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여러 생각에서 오늘날 쓰는 한글 자모 가운데 ‘ㅟ+ㅓ’를 한 음절로 발음하는 소리를 표기할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를 했다. ‘바뀌어’, ‘쉬어’ 등의 준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주채의 《한국어의 발음》에서는 옛 자모를 활용하여 이 소리를 ‘ㆊ’로 적을 것을 제안했다는 것도 언급했다.
그러자 Puzzlet C.님께서 2000년에 한글 학회의 학회지에도 이 문제를 다룬 글이 실렸다는 제보를 해주셨다. 조규태의 〈우리말 ‘ㅟ+ㅓ’의 준말에 대하여〉라는 글이다. ‘ㅟ+ㅓ’를 한 음절로 발음하는 소리를 한국어의 새로운 중모음(겹홀소리)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PDF 문서로 전문을 볼 수 있다(2000년 제249호를 검색해야 한다). 다음은 글의 내용을 요약한 것.
우리말에 는 ‘ㅟ+ㅓ’의 준말이 만들어 내는 겹홀소리가 있다. 이 겹홀소리는 제대로 인식이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겹홀소리를 표기할 글자도 따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겹홀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예컨대 ‘바꾸어’의 준말인 ‘바꿔'(pak’wə]와 ‘바뀌어’의 준말인 [pak’ɥə] 또는 [pak’wjə]가 변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말 겹홀소리 체계 속에 [ɥə]와 [wjə]를 새로이 설정해야 한다.
이 겹홀소리의 존재는 최근의 방언 연구를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지금 우리말에서는 ‘ㅟ’가 방언과 세대에 따라 [ü], [wi], [i] 세 가지로 발음되고 있는데, 이 다른 발음에 따라 ‘ㅟ+ㅓ’의 준말도 [ɥə]와 [wjə], 그리고 [jə], [i]로 각각 발음된다. 두 겹홀소리 [ɥə]와 세 겹홀소리 [wjə]는 지금 한글 체계 속에는 이들을 표기할 글자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ㅜㅕ’라는 글자로 표기할 수가 있다. 예컨대, ‘쉬+어’의 준말은 ‘수ㅕ’와 같이 표기할 수가 있다.
여기서는 ‘ㆊ’가 아니라 ‘ㅜㅕ’라는 글자로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이 블로그에서 ‘ㅓ’의 발음을 보통 [ʌ]로 적는데 조규태는 [ə]로 적고 있고, ‘ㅟ’의 단모음(홑홀소리) 발음을 [y] 대신 [ü]로 적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표기 방식으로 통일하겠다.
생각해보니 배주채도 ‘ㅜㅕ’라고 쓰자는 제안에 대해 언급했으나 ‘ㆊ’는 이미 같거나 비슷한 음가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적이 있는 옛 자모이니 그것을 쓰자고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2023. 8. 11. 추가 내용: 나중에 배주채가 정말로 ‘ㅜ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ɥə’를 한글로 굳이 적으려는 사람들은 흔히 ‘우ㅕ’로 적는다. 그 사람들에게 ‘ɥa’를 발음해 주고 적어보라고 하면 ‘요ㅏ’로 적는다. 그렇다면 ‘ɥa, ɥə’를 ‘오ㅑ, 유ㅓ’로 적지 못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이런 표기보다는 ‘ㆇ, ㆊ’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ㅟ+ㅓ’를 표기하는 두 가지 방법을 ‘바뀌었다’의 준말에 적용한 예. 나눔명조를 손질한 것.
‘ㆊ’ 대신 ‘ㅜㅕ’로 쓰는 것은 획 하나가 주니 쓰기도 좀더 편하고 글자의 밀도도 그렇게 높지 않아 미관상으로는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전례를 고려하여 ‘ㆊ’로 쓰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ㆊ’라고 쓰면 마치 ‘ㅠ+ㅕ’로 발음해야 할 것 같아 실제 ‘ㅟ+ㅓ’의 발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고, ‘ㅜㅕ’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ㅟ+ㅓ’의 가능한 발음 가운데 하나인 [wjʌ]를 비교적 잘 나타내는 것 같다.
‘ㅟ+ㅓ’의 발음
지난 글에서 ‘ㅟ+ㅓ’의 발음은 [ɥʌ]라고 표기했다. ‘ㅟ’는 단모음(홑홀소리) [y]로 발음되고 이게 반모음화하면서 [y]에 해당하는 반모음인 [ɥ]가 된다고 본 것이다. 반모음은 모음이 마치 자음처럼 짧게 발음되는 것으로 ‘우’ [u]에 해당하는 반모음은 [w]이고 ‘이’ [i]에 해당하는 반모음은 [j]인데 단모음 ‘위’ [y]에 해당하는 반모음은 [ɥ]인 것이다.
그런데 표준 발음법에서 ‘ㅟ’는 단모음 발음과 이중모음 발음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ㅟ’를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는 보통 [wi]로 표기하는데, /w/가 변이음 [ɥ]로 대체되어 [ɥi]로 발음된다고 보기도 한다. 또 표준 발음법에서 명시하지 않은 [i]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규태는 이에 따라 ‘ㅟ+ㅓ’는 [ɥʌ] 외에도 [wjʌ], [jʌ], 심지어 [i]로 발음될 수 있다고 한다. 내게는 생소한 얘기지만 지역에 따라 ‘바뀌었다’의 준말을 ‘바낐다’로 발음하는 곳도 많이 있다고 한다.
[jʌ]와 [i]는 각각 ‘ㅕ’와 ‘ㅣ’로 표기할 수 있으니 나타내는데 새로운 자모를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ɥʌ] 또는 [wjʌ]로 발음하여 ‘ㅕ’와 ‘ㅣ’는 물론 ‘ㅝ’와도 구별하는 이들의 발음을 나타내려면 새로운 자모가 필요하다.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뉘어’를 한 음절로 발음한다면 ‘녀’와도 구별하고 ‘눠’와도 구별할 것 같다.앞으로의 과제
‘ㅟ+ㅓ’의 준말을 한글로 나타낼 때 ‘ㆊ’를 쓸지, ‘ㅜㅕ’를 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쓸지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학술적인 용도로만 쓸 것인지 일반 언어 생활에 널리 쓸 수 있도록 표준 자모로 추가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표준어 맞춤법에서도 쓰는 것으로 한다면 입력 방식과 인코딩, 지원하는 글꼴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오늘날 한국어 화자의 대부분이 ‘ㅟ+ㅓ’의 준말을 다른 소리와 구별되게 발음하며 표준 자모로 마땅히 적을 길이 없다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