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비엔날레가 큐레이터 데프네 아야스를 거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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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열릴 국제 미술전인 제18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영국 출신의 이보나 블래즈윅(Iwona Blazwick)이 지명되자 이에 대한 항의로 역시 2024년에 열릴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튀르키예관 감독 에스라 사르게디크 왹템(Esra Sarıgedik Öktem)이 사임했다.

논란이 된 것은 저명한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인 블래즈윅의 적임성이 아니라 비엔날레 자문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추천했던 튀르키예 출신 큐레이터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가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주최하는 이스탄불 문화 예술 재단(İstanbul Kültür Sanat Vakfı, İKSV)에 의해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İKSV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튀르키예관도 관장한다.

2021년 광주 비엔날레 공동 예술 감독이기도 했던 아야스는 탄탄한 경력으로 블래즈윅을 포함한 비엔날레 자문 위원회 전원의 추천을 받았다. 블래즈윅은 예술감독으로 지명되자 자문 위원회에서 물러났으며 일본의 하세가와 유코(長谷川祐子[Hasegawa Yuko])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이 결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임했다. 예술 감독을 정하기 위한 자문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예술 감독으로 지명된 것도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지적이 있다.

İKSV는 정치적인 이유로 아야스를 거부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2015년 아야스가 감독을 맡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튀르키예관은 튀르키예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프랑스 예술가 사르키스(Սարգիս Sarkis)를 대표 작가로 선정했는데 그의 전시회 카탈로그에는 2007년에 이스탄불에서 암살된 아르메니아계 튀르키예 언론인 흐란트 딩크(Hrant Dink, Հրանդ Տինք Hrant Dinkʿ)의 과부 라켈 딩크(Rakel Dink)의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글은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Armenian genocide) 즉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포함했는데 튀르키예 정부는 이것을 문제삼았다. 튀르키예 정부는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부인하며 이에 대한 언급조차 검열해왔다.

그래서 카탈로그는 회수되었고 아야스와 사르키스는 남은 카탈로그를 관에 넣었으며 사르키스가 이를 색유리로 뒤덮은 조각품으로 만들었다.

5월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튀르키예 대통령이 또다시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통치하에서 계속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각종 제약에 대한 튀르키예 예술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스탄불 비엔날레 예술 감독 선정에 대한 이번 논란은 국제 예술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튀르키예어 표기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2006년에 튀르키예어(당시 이름으로는 ‘터키어’) 표기 시안이 마련되었지만 정식으로 고시되지는 않았다.

이 시안에 따르면 Esra Sarıgedik Öktem ‘에스라 사르게디크 왹템’, Defne Ayas ‘데프네 아야스’, Hrant Dink ‘흐란트 딘크’, Rakel Dink ‘라켈 딘크’와 같이 표기할 수 있다. 이 시안에서는 n을 언제나 ‘ㄴ’으로 적게 했기 때문에 Dink는 ‘딘크’로 적는다.

그런데 튀르키예어에서는 /n/이 뒤따르는 자음에 위치 동화하기 때문에 Dink는 [diɲc]로 발음된다. 여기서 k는 앞선 전설 모음 [i]의 영향으로 경구개음 [c]로 발음된다. 반면 bank에서는 k가 연구개음 [k]이므로 n도 연구개 비음 [ŋ]으로 자음 동화하여 [baŋk] ‘방크’로 발음된다. Ankara도 [ˈɑŋkɑɾɑ] ‘앙카라’로 발음된다.

중앙 아나톨리아 방언에서는 /ŋ/ 음소가 따로 있고 오스만 튀르크어에서도 표기상 이를 구별했지만 이스탄불 방언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표준 튀르키예어에서는 [ŋ]이 /n/의 변이음으로만 나타난다. 에스파냐어도 /ŋ/ 음소가 따로 없고 /n/의 변이음으로만 나타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cinco /ˈθinko/ [ˈθiŋko] ‘싱코’에서와 같이 받침 ‘ㅇ’으로 적는다.

그러니 적어도 [k]로 발음되는 k 앞의 n은 받침 ‘ㅇ’으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다. 그러면 Dink에서처럼 [c]로 발음되는 k 앞에서 경구개 비음 [ɲ]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어떨까? 편의상 경구개음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 음은 사실 경구개음과 연구개음의 사이인 후경구개음 [ŋ̟]이다. 독일어 gängig [ˈɡɛŋɪç] ‘겡이히'(규범 표기는 ‘겡기히’)에서도 전설 모음 사이에서 [ŋ]은 후경구개 변이음 [ŋ̟]으로 실현된다.

한글 표기에서는 튀르키예어에서 [k]가 구개음화한 [c]도 그냥 ‘ㅋ’으로 적으니 [ŋ]이 구개음화한 [ɲ]도 그냥 받침 ‘ㅇ’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Dink는 서아르메니아어 Տինք Dinkʿ [diŋkʰ] ‘딩크’에서 온 이름인데 이처럼 아르메니아어에서도 n은 연구개음 앞에서는 [ŋ]으로 발음된다(Jasmine Dum-Tragut, 2009, Armenian, p. 27).

그러니 적어도 Hrant Dink와 Rakel Dink의 이름에서는 튀르키예어로 취급하든 아르메니아어로 취급하든 ‘딩크’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시안에서 n의 표기를 ‘ㄴ’으로 통일한 것은 전통 튀르키예어 발음에서 이런 위치 동화가 일어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인 듯하다. Ankara는 [ˈɑnkɑɾɑ] ‘안카라’라고 발음될 수도 있다. 또 uzun + köprü로 분석할 수 있는 Uzunköprü, derin + kuyu로 분석할 수 있는 Derinkuyu 같은 지명에서 볼 수 있듯이 합성어에서는 그 경계에 있는 n을 위치 동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니 무조건 ‘ㄴ’으로 적는 것도 일리가 있으나 ‘앙카라’ 같은 익숙한 표기 방식을 버리는 것도 무리이다.

Sarıgedik [sɑɾɯɟeˈdic] ‘사르게디크’에서 ı는 한국어의 ‘으’처럼 [ɯ]로 발음되니 시안에서는 ‘으’로 적는다. 시안이 적용되기 이전의 용례에서는 i로 취급하여 ‘이’로 적었다.

Öktem [œcˈtæm] ‘왹템’에서 ö는 [ø̞~œ]로 발음되며 시안에서 ‘외’로 적는다. 대부분의 화자들은 e /e/를 종성 /m/ 앞에서 [æ]로 실현하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이 변이음을 무시하고 ‘에’로 통일해서 적는다. 무성음 앞의 k는 받침 ‘ㄱ’으로 적게 했는데 이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공통되게 적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니 ‘*외크템’이 아닌 ‘왹템’으로 적는다.

Defne [defˈne] ‘데프네’는 ‘월계수’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dáphnē(δάφνη) ‘다프네’, 현대 그리스어 dáfni(δάφνη) ‘다프니’에서 오스만 튀르크어 دفنه‎ defne ‘데프네’를 거쳐 전해진 것이다. 튀르키예어에서도 defne가 ‘월계수’를 뜻하며 Defne는 여자 이름으로 쓰인다.

İKSV는 튀르키예어로 i ka se ve ‘이카세베’로 발음하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냥 ‘아이케이에스브이’로 읽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튀르키예어로 k는 보통 ke로 읽지만 로마자 약어에서는 ka로 읽는 일이 흔하다.

Iwona Blazwick은 본인이 [ɪ.ˈvɒn.ə ˈblæz.wɪk] ‘이보나 블래즈윅’으로 발음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영국 런던에서 폴란드 출신 부모에게 태어났으며 폴란드어 본명은 Iwona Błaszczyk [iˈvɔna ˈbwaʂʦ̢ɨk] ‘이보나 브와슈치크’인데 영어 화자들이 성씨를 너무 어려워 해서 Blazwick으로 변형시켰다고 한다.

같은 동영상에서 Whitechapel Gallery [ˈ(h)waɪ̯t.ˌʧæp.(ə)l ˈɡæl.əɹ.i] ‘화이트채플 갤러리’를 [ˈwaɪ̯t.ˌʧap.(ə)l ˈɡal.əɹ.i] ‘와이트차플 갈러리’ 비슷하게 발음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æ]를 [a] 비슷한 개모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블라즈윅’ 비슷하게 들리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æ]로 취급하여 ‘애’로 표기한다.

한 동영상에서 나오는 다른 영국 영어 화자 발음에서는 이 모음이 [æ]라는 것을 더 잘 들을 수 있다.

물론 미국 영어 화자 발음에서는 틀림없는 [æ]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어 지명이나 지명에서 유래한 인명에서 -wick은 [w] 없이 그냥 [ɪk] ‘익’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Barwick [ˈbæɹ.ɪk] ‘배릭’, Chiswick [ˈʧɪz.ɪk] ‘치직’, Warwick [ˈwɒˑɹ.ɪk] ‘워릭’ 등을 들 수 있다(여기서 [ɒˑ]는 방언에 따라 [ɒ] 또는 [ɔː]로 발음된다는 약식 기호이다).

하지만 Brunswick [ˈbɹʌnz.wɪk] ‘브런즈윅’, Chadwick [ˈʧæd.wɪk] ‘채드윅’, Gatwick [ˈɡæt.wɪk] ‘개트윅’ 등에서는 [wɪk] ‘윅’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발음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또 미국 이름으로서는 Barwick [ˈbɑːɹ.wɪk] ‘바윅’, Warwick [ˈwɔːɹ.wɪk] ‘워윅’ 등 철자에 가까운 발음을 쓴다. Blazwick은 지어낸 이름이니 철자에 가깝게 [wɪk] ‘윅’으로 발음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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