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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8강에서 한국을 탈락시키고 은메달을 딴 개최국 프랑스 여자 에페팀에 속한 마리플로랑스 칸다사미(Marie-Florence Candassamy [maʁi flɔʁɑ̃ːs kandasami])의 특이해 보이는 성씨는 타밀어 கந்தசாமி Kantacāmi [kand̪asaːmi] ‘칸다사미’에서 유래했다. 한편 전 프랑스 축구 선수 루이 사아(Louis Saha [lwi saa])의 성씨는 벵골어 সাহা Sāhā [saɦa~ʃaɦa] ‘사하~샤하’에서 나왔다.
드라비다 어족에 속하는 타밀어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와 연방 직할지인 푸두체리(퐁디셰리)에서 공용어 지위를 누리며 스리랑카와 싱가포르에서도 국가 공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유럽 어족 인도 어파에 속하는 벵골어는 방글라데시의 공용어이며 인도의 서벵골주를 비롯한 인접 지역에서도 공용어 지위를 누린다.
칸다사미 본인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마르티니크 출신, 어머니는 과들루프 출신이다.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는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의 해외 주이다. 같이 은메달을 딴 칸다사미의 팀 동료 가운데 알렉상드라 루이마리(Alexandra Louis-Marie [alɛksɑ̃dʁa lwi maʁi])는 마르티니크에서, 코랄린 비탈리스(Coraline Vitalis [kɔʁalin vitalis])는 과들루프에서 태어났다. 팀 가운데 오리안 말로브르통(Auriane Mallo-Breton [ɔ⟮o⟯ʁjan malo bʁətɔ̃])만 카리브해 혈통이 없다.
프랑스의 카리브해 영토 주민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들어왔던 이들의 후손이다. 칸다사미와 루이마리, 비탈리스 모두 아프리카계 흑인이다. 1848년 프랑스 제국에서 노예제가 최종적으로 폐지된 후에 모두 성씨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프랑스어식 성씨를 쓴다.
그래서인지 루이마리(Louis-Marie)를 비롯하여 장바티스트(Jean-Baptiste [ʒɑ̃ batist]), 마리루이즈(Marie-Louise [maʁi lwiːz])처럼 이름이 성씨가 된 예도 흔하게 보인다. 전 축구 선수로 현재 프랑스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 [tjɛʁi ɑ̃ʁi])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그는 프랑스 본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과들루프 출신, 어머니는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그런데 칸다사미의 성씨에서 알 수 있듯이 카리브해에는 멀리 인도에서 넘어온 이들의 후손도 많다.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 주민의 약 10퍼센트 정도가 인도계로 추산된다. 노예제가 폐지되자 1851년 농장주들이 인력을 대신하려고 프랑스가 식민지로 경영하던 인도의 마드라스(현 첸나이), 퐁디셰리(현 푸두체리), 찬데르나고르(현 찬단나가르) 등지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타밀어를 썼다. 인도 남부에 있는 마드라스와 퐁디셰리는 타밀어가 쓰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칸다사미도 이때 건너온 타밀어식 성씨이다.
오늘날 인도 서벵골주에 있는 찬데르나고르는 벵골어 사용 지역이기 때문에 벵골어식 성씨도 전해졌다. 전 축구 선수 루이 사아는 본토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과들루프 출신이다. 대신 프랑스어식으로는 벵골어의 h가 묵음이 되어 [saa] ‘사아’로 발음된다. 프랑스어 화자 가운데 다른 언어의 h를 [h]로 발음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타히티어가 쓰이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처럼 현지에서 프랑스어와 함께 널리 쓰이는 언어에서 h 음이 있을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르티니크나 과들루프에서는 더이상 벵골어가 쓰이지 않으니 원 발음에 대한 인식은 희박할 것이다.
Candassamy도 많은 프랑스어 화자들은 첫 모음을 비음화시켜서 [kɑ̃dasami] ‘캉다사미’로 발음하기 쉬운데 칸다사미 본인은 그래도 원어와 비슷하게 [kandasami] ‘칸다사미’로 발음한다(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