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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의 혼성 4성부 합창단은 가장 음역이 높은 성부부터 소프라노(soprano), 알토(alto), 테너(tenor), 베이스(bass)로 구성된다. 보통 소프라노와 알토가 여성 성부이고 테너와 베이스가 남성 성부이다.
성악 음역을 논할 때는 알토라는 말을 쓰는 대신 여자 가수의 경우 소프라노 다음으로 높은 음역은 메조소프라노(mezzo-soprano)라고 하고 더 낮은 음역은 콘트랄토(contralto)라고 한다. 메조소프라노나 콘트랄토와 비슷한 음역대의 남자 가수의 경우 카운터테너(countertenor)라는 용어를 쓴다. 또 남자 가수는 테너와 베이스 사이에 바리톤(baritone)이 들어간다. 그래서 성악가는 음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 카운터테너, 테너, 바리톤, 베이스라고 부른다. 보통 성인 여자는 메조소프라노, 성인 남자는 바리톤이 평균적인 음역이다. 바리톤은 남성 성부를 더 세부적으로 나눈 합창단에서 성부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들은 대체로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폴리포니(다성부) 음악에서 쓰인 용어가 이탈리아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성부 수와 구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쓰였다.
높은 음역의 성부는 흔히 라틴어로 ‘더 높은’을 뜻하는 superius ‘수페리우스’라고 부르고 밑을 받쳐주는 기본 선율을 맡은 성부는 라틴어로 ‘붙드는 이’를 뜻하는 tenor ‘테노르’라고 불렀다. tenor를 기준으로 더 높은 성부는 라틴어로 ‘높은’을 뜻하는 altus ‘알투스’, 더 낮은 성부는 라틴어로 ‘낮은’을 뜻하는 bassus ‘바수스’로 불렀다.
또 별개의 선율을 맡은 성부가 있으면 ‘노래’를 뜻하는 cantus ‘칸투스’라고 불렀고 여기에 조화되게 더 높은 음으로 부르는 성부는 접두사 dis-를 더해서 discantus ‘디스칸투스’라고 불렀다. 각 성부의 음역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cantus와 discantus는 보통 tenor보다는 높고 superius보다는 낮은 성부였다.
가장 높은 성부는 superius 대신 ‘세 겹’을 뜻하는 triplex ‘트리플렉스’로 부르기도 했다. 이는 원래 3성부 음악에서 가장 높은 성부를 이르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tenor와 triplex 사이의 성부는 ‘가운데의’를 뜻하는 medius ‘메디우스’로 불렀다. triplex의 동의어 triplus ‘트리플루스’가 고대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전해진 treble [ˈtɹɛb.(ə)l] ‘트레블’은 오늘날 보통 악기나 음향 기기 등에서 높은 음역을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주로 나이어린 합창단원의 고음 성부를 이르기도 한다.
그 밖에 기본 4성부에 추가된 제5의 성부, 제6의 성부라는 뜻으로 quintus ‘퀸투스’, sextus ‘섹스투스’가 쓰이기도 했는데 음역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름이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조세포 자를리노(Gioseffo Zarlino [ʤoˈzɛffo ʣarˈliːno], 1517~1590, 외래어 표기법 규범에 따른 표기는 ‘차를리노’)가 1558년에 펴낸 음악 이론서 《화성의 원리(Istitutioni harmoniche, 현대 이탈리아어 철자 Istituzioni armoniche)》에서 soprano ‘소프라노’, alto ‘알토’, tenore ‘테노레’, basso ‘바소’와 같은 이탈리아어식 성부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어 soprano [soˈpraːno] ‘소프라노’는 라틴어로 ‘위에’를 뜻하는 super ‘수페르’에 접미사 -anus가 붙은 통속 라틴어 *superanus ‘수페라누스’에서 유래했다. superius도 super에서 파생된 말이니 비슷한 말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으로 이 단어는 다른 언어에 전해져서 영어로는 [sə.ˈpɹæn.oʊ̯] ‘서프래노’ 혹은 [sə.ˈpɹɑːn.oʊ̯] ‘서프라노’로 발음하고 독일어 Sopran [zoˈpʁaːn] ‘조프란’, 프랑스어 soprano [sɔpʁano] ‘소프라노’ 등이 되었다.
‘군주’를 뜻하는 영어의 sovereign [ˈsɒv.ɹᵻn, ˈsɒv.(ə)ɹ.ᵻn] ‘소버린’도 *superanus가 고대 프랑스어 soverain, souverein 등을 거쳐서 전해진 말이다. 이에 대응되는 현대 프랑스어는 souverain [suvʁɛ̃] ‘수브랭’이다.
alto [ˈalto] ‘알토’는 이탈리아어로 ‘높은’을 뜻하며 라틴어 altus ‘알투스’에서 나왔다. 인도·유럽 조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어로 ‘오래된’을 뜻하는 old [ˈoʊ̯ld] ‘올드’와 동계어이다. 더 가까이는 ‘고도’를 뜻하는 영어 altitude [ˈælt.ᵻ.ˌtjuːd] ‘앨티튜드’가 altus에서 파생되어 ‘높이’를 뜻하는 라틴어 altitudo ‘알티투도’를 차용한 말이다. alto를 영어로는 보통 [ˈælt.oʊ̯] ‘앨토’로 발음하지만 [ˈɒlt.oʊ̯, ˈɔːlt-] ‘올토’, [ˈɑːlt.oʊ̯] ‘알토’도 가능하다. 독일어로는 Alt [ˈalt] ‘알트’라고 하는데 명사이기 때문에 첫머리를 대문자로 쓰는 것만 빼면 영어 old처럼 ‘오래된’을 뜻하는 동계어 alt와도 동형이다. 프랑스어로는 alto [alto] ‘알토’라고 한다.
‘소프라노’와 ‘알토’는 한글 표기에서 이탈리아어 soprano와 alto를 이탈리아어 발음에 따라 적는데 ‘테너’와 ‘베이스’는 이탈리아어 tenore, basso가 아니라 영어 tenor, bass의 영어 발음에 따라 적은 것이다.
라틴어 tenor ‘테노르’는 이탈리아어에서는 tenore ‘테노레’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언어에서 원래의 라틴어 형태와 가깝게 쓴다. 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네덜란드어·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폴란드어·체코어·헝가리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등에서 모두 tenor ‘테노르’라고 부르고 독일어로는 Tenor [teˈnoːɐ̯] ‘테노어’, 프랑스어로는 ténor [tenɔːʁ] ‘테노르’이다. ‘테너’는 물론 영어 발음 [ˈtɛn.əɹ]에 따른 표기이다.
라틴어 tenor는 ‘취지’, ‘내용’이라는 뜻도 있었기 때문에 영어 tenor ‘테너’ 역시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프랑스어에서는 ‘취지’, ‘내용’을 뜻하는 teneur [tənœːʁ] ‘트뇌르’와 성부를 이르는 ténor ‘테노르’의 형태가 구별되는데 전자는 라틴어 tenor에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를 거친 프랑스어 형태이고 후자는 라틴어 형태를 빌린 것이다. 프랑스어에서도 중세 다성부 음악에서 주 선율을 받쳐주는 성부를 이를 때는 teneur라고 한다.
basso [ˈbasso] ‘바소’는 이탈리아어로 ‘낮은’을 뜻하며 라틴어 bassus ‘바수스’에서 나왔다. 영어에서 ‘(특히 도덕적 수준이) 낮은’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쓰이는 base [ˈbeɪ̯s] ‘베이스’는 라틴어 bassus가 현대 프랑스어 bas [ba, bɑ] ‘바’에 해당하는 고대 프랑스어 bas를 통해 전해진 형태이다. ‘기초’, ‘바탕’ 등을 뜻하는 영어 명사 base는 라틴어 basis ‘바시스’가 현대 프랑스어 base [baːz] ‘바즈’에 해당하는 고대 프랑스어 base를 통해 전해진 것인데 라틴어 bassus는 basis처럼 고대 그리스어 βάσις(básis) ‘바시스’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탈리아어에서는 alto와 basso가 ‘높은’과 ‘낮은’의 뜻으로 짝을 이루는 일반적인 형용사이다. 에스파냐어 alto [ˈalto] ‘알토’와 bajo [ˈbaxo] ‘바호’, 포르투갈어 alto [ˈaɫtu] ‘알투'(포르투갈)/[ˈau̯tu] ‘아우투'(브라질)와 baixo [ˈbai̯ʃu] ‘바이슈’ 역시 ‘높은’과 ‘낮은’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이자 성부 이름으로 쓰인다. 다만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의 alto는 라틴어에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를 거친 형태가 아니라 후에 라틴어의 영향으로 대체된 형태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처럼 통속 라틴어에서 유래한 로망어인 프랑스어에서는 ‘높은’과 ‘낮은’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가 남성형은 haut [o] ‘오’, bas [ba, bɑ] ‘바’, 여성형은 haute [oːt] ‘오트’, basse [bas, bɑːs] ‘바스’이다(haut/haute는 라틴어 altus에서 나온 형태와 게르만 어파에 속하는 프랑크어 *hauh, *hōh가 혼합된 형태이다). 이미 알토 성부를 이르는 말로는 이탈리아어 형태를 빌린 alto [alto] ‘알토’를 쓴다는 것을 보았으니 ‘높은’을 뜻하는 일반적인 형용사와는 전혀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베이스 성부를 프랑스어로는 basse [bas, bɑːs] ‘바스’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이탈리아어 basso ‘바소’를 빌린 것인데 프랑스어식으로 마지막 -o가 -e로 바뀐 형태가 프랑스어에 이미 존재하던 여성형 형용사 basse와 우연히 동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어에서 basse는 여성 명사로 재해석되었다. 남성 베이스 가수를 이를 때도 여성 명사이다.
독일어 Bass [ˈbas] ‘바스’, 노르웨이어 bass ‘바스’, 네덜란드어·덴마크어·스웨덴어·폴란드어·체코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bas ‘바스’ 등은 라틴어 bassus나 이탈리아어 basso에서 마지막 음절이 탈락한 형태이다. 루마니아어도 통속 라틴어에서 유래한 로망어이지만 altus와 bassus에서 유래한 말을 ‘높은’, ‘낮은’을 뜻하는 형용사로는 쓰지 않으니 성부 이름으로 쓰이는 alto ‘알토’, bas ‘바스’는 차용어이다. 대신 altus에 전치사 in이 붙은 형태에서 나온 înalt [ɨˈnalt] ‘으날트’가 루마니아어에서 ‘높은’을 뜻한다. 헝가리어는 특이하게 라틴어의 마지막 음절을 탈락시키지 않고 발음만 헝가리어식으로 하여 basszus [ˈbɒsːuʃ] ‘버수시’라고 쓴다.
영어에서는 라틴어 bassus에서 나온 base [ˈbeɪ̯s] ‘베이스’의 발음은 그대로 쓰면서 철자만 라틴어를 흉내내어 bass로 바꿨다. 그래서 철자로부터 발음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철자가 같은 bass는 물고기의 하나인 ‘농어’를 뜻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 경우는 철자에서 예측할 수 있는 발음 [ˈbæs] ‘배스’를 쓴다.
메조소프라노는 어떨까? 라틴어 medius ‘메디우스’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mezzo [ˈmɛdʣo]는 ‘반’, ‘가운데’를 뜻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탈리아어의 z는 ‘ㅊ’으로 적으므로 mezzo는 ‘메초’로 써야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이것이 들어간 음악 용어인 ‘메조^포르테(mezzo forte)’, ‘메조^피아노(mezzo piano)’ 등에서 모두 ‘메조’로 적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mezzo의 여성형 mezza [ˈmɛdʣa]는 ‘메차^보체(mezza voce)’에서 ‘메차’로 적는다.
영어에서는 mezzo를 주로 [ˈmɛts.oʊ̯] ‘메초’라고 발음하지만 [ˈmɛdz.oʊ̯] ‘메조’도 혼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조’라는 표기는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나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탈리아어에서 [ˈpitʦa] ‘피차’, 영어에서 [ˈpiːts.ə] ‘피차’로 발음되는 pizza를 ‘피자’로 적는 것이나 본인은 [ˈʃvɑːɹts.(ə)n‿ɛɡ.əɹ] ‘슈바츠네거’, 일반적인 영어 화자는 [ˈʃwɔːɹts.ə.nɛɡ.əɹ] ‘슈워처네거’로 발음하는 독일어식 영어 인명 Schwarzenegger의 한글 표기가 ‘슈워제네거’로 심의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원어 발음을 확인하지 않고 철자 z를 무조건 ‘ㅈ’으로 적은 결과일 수 있다.
영어에서 강세 음절의 첫소리를 이루는 무성 폐쇄음 [p, t, k]나 파찰음 [ʧ]는 보통 기식음을 동반하기 때문에 한국어의 거센소리 ‘ㅍ’, ‘ㅌ’, ‘ㅋ’, ‘ㅊ’ 등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외의 위치에서는 기식음이 별로 없이 발음되기 때문에 얼핏 된소리 ‘ㅃ’, ‘ㄸ’, ‘ㄲ’, ‘ㅉ’ 등을 약하게 발음한 것처럼 소리나기 쉽다. papa [ˈpɑːp.ə]는 사실 ‘파파’보다는 ‘파빠’에 가깝게 들린다.
영어에서 [ts]는 보통 강세 음절의 첫소리 위치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기식음이 별로 없어 한국어 화자에게는 ‘ㅊ’보다는 ‘ㅉ’에 가깝게 들리기 쉽다. 그러니 mezzo, pizza의 영어 발음 [ˈmɛts.oʊ̯], [ˈpiːts.ə]는 사실 ‘메초’, ‘피차’보다는 ‘메쪼’, ‘피짜’에 가깝게 들린다. ‘메조’, 피자’ 등의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된소리 ‘ㅉ’는 피하면서 철자 z의 영향으로 ‘ㅊ’ 대신 ‘ㅈ’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어에서 z는 무성 파찰음 [ʦ]로 발음되기도 하고 이에 대응되는 유성 파찰음 [ʣ]로 발음되기도 한다. z는 원래 그리스 문자의 자모 제타(Ζ, ζ)에서 빌린 자모로서 로마자에 추가되었는데 그리스어에서 온 차용어에서는 [ʣ]로 발음된 듯하다. 라틴어 [dj], [gj]에서 유래한 파찰음 [ʣ]를 나타내는 철자로도 z가 활용되었다. 그래서 라틴어 medius [ˈmɛdɪʊs → ˈmɛdjʊs]에서 나온 [ˈmɛdʣo]는 mezzo로 적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Zarlino [ʣarˈliːno]에서도 z는 [ʣ]를 나타낸다.
한편 이탈리아어에서는 라틴어 [tj]에서 유래한 [ʦ]를 적는 데도 z가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노래’를 뜻하는 canzone [kanˈʦoːne] ‘칸초네’는 라틴어 cantionem [kantɪˈoːnɛ̃ → kanˈtjoːnɛ̃] ‘칸티오넴’에서 유래했다. 차용어에서 쓰이는 [ʦ]도 z로 적었다. pizza는 중세 그리스어 πίτα(píta) ‘피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이탈리아어에서는 철자상 [ʦ]와 [ʣ]를 구별하지 않고 둘 다 z로 적는다. 즉 사전에서 발음을 찾아보지 않고는 이탈리아어의 철자 z가 [ʦ]인지 [ʣ]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또 치즈의 일종인 gorgonzola [ɡorɡonˈʣɔːla, -ˈʦɔːla] ‘고르곤졸라/고르곤촐라’나 스위스 지명인 Bellinzona [bellinˈʦoːna, -ˈʣoːna] ‘벨린초나/벨린조나’처럼 두 발음이 혼용되는 경우도 있다.
편의상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z는 ‘ㅊ’으로 통일한다. 어쩌면 Firenze [fiˈrɛnʦe] ‘피렌체’, Lazio [ˈlatʦjo] ‘라치오’, Venezia [veˈnɛtʦja] ‘베네치아’ 등 주요 지명이나 Fabrizio [faˈbritʦjo] ‘파브리치오’, Lorenzo [loˈrɛnʦo] ‘로렌초’, Vincenzo [vinˈʧɛnʦo] ‘빈첸초’ 등 흔한 이름에서 z가 [ʦ]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탈리아어에서는 [ʣ]를 쓰는 mezzo도 영어에서는 보통 [ts]를 쓴 [ˈmɛts.oʊ̯]로 흉내내는 것처럼 말이다(대신 영어에서는 이탈리아어의 z도 특히 겹자음 zz가 아닌 경우는 그냥 영어 철자식으로 [z]로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이탈리아어의 z를 ‘ㅊ’으로 적는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Lorenzo ‘로렌초’는 영어식 발음 [lə.ˈɹɛnz.oʊ̯, lɒˑ-] ‘러렌조/로렌조’의 영향인지 ‘로렌조’로 적는 경우가 흔하고 이탈리아식 물소젖 치즈의 하나인 mozzarella [motʦaˈrɛlla]는 규범에 따른 ‘모차렐라’보다는 ‘모짜렐라’가 더 흔해 보인다.
번거롭더라도 이탈리아어의 z는 발음을 고려해서 [ʦ]로 발음되는 것은 ‘ㅊ’, [ʣ]로 발음되는 것은 ‘ㅈ’으로 구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mezzo, mezza는 이탈리아어로 간주하더라도 ‘메조’, ‘메자’로 표기로 통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Zarlino는 규범상 ‘차를리노’로 적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발음에 따라 ‘자를리노’로 적었다.
영어에서는 보통 붙임표를 써서 mezzo-soprano라고 하고 이탈리아어에서는 그냥 mezzosoprano라고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원어를 mezzo-soprano로 제시하고 이탈리아어라고 설명했지만 실은 영어를 통해 전해진 형태라는 것이 들어난다. 이탈리아어식 어휘이니만큼 영어 발음도 ‘메초서프래노’, ‘메조서프래노’, ‘메초서프라노’, ‘메조서프라노’ 등 다양하다.
초기 다성부 음악에서 이른바 받쳐주는 성부인 tenor에 대응하는 성부는 ‘대항하여’, ‘반대하여’를 뜻하는 라틴어 contra ‘콘트라’를 붙여서 contratenor ‘콘트라테노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런 성부 둘을 쓰는 일이 흔해지면서 더 높은 성부는 contratenor altus ‘콘트라테노르 알투스’, 더 낮은 성부는 contratenor bassus ‘콘트라테노르 바수스’가 되었다. 이미 본 altus와 bassus는 여기서 나온 줄임말이다.
그런데 contratenor altus는 이탈리아어식 준말로 contralto [konˈtralto] ‘콘트랄토’가 되었으며 자를리노도 이 용어를 쓴다. 이 말은 프랑스어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 contralto [kɔ̃tʁalto] ‘콩트랄토’로 쓰고 영어에서는 contralto [kən.ˈtɹɑːlt.oʊ̯, kɒn-, -ˈtɹælt-] ‘컨트랄토/콘트랄토/컨트랠토/콘트랠토’ 등으로 발음한다.
독일어에서는 성악 음역을 이를 때도 그냥 알토 성부와 마찬가지로 Alt ‘알트’라고 부른다. 아주 낮은 음역을 이르는 Kontraalt [ˈkɔntʁaʔalt] 또는 Kontra-Alt [ˈkɔntʁa ˈalt] ‘콘트라알트’라는 용어도 있지만 흔하지 않다.
프랑스어에서는 contratenor altus에서 나온 말인 haute-contre [oːt kɔ̃ːtʁ → otkɔ̃ːtʁ] ‘오트콩트르’가 17~18세기 오페라에서 높은 테너 음역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 대신 오늘날의 카운터테너처럼 가성을 쓰는 음역은 아니었다.
영어에서는 중세 프랑스어 contreteneur 또는 contre-teneur(현대 프랑스어 발음은 [kɔ̃tʁətənœːʁ] ‘콩트르트뇌르’)를 받아들이면서 라틴어 contra, 프랑스어 contre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에 대응되는 동계어 counter [ˈkaʊ̯nt.əɹ] ‘카운터’로 대체하여 countertenor [ˈkaʊ̯nt.əɹ.ˌtɛn.əɹ] ‘카운터테너’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이를 남자 가수가 가성을 써서 일반 테너보다 높게 부르는 음역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
이 의미로 영어에서 프랑스어에 역수입되어 프랑스어에서 카운터테너는 contreténor 또는 contre-ténor [kɔ̃tʁətenɔːʁ] ‘콩트르테노르’라고 한다. 독일어에서도 흔히 그냥 영어 형태를 그대로 차용하여 Countertenor라고 쓰며 스웨덴어 등 다른 언어에서도 영어 형태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즉 ‘카운터테너’는 영어 용어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이탈리아어에서 contralto ‘콘트랄토’는 전통적으로 남녀 구별 없이 쓰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카운터테너, 즉 남자 가수의 경우 접미사 -ista를 붙여서 contraltista ‘콘트랄티스타’라고 부른다. countertenor나 라틴어 contratenor에 대응되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바리톤은 원래 15세기말 주로 프랑스의 교회 음악에서 쓰인 baritonans ‘바리토난스’라는 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보통 bassus보다도 더 낮은 음역의 성부를 이르는 말로 오늘날로 치면 베이스에 해당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무거운 소리’를 뜻하는 βαρύτονος(barýtonos) ‘바리토노스’에서 유래한 말에 라틴어 접미사 -ans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평균적인 남성 합창단원의 음역을 이르는 말로 뜻이 바뀌었다. 이탈리아어로는 baritono [baˈriːtono] ‘바리토노’라고 한다. 프랑스어로는 baryton [baʁitɔ̃] ‘바리통’, 독일어로는 Bariton [ˈba(ː)ʁitɔn] ‘바리톤’, 영어로는 baritone [ˈbæɹ.ᵻ.toʊ̯n] ‘배리톤’이다. 이들은 baritonans와 달리 그냥 고대 그리스어 barýtonos 또는 라틴어 barytonus/baritonus ‘바리토누스’에 접미사가 붙지 않은 형태에 해당된다. 네덜란드어·헝가리어·세르보크로아트어·루마니아어 bariton ‘바리톤’, 폴란드어·체코어 baryton ‘바리톤’, 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 baryton ‘바뤼톤’ 등도 마찬가지이다.
종합하자면 soprano ‘소프라노’와 alto ‘알토’, contralto ‘콘트랄토’는 이탈리아어 발음을, tenor ‘테너’와 bass ‘베이스’, countertenor ‘카운터테너’는 영어 발음을 따른 표기이다. mezzo-soprano는 이탈리아어 mezzosoprano를 발음에 따라 적은 ‘메조소프라노’를 쓴다(여기서 z는 [ʣ]로 발음되므로 ‘ㅈ’으로 쓴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 baritone ‘바리톤’의 한글 표기는 독일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서 쓰는 발음을 따른 것이다.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하는 원어는 영어에서 쓰는 철자를 그대로 따랐으며 형태상으로는 영어에서 나온 차용어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조리 영어 발음까지 흉내내는 것은 아니다. 음악 용어 같은 국제 어휘의 한글 표기를 정할 때는 영어 같은 특정 언어에서 쓰는 발음을 충실하게 나타내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여러 언어에서 어떻게 발음하는지 폭넓게 고려하면서 적당한 한글 표기를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