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원래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으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날짜는 페이스북 게재 당시의 날짜로 표시합니다.
미국 지명 위원회(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 BGN)는 지난 9월 18일, 미국 동부에 있는 그레이트스모키(Great Smoky)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을 165년만에 원래의 체로키어 이름인 쿠워히(ᎫᏬᎯ Kuwohi)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테네시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경계에 있고 테네시주의 최고봉이기도 한 이 산은 1859년에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 의원었던 토머스 클링먼(Thomas Clingman [ˈtɒməs ˈklɪŋmən], 1812~1897)의 이름을 따서 올해까지 클링먼스 돔(Clingmans Dome [ˈklɪŋmənz ˈdoʊ̯m])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클링먼은 1861년에 발발한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군 장군을 지내게 되는 인물인데 오랫동안 그의 이름이 산에 붙은 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미국 동남부 삼림 지역의 원주민 집단 가운데 하나인 체로키(Cherokee)인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성스러운 곳으로 여겼다. 주술사들은 산에 올라 기도와 명상을 하고 약재로 쓰는 붉은뽕나무(Morus rubra) 열매를 얻기도 했다. 쿠워히라는 체로키어 이름은 ‘붉은뽕나무의 장소’를 뜻한다. 오늘날에도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국립 공원은 해마다 사흘 반 문을 닫아 체로키계 학교에서 쿠워히를 방문하여 조상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체로키인들이 아타쿨라(Attakulla)라고 부르던 큰 산도 있었다. 유럽계 이주민들은 이를 블랙 돔(Black Dome [ˈblæk ˈdoʊ̯m])이라고 불렀다. ‘검은 돔’이라는 뜻인데 돔(dome)은 반구형 지붕을 뜻하기도 하지만 꼭대기가 반구형인 산봉우리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에서 지질학을 가르치던 일라이샤 미첼(Elisha Mitchell [ᵻˈlaɪ̯ʃə ˈmɪʧəl], 1793~1857)은 1828년에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지질 조사를 했는데 고도에 따른 기압 차이를 측정하여 블랙 돔의 높이를 6696피트(2041미터)로 계산했다(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Mitchell은 ‘미철’이 되지만 ‘미첼’로 적는 관용 표기가 표준으로 인정된다). 이게 맞다면 그때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최고봉으로 알려졌던 그랜드파더산(Grandfather Mountain)은 물론 미국 동부의 최고봉으로 알려졌던 뉴햄프셔주의 워싱턴산(Mount Washington)도 능가하는 높이였다.
미첼은 더 정확한 관측을 위해 1835년에 다시 이 산을 찾아 높이를 6672피트(2034미터)로 측정하였다. 오늘날의 측정치인 6684피트(2037미터)와 매우 가까운 값이다. 그는 블랙 돔이 미국 동부의 최고봉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838년과 1844년에도 이곳을 다시 찾았다. 1844년 7월 5일 정상 도전을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번 블랙 돔 등반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희망한다고 썼고 7월 14일 보낸 편지에서는 7월 8일의 등반이 자신이 가장 힘들게 일한 하루였다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로도 없는 한라산보다 높은 산에 혼자 기압계 장비를 가지고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1855년에 미첼의 옛 제자로서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 의원이었던 클링먼은 미첼이 가보지 못한 산의 고도를 측정했다며 블랙 돔보다 더 높다고 주장했다. 그곳은 바로 쿠워히, 유럽계 이주민들이 스모키 돔(Smoky Dome [ˈsmoʊ̯ki ˈdoʊ̯m])이라고 부르는 산이었는데 클링먼은 그 높이를 6941피트(2116미터)로 계산했다.
그 후 2년 동안 클링먼과 미첼은 어느 산이 더 높은지를 두고 지역 신문 지면을 통해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1857년 미첼은 끝내 블랙 돔에 다시 조사를 나섰다. 그런데 그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를 찾아나선 수색대는 그의 주검을 한 폭포 밑의 웅덩이에서 발견하여 그가 실족사했다고 결론지었다. 명예를 건 학술 논쟁이 결국 이 지질학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1859년에 그레이트스모키산맥을 측량한 스위스 태생의 지질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아르놀드 앙리 귀요(프랑스어: Arnold Henri Guyot [aʁnɔld ɑ̃ʁi ɡɥijo], 1807~1884)는 미첼의 주장대로 블랙 돔이 실제로 스모키 돔보다 39피트(12미터)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스모키 돔에 클링먼스 돔 즉 ‘클링먼의 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귀요는 미국에 귀화해서 아널드 헨리 기요(Arnold Henry Guyot [ˈɑːɹn(ə)ld ˈhɛnɹi ˈɡiːoʊ̯])라는 영어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따서 평정해산을 이르는 지질학 용어 guyot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요(guyot)’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ˈɡiːoʊ̯]는 ‘기오’로 적어야 하지만 Aaliyah [ɑːˈliːə]를 ‘알리야’로 적은 기존 용례도 참고하면 [iː]와 뒤따르는 모음 사이에 철자상의 y가 따로 발음되지 않더라도 한글 표기에서는 이를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 영어의 [iː]는 사실 음성학적으로는 [ɪi̯~ɪj]로 발음되어 뒷부분이 이미 사실상 [j]와 같은 음이기 때문에 발음을 표기할 때 그 뒤에 굳이 또다른 [j]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물론 철자의 영향으로 [ˈɡiːjoʊ̯], [ɑːˈliːjə] 같이 발음을 표기하기도 한다).
한편 1881~1882년에 미국 지질 조사국(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USGS)은 블랙 돔의 고도를 다시 측량하여 미첼의 계산이 맞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였고 공식 이름도 미첼산(Mount Mitchell)로 바꿨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 미시시피강 동부 지역의 최고봉을 물으면 그 답은 미첼산이다.
앞서 1838~1839년 미국 연방 정부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부에 살던 체로키인 대부분을 오늘날의 오클라호마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시기 체로키족을 포함하여 미국 동남부의 여러 부족을 강제로 이주시킨 사건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레이트스모키산맥 지역의 외진 곳에서 살던 체로키인 수백 명은 강제 이주를 모면하였고 후에 이들의 후손을 중심으로 체로키 인디언 동부 연맹(Eastern Band of Cherokee Indians)이 결성되어 현재 미국 연방 정부에서 공인하는 부족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20세기부터 미국에서는 원주민 부족과의 관계를 체계화하기 위해 미국 연방 정부와 대정부 관계를 가질 자격이 있는 공인된 부족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좀 언짢고 비극적이기까지 한 역사가 있는 클링먼스 돔이라는 이름 대신 원래의 체로키어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은 이 체로키 인디언 동부 연맹에 속한 두 여성 운동가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러비타 힐(Lavita Hill)과 메리 “미시” 크로(Mary “Missy” Crowe)의 주도로 2022년 6월에 부족 의회에서 클링먼스 돔의 이름을 원래의 체로키어 이름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7월 14일 체로키 인디언 동부 연맹 의회는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그런데 당시 보도에서는 이 체로키어 이름을 쿠와히(Kuwahi)로 쓰고 있다.
그 후 개명 운동가들은 부족 원로들과 만나서 Kuwahi보다는 Kuwohi로 적는 것이 옳다는 지적을 듣고 Kuwohi로 철자를 고쳤다. 그래서 8월에 노스캐롤라이나주 벙컴 카운티(Buncombe County [ˈbʌŋkəm ˈkaʊ̯nti]) 위원회에서 개명을 지지하는 만장일치 결의안을 발표했을 때는 Kuwohi라는 철자를 썼다(보기).
그 외에도 여러 지역 카운티 및 도시 정부에서 잇따라 개명을 지지하면서 2024년 1월에 미국 지명 위원회에 공식적으로 개명 신청이 이루어졌다. 국립 공원 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 NPS)도 이를 강력히 지지하여 미국 지명 위원회는 9월 18일 클링먼스 돔을 개명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새로운 식민 지배 세력이 멋대로 붙인 지명을 원래의 주민들이 쓰던 이름으로 되돌린다고 하면 새로 독립한 식민지를 연상할 수 있지만 이처럼 식민 세력이 원주민을 거의 대체한 미국 같은 곳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은 미국 알래스카주에 있는데 1897년에 당시 대통령 후보로 곧 미국의 제25대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ˈwɪljəm məˈkɪnli], 1843~1901)의 이름을 따서 매킨리산(Mount McKinley)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5년 알래스카 주의회는 연방 정부에게 이 산의 원래 코유콘(Koyukon)어 이름인 디날리(Denali)로 개명할 것을 요청했는데 매킨리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하원의원 랠프 레귤라(Ralph Regula [ˈɹælf ˈɹɛɡjᵿlə], 1924~2017)의 반대로 계속 무산되다가 마침내 40년만인 2015년에 미국 내무부에서 공식적으로 개명을 승인했다.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인물의 이름을 딴 지명을 바꾸려는 노력은 최근에 호응을 얻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와이오밍주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 있는 돈산(Mount Doane)이 퍼스트피플스산(First Peoples Mountain)으로 개명되었다. 1870년에 미국군이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대부분인 200명 가까운 피간(Piegan) 원주민을 죽인 머라이어스 학살(Marias Massacre)에 가담했던 탐험가 구스타버스 돈(Gustavus Doane [ɡʊ⟮ə⟯ˈstɑːvəs ˈdoʊ̯n]의 이름을 붙였던 것을 ‘첫 민족들’ 즉 원주민을 뜻하는 First Peoples [ˈfɜːɹst ˈpiːp(ə)lz] ‘퍼스트 피플스’라는 표현으로 교체한 것이다. 클링먼스 돔을 개명하려는 노력도 여기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어 같은 2022년 6월에 최초 법안이 부족 회의에서 발의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된 트럼프는 앞서 노스캐롤라이나주 유세 중에 남북 전쟁 때 남부군 장군 브랙스턴 브래그(Braxton Bragg [ˈbɹækstən ˈbɹæɡ], 1817~1876)의 이름을 따서 포트 브래그(Fort Bragg [ˈfɔːɹt ˈbɹæɡ])로 불렸다가 2023년에 포트 리버티(Fort Liberty [ˈfɔːɹt ˈlɪbəɹti])로 개명된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미군 기지를 다시 포트 브래그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했다. 인디언 사살과 추방에 앞장선 ‘눈물의 길’의 장본인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ˈændɹuː ˈʤæksən], 1767~1845) 제7대 대통령을 영웅시하여 그의 초상화를 백악관에 걸기도 했던 트럼프는 이미 첫 임기 말인 2020년에 노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남부군 인물의 이름을 딴 여러 시설의 이름을 바꾸려는 미군의 노력을 제지한 이력이 있다.
그러니 앞으로 미국에서 각종 이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더 힘들어질 수 있겠다.
국립 공원 관리청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는 개명된 이름을 Kuwohi로 적고 체로키 문자로는 ᎫᏬᎯ라고 쓴다(체로키어는 독자적인 음절 문자를 쓴다).
영어 발음은 koo-WHOA-hee 즉 [kuˈwoʊ̯hi]로 설명한다. 동영상에서 개명 운동을 주도한 이 가운데 한 명인 러비타 힐이 이를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애초에 올렸던 글에서 체로키어 관한 설명에 큰 오류가 있어서 다음 네 단락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반면 현재 영어판 위키백과에서 쓰는 체로키 문자 표기는 ᎫᏩᎯ이다. 미 의회 도서관의 체로키어 로마자 표기 방식을 따르면 ᎫᏩᎯ는 Guwahi, ᎫᏬᎯ는 Guwohi에 해당하니 영어판 위키백과에서 쓴 체로키어 철자는 2022년 최초 보도에 나오는 로마자 철자 Kuwahi에 더 가깝다. 체로키어는 유무성음의 음소적 구별이 없고 대신 기식 유무에 따라 무기음과 유기음을 구별한다. 학자에 따라 무기음과 유기음 음소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k/, /kʰ/와 같이 적기도 하고 유기음은 무기음에 /h/가 따르는 조합으로 보아 /k/, /kh/와 같이 적기도 한다(편의상 여기서는 /kʰ/로 통일한다).
유무성음의 음소적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치 무성음인 것처럼 /k/로 적는 것은 단지 무성음 기호를 기본형으로 취급하는 관습에 따른 것이고 실제로는 환경에 따라 유성음 [ɡ]나 무성음 [k]로 발음될 수 있다. 역시 유무성음의 음소적 구별이 없는 한국어에서 ‘ㄱ’이 환경에 따라 유성음 [ɡ]나 무성음 [k]로 발음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기음 /kʰ/와 구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체로키 문자는 무기음과 유기음의 구별을 일부 음절에서만 나타낸다. 무기음으로 시작되는 /ka/는 Ꭶ ga로 적고 유기음으로 시작되는 /kʰa/는 Ꭷ ka로 적어서 구별할 수 있지만 쿠워히의 체로키 문자 표기에 나오는 첫 자인 Ꭻ는 무기음으로 시작되는 /ku/와 유기음으로 시작되는 /kʰu/를 둘 다 나타낸다. 아마 음절 문자라서 모든 구별을 적으면 기호 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같은 기호로 무기음과 유기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 도서관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Ꭻ의 표기를 마치 무기음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gu로 통일하지만 실제 어떤 음으로 시작하는지는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쓰이는 체로키어의 동부 방언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레이븐 록 체로키어 사전(Raven Rock Cherokee Dictionary)》에서는 ‘붉은뽕나무’를 뜻하는 단어 ᎫᏩ guwa의 발음을 [kuwa] ‘쿠와’로 적고 있어 이를테면 ‘도토리’를 뜻하는 ᎫᎴ gule의 발음 [gule] ‘굴레’와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 쓰는 발음 기호는 국제 음성 기호가 아니다. 이 사전에서는 Ꭶ ga /ka/를 [ga]로 적고 Ꭷ ka /kʰa/는 [ka]로 적으니 [kuwa]는 유기음 /kʰ/를 쓴다는 표시이다. 쿠워히의 이름 들어가는 요소이니 미 의회 도서관 로마자 표기로 ᎫᏩᎯ는 Guwahi, ᎫᏬᎯ는 Guwohi로 적는다고 해도 실제 발음은 유기음 /kʰ/를 쓴 Kuwahi ‘쿠와히’, Kuwohi ‘쿠워히’일 것이다.
한편 Ꮹ wa와 Ꮼ wo의 혼동이 있는 것은 미국 영어에서 Washington의 발음으로 LOT 모음을 쓴 [ˈwɑːʃɪŋtən] ‘와싱턴’과 CLOTH 모음을 쓴 [ˈwɔːʃɪŋtən] ‘워싱턴’을 혼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비슷한 발음이 쓰이는데 철자는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 언어일수록 철자가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영어처럼 비교적 표준화가 되어있는 언어라도 산 이름 같은 고유 명사는 철자가 통일되지 않은 예가 수두룩하다. 얼핏 보면 사전에 나오는 kuwa에 가까운 형태인 Kuwahi가 올바른 형태일 것 같지만 체로키어의 조어법이나 형태론, 방언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속단할 수 없다. 한국의 산 이름만 해도 漢拏山과 智異山은 한자만 보면 ‘한나산’, ‘지이산’이 올바른 표기일것 같은데 실제 쓰이는 발음에 따라서 ‘한라산’, ‘지리산’으로 적는 것을 참고할 수 있겠다.
한편 미첼산의 체로키어 이름인 Attakulla는 체로키 문자 표기가 무엇인지 찾기 힘들고 애초에 통일된 철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된 이름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1761년부터 1775년경까지 체로키족 추장을 지냈던 Attakullakulla라는 이가 있는데 체로키어 이름은 ᎠᏔᎫᎧᎷ Atagukalu라고 하니 Attakulla는 원어와 상당히 차이가 나는 로마자 표기일 수도 있겠다. 로마자 표기의 u로 영어의 STRUT 모음 /ʌ/에 가까운 중모음을 흉내낸 것이라면 ‘아타컬라’ 비슷한 발음을 의도했을 수도 있지만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아타쿨라’라고 적었다. 참고로 체로키어에는 미 의회 도서관 로마자 표기법에서 v로 적는 비음화된 중모음 /ə̃/가 있는데 보통 비음화는 그리 강하지 않고 그냥 ‘어’ 비슷한 음으로 들린다.
한글로 표기한 외국어 고유 명사의 띄어쓰기는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인데 외래어 표기법에 관심이 있는 경우 흔히 지명은 원어에서 여러 어절로 띄어 쓰더라도 한글 표기에서는 모두 붙여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예: North Carolina ‘노스캐롤라이나’).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수적으로 지명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 이름, 마을 이름 대부분은 이처럼 붙여 쓰는 것이 맞지만 고유 요소와 속성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 이름의 경우는 선택적으로 띄어 쓸 수 있다.
외국어를 표기한 것이 아니더라도 ‘대구분지’, ‘미아리고개’, ‘정방폭포’ 같은 자연 지명에서는 지형의 유형을 나타내는 속성 요소인 ‘분지’, ‘고개’, ‘폭포’를 앞의 고유 요소와 띄어서 ‘대구 분지’, ‘미아리 고개’, ‘정방 폭포’로 쓸 수 있다. 다만 ‘산’, ‘강’, ‘해’, ‘산맥’, ‘고원’, ‘반도’ 등 언제나 앞의 고유 요소와 붙여 쓰는 요소도 많다.
예전에는 외국어를 표기한 고유 요소가 고유어나 한자어 속성 요소와 결합했을 때 ‘발트 해’, ‘알프스 산맥’, ‘나일 강’, ‘발칸 반도’ 등으로 띄어 쓰도록 했지만 2017년 외래어 표기법 일부 개정으로 ‘발트해’, ‘알프스산맥’, ‘나일강’, ‘발칸반도’ 등으로 붙여 쓰도록 했다. ‘동해’, ‘태백산맥’, ‘두만강’, ‘한반도’ 등과 동일한 띄어쓰기 규칙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예전에는 ‘타림 분지’, ‘카라코람 고개’, ‘빅토리아 폭포’ 등으로 꼭 띄어 써야 했지만 이제는 선택적으로 ‘타림분지’, ‘카라코람고개’, ‘빅토리아폭포’로 붙여 쓸 수도 있다. 여기서 다루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혼동하기 쉬운 내용이기 때문에 이처럼 간략히 설명한다.
고유 요소와 속성 요소가 모두 외국어를 표기한 경우에도 띄어 쓰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 서남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 Grand Canyon [ˈɡɹænd ˈkænjən]은 ‘그랜드캐니언’으로 붙여 쓸 수도 있지만 ‘그랜드 캐니언’으로 띄어 쓸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그랜드^캐니언’으로 써서 띄어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canyon은 ‘협곡’을 뜻하는 일반 명사이고 grand는 ‘큰’을 뜻하는 형용사인데 Grand Canyon에서는 Canyon이 지형의 유형을 나타내는 속성 요소, Grand는 이를 수식하여 해당 지형을 특정하는 이름으로 만드는 고유 요소로 취급할 수 있다.
표기 용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Black Dome, Clingman’s Dome, Smoky Dome에서도 Dome을 지형의 유형, 즉 꼭대기가 반구형인 산봉우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속성 요소로 보아 ‘블랙 돔’, ‘클링맨스 돔’, ‘스모키 돔’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 속성 요소는 자연 지형의 유형뿐만이 아니라 행정 단위인 county ‘카운티’ 같은 경우도 포함한다. 그래서 Buncombe County는 ‘벙컴 카운티’로 띄어 쓸 수 있다. Fort Bragg, Fort Liberty도 ‘요새’를 뜻하는 속성 요소 fort가 앞에 온다는 것이 다르지만 역시 띄어서 ‘포트 브래그’, ‘포트 리버티’로 쓸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가운데 참고할 수 있는 예로 ‘뉴펀들랜드^뱅크(Newfoundland Bank)’, ‘더스트^볼(Dust Bowl)’, ‘배핀^랜드(Baffin Land)’, ‘벙커^힐(Bunker Hill)’, ‘센트럴^파크(Central Park)’,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타워^브리지(Tower Bridge)’,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 ‘파이크스^피크(Pikes Peak)’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데스밸리(Death Valley)’, ‘블랙-컨트리(Black Country)’는 붙여 쓰는 것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표제어가 완전히 일관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원어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져 전체를 고유 요소로 취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주의할 점은 고유 요소와 속성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보이는 이름이 원래의 지칭 대상과는 다른 것의 이름이 되는 경우이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언덕 이름인 Bunker Hill은 ‘벙커 힐’로 띄어 쓸 수 있지만 그 이름을 따서 Bunker Hill로 불리는 미국의 수많은 소도시나 마을은 ‘벙커힐’로 꼭 붙여 써야 한다. 군사 기지인 Fort Liberty는 ‘포트 리버티’로 띄어 쓸 수 있지만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도시 Fort Worth [ˈfɔːɹt-ˈwɜːɹθ]는 ‘포트워스’로 꼭 붙여 써야 한다. 더이상 언덕 이름이나 군사 기지 이름이 아닌 도시 이름으로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Lake Placid [ˈleɪ̯k-ˈplæsᵻd], 아칸소주에 있는 Little Rock [ˈlɪt(ə)l-ˈɹɒk], 미시간주에 있는 Grand Rapids [ˈɡɹænd-ˈɹæpᵻdz]는 호수(lake)나 바위(rock), 급류(rapids) 이름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 ‘레이크플래시드’, ‘리틀록’, ‘그랜드래피즈’처럼 붙여 쓴다. 행여나 덧붙이자면 미국 유타주의 도시 Salt Lake City [ˈsɔːlt-ˈleɪ̯k-ˈsɪti]에서는 ‘도시’를 뜻하는 City까지 속성 요소가 아니라 도시 이름의 일부로 취급되므로 ‘솔트레이크시티’로 항상 붙여 써야 한다. 반면 New York City, New York State에서는 City, State가 고유 요소의 일부가 아니라 속성을 구별하기 위해 덛붙이는 요소이므로 ‘뉴욕시’, ‘뉴욕주’로 번역하지 않고 속성 요소까지 원어대로 표기하는 경우 ‘뉴욕 시티’, ‘뉴욕 스테이트’와 같이 띄어 쓸 수 있다.
한편 솔트레이크시티의 이름에 나오는 대염호(Great Salt Lake)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레이트솔트-호(Great Salt湖)’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실려 있다. Great Salt는 합쳐서 고유 요소로 보고 ‘그레이트솔트’로 항상 붙여 쓴다. 마찬가지로 First Peoples는 단순히 원주민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퍼스트 피플스’로 띄어 쓸 수 있지만 산 이름 First Peoples Mountain에서는 합쳐서 고유 요소를 이루므로 ‘퍼스트피플스산’으로 항상 붙여 쓴다.
또 원 이름에 속성 요소가 들어가더라도 이를 고유명의 일부로 취급하여 한국어 속성 요소를 덧붙이는 경우에는 원 이름의 속성 요소를 붙여 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몽블랑-산(Mont Blanc山)’에서 mont은 ‘산’을 뜻하는 속성 요소이지만 한국어 속성 요소 ‘산’를 덧붙이므로 ‘몽블랑’ 전체를 붙여 쓰는 고유 요소로 처리한다.
물론 띄어쓰기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가 애매한 경우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영국 런던에 있는 Notting Hill [ˈnɒtɪŋ ˈhɪl]은 원래 언덕 이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언덕에 해당하는 지역 이름처럼 쓰이는데 정식 행정 구역이 아니어서 경계가 뚜렷하지도 않으니 앞뒤 맥락 없이는 언덕을 이르는 것인지 지역을 이르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처럼 모호한 경우에는 ‘노팅힐’과 같이 그냥 모두 붙여 쓰는 것이 편하다. 언덕을 이르는 것이라서 ‘노팅 힐’로 띄어 쓰는 것이 가능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붙여 쓰는 것이 무방하기 때문이다.
대신 영어 and와 같은 접속사를 한글 표기에서 생략하는 경우 그 자리는 항상 띄어 써야 한다. 예를 들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세인트키츠 네비스(Saint Kitts and Nevis)’가 ‘^’ 기호 없이 표제어로 실려 있어 ‘*세인트키츠네비스’와 같이 붙여 쓸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뉴욕(New York), 홍콩(Hong Kong) 같은 익숙한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면서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Palo Alto [ˈpæloʊ̯-ˈæltoʊ̯]를 ‘팔로 알토’로 적고 영국 런던의 한인 거주 지역 New Malden [njuː-ˈmɔː⟮ɒˑ⟯ldən]을 ‘뉴 몰든’으로 적는 등 좀 더 낯선 지명을 한글로 표기할 때는 원어의 띄어쓰기를 그대로 따르려는 습관이 있다. 이들은 ‘팰로앨토’, ‘뉴몰든’과 같이 항상 붙여 쓰는 것이 표준이다(Palo Alto를 에스파냐어로 취급한다면 ‘팔로알토’이다).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영어의 표기 세칙 가운데 원어에서 띄어 쓴 말은 띄어 쓴 대로 한글 표기를 하되 붙여 쓸 수도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팰로 앨토’, ‘뉴 몰든’ 같이 띄어 쓴 표기도 허용된다. 그러나 명시적인 규정이 없이도 《표준국어대사전》의 여러 표제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도시 이름 등에서는 엄격히 붙여 쓰는 것으로 사실상 통일되었다.
별 생각 없이 원어의 띄어쓰기를 따라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본 블로그에서는 그동안 지명 가운데 붙여 쓸 수 있는 것은 웬만하면 다 붙여 적어왔다. 하지만 그러면 반대로 지명은 무조건 항상 붙여 써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는 ‘클링먼스 돔’처럼 띄어 쓰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웬만하면 띄어 쓸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