]이라고 나와있다. A Handbook of Pronunciation에 나오는 독일어 발음 설명에도 Leibniz에서는 유성음 [b]가 발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라이브니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는 철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원 발음을 확인하여 적도록 되어있다).

2025. 8. 24. 추가 내용: 독일어 발음 사전 가운데 《두덴(Duden) 발음 사전》에서는 [ˈlaɪ̯bnɪts]를 제시하지만 《데그로이터(De Gruyter) 독일어 발음 사전》에서는 [lˈaɛ̯pnɪts]를 제시한다. 본 블로그에서 쓰는 표기 방식대로는 각각 [ˈlaɪ̯bnɪʦ], [ˈlaɪ̯pnɪʦ]에 해당한다. 그러니 ‘라이프니츠’와 ‘라이브니츠’ 둘 다 가능한 발음에 따른 표기이다.

음절 끝의 b, d, g는 무성음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어 어말과 음절 끝의 유성음 /b, d, ɡ/는 무성음화하여 /p, t, k/가 된다. 다만 예전에 쓴 글에서 다룬 것처럼 스위스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는 /b, d, ɡ/도 무성음 [b̥, d̥, ɡ̊]으로 발음되며 어말에서도 이 구분이 보존된다.

따라서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는 lieb는 [ˈliːp], Feld는 [ˈfɛlt], Zug는 [ˈʦuːk]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각각 ‘리프, 펠트, 추크’이다. 강세가 없는 모음이 따를 때는 lieber [ˈliːbɐ] ‘리버’, Felder [ˈfɛldɐ] ‘펠더’, Züge [ˈʦyːɡə] ‘취게’에서와 같이 본 유성음 발음이 난다.

어말이 아닌 음절 끝 위치에서도 lieblos [ˈliːploːs] ‘리플로스’에서처럼 무성음화가 적용될 수 있다. 이 단어는 lieb-los로 음절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Abart [ˈapʔaːɐ̯t] ‘아프아르트’에서처럼 뒤따르는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무성음화가 일어난다. 이 경우 사실 뒤의 음절은 성문 파열음 [ʔ]으로 시작한다.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 뒤따르는 음절의 첫음이 장애음, 즉 공명음인 /l, m, n, ʁ/를 제외한 자음이라면 무성음화는 무조건 일어나는 듯하다. Goldbach [ˈɡɔltbax] ‘골트바흐’, Magdeburg [ˈmakdəbʊʁk] ‘막데부르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는 ‘마그데부르크‘라고 나와 있다. 이것도 발음을 잘못 안 표기인 듯하다.

2025. 8. 24. 추가 내용: 원 글에서는 Magdeburg [ˈmakdəbʊʁk]를 ‘마크데부르크’로 썼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보면 독일어의 표기 세칙에서 따로 다루지 않는 부분은 영어의 표기 세칙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고 영어에서 짧은 모음과 유음·비음([l], [r], [m], [n]) 이외의 자음 사이에 오는 무성 파열음([p], [t], [k])은 받침으로 적도록 하고 있으므로 현행 규정을 그대로 따른 표기는 ‘막데부르크’가 맞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독일어에 bl-, gl-, gn-, br-, dr-, gr-로 시작하는 음절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graublau는 grau-blau로 음절이 나누어지니 [ˈɡʁaʊ̯blaʊ̯]로 발음하고 ‘그라우블라우’로 적는 것이 맞다.

그런데 독일어에 bn-으로 시작하는 음절은 없으니 Leibniz는 Lei-bniz로 나눌 수 없다. 그러면 Leib-niz의 b는 왜 유성음으로 발음될까?

이와 비슷한 예로 Wagner [ˈvaːɡnɐ] ‘바그너’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사진 출처)

Wagner는 ‘마차 제조업자’란 뜻이다. ‘마차’를 뜻하는 Wagen [ˈvaːɡən~ˈvaːɡn̩] ‘바겐’에서 파생되었으며 중세 고지 독일어의 wagener의 형태를 거쳐 Wagner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g 뒤의 모음이 사라졌지만 그 유래로 인해 아직도 g가 유성음 [ɡ]로 발음되는 것이다.

Adel에서 파생된 Adler와 adlig, Orden에서 파생된 Ordnung, Regel에서 파생된 Regler, Ziegel에서 파생된 Ziegler, eben에서 파생된 ebne의 d, b, g도 모두 유성음으로 발음된다.

Leibniz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b가 유성음으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아 오스트리아에 있는 Leiben이란 지명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추가 내용: Leibniz는 원래 Leibnitz로 표기했는데 본인이 철자를 바꾼 것이라고 한다. Leibnitz는 오스트리아의 지명으로 예전에 쓰인 이름 가운데는 Libenizze (12세기)와 Leibentz, Leybencz (13-14세기)가 있다. 그러니 이 이름도 예전에 있다가 사라진 모음의 영향으로 b가 유성음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또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들어온 고급 어휘와 기타 외래어에서 음절 끝의 유성음이 무성음화되지 않는다. Magnet [maɡˈneːt] ‘마그네트’, Fabrik [faˈbʁiːk] ‘파브리크’, Tablett [taˈblɛt] ‘타블레트’ 등을 들 수 있다.

그런가 하면 Abort [ˈapˌʔɔʁt, aˈbɔʁt] ‘아프오르트, 아보르트’에서처럼 무성음화된 발음과 유성음을 간직한 발음이 둘 다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독일어에서 어중의 b, d, g는 경우에 따라 무성음화되기도 하고 유성음이 유지되기 한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 실린 표준 표기 ‘라이프니츠’, ‘마그데부르크’는 아무래도 원 발음을 잘못 알고 정한 표기인 듯하다. 이미 굳어진 표기라면 표준 표기를 바꾸기가 힘들겠지만 앞으로라도 새로 독일어 표기 용례를 정할 때라도 꼭 발음을 제대로 확인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독일어 철자 보고 발음 알아내기 절대 만만하지 않다

독일어의 발음 규칙은 외국어에서 들어온 이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둘째치고 순 독일어 이름에서도 철자에서 발음을 예측하기 힘든 경우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독일어 철자에서 h가 앞의 모음이 장모음이란 것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e나 i도 같은 용도로 쓰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Graen [ˈɡʁaːn] ‘그란’, Coesfeld [ˈkoːsfɛlt] ‘코스펠트’, Grevenbroich [ɡʁeːvn̩ˈbʁoːx] ‘그레벤브로흐’, Itzehoe [ɪʦəˈhoː] ‘이체호’, Troisdorf [ˈtʁoːsdɔʁf] ‘트로스도르프’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Duisburg [ˈdyːsbʊʁk] ‘뒤스부르크’는 원래의 ‘우’ 발음이 바뀌어 ‘위’가 되었으며 이는 Duissern ‘뒤세른’, Duisdorf ‘뒤스도르프’에도 해당된다.

또 Jerichow [ˈjeːʁɪço] ‘예리호’에서처럼 -ow가 ‘오’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며 발음이 불규칙한 독일어 이름에 발음 규칙을 억지로 적용해 원 발음과 어긋나는 한글 표기를 쓰는 것은 오해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독일어는 철자에 따라 적는 것이 아니라 발음 기호를 보고 적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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