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ald Knuth는 ‘커누스’일까, ‘크누스’일까?

본 글은 원래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글루스가 종료되었기에 열람이 가능하도록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기한이 지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사항에 따라 글을 쓴 후 의견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오타 수정이나 발음 기호를 균일하게 고치는 것 외에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훗날 내용을 추가한 경우에는 이를 밝혔습니다. 외부 링크는 가능한 경우 업데이트했지만 오래되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날짜는 이글루스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2024. 5. 25. 추가 내용: 이 글을 쓴 후 Knuth의 표기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에는 외래어 표기법의 규정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데에 집착해서 ‘커누스’로 표기하는 것을 옹호했지만 지금은 Knuth가 영어로 [kə.ˈnuːθ]로 발음되더라도 ‘커누스’가 아닌 ‘크누스’로 적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실제 발음은 [kə.ˈnuːθ]가 맞지만 이는 //ˈknuːθ//라는 기저 형태에서 영어의 음절 제약에 맞게 모음을 삽입한 것이고 이 삽입 모음은 철자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한글 표기에서도 무시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철자에 나타나지 않지만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서 삽입하는 모음은 한글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원래의 글에서 내렸던 결론은 오늘날 이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과 다르지만 기록을 위해 보존해 둔다.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 Donald Knuth는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의 저자이고 TeX 조판 시스템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름의 한글 표기를 놓고 많은 혼란이 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실린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Knuth는 ‘Ka-NOOTH’라고 발음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도널드 커누스 (사진 출처)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을 번역한 류광은 ‘도널드 커누스’라는 표기를 택했다. 그는 크누스, 커누스, 카누스라는 글을 통해 표기를 ‘커누스’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크누스와 커누스가 남았습니다. 저도 크누스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도은이 아버님 글에 나온 것과 거의 같은 이유에서요. 간단히 말하면 KaNOOTH의 a는 K가 묵음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번역 막바지까지도 원고에 크누스라고 했었습니다.

번역 막바지에서 원서 출판사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하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Knuth의 발음에 대해서 Addison-Wesley에 질문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의 요지가

단순히 Knuth를(특히 K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것인가를 물어본 것이 아니라, Knuth 홈페이지에 나온 KaNOOTH의 a가 단지 K가 묵음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실제 음가가 있느냐

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AW 담당자의 답은 ‘아니다, 실제로 음가가 있다’였고, 추가로 그 a는 canal 첫 음절과 같은 음가라는 점도 알려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커누스를 택한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도은이 아버님 글은 크누스, 크누쓰, 커누스, 커누쓰라는 글이다. 그 글에서는 ‘크누스’라는 표기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Ka의 “a”는 “K”를 읽어달라는 의미이고, Ka가 한 음절이라 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분명 한 음절이 되는 것이 틀림없었다면 당연히 KA라고 자신있게 썼을 것이다) K와 N 사이에 “어떤 모음”이 있는 듯이 읽으라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K가 소리가 난다는 것이지 “a”가 /ɨ/인지 /ə/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였을 거라 짐작한다. 이 “어떤 소리”는 ‘ㅡ’로도 ‘ㅓ’로도 쓸 수 있는 것일테지만 생각건대 ‘ㅓ’는 “약화된 모음”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소리일 것이다. (지역간 개인간에 ‘ㅓ’는 조음 위치의 편차가 너무 크지 않나?) 게다가, 개인 발음에 의하면, “ㅓ->ㅜ”는 긴장도가 너무 크다. “ㅡ->ㅜ”가 적당하다!!! ‘ㅜ’ 모음 음절 앞에서 ‘ㅓ’는 과장된 음절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도 이 표기는 적절하지 않다.

이 “a”를 셰와라고 주장한 분이 있어 흥미를 끈다. 당연히 히브리어의 셰와도 “ㅡ”로 적는 것이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브레쉬트”. 이걸 “버레쉬트”로 적자는 주장은 본 적이 없다.

Ka-NOOTH의 의미

각 자모가 음소 하나에 대응되는 한글과 달리 영어는 철자와 발음의 대응이 매우 불규칙해 철자만으로는 발음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그래서 사전에서는 국제 음성 기호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국제 음성 기호를 모르니 발음을 적을 때 비교적 발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철자를 바꿔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LaTeX이 [ˈleɪ.tek], 즉 ‘레이텍’으로 발음된다고 설명하고 싶으면 LAY-teck이라고 쓰는 방식이다. 영어를 하는 일반인은 lay라는 단어를 국제 음성 기호로 [leɪ]라고 쓴다는 것은 몰라도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안다. 또 teck이라는 철자는 check [tʃek]에서 첫 자음만 [t]로 바꾼 것과 같이 발음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LAY를 대문자로 써서 첫 음절에 강세가 온다는 것을 나타낸다. 영어에서는 어느 음절에 강세가 오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상적으로 대문자를 사용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Ka-NOOTH의 a를 소문자로 적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Ka라는 음절에는 강세가 오지 않고 NOOTH에 강세가 온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Knuth가 고유명사이고 또 ‘Ka-NOOTH’가 출처에서는 문장 첫머리에 왔기 때문에 K는 대문자로 썼기 때문에 우연히 a만 소문자로 적게 된 것이다. 그러니 a만 소문자로 적은 것을 가지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a는 canal의 첫 음절과 같은 [ə]를 나타낸다고 알려왔다고 하는데, 이는 철자를 바꿔써서 발음을 나타낼 때 통상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ɑ]라는 발음을 표현하려면 보통 ah로 적고, [eɪ]는 보통 ay로 적는다. a만 쓰면 보통 [ə]를 나타낸다. 또 nooth는 tooth [tuːθ]의 첫 자음만 [n]으로 바꾼 것과 같은 발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Ka-NOOTH라는 설명은 [kə.ˈnuːθ]라는 발음을 나타낸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커누스’가 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θ] 발음을 ‘ㅅ’으로 옮기는 것에 관한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영어의 음운 제약

그럼 ‘크누스’라는 표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영어에서 /kn/이란 자음군이 음절 첫머리에 올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각 언어의 음운 체계는 어떤 음소가 있는지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각 음소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칙, 즉 음운 제약도 음운 체계의 일부이다.

영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어에서 음절 첫머리에 올 수 있는 음소는 다음과 같다.

  • /ŋ/을 제외한 모든 단일 자음
  • 파열음+/j/ 이외의 접근음: /pl/, /bl/, /kl/, /ɡl/, /pr/, /br/, /tr/, /dr/, /kr/, /ɡr/, /tw/, /dw/, /ɡw/, /kw/
  • 무성 마찰음+/j/ 이외의 접근음: /fl/, /sl/, /fr/, /θr/, /ʃr/, /sw/, /θw/, /hw/
  • 자음+/j/: /pj/, /bj/, /tj/, /dj/, /kj/, /ɡj/, /mj/, /nj/, /fj/, /vj/, /θj/, /sj/, /zj/, /hj/, /lj/
  • /s/+무성 파열음: /sp/, /st/, /sk/
  • /s/+비음: /sm/, /sn/
  • /s/+무성 마찰음: /sf/
  • /s/+무성 파열음+접근음: /spl/, /spr/, /spj/, /smj/, /str/, /stj/, /skl/, /skr/, /skw/, /skj/

정확한 음운 제약 방식은 사람과 방언마다 달라서 /j/로 끝나는 자음군은 점차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super는 영국 표준 발음에서 원래 [‘sjuːpə]로 발음되었지만 이제 [‘suːpə]로 발음되는 일이 많고, 미국 표준 발음에서는 아예 [‘suːpɚ]로 통일되었다. ‘슈퍼’라는 표준 표기는 [‘sjuːpə]를 따른 것인데 요즘의 발음 추세를 반영해 ‘수퍼’라고 적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음절 첫머리에 허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호한 자음군도 있다. /sr/의 경우는 ‘무성 마찰음+/j/ 이외의 접근음’에 해당하므로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발음이 특별히 어려운 자음군은 아니다. 하지만 외래어를 제외한 영어 단어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니 보통 /sr/라는 발음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Sri Lanka와 같은 단어의 ‘sr’는 사람에 따라 /sr/로 발음하기도 하고 shrimp 같은 단어에서 쓰는 비슷한 자음군인 /ʃr/로 대체하여 발음하기도 한다.

/kn/이란 자음군은 어떨까? /kn/은 /sr/와 달리 위에서 나열한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영어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kn/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그래서 Knuth 같은 이름에서 k와 n을 모두 발음해야 할 경우 삽입 모음 [ə]를 넣어 [kə.ˈnuːθ]와 같이 발음한다.

고대 영어에는 /kn/이란 자음군이 있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know, knee, knight와 같이 kn으로 적는 철자는 원래 고대 영어에서 실제 /kn/으로 발음했다. 하지만 영어의 음운 체계가 변화를 겪으면서 모두 /n/으로 발음하게 되었다. 독일어를 비롯한 다른 현대 게르만어파 언어에서는 /kn/이란 자음군이 보존되어 있다. 영어의 knee에 해당하는 독일어 Knie는 [kni:], 즉 ‘크니’로 발음된다.

독일어 등 /kn/ 자음군이 있는 언어를 아는 사람은 영어를 할 때도 /kn/ 자음군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Knuth라는 이름도 [knuːθ]로 발음할 것이다. 이들의 발음을 따른다면 ‘크누스’라는 표기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크누트 1세의 예

기존 외래어 표기 용례 가운데 그나마 참고할만한 사례는 크누트 1세(Cnut I)의 경우이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여기서 별표(*)는 해당 표기가 관용 표기 존중 등의 이유로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Cnut 일세. *크누트 일세 : 잉글랜드의 왕(?~1035).

크누트 1세 (사진 출처)

그런데 이 크누트 1세는 잉글랜드 뿐만이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이었으며 스웨덴인 일부도 통치했다. 덴마크어로는 Knud,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로는 Knut라고 부른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각각 ‘크누드’, ‘크누트’이다. 표기를 ‘크누트’로 정하게 된 데에는 이것이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 따르면 Cnut의 영어 발음은 [kə.ˈnjuːt]이다. /kn/ 자음군을 허용하지 않고 [ə]를 삽입한 발음이다. 사실 영어권에서 크누트는 Cnut라는 철자보다는 Canute라는 철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Canute는 [kə.ˈnjuːt] 또는 [kə.ˈnuːt]로 발음된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라 적으면 ‘커뉴트’ 또는 ‘커누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 별표를 붙여 실제 발음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데다 다른 언어의 발음의 영향을 받았을만한 사유가 충분히 있는 ‘크누트’라는 표기는 영어 이름의 /kn/ 자음군을 처리하는데 참고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ə]는 ‘으’로 적을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영어의 약화된 모음인 [ə]는 언제나 ‘어’로 적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수많은 영어 표기 용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도은이 아버님 주장은 [ə]를 ‘으’로도 적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영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어 방언에서는 약화된 모음이 중모음에 가깝냐 고모음에 가깝냐에 따라서 두 가지 있다. 이 가운데 중모음은 /ə/로 적고 고모음은 영국에서는 보통 /ɪ/로, 미국에서는 보통 /ɨ/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전자는 ‘어’, 후자는 ‘이’로 적는다. 여기서 고모음 /ɪ/~/ɨ/는 한국어의 ‘으’에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로 통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captain [ˈkæp.tɪn]의 둘째 모음은 사실 약화된 모음인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캡틴’으로 적는다.

영어의 이 두 가지 약화된 모음 가운데 어느 것이 쓰이는지는 방언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발음에서는 둘이 합쳐졌고, 미국 발음에서는 영국 발음에 비해 약화된 모음이 고모음보다는 중모음으로 발음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Knuth에 삽입되는 모음은 분명히 [ə]이다. Knuth는 절대 [kɪ.ˈnuːθ]로 발음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는 영어의 [ə]로 한정해서 얘기하겠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ə]를 ‘으’로도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몇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다. 일단 영어에는 l, m, n이 성절 자음이 될 수 있다. 모음이 따로 없이 이들이 음절의 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음이 없으니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한국어의 삽입 모음 ‘으’를 사용하여 표기한다. 예를 들어 little [ˈlɪt.l]은 ‘리틀’, rhythm [ˈrɪð.m]은 ‘리듬’, prison [ˈprɪz.n]은 ‘프리즌’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l, m, n에 [ə]를 붙여 [əl], [əm], [ən]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사전에서는 편의상 가능한 여러 발음 가운데 가장 흔한 하나만을 적는 일이 많다. 그래서 rhythm의 경우 보통 발음을 [ˈrɪð.əm]으로만 적는다. 이 발음만 보고는 ‘리듬’에서는 [ə]를 ‘으’로 적은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리듬’이라는 표기는 발음을 [ˈrɪð.m]으로 보고 정한 것으로, [ə]를 ‘으’로 적은 것이 아니다.

또 영어의 자음군의 발음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위에서 봤듯이 영어에는 현대 한국어에는 없는 다양한 자음군들이 있다. 이런 자음군들은 말 그대로 자음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어에서는 그 사이에 어떤 모음도 삽입하지 않고 발음한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그런 자음군이 없으니 ‘으’를 삽입하여 표기한다. 영어의 star는 /s/와 /t/ 사이에 모음이 없이 한 음절로 발음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스타’로 적고 두 음절로 발음한다. 현대 한국어에서 ‘ㅅ’ 다음에 ‘ㅌ’ 발음이 바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영어의 자음군 표기에 삽입하는 ‘으’는 영어의 어떤 모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국어에 비슷한 자음군이 없기 때문에 한국어로 발음할 수 있도록 넣는 것이다.

이상은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 표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언어에서는 [ə]를 ‘으’로 적는 일이 있다. 프랑스어의 [ə]는 ‘으’로 적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어에서 [ə]로 통상적으로 적는 음은 철자상으로는 e로 나타내며 사실 [œ]에 음가가 가깝다. 그런데 흔히 ‘묵음 e (e caduc)’라고 부르는 이 e는 경우에 따라 [ə]로 발음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ppeler 같은 단어는 프랑스 북쪽에서는 보통 [a.ple], 남쪽에서는 보통 [a.pə.le]라고 발음한다. [ə]를 ‘으’로 적기로 함으로써 둘 다 ‘아플레’로 표기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고대 히브리어의 ‘슈바'(도은이 아버님이 ‘셰와’라고 부른 음) 역시 ‘으’로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히브리어의 슈바는 시대에 따라 [ə] 비슷한 모음으로 발음되기도 했고 탈락하기도 했으며 개역한글판을 비롯한 주요 성경 번역에서도 ‘으’로 적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의 외래어 표기에서 [ə]를 ‘으’로 적은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국 수학자 De Morgan을 ‘드모르간’이라고 적은 예가 있지만 이 경우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따른 것이 아니라 관용 표기를 그대로 쓰는 것이 확실하다(규정을 따르자면 ‘더모건’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러니 발음을 근거로 Knuth를 ‘크누스’로 적자고 주장하려면 원 발음이 [knuːθ]라고 봐야 한다. 원 발음이 [kə.ˈnuːθ]라 하면서 이를 ‘크누스’로 적자고 할 수는 없다.

발음 대신 철자를 따라 적는다면?

영어에서 [ə]는 ‘a’, ‘o’, ‘e’ 등 철자상의 모음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Knuth에서는 [ə] 발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낼만한 철자상의 모음이 없다. 그래서 ‘크누스’로 적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분명히 [ə]가 선택적으로 발음되는 경우에는 철자상으로 모음으로 나타날 경우에는 ‘어’로,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으’로 적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Logan을 ‘로건’으로 적는 것은 a라는 철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little을 ‘리틀’로 적는 것은 t와 l 사이에 모음이 없다는 사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button, sudden, Johnson의 경우처럼 예외도 매우 많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ə]가 들어간 발음과 탈락된 발음이 둘 다 가능할 때만 해당되는 얘기라는 것이다. 영어 화자 절대 다수에게는 Knuth [kə.ˈnuːθ]의 [ə]는 생략할 수 없는 모음이니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영어는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매우 불규칙하여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철자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이 발음에 따라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모르는 일반인은 철자에 따라 적는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의 한글 표기의 오류는 철자에 가깝게 써서 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려면 발음을 무시하고 철자에 가깝게 적자고 할 수는 없다.

결론

Knuth는 철자상의 kn을 /n/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 영어 이름으로는 예외적인 이름이다. 본인이 제시하는 발음은 [kə.ˈnuːθ]이고, 대다수 영어 화자도 kn의 /k/와 /n/을 모두 발음하라고 하면 그렇게 삽입 모음 [ə]를 넣어 발음한다. 이를 따르면 ‘커누스’라는 표기가 맞다.
독일어 등 다른 언어를 접하여 /kn/ 자음군을 발음할 수 있는 일부 영어 화자들은 [knuːθ]라고 발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Knuth에서는 [ə] 모음이 철자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무시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크누스’라고 적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kn/ 자음군을 발음할 수 있는 일부 화자를 설정하는 것은 조금 억지라는 생각이다. 외국어 이름을 볼 때 그 언어의 발음을 아는 사람들은 영어에 없는 발음이더라도 흉내내곤 한다. 그러나 Knuth를 외국어 이름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만약 Knuth를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독일어 이름으로 본다면 이들 언어에는 [θ] 발음이 없으므로 ‘크누트’라고 표기하게 되어 실제 영어 발음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Knuth는 영어 이름으로 봐야 하며 대다수 영어 화자의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본인이 제시한 발음이 [kə.ˈnuːθ]라면 이에 따라 ‘커누스’로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 하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사람들이 이 표기를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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