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만에 완성된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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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아카데미(학술원 또는 한림원)에서 펴내는 스웨덴어 사전인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Svenska Akademiens ordbok, SAOB)》이 140년만에 완성되어 지난주 스웨덴어 알파벳 마지막 자모인 Ö로 시작되는 표제어를 다룬 마지막 권이 인쇄소에 보내졌다(스웨덴어 알파벳에서는 Z 뒤에 Å, Ä, Ö가 따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체 39권 가운데 일부는 나온지 너무 오래되어서 출판된 후 스웨덴어에서 생겨난 단어를 추가하려면 수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92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allergi [alærˈɡiː, alɛr-, alər-] ‘알레르기’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A로 시작하는 표제어를 다룬 권이 1893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1786년에 스웨덴 아카데미가 설립되면서 계획되었고 수차례 중단되었다가 1883년에 본격적으로 재개된 사전의 편찬 작업에는 지금까지 상근 직원 137명이 동원되었다. 무슨 사전을 만드는데 140년이 걸렸을까?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은 1521년부터 오늘날까지 쓰인 스웨덴어 글말의 역사를 기록하는 최고 권위 사전이다. 즉 스웨덴 왕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 시절부터 스웨덴어에서 쓰인 단어는 모두 수록하는 것이 목표이다. 대신 인명이나 지명, 순수 기술 용어, 방언이나 외국어 단어는 보통 포함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성경 및 종교적인 글, 토지 기록, 편지, 일기, 신문, 문학·비문학 서적 등 스웨덴어로 쓰인 다양한 문헌 자료 약 2만 개 정도를 모았는데 16세기에 인쇄된 글은 사실상 전부 포함되고 17세기 인쇄문도 대부분 수집되었다. 그래서 표제어마다 최초로 문증되는 연도를 제시하여 언제부터 쓰였는지 찾을 수 있다. 표제어는 전부 합쳐 50만 개 가량 된다.

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에 견줄 수 있는데 다른 점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중세의 고대 영어까지도 다루지만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은 16세기부터 쓰인 신스웨덴어(근대 스웨덴어와 현대 스웨덴어)만 다룬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전보다는 훨씬 방대한 양을 다룬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스웨덴어의 올바른 철자를 찾을 수 있는 한 권짜리 《스웨덴 아카데미 단어집(Svenska Akademiens ordlista, SAOL)》도 펴내며 2009년에는 이 단어집보다는 더 상세한 뜻풀이와 어원 설명 등을 담은 두 권짜리 《스웨덴어 사전(Svensk ordbok, SO)》도 펴냈는데 이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 사전과 비슷하다. 스웨덴 아카데미의 온라인 사전 포털에서 《스웨덴 아카데미 단어집》과 《스웨덴어 사전》,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을 동시에 검색할 수 있다.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 편찬 작업은 그동안 스웨덴 아카데미의 재정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 2021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2023년 마지막 권이 마무리된 후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요한 수정 작업이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을 살리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2022년에 스웨덴 아카데미는 헬게 악셀손 욘손 기금(Helge Ax:son Johnsons Stiftelse)과 핀란드 스웨덴어 문학 학회(Svenska litteratursällskapet i Finland), 스웨덴 왕립 문학 아카데미(Kungliga Vitterhetsakademien), 스웨덴 중앙 은행 300주년 기금(Riksbankens Jubileumsfond)의 지원을 확보하여 2024년부터 수정 작업이 시작된다고 발표하였다.

참고로 Ax:son은 Axelsson ‘악셀손’을 스웨덴어식으로 줄여 쓴 표기이다. 스웨덴어에서는 Sankt ‘상크트’를 S:t로 쓰는 등 영어의 아포스트로피(‘)처럼 준말에 쌍점(:)을 쓴다.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이나 《옥스퍼드 영어 사전》, 1838년에 그림 형제가 시작하여 1450년 이후의 독일어 어휘를 망라하는 《독일어 사전(Deutsches Wörterbuch, DWB)》, 1849년에 작업이 시작되어 43권에 달하는 《네덜란드어 사전(Woordenboek der Nederlandsche Taal, WNT)》, 19~20세기 프랑스어를 다룬 16권짜리 《프랑스어 보고 사전(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TLF)》 같은 한국어 사전은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99년에 전 3권으로 완간되어 현재 온라인판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있지만 표준어를 정하여 언어 지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규범주의적 사전이라서 한국어에서 실제 쓰이거나 과거에 쓰인 어휘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민간에서 나오는 기술주의적 사전으로 가장 권위있는 것은 2009년에 완성된 3권짜리 《고려대학교 한국어대사전》인데 현대 한국어만 다루고 옛말은 취급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2016년부터 회원 가입으로 일반인도 집필이나 수정이 가능한 사용자 참여형 사전인 《우리말샘》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사회성만 입증되면 표제어를 얼마든지 실을 수 있는 기술주의적 사전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고가 필요한 사전 편찬 작업을 이른바 집단 지성에 맡기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오늘날 쓰이는 신어 등은 일반인 사용자의 참여로 얼마든지 다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헌 조사를 통해 옛말을 찾아내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2016년 《우리말샘》 개통 당시 나온 글을 보면 당시 구축한 문헌 자료를 통해 옛말을 많이 발굴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표제어로 싣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2019년에는 예전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렸던 옛말·방언·북한어를 삭제하여 《우리말샘》에서만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니 한국어의 역사를 총망라한 사전은 《우리말샘》이 유일한데 규모나 깊이에서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 같은 예와 비교할 때 한참 떨어진다.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도 재정 지원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체계적인 한국어 역사 사전을 펴내는 방대한 사업을 도대체 누가 지원해줄 수 있을지 깜깜하다.

Svenska Akademien [ˈsvɛ̂nːska ˌakadəˈmiːn] ‘스벤스카 아카데민’을 ‘스웨덴 아카데미’로 번역했는데 노벨상 수여로 잘 알려진 이 기관은 사실 전부터 ‘스웨덴 한림원’이라고 널리 불린다. 그런데 오늘날 한림원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더 알아듣기 쉬운 학술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스웨덴어 akademie [ˌakadəˈmiː] ‘아카데미’와 동형인 ‘아카데미’ 역시 표준어로 인정된 만큼 여기서는 Svenska Akademien에서 더 연상하기 쉬운 번역어 ‘스웨덴 아카데미’를 쓰기로 했다(akademien은 akademie에 정관사 -(e)n을 붙인 형태이다). 물론 《스웨덴 아카데미 사전》 대신 《스웨덴 한림원 사전》, 《스웨덴 학술원 사전》 등으로 번역하여 쓰는 것도 나름 근거가 있으니 올바른 번역어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스웨덴어 ie는 ‘이에’로 적어야 하지만 akademie와 같은 일부 단어에서 ie는 [iː]로 발음되므로 노르웨이어나 덴마크어 ie처럼 ‘이’로 적는 것이 좋다. 그러니 akademie는 ‘*아카데미에’가 아니라 ‘아카데미’, akademien은 ‘*아카데미엔’이 아니라 ‘아카데민’이다. 스웨덴 소설가 Stieg Larsson [ˈstiːɡ ˈlɑ̌ːʂɔn]도 ‘*스티에그 라르손’이 아니라 ‘스티그 라르손’이다.

반대로 노르웨이어나 덴마크어의 ie도 드물게 두 음으로 발음되어 ‘이에’로 적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여자 이름 Amalie는 노르웨이어로 [ɑˈmɑ̀ːljə], 덴마크어로 [aˈmæːˀljə]로 발음되니 ‘*아말리’가 아니라 ‘아말리에’로 적어야 한다. 한편 노르웨이 지명 Skien [ˈʂêːən]은 표기 용례에서 ‘*신’ 대신 ‘*시엔’으로 적는데(예외적인 표기로 취급하여 ‘시엔’에 별표를 붙였다) ie가 두 음으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첫 모음이 불규칙적으로 [iː] 대신 [eː]가 되어 ‘*셰엔’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까지는 반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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