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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손을 놓았던 이글루스 글 복구 작업을 며칠 전부터 다시 하고 있다. 예전에 이글루스에 올렸다가 이글루스 종료로 볼 수 없게 된 글들을 끝소리 웹사이트의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인데 그러면서 포매팅을 다시 다듬고 오류를 수정하거나 내용을 추가하기도 하는 수작업이어서 진전 속도가 느리다. 그래도 2010년 9월까지 진도가 올라갔고 더 최신 글도 일부 블로그에 올렸다. 웹사이트의 자체 검색 기능을 사용하려 하면 오류 화면이 나타나던 문제도 해결했다.
링크된 글은 2009년 3월 25일에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러 고유 명사의 표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15년 만에 다시 보니 덴마크어 Frej를 ‘프라이’ 대신 ‘*프레이’로 썼던 것 같은 각종 오류도 눈에 띄고 북유럽 신화 주요 원전의 언어인 고대 노르드어의 한글 표기에 대한 의견도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대 노르드어 주격 어미로 나타나는 -r의 표기이다. 원 글에서는 이를 모두 ‘르’로 적어 Gerðr ‘게르드르’, Njǫrðr ‘니오르드르’, Rindr ‘린드르’, Týr ‘튀르’, Ullr ‘울르’ 등으로 썼지만 지금은 이를 생략하여 ‘게르드’, ‘니오르드’, ‘린드’, ‘튀’, ‘울’로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신 Baldr ‘발드르’처럼 r가 어간의 일부로 나타나는 것은 한글 표기에 반영해야 한다.
주격 어미 -r는 격변화에서 다른 어미로 대체된다. 예를 들어 Njǫrðr의 속격형은 Njarðar, 대격형은 Njǫrð, 여격형은 Nirði이다(이 경우는 어간도 격에 따라 모음이 변한다). 그런데 Baldr의 속격형은 Baldrs, 대격형은 Baldr, 여격형은 Baldri이니 여기서는 r가 어간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고대 노르드어 이름의 격변화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쉽지 않지만 현대 언어에서 쓰는 이름의 형태를 통해 -r가 주격 어미인지 어간의 일부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Njǫrðr는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에서 Njord ‘니오르’, 스웨덴어에서 Njord ‘니오르드’라고 하는데 Baldr는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 스웨덴어에서 모두 Balder ‘발데르’라고 한다.
원 글에서는 고대 노르드어 ey의 한글 표기를 ‘외위’ 또는 ‘에이’로 하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 철자는 대체로 [øy̯]로 재구되는 것과 현대 아이슬란드어에서 ey를 [ei]로 발음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 발음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옛 언어의 한글 표기를 정할 때 되도록이면 철자에 나타나는 발음에 가깝게 표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에위’로 적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e는 ‘에’로 적고 y는 ‘위’로 적으니 ey는 ‘에위’로 적는 것이 무난하다. 실제로 ey는 원래 [ey̯] 비슷한 음을 나타냈다가 뒷부분 [y̯]의 영향으로 [e]도 원순모음화하여 [ø]로 바뀌어 [øy̯]가 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어에서 eu로 적는 이중 모음 [ɔʏ̯~ɔɪ̯] ‘오이’도 [øy̯~œy̯] 비슷한 단계를 거쳐 현 발음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데 중세 고지 독일어의 eu는 철자 그대로 [eu̯] ‘에우’와 가까운 음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전설 모음인 [e]의 영향으로 [u̯]가 [y̯]로 바뀌는 한편 [e]는 후반부의 영향으로 [ø~œ]로 원순모음화했을 것이다.
아직 고대 노르드어 þ [θ]와 v [w]의 표기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재구되는 음가에 따르면 각각 ‘ㅅ’, ‘우*’로 쓰는 것이 맞지만(여기서 ‘우*’는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와’, ‘웨’ 등으로 적는 것을 나타낸다) 현대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에서 각각 [t], [v]로 발음되는 것에 따라 각각 ‘ㅌ’, ‘ㅂ’으로 적는 것이 더 친숙해 보이기도 한다. 천둥의 신 Þórr는 ‘소르’보다는 ‘토르’가 익숙하고 복수의 신 Víðarr는 ‘위다르’보다는 ‘비다르’로 흔히 적을 듯하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영어의 [θ]를 ‘ㅆ’ 대신 ‘ㅅ’으로 적는 것을 언중이 어색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작용할 것이다.
고전 라틴어에서 [w]로 발음되었던 라틴어의 v를 외래어 표기법에서 ‘ㅂ’으로 적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등 현대 로망어에서는 v가 [v]로 발음되며 에스파냐어에서는 v가 위치에 따라 [b] 또는 [β̞]로 발음된다. 마찬가지로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한 아이슬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등에서는 v가 [v] 내지 [ʋ]로 발음되며 경우에 따라 [w]에 가깝게 들릴 수는 있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ㅂ’으로 통일한다.
거꾸로 그리스어의 θ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tʰ]로 발음되었고 라틴어 및 그 영향을 받은 영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현대 언어에서 [t]로 발음하기 때문에 ‘ㅌ’으로 적으며 현대 그리스어에서 [θ]로 발음되는데도 ‘ㅌ’으로 적는다. 그런데 고대 노르드어 þ [θ]는 현대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스웨덴어에서 t/th [t]로 변했지만 현대 아이슬란드어에서는 여전히 [θ]로 유지된다. 현대 그리스어의 θ [θ]를 ‘ㅌ’으로 적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아이슬란드어의 þ [θ]도 ‘ㅌ’으로 적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고대 노르드어의 후손은 아니지만 같은 게르만 어파에 속하여 조카뻘이 되는 영어는 특이하게도 게르만 조어의 [θ], [w]를 모두 유지했다. 요일 이름인 영어 Thursday [ˈθɜːɹz.deɪ̯, -di], ‘서즈데이’, Wednesday [ˈwɛnz.deɪ̯, -di] ‘웬즈데이’의 첫부분은 각각 고대 노르드어의 Þórr ‘소르/토르’와 Óðinn ‘오딘’에 해당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게르만 조어 *Wōdanaz에서 원순 모음 앞의 [w]가 탈락하여 Óðinn이 되었지만 고대 영어에서는 Woden ‘워덴’이라고 했다. 한편 고대 영어에서는 게르만 조어 *Þunraz에 해당하는 천둥의 신을 Þunor ‘수노르’라고 했고 이는 현대 영어 thunder [ˈθʌnd.əɹ] ‘선더’에 해당한다(고대 영어에서 천둥의 신의 이름은 ‘천둥’을 뜻하는 일반 명사 þunor ‘수노르’와 형태가 같았다). 그런데 Thursday는 고대 영어 *þunresdæg ‘순레스대이’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고대 노르드어 þórsdagr ‘소르스다그/토르스다그’를 직접 차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영어에서는 북유럽 신화의 이름을 발음할 때 Þórr에 해당하는 Thor를 [ˈθɔːɹ] ‘소’로 발음하는 등 [θ] 발음을 쓰지만 고대 노르드어의 v는 철자에 이끌려 보통 [v]로 발음한다.
어쨌든 고대 노르드어의 한글 표기에 대해서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고대 노르드어 þ [θ]와 v [w]는 어떻게 적는 것이 좋을까? 그 외에도 ng의 표기, hv, hl, hn, hr의 표기 등 글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