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프랑스어 대신 밤바라어 등 13개 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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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의 내륙국 말리에서 프랑스어가 공용어 지위를 잃었다. 7월 22일부로 도입된 새 헌법에서는 밤바라어를 비롯한 13개 국어(langues nationales, national languages)가 공용어로 제정되었고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곧 공용어 역할을 했던 프랑스어는 실무 언어(langue de travail, working language)로 격하되었다.

말리는 2020년과 2021년 연이어 군사 쿠데타를 겪은 후 군부가 통치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 헌법에서는 쿠데타를 시효로 소멸되지 않는 범죄(crime imprescriptible)로 규정하면서도 새 헌법 제정 이전의 행위 가운데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은 어떤 이유로도 기소될 수 없게 하고 있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말리에서는 약 80여 개의 언어가 쓰이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 13개는 전부터 국어 지위를 인정받았다. 언어 이름은 통일되어있지 않아서 자료마다 다르게 나와있는데 1982년의 법령에는 이들이 프랑스어로 le bamanankan (bambara), le bomu (bobo), le bozo, le dɔgɔsɔ (dogon), le fulfulde (peul), le hasanya (maure), le mamara (miniyanka), le maninkakan (malinké), le soninké (sarakolé), le soŋoy (sonrhaï), le syenara (sénoufo), le tǎmǎšəɣt (tamasheq), le xaasongaxanŋo (khassonké) 등으로 나온다(참고한 문서에는 특수 문자가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dɔgɔsɔ, soŋoy, tǎmǎšəɣt, xaasongaxanŋo 등은 다른 자료를 통해 표기를 복원했다).

말리 중부와 남부에서 주로 쓰이는 밤바라어(bambara)는 말리 인구의 46%가 모어로 쓰고 52%가 구사할 수 있어 말리의 실질적인 교통어 역할은 한다. 올해까지 공용어이던 프랑스어보다도 구사자가 두 배 가량 많다. 밤바라어는 만데 어족(니제르·콩고 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면 만데 어파)의 만딩 어군에 속하는 언어이다. 말리 서남부에서 쓰이는 말링케어(malinké)와 서부에서 쓰이는 카송케어(khassonké)도 만딩 어군에 속한다. 말링케어는 마닝카어(maninka)라고도 한다. 만딩 어군에 속하는 여러 언어는 1949년에 도입된 응코(N’Ko, ߒߞߏ ŋko) 문자로 적기도 한다.

황금왕 만사 무사로 유명한 말리 제국의 통치자들이 쓴 언어도 만딩 어군에 속하며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아마도 마닝카어로 분류될 것이다. 말리의 공용어에 포함된 소닝케어(soninké)와 보조어(bozo)는 만딩 어군에는 속하지 않지만 만데 어족/어파에 속한다. 소닝케어를 쓴 소닝케족은 오늘날의 모리타니와 말리에 걸친 지역에 고대에서 중세까지 있던 가나 제국을 세우기도 했다(오늘날의 가나와는 영토가 겹치지 않는다).

만데(Mandé), 만덴(Manden), 만딩(Manding) 등은 원래 말리 제국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같은 말의 다른 형태이고 여기서 그곳 사람을 이르는 말링케, 마닝카, 만딩카 등 여러 이름이 나왔는데 언어, 방언에 따라 여러 비슷한 형태가 쓰여서 헷갈리기 쉽다. 한편 말리라는 국호는 만데/만덴/만딩의 풀라어 형태이다.

말리 인구의 9% 가량이 모어로 쓰며 밤바라어 다음으로 말리에서 모어 화자가 많은 풀라어는 전통적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인 풀라인의 언어로서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여러 언어와 접하다 보니 이름도 다양하다. 프랑스어로는 peul [pøːl] ‘푈’이라고 부르는데 세네갈을 중심으로 쓰이는 월로프어 pël ‘펄’에서 나온 이름이다(월로프어 ë는 [ə]를 나타낸다). 영어에서는 만딩 어군에서 나온 이름인 Fula ‘풀라’ 또는 하우사어에서 나온 이름인 Fulani ‘풀라니’가 주로 쓰인다. 이들 스스로는 서부 방언에서는 𞤆𞤵𞤤𞤢𞥄𞤪 Pulaar/𞤆𞤵𞤤𞤢𞤪 Pular ‘풀라르’라고 부르고 중부와 동부 방언에서는 𞤊𞤵𞤤𞤬𞤵𞤤𞤣𞤫 Fulfulde ‘풀풀데’라고 부른다. 법령에서 le fulfulde로 부른 것으로 봐서 말리에서 쓰이는 이름은 중부 방언식 ‘풀풀데’로 보인다. 풀라어는 니제르·콩고 어족의 세네감비아 어군에 속한다.
최근에는 풀라어를 20세기 후반에 도입된 아들람(𞤀𞤣𞤤𞤢𞤥 Adlam) 문자로 적는 일이 많다. 말리에서 공식 문자로 지정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일단 새 헌법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 다음으로 모어 화자가 많은 언어는 말리 인구 7% 가량이 모어로 쓰는 도공어(dogon)이다. 말리 동부의 도공 지방에 사는 도공인의 언어로 이들은 독특한 종교와 신화로 유명하며 밤하늘의 별 시리우스가 쌍성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그리올(Marcel Griaule [maʁsɛl ɡʁi(j)oːl], 1898~1956)의 보고 때문에 여러 유사과학적인 주장의 소재가 되고는 한다(하지만 이후 이들을 찾은 연구자들은 그리올의 주장을 확인하지 못했다).

도공어는 사실 단일 언어는 아니고 도공 어군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 가운데 방디아가라(Bandiagara) 절벽 지역에서 쓰이는 절벽 도공어의 한 방언인 도고소어(dɔgɔsɔ)가 표준 도공어로 취급되어 다른 도공어를 쓰는 이들도 널리 알아듣는다.

영어에서 쓰는 Dogon이라는 이름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도공어의 dogõ에서 나왔다고 하며 학술적인 철자로는 dɔgɔ̃으로 쓴 것도 검색된다. 여기서 õ/ɔ̃은 비음화된 모음을 나타낸다. 프랑스어로도 Dogon은 [dɔɡɔ̃] ‘도공’으로 발음된다. 보통 ‘도곤’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어를 고려하면 한글 표기는 ‘도공’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5~16세기 송가이 제국의 주요 언어였던 송가이어도 단일 언어가 아니라 송가이 어족(Songhay/Songhai languages)을 이루는 언어의 총칭이다(나일·사하라 어족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면 송가이 어파). 동부 가오(Gao)에서 쓰이는 코이라보로 센니(koyraboro senni), 중부 통북투(Tombouctou, 프랑스어식 이름)/팀북투(Timbuktu, 영어식 이름)에서 쓰이는 코이라 치니(koyra chiini) 등이 대표적이다.

송가이라는 이름은 원래 송가이 제국의 지배 계층을 이르는 말이었으며 오늘날 주류 송가이어에서 soŋoy ‘송오이’, soŋay ‘송아이’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랍어로 옮길 때 [ŋ]을 ngh로 흉내낸 것일 수도 있고(아랍어의 غ gh는 마찰음 [ɣ~ʁ]로 발음된다) 독일 탐험가 하인리히 바르트(Heinrich Barth [ˈhaɪ̯nʁɪç ˈbaːɐ̯t, -ˈbaʁt], 1821~1865)가 Soṅɣai로 적은 것으로 봐서 당시 원어 형태를 따른 표기일 수도 있다. 마찰음 [ɣ~ʁ]는 한글 표기에서 보통 ‘ㄱ’으로 옮기니 ‘송가이’로 적을 수 있으며 종종 보는 ‘송하이’는 n-gh를 ng-h로 잘못 분석한 표기이다. 프랑스어에서는 근래에 아랍어의 gh [ɣ~ʁ]를 현대 프랑스어의 r [ʁ] 발음에 가까운 음으로 인식하여 rh로 적기 때문에 법령에 나온대로 sonrhaï [sɔ̃ʁaj] ‘송라이’라는 철자도 쓰지만 한글 표기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 아직은 프랑스어에서 songhaï [sɔ̃ɡaj] ‘송가이’라는 이름이 더 흔한 것 같다.

말리 남부에서 미냥카인(Minyanka)이 쓰는 마마라어(mamara)는 니제르·콩고 어족 세누포 어군에 속한다. 스스로는 언어 이름을 mamaara ‘마마라’라고 하며 미냥카인은 Miyɛnga ‘미옝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온 밤바라어 이름은 miɲanka ‘미냥카’이다. 셰나라어(syenara, shenara)도 세누포 어군에 속하는데 법령에서는 아예 셰나라어의 다른 이름을 세누포어(sénoufo)라고 적었다.

세누포 어군은 니제르·콩고 어족 구르 어군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역시 말리 남부에서 쓰이는 보무어(bomu)는 구르 어군에 속한다. 법령에서는 보보어(bobo)라는 이름도 썼는데 만데 어족/어파에 속하는 보보어(bobo)도 따로 있으니 헷갈리기 쉽다. 밤바라어로 만데족의 일파인 보보인 외에 보무어를 쓰는 브와(Bwa)인도 보보인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이런 혼선이 일어났다.

법령에서 tǎmǎšəɣt 또는 tamasheq라고 부르는 타마셰크어는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베르베르 어파에 투아레그 어군에 속한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서 사는 베르베르족의 일파인 투아레그족 가운데 말리에 사는 이들의 언어이다. 투아레그어는 전통적으로 ⵜⴼⵏⵗ Tifinaɣ ‘티피나그’라고 불리는 문자를 쓴다.

법령에서 hasanya 또는 maure라고 부르는 언어는 모리타니와 말리, 서사하라 등지에서 주로 쓰이는 구어체 아랍어인 하사니야 아랍어이다. 문어체 아랍어로는 حسانية Ḥassānīyah ‘하사니야’라고 불린다. maure [mɔːʁ] ‘모르’는 영어의 Moor [ˈmʊə̯ɹ] ‘무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이름으로 ‘무어인’을 뜻한다.

이슬람교의 전파 이후 말리인들은 전통적으로 종교 교육을 통해 아랍어를 읽고 쓰는 것을 배웠지만 하사니야 아랍어는 이처럼 글로 배우는 문어체 아랍어가 아니라 말리 동북부에 정착한 아랍계 부족들이 일상어로 쓰는 구어체 아랍어이다. 아랍어권에 속하는 여러 나라들은 다양한 구어체 아랍어를 쓰지만 공용어로 삼은 것은 표준 아랍어 즉 현대 문어체 아랍어인데 문어체 아랍어 대신 구어체 아랍어를 공용어로 삼은 나라는 말리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말리는 이처럼 나라 전체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없고 그나마 교통어로 쓰이는 밤바라어도 수도 바마코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언어 정책을 수립하기가 까다로운 나라이다. 그동안 프랑스어만 공용어로 썼기 때문에 이번에 공용어로 격상된 13개 언어는 말리 독립 이후 글로 적는 일이 별로 없었다. 투아레그어(타마셰크어 포함)는 수천 년 전부터 비문이 남아있지만 짧은 낙서가 대부분이고 전통 투아레그 문화는 기록보다는 구전에 중점을 두었다.

또 예전에는 아자미(عجمي‎ ʿajamī, 아랍 문자로 아프리카 토착 언어를 적은 것)라고 해서 아랍 문자로 풀라어, 송가이어, 타마셰크어, 밤바라어, 소닝케어 등을 기록하였으며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통북투의 수많은 필사본이 유명하지만(이들 대부분은 아랍어로 되어 있지만 토착 언어로 된 것도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아랍어와 아랍 문자를 가르치는 전통 교육이 중단되면서 아랍 문자로 토착 언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이들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어가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프랑스어만 글로 쓰는 언어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아랍 문자로 적었던 토착 언어들은 공식적으로 로마자로 적게 되었지만 교재나 사전, 일부 종교 서적 외의 출판물은 찾기 힘들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프랑스어로만 진행하거나 저학년 때는 현지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점차 프랑스어로 수업을 대체한다. 아랍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전통 학교도 일부 남아있는데 이 경우 보통 프랑스어 수업도 따로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에 그치며 그나마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낮은 취학률 때문에 말리의 성인 문해율은 30% 정도에 그친다.

그러니 프랑스어만 공용어로 삼았던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토착 언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을 공용어로 삼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공용어 지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자세한 설명을 찾기 힘들다. 아무래도 국가 행정은 여전히 실무 언어인 프랑스어로 진행될 테니(새 헌법도 물론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공용어 교체는 그저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 요즘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한몫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공용어 지정을 통해 정말로 이들을 글로 쓰는 일이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통북투의 필사본에서 볼 수 있듯이 말리는 예전에 문자 문화가 꽃피었던 곳인데 다시 토착 언어로 된 글이 많이 나오고 20세기에 도입된 토착 문자인 응코 문자, 아들람 문자 등도 사용자가 늘어나게 된다면 반길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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